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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39

    “하아.”

    루크는 다른 탕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는 파이리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들어, 파이리스가 치는 사고가 늘어난 것 같다.

    루크는 차라리 파이가 예전의 정령체일 적 모습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그 때는 적어도 지금 같은 사고는 치지 않았을, 아니.

    못했을 테니까.

    몸을 얻고, 익숙해지고 나니 정말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루크는 파이리스를 씻기느라 이미 조금 젖어 있었던지라, 순간적인 추위로 몸이 떨리는 걸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에취!”

    확실히, 겨울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예르나는 추위에 떠는 루크를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춥지? 어서 루도 들어오렴.”

    “음…….”

    루크는 온천의 물에 몸을 담그기 전에, 먼저 살짝 발 끝을 넣어보았다.

    왜냐하면 그 온도가 아무래도 파이리스뿐 아니라 디아나에게도 너무 뜨거웠던 모양인지라, 루크도 역시 조금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예르나는 노천탕에 몸을 푹 담그고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원래 그런 온도에 둔감한 엘프이다보니, 온도에 대해서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기는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루크의 걱정과는 달리, 온천의 온도는 굉장히 알맞은 편이었다.

    파이리스와 디아나가 뜨겁다 느낀 것은 피부가 아직 미성숙하여 민감한 탓이려나.

    그제서야 루크는 안심하고 탕에 몸을 푸욱 담글 수 있었다.

    그러자 온 몸에 감겨오는 온천의 감각.

    굉장히 따듯하고, 포근한 감각이었다.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몸은 온천수로 후끈하고, 얼굴은 겨울의 찬 바람을 맞아 시원한, 그 균형이 굉장히 절묘하다.

    그에 루크는 결국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하아……, 좋구나.”

    이토록이나 멋진 겨울의 풍경 한가운데에서, 따스한 온천수로 몸을 녹이니, 이것이 바로 풍류가 아닐까?

    그러나 예르나는 탕에 몸을 담그며 감탄하는 루크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루크가 말하는 어투가 할머니에게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연륜이 묻어나온 탓에, 굉장히 나이든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푸흡! 뭐니, 그게. 할머니도 아니고.”

    “…….”

    루크는 입을 다물었다.

    ……엄밀히 따지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할머니라는 말은 너무하지 않은가.

    —-

    다 똑같은 물처럼 보여도, 사실 온천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했다.

    지열로 데워진 그저 따듯한 물에 불과한 단순한 온천부터, 온천이 난 지역의 성질에 따라 소금이 포함된 온천이나, 유황이 포함된 온천, 또는 탄산이 섞여있는 물이 나오는 온천이나, 철 등의 광물이 섞여나오는 온천까지, 세상에는 다양한 지형만큼이나 다양한 온천이 존재했다.

    그 중에서도 이 온천은 꽤나 특이한 편이었다.

    단순한 광물이 섞인 것이 아니라, 일리늄이라는 마석이 미량 포함되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치유력이 높으며, 막 솟아오른 간헐천의 뜨거운 온도를 다른 물을 섞지 않고 오로지 폭포를 통해서 공기로 식히기에 그 농도를 전혀 희석시키지 않아 더욱 깊은 향과 효험을 기대할 수 있다.

    ‘-라고, 안내 팻말에 적혀 있군.’

    자연과 같은 풍경 한켠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나무로 만들어진 팻말에 적혀있던 내용이다.

    아무리 박학다식한 루크라고해도 온천에 대한 정보에까지 빠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루크는 이전에도 온천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었고, 굳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 적도 없었으니까.

    ……솔직히 최근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조금 알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결국 인터넷으로 조금 훑어보는 것 정도로는 그 소문의 진위여부를 가릴 수 없을 테니까.

    그래도 온천에 담긴 마나를 보면 그 팻말이 아주 거짓말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언제까지고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루크가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예르나가 루크를 향해 말을 건네왔다.

    “되게 잘 온 것 같아. 그치, 루?”

    “네, 그러네요.”

    뭐, 사실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떤가.

    지금 당장 기분이 좋으면 됐지.

    “음.”

    다만, 신경이 쓰이는 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엄마, 엄마도 지금 제가 살쪄 보여요?”

    루크의 질문하는 목소리에서 예르나는 아주 약간의 절박함을 읽었다.

    그게 그렇게까지 걱정되는 일이었을까?

    “아니? 루크는 하나도 살 안 쪘지.”

    “정말요?”

    역시, 다이튼의 눈이 이상한 거였다.

    “응. 엄마가 보기엔 오히려 지금이 딱 보기 좋은데.”

    ‘지금이 딱 보기 좋다’는 건, 어쨌든 ‘전이랑은 달라졌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전과 달라졌다’ 이는 즉, 척 보기에도 전과 달라 보일 정도로 살이 쪘다는 말이 되지 않나!

    그녀는 분명 자신의 편인 줄 알았는데, 내 편은 정녕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그 말은 지금 제가 쪘다는 말이잖아요!”

    결국 루크는 인상을 쓰며 외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너무 크지는 않게.

    아니면, 정말 그 정도로 살이 찐 것처럼 보이나?

    어쩌면 정말 남들이 보기에도 현저히 살이 쪘는데, 자신만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던가…….

    루크가 그렇게 불안해하고 있으니, 예르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냐, 살쪘다는 게 아니라, 정말로 내가 보기 좋아서 그래. 전에는 너무 마른 게 걱정이었으니까. 엄마는, 지금의 루크가 훨씬 나아. 정말로!”

    그래, 루크는 오히려 이전이 너무 살이 없어서 걱정이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키도 작고, 몸집도 왜소했으며, 몸무게도 꽤 심각한 저체중이었으니.

    그랬던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빠르게 어른스럽게 자라올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그런가요.”

    “하하, 정말이야. 루는 예전의 모습이랑 비교하면 정말 못 알아볼 정도로 예뻐졌지.”

    그렇게 변명하며 자신의 볼을 쓰다듬으며 웃는 예르나의 모습에, 루크는 감정을 누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예르나의 ‘보기 좋아졌다’는 말은 그만큼 진심으로 느껴졌으니까.

    “흠.”

    확실히, 이전의 모습은 체지방이 그리 많지 않아 체형이 굉장히 마른 편이기는 했지.

    사실, 따지자면 지금의 체중이 오히려 굉장히 정상인 편에 속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너무 강박적으로 살을 빼는데 집착했던 것이 아닐까.

    뭐, 그래도 누구 보기 좋으라고 하는 관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니만큼 체중관리를 소홀히 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말이다.

    예르나는 자신의 손길에 또 금세 얼굴이 풀어지는 루크의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어느새 이렇게 빨리 자랐는지…….”

    아이들은 눈 깜짝할 새에 금방금방 자란다곤 하지만, 루크의 경우엔 성장을 너무 서두른 게 아닌가 싶다.

    좀 더 다양한 추억을 함께 겪으며 천천히 성장하는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운 감정이 느껴진달까.

    함께 목욕하지 않은 지 고작 반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똑바로 서면 거의 자신의 눈높이와 맞먹으려 드는 현재 루크의 몸은, 이제는 정말로 어린아이의 모습일 때처럼 복작복작 씻겨주는 일은 꿈도 못 꾸겠지.

    지금은 다 큰 어른의 몸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으니까.

    ……뭐, 사실 그런 루크에게도 아직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러다 예르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아, 참. 루크야, 혹시 너 엄마 몰래 털을 뽑거나 밀고 있는 건 아니지?”

    “네? 털을 뽑다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예르나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루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크는 그동안 털을 일부러 뽑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최근엔 딱히 머리를 자르거나 한 적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말이 예르나에겐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응, 아냐. 그런거면 됐어.”

    엄마 몰래 위험하게 털을 뽑거나 면도를 하는 게 아니라면 안심이었다.

    아무래도 털 쪽은 조금 늦게 자라는 모양이지?

    루크가 여전히 예르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찰나.

    -스륵-.

    바람은 아닌 무언가 차가운 감촉이, 루크의 볼을 간지럽혔다.

    “음?”

    그 감촉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린 루크는, 검푸른 하늘에서 살랑이듯 내려오는 하얀색 별을 볼 수 있었다.

    별들의 정체는 바로, 첫눈이었다.

    그 광경에 예르나 또한 감탄하며 말했다.

    “와아. 눈이네. 루, 올해 첫눈이 내리고 있어! 하필 오늘 딱 첫눈이 오다니, 우리는 정말 운이 좋네.”

    보통 싸라기 눈이나 조금 내리는 정도인 첫 눈 치고는 결정이 크고 선명한데다, 노천탕의 이 풍경과 어우러져서 굉장히 예쁘다.

    루크는 그 눈의 결정을 손에 올리기 위해서 손바닥을 꺼내보았지만, 눈은 루크의 손바닥에 내려앉기 전에 온천의 열기에 녹아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루크의 손바닥 위에는 아까까지 담그고 있던 온천의 물인지, 하늘에서 내려온 눈이 녹은 물인지 알 수 없는 물기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루크는 멍하니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

    첫 눈이라…….

    여러가지가 생각나게 하는 날이다.

    확실히, 겨울이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개인적으로 검색하며 조사해본 결과, 조금은 수위가 높은 것도 수건만 있으면 괜찮은 모양이라 조금 과감하게 그려봤습니다.

    아무튼, 첫눈이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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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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