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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 인간 군대들하고 싸운 이후엔 어떻게 됐나요?

       

        시청자의 질문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대로 인간들의 황제라는 우두머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단다.”

       

        그리고 항복 받아 내고, 다시는 날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내고, 그다음에는 그곳에서 100년 정도 지내다가 코즈믹 에너지 다 모으고 다른 차원으로 건너갔다.

       

        – ?

        – ?

        – 그게 다예요?

        – 그게 다임?

       

        “그게 전부다.”

       

        물론 중간중간 이상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인간들이라던가.

        나를 숭배하겠다는 이상한 인간들이라던가.

        부모님의 복수하겠다고 찾아오는 인간이라던가.

        사소한 일들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름 평화롭게 잘 지냈던 시간이었다.

       

        – 평?화

        – 미친ㅋㅋㅋㅋㅋ

        – 무슨 썰이 우수수 쏟아지냨ㅋㅋㅋㅋㅋ

        – 엌ㅋㅋㅋㅋㅋ

        – ㄹㅇㅋㅋ

       

        “이 정도면 나름 평화로운 정도란다.”

       

        이런저런 차원을 돌아다녔던 나는, 필연적으로 사건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나는 손님의 입장으로 차원에 들어간다지만, 그 차원에 살던 이들의 처지에서는 너무 강한 힘을 가진 존재가 자신들의 차원에 쳐들어오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

        게다가 투쟁은 생명체의 본연에 잠들어 있는 본능이기도 하다.

        그나마 지성체들 정도가 ‘대화’라는 수단을 통해 투쟁심을 조금 조절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서, 너희 인간들도 전쟁은 계속하지 않느냐.”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가는 인간들끼리 싸우고 있지 않던가?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인간 국가가 싸우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싸우는 것보다 싸우지 않는 것이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를 공격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과연 인간들이 전쟁하지 않을까?

       

        – 악! 뼈 맞았어!

        – 팩트 폭격 다메요!

        – ㅠㅠ

        – 할 말 없게 만드시네.

       

        그러니 적혈국에서 있었던 정도는 평화로운 축에 들어가는 것이 맞다.

        마침내 도착한 나의 고향 차원에서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지난번에 북한이라는 인간 국가와 한바탕 한 것을 생각해 보면…….

       

        “아무튼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끝을 맺는 것이 좋겠구나.”

       

        – 더 해주세요!

        – 이쯤이 깔끔할지도?

        – 더 듣고 싶은데!

        – ㅇㅇ

        – 모르겠다.

        – ㄹㅇㅋㅋ

       

        “더 하고 싶어도, 이다음은 나도 모르기 때문이란다.”

       

        황제에게 항복을 받아 낸 이후, 세세한 문서 작업은 전부 자예에게 일임해서 난 잘 모른다.

        애초에 시청자들에게 주었던 술이 이때 받았던 것도 모르고 있지 않았던가?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항복 받는 것까지였고, 그 이후의 서류 작업에 나는 참여하지 않았기에 이후의 일은 잘 모른다.

       

        – 미친ㅋㅋㅋㅋㅋㅋ

        – 악! 악덕 상사! PTSD가!

        – 우리 부장님 보는 것 같음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원한다면 궁궐까지 날아간 이야기까지는 해 줄 수 있다.”

       

        진짜 날아가기만 해서 그렇지.

        그래도 날아가면서 구경했던 풍경 이야기는…… 음…… 풍경 정도는…….

       

        “…….”

       

        기억 안 나네.

        무슨 풍경이었더라?

       

        너무 많은 차원들을 거쳐오다 보니, 비슷비슷한 차원을 너무 많이 구경하게 된 탓일까?

        지금 내가 떠올리는 기억이 그때 그 기억인지, 아니면 적혈국과 비슷한 다른 차원의 기억인지 모호하다.

       

        “그냥 여기까지만 하자꾸나.”

       

        – ㅇㅇ

        – 라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여기까지만 하죠.

        – ㄹㅇㅋㅋ

        – ㄹㅇ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 ㄹㅇㅋㅋ

       

        “고얀 놈들.”

       

        작게 미소를 지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나름 자세한 설명을 하겠다고, 부족한 어휘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므로 보기보다는 시간이 제법 지난 상황.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한 방송종료 시간까지는 제법 남은 상황.

        그렇기에 나는 결정해야 했다.

       

        “그래. 오늘은 일찍 방송을 종료해 볼까?”

       

        – 안 돼에에ㅔㅔㅔㅔㅔ!

        – 가지 마요ㅠㅠ

        – 앙대!

        – 가면 안 돼여!!!

       

        “아니면 짧게나마 다른 이야기 해줄까?”

       

        – ㅇㅇㅇㅇㅇㅇ

        – 다른 이야기!

        – 우주선 이야기 좀 해주세요!

        – 어허! 역키잡 이야기가 진리거늘!

        – 재미있는 썰 좀!

       

        다른 이야기해 주는 것쯤이야 별 상관은 없지만, 지금 시간이 모호하게 남은 탓에 아마 이야기하다 중간에 끊길 것이다.

        그렇다고 내일이어서 이야기해 주기엔, 내일은 내일의 콘텐츠가 기획되어 있는데…….

       

        – 그냥 계속 썰만 풀어 주시면 안 되나요?

        – 이건 못 먹어도 고지.

        –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해주세요!

        – 며칠이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야.

       

        시청자들의 의견대로, 무슨 이야기를 해줄지 고민을 해 본다.

        시간이 너무 걸리는 긴 이야기는 피해야 할 터인데…….

       

        “아.”

       

        그럼 그 이야기를 해주면 되려나?

       

       

        *            *            *

       

       

        몇 번째로 방문한 차원이었는지, 그리고 그곳이 어떤 곳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많은 차원을 방문했던 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재미있는 일이었지.

        그렇기에 지금부터 해 줄 이야기는, 어쩌면 인간인 너희들에겐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단다.

       

        그날은 사냥을 나왔던 날이었지.

        내가 착륙한 행성은 커다란 가스 행성의 위성 중 하나였고, 하늘에선 이곳의 태양의 3배 크기를 가진 가스 행성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단다.

        어두운 밤하늘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거대한 행성.

       

        = 흠.

       

        그리고 어둠에 잠긴 깊은 숲속.

        조용히 눈을 뜬 야간의 숲속에서 나의 존재감을 느낀 생물들이 숨을 죽일 때였다.

       

        “키득!”

       

        = 음?

       

        하얀색의 가면을 쓴 존재가 어둠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지.

       

        [- 뭐임?]

        [- 귀신?]

        [- 이번엔 무슨 괴담인가?]

        [- ㄹㅇㅋㅋ]

       

        = ??

       

        “키득!”

       

        처음에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단다.

        비록 사냥을 위해 최대한 숨기고 있었지만, 엘더 드래곤이 된 나의 존재감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나의 기세를 느낀 존재들은 숨을 죽이고, 최대한 나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란다.

        하지만 그 하얀색 가면을 쓴 존재는 나의 기세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멀어지려 하지 않았단다.

       

        = …….

       

        “키득키득!”

       

        그다음에는 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하지만 그 존재가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는, 멀리서 나를 바라보며 웃는 것뿐.

        딱히 나에게 해가 될 짓을 하지 않았기에 나의 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 그래서 어떻게 됬나요?]

       

        어떻게 되긴.

       

        휙!

       

        그냥 무시하기로 했지.

       

        [- 엌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

        [- 역시 라나님.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셔!]

        [- 무섭지는 않으셨나요?]

       

        무섭다?

        아. 그러고 보니 너희들이라면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르겠구나.

       

        본디 공포라는 감정은, 미지(未知)와 무력(無力)에서 오는 감정이란다.

        알지 못하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고, 대항할 수 없기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더라도 짐작할 수 있었고, 그것을 어찌할 생각은 없으나 충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단다.

        그런 내가, 그것을 두려워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지.

       

        콰드득!

       

        키에엑!

       

        = 흠.

       

        그 행성에 살던 생명체 중, 내가 한 끼 식사로 삼을 먹이를 사냥해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모든 과정에서.

       

        “키득!”

       

        = …….

       

        내 뒤를 졸졸 쫓아다녔으나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단다.

        사냥에 방해된다거나, 혹은 나에게 적의를 품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튿날.

       

        “키득!”

       

        = …….

       

        사냥을 위해 다시 밖으로 나온 나는, 어둠 속에서 하얀 가면만을 내민 채 나를 빤히 바라보는 존재를 볼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그 존재는 내가 보금자리에서 밖으로 나올 때마다 빤히 나를 지켜보곤 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녀석을 철저히 무시로 일관했다.

       

       

        *            *            *

       

       

        “그리고 150년 정도 지내다가 다른 차원으로 떠났지.”

       

        – ?

        – ?

        – ??

        – 끝?

        – 그게 끝?

       

        “끝이다만?”

       

        진짜 이게 끝이다.

        그렇게 의심스러운 감정을 보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 재미있는 이야기라면서요!

        – ㅇㅇㅇㅇㅇㅇㅇ

        – 이건 배신이야!

        – 라나님이…… 우릴 속여써!!

       

        속이다니?

        나는 너희를 속인 적이 없단다.

       

        “재미있지 않으냐?”

       

        – 뭐가 재미있어요!

        – 맞음!

        – 하나도 재미없는데요?

        – 뭐가 있어야 재미있죠!

       

        어라? 재미가 없다고?

       

        “말했지 않았느냐. 내 기세를 느낀 존재들은 본능적으로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려 한다고.”

       

        그런데 그 존재는, 내 기세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15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따라다닌 것이다.

        심지어 나에게 어떤 해코지를 하려던 의지도, 시도도 없이 말이다.

       

        “그러니 재미있는 것이 아니냐?”

       

        이 멸천룡에게 그런 장난을 거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말이다.

       

        – 에이.

        – 기대했다가 손해 봤네.

        – 믿었는데! 믿었는데!

        – ㅠㅠㅠㅠㅠ

        – 저흰 재미없어요!!!

        – ㄹㅇㅋㅋ

       

        “음?”

       

        어라? 반응들이 뭔가 시원찮은데?

       

        “재미가 없느냐?”

       

        – 재미없는데요?

        – ㄹㅇㅋㅋ

        – 이걸 볼 때마다 종족 차이랑 문화 차이가 생각난닼ㅋㅋㅋ

        – 아니, 이건 그냥 혼자 재미있는 거임.

        – 나

        – 락

        – 락

        – 나

        – ㅠㅜ

        – 락!

       

        시청자들이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은 아니고, 그럴 정도로 열렬하게 재미없다는 표현했다는 뜻이다.

       

        “난 재미있던데…….”

       

        그 하찮은 것이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것이 재미없다고?

        이것이 문화 차이? 종족 차이? 그런 것인가?

       

        – 종족 차이 씨게 오네.

        – 드래곤쯤 되면 저런 것으로도 재미를 느끼는구나

        – ㄹㅇㅋㅋ

        – 도대체 무슨 삶을 살아오셨습니까 센세…….

        – 그런데 그거 정체가 뭔가요?

       

        “그것의 정체 말이냐?”

       

        그러고 보니 그것의 정체를 말하지 않았었구나.

        나는 옆에 있던 도화를 카메라 앞으로 데려온 후 말했다.

       

        “여기 있지 않으냐.”

       

        – ?

        – ?

        – ??

        – ㅔ?

        – 엥?

       

        “먹잇감의 뒤를 쫓으며 먹잇감의 공포심을 키우고, 공포심이 일정 이상이 되었을 때, 먹잇감의 영혼을 먹고 육체를 빼앗는 생물.”

       

        그쪽 차원에 있었을 때는 지성체라고 할 만한 생물이 없었던 행성에 머물렀던 탓이 딱히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 생물이었다.

        하지만 이곳 지구에서 비슷한 생물을 꼽아보라면…….

       

        “이곳의 언어로는 도플갱어 정도가 그나마 비슷하겠지.”

       

        “안녕하십니까.”

       

        꾸물꾸물!

       

        꾸벅 인사를 하던 도화의 머리가 쫙 갈라지며 여러 갈래의 입과,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을 보게 된 채팅창에선…….

       

        – 끼에에에에!?@ㅣㅓㅏㅇㄹ네머ㅑㅔ’ㅓㄹ

        – ㄹㅏㅣ로ㅓㅜ여ㅑㅗㅍㅁㄴ췇ㅇ;ㅜㅈ

        – 호ㅜㅠㅕㅐㅊㅁ노ㅕ추치

        – 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 후ㅕㄹ모옃어ㅠㅏㅓㄹ춰ㅏ훔/.ㅇ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경악의 감정은 잘 전달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현재 도화가 취하고 있는 오미호의 모습은, 자예의 모습을 따라한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자예의 몸을 노렸다가 흠씬 두들겨 맞은 뒤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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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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