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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 ***

         

       얍! 얍!

         

       어린 당도경은 열심히 권장각을 연마하고 있었다. 당도경이 익히 알고 있는 당가팔권. 그리고 이어지는 각법은 독사십이각, 마지막으로 형만 흉내내는 장법은 칠혼장법이다.

         

       당도경은 어린 자신을 바라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같은 건물들. 당가인들은 기본적으로 다 같은 구조의 건물에 산다. 차별 없는 대우인 셈이었다. 그런 같은 건물들 사이에 저 멀리 커다란 학당이 보인다.

         

       어느 순간 같이 권법을 연마하고 있는 아버지, 당문기가 보였다.

         

       ‘아버지.’

         

       당문기나 어린 당도경이나 참으로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당도경 역시 웃었다.

         

       시간이 지났다.

         

       당도경은 같은 자리에서 권장각을 연습했다. 그러나 당문기는 더 이상 권장각을 연습하지 않았다.

         

       그저 서 있었을 뿐.

         

       당도경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직계와의 대결에 패하고 진정 권을 접은 이유는 더 이상 당가에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천에 적수가 없어졌으니 이제 진정 사람을 살상하기 위한 기술이 가득한 독술과 암기술 대신 범용적이고 제압이 쉬운 권장각이 당가의 영역을 관리하는 일에 더욱 유용한 무공이 되었다는 것을.

         

       수백 년간 암기술과 독술을 발전시키고 유지해온 당가의 추가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별호를 얻는 것은 권장각을 쓰는 무인이고 직계라 하여 암기술과 독술만을 수련하는 이는 그저 당가타에 처박혀 세상에 이름 석자 떨치지 못하고 무공만을 수련하고 있었음을.

         

       그저 적수가 없어서 당가의 암기술과 독술이 나설 자리가 없었을 뿐이라는 것을. 당가의 권장각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저 권장각이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기에 아버지가 뛰어난 명성을 얻었고 또한 활약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스스로 직계에 도전해서 팽배해진 방계의 불만을 꺼트리고 당가의 주력 무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주력 무공들이 얼마나 강한지. 그 사실들을 명백히 하고자 도전을 선택한 것이라는 걸.

         

       처음에는 그냥 치기였다. 아버지와 함께 권장각을 수련했으니 아버지는 패했을지언정 이 당도경이가 아버지의 권장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겠노라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시대가 변했다. 당가는 본디 한 가족. 어디 직계와 방계의 갈등이 있었다고는 하나 봉합되지 않을 갈등은 아니었다. 당가의 영역이 안정되고 일부 방계들은 무계가 되고 확장된 영역에서 온 돈은 직계들 역시 비싼 비살상암기를 던지며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당가에 대한 원망이 자라난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당도경에게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거늘 어느 쪽을 봐도 그저 모두 잊고 웃고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무계로서 당가의 상인이 되었고 여전히 권장각은 그대로였다. 부유해진 당가는 날이 다르게 새 암기를 개발했고 다들 새로이 쏟아지는 암기에 하하호호하며 암기술을 수련하기 바빴다.

         

       ‘당가를 대표하는 권공을 만들고 말리라.’

         

       소년이 된 당도경은 그렇게 다짐했다. 당가의 권장각에 한계를 느낀 것도, 수련한지 한참이나 지난 암기들을 완전히 품에서 털어 낸 것도 그때였다.

         

       그렇게 소년은 무림에 나섰다.

         

       성년도 안 된 당가의 자제가 사방을 들쑤시고 다니니 사천은 곧바로 난리가 났다. 당도경은 수많은 꾸중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비무는 당도경의 무공을 성장시켰으니까. 당가의 권장각에 만족할 수 없었던 당도경의 선택은 실전을 통한 새로운 무공의 창안이었다.

         

       어린 당도경은 틈만 나면 튀어 나갔고 그렇게 당도경은 성장했으며 투견이라는 별호도 얻었다.

         

       ‘고근약식.’

         

       당도경은 스스로가 약한 식물인지 반문해 보았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당도경은 충분히 강자였다. 이 나잇대에 초절정이라는 것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에 속한 기재들 중에서도 몇 명 이루지 못한 성취였다.

         

       정녕, 당가의 권장각은 부족했는가?

         

       아니었다.

         

       당가의 권장각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충분히 강력한 무공들이었다. 그저 천하제일이라고 불리우기에 마땅한 암기술과 독술에 비견하면 손색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하 결국 나의 뿌리는 당가였구나.’

         

       맹호권법이라고 해 봐야 강공 위주의 권법에 지나지 않았다. 당가팔권에는 강(强)에 해당하는 묘리가 부족했다. 섬세한 손재주가 중요한 암기술과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어린 당도경은 청년 당도경이 되었고 고집스럽게 눈을 부릅뜨며 그저 강권만을 쏟아내었다. 강맹한 위력에 흡족한 미소를 짓는 자신을 보면서 당도경은 어느 새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음을 느꼈다.

         

       그저 오만하게 웃고 있는 당도경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당가타도. 당가타 안에 있던 수많은 사람도. 어느 순간부터 염려스러운 눈길로 자신을 말없이 기다려주던 아버지도. 자신을 꾸짖어주며 기다려주던 당독기도. 눈물을 흘리던 당도연도. 말없이 주먹을 쥐던 당도율도. 항상 오빠 최고를 외치던 당려아까지.

         

       눈을 한번 깜박이니 당도경은 어디 가고 시들시들한 나무 하나만 서 있었다. 겉은 썩고 속은 메마른 볼품없는 나무 한 그루.

         

       “이것이 정녕 내가 원하는 풍경이었는가?”

         

       아니었다.

         

       당도경은 스스로가 원하던 풍경을 상상했다.

         

       권법을 연습하는 어린 당도경이 나타났다. 그 곁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당도경은 피식 웃었다. 맹호권법을 연마하는 아버지와 어린 자신. 있을 수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것이야말로 당도경이 원하던 바였다.

         

       당도경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허공을 향해 지르는 일권(一拳)은 이제 당가팔권도 아니었으며 맹호권법도 아니었다.

         

       가족은 소중했다.

         

       그러나. 일평생 가꾸어 온 맹호권법 역시 소중했다. 당가의 사람으로 태어나 고집스럽게 암기를 피했고 권을 연마했다.

         

       그러나 그 권이야말로, 맹호권법이야말로 무인으로서의 당도경 그 자체였다.

         

       당가팔권이라는 뿌리와 맹호권법이라는 몸통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이젠 그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권법을 펼치는 당도경의 뒤로 비로소 뿌리를 갖춘 나무가 썩어버린 껍질을 벗어던지고 말라버린 내부를 새로이 채우며.

         

       조금씩 거목으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 ***

         

       “선배, 선배 일어나요!”

         

       흑묘가 내 방에 쳐들어와 몸을 흔드는 바람에 깨어났다. 머리가 욱신거리고 몸은 지끈거리고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주량을 한참이나 넘어서 계속 마신 것과 비슷한 상태일까. 온 몸에 독소가 돌아다니는 듯한…

         

       “당도경이 깨달음을 얻었어요!”

         

       “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째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비틀거리며 바깥으로 나서니 낭인들이 당도경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층의 중앙에서 깨달음의 상태에 빠져 있는 당도경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아니 방에 처박혀 있던 당도경이 왜 바깥에 나왔지? 혹시 새벽에 몰래 떠나려다가 깨달음을 얻었나?

         

       이게 아니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머리가 지끈거려서 생각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준비물들을 챙기고 당도경에게 접근하자 호법을 서던 낭인들이 일단 제지했다.

         

       “비켜.”

         

       “호 형, 깨달음을 얻는 도중 접촉하면 위험하거나 깨달음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잖소.”

         

       “나도 알아. 근데 지금 건 필요해.”

         

       낭인들이 고민하다가 길을 열었다. 내가 굳이 당도경에게 해가 될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탁상을 앞에 두고 나는 준비물들을 모두 펼쳤다.

         

       그리고 도박 기술을 하나하나 펼치기 시작했다.

         

       *** ***

         

       ‘나는 작았구나.’

         

       이름 모를 무언가로 변해버린 권법을 펼치고 정립하며 당도경은 한탄했다. 정말로 좁쌀만한 포부였다. 기껏해야 당도경 본인조차도 다 담지 못할 마음의 그릇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단 말인가.

         

       앞으로도 당가의 중진들은 노심초사할 것이다. 기껏 봉합된 상처를 자꾸 건드리는 당도경은 중진들 입장에서는 화약고 앞에서 횃불을 들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보이겠지.

         

       그래 맞았다.

         

       당도경은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다.

         

       화약고 앞에서 횃불을 들고 있던 당도경이 어린아이가 아니고 그 누구나 믿을 수 있었던 대인이고 협객이었다면 중진들이 과연 횃불을 들고 있더라도 그 무어라 했을까.

         

       그러니 억압하려 했고 횃불을 빼앗으려 들었다.

         

       당가에서 걷는 권의 길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어디 어린 시절 그게 쉬운 일이라 해서 덤벼 들었던가? 성장하며 본 당가의 모습에 그 일이 쉬우리라는 인상을 받았던가?

         

       차라리 어린 당도경이 대인이었다.

         

       당가의 대표 권공을 만들겠다는 포부는,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권을 수련하겠다는 야망은 세월이 지나고 당가가 변하고 당도경이 성장하면 점차 작아지기만 했다.

         

       그저 알량한 무공 하나를 만들고 붙잡으며 완성에만 집착하는 소졸(小卒)이 되었을 뿐이었다.

         

       현실의 어려움에 꿈의 크기는 줄어들고 줄어들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비루한 것만이 남았다.

         

       그래 그야말로 겉은 썩고 속은 메마른 비틀어진 나무에 불과했다.

         

       스스로의 뿌리조차 끊어버린 황폐한 언덕에 남은 한자루의 고목.

         

       ‘암기술을 거부했지.’

         

       당도경은 알고 있었다. 아니 당도경을 둘러싼 당가의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당도경은 아주, 아주 특출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타고난 무의 자질은 권법에서도 빛을 발했지만 당가의 자식답게 당도경의 재능은 암기술에 특화되어 있었다.

         

       어린 아이가 암기 던져 품 안에 있는 패를 맞추어 빼앗는다. 아무리 당가의 혈통이라도 범상치 않은 재능이었다.

         

       권법은 권법이고 암기술은 암기술이었다. 굳이 익힌 암기술이 있는데 그걸 활용하지 않고 암기를 버린 이유. 암기술의 수련을 멈추어버린 이유. 혹여나 손이 갈까 암기를 품 안에서 털어버린 이유.

         

       권장각의 경지를 추월해버릴 암기술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당도경은 권장각의 고수여야만 했고 당가를 대표할 권공을 만들어야만 했으니까.

         

       어린 당도경의 투로가 또 다시 한번 변화했다. 아까와 두드러지게 변한 점이라면 그 품 안에, 그리고 허리에 비도가 빼곡히 자리한 허리띠가 생겨났다는 것일까.

         

       ‘거목이 되기로 했다면 품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

         

       당도경의 권에 암기술이 섞여들었다.

         

       당도경은 그런 자신을 관조하며 생각했다. 이건 타협이 아닐까. 어린 시절 권장각으로 우뚝 서겠다 하지 않았던가. 지금 여기에 암기술을 더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

         

       ‘나는 당도경이다.’

         

       당가인이자 동시에 도경이다. 그것이 바로 당씨와 도경이 서로 기대어 만들어진 당도경이라는 사람(人)이였다.

         

       지금의 당도경이 있기까지가 비단 혼자만의 공이었는가. 당도경은 스스로를 협의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했다 말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정파로서 선은 넘지 않았지만 비무를 강요하는 행동에 어디 예의가 있겠는가. 또한 승리와 패배에서 발생한 은원은 어땠을까. 수많은 은원을 샀을 테고 그 은원을 해결한 것은 당독기를 비롯한 가문의 어른들이었다. 또한 비무행을 위한 금전은? 호천안과 내기를 위해 마련한 금 백 냥은? 모두 가문의 지원이었다.

         

       독존(獨存)했다 여겼으나 당도경은 그저 숲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였다. 바깥의 풍파에서 소년이었던 당도경을, 청년이 되어서도 날뛰는 당도경을 지켜주었던 숲.

         

       내면에 숲이 생겼다. 한눈에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나무가 생겼다.

         

       그 숲을 보면서 당도경은 피식 웃었다. 이토록 품을 것이 많아졌는데 어찌 타협이 될 수 있을까.

         

       그저 커진 것이었다. 당가의 후예로서 암기를 익힌 것도 당도경이고 어린 시절 아버지의 패배에 충격 받아 권법을 익혔던 것도 당도경이었다.

         

       당가팔권과 맹호권법 그 어딘가의 무공을 펼치고 있는 지금의 당도경 역시 당도경이었다.

         

       당가를 대표하는 권공? 작다.

         

       당가를 대표하는 무공을 만들겠다.

         

       당문기의 아들인 당도경으로서 우뚝 서고. 당가의 혈족인 당도경으로도 우뚝 설 것이다.

         

       자랑스러운 당문기의 아들이자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사천당가의 당도경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하며 당도경은 몸을 움직였다.

         

       ‘부족하구나.’

         

       당도경은 아쉬움을 느꼈다. 어느 새인가 우뚝 멈추어버린 어린 자신.

         

       당가팔권과 맹호권법이 섞여든 새로운 권법식은 만족할 만큼의 성과를 이루었다. 몸통과 뿌리가 결합한 무공은 새로이 팔 초식을 만들며 튼튼한 것으로 태어났다.

         

       당도경이라는 사람이자 무공을 구성할 두 자루 기둥.

         

       당가팔권이라는 당가의 구성과 맹호권법이라는 도경의 구성이 합쳐져 권에 한해서는 튼튼한 일(一)획이 만들어 졌으나.

         

       암기 부분에서 만들어져야 할 기둥은 너무나 부족했다.

         

       당가의 어린아이이던 시절 배웠던 미약한 암기술이 전부였기에.

         

       ‘도경으로서 살아가며 암기술을 등한시 한 대가를 이리 치르는구나.’

         

       당도경은 쓰게 웃었다. 도경으로서 암기술을 그리 외면했으니 했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그 때였다.

         

       당도경의 내면에 두 개의 손이 등장했다.

         

       ‘아.’

         

       익숙한 손놀림에 당도경은 그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다. 당도경이 야 형이라 부르는 호천안이었다.

         

       ‘야 형.’

         

       천천히 그리고 본능적으로 당도경은 그 손동작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도박기술과 암기술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으나 그 둘이 공유하는 몇 가지 공통분모가 있었다.

         

       손재주. 속임수. 그리고 은밀함.

         

       당도경은 조금씩 호천안의 기술을 이해했다. 정말 보여주기 위한 기술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은 옮겨지지 않았던 목잔 속 주사위가 어떤 손동작에 의해 그런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는지.

         

       하나로만 보였던 골패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두 개가 되었는지.

         

       손끝의 움직임에 주사위의 눈이 어떻게 변하는지.

         

       본디 암기술에 비범한 재능을 지니고 있던 당도경과 신의 경지에 이른 호천안의 도박기술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물론 고작해야 암기술의 기초와 재능만을 가지고 있던 당도경과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하나 몇 개의 공통점만을 지닌 도박기술에서 뽑아낼 수 있었던 암기술의 결과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직은 짧고 연약하지만 권이라는 크고 두터운 기둥을 지탱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일(一)이 만들어졌다.

         

       ‘하.’

         

       당도경은 피식 웃었다. 부족한 도경의 부분을 채운 커다란 두 개의 손을 응시했다.

         

       ‘야 형은 이 당도경이가 무엇이 필요한지 이미 알고 있었나 보오.’

         

       여전히 기술을 반복해 보이는 두 개의 손을 보며 당도경은 유쾌함을 느꼈다. 이것이 인연일까. 그저 목적을 잃고 눈이 멀어버린 싸움의 미친개가 낭인을 만나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그 사이에 부쩍 자라버린 당도경이라는 나무가 보였다. 그 나무 아래에서는 환하게 웃는 당도경이 주먹을 지르고 암기를 던졌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수많은 나무들이 있었다. 그 나무에 아래에는 익숙한 자들이 있었다. 아버지인 당문기도 있었으며 늘 자신의 사고를 수습하려 뛰어다닌 당독기가 있었다. 자신을 위해 눈물 짓던 당도연이 있었으며 호통을 치던 당도율이 있었다.

         

       어린 시절 자신의 당패를 빼앗았던 동기도 있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귀여운 동생 당려아도.

         

       그리고 여태 보았던 수 많은 사천당가의 혈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당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당도경의 불만 섞인 눈을 바라보며 당도경을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권.

         

       모든 나무. 사천당가의 모두가 일권을 내질렀다. 당도경은 여덟 개의 권법 초식을 펼치며 생각했다. 암기술이자 권법인 이 무공의 이름을 무엇이라 정해야 할까.

         

       당가의 모든 나무가 당도경 보다 빠르게 암기를 던졌다. 당도경은 껄껄 웃으며 그 동작을 따라했다. 그래 암기술은 사천당가 어떤 사람보다 이 당도경이가 뒤떨어지겠지.

         

       간신히 지어낸 암기술 3식이 당도경의 손에서 펼쳐졌다.

         

       한참이나 기울어진 인자에 불과한 무공이었지만 당도경은 걱정하지 않았다. 앞으로 배우고 경험하며 채워넣으면 그만이었으니까.

         

       ‘당가맹호암룡투법(唐家猛虎暗龍鬪法).’

         

       어쩌면 성의 없고 나열에 불과한 이름이었으나 당도경은 만족했다.

         

       ‘내가 만든 무공이거늘. 내가 만족하면 그만이지.’

         

       눈을 떴다.

         

       손을 놀리고 있던 호천안이 눈에 들어왔으며 호법을 서 주고 있던 낭인들을 보았다. 나머지 낭인들 역시 숨 죽인 채 당도경을 방해하지 않으며 주시하고 있었으며 계단에 몸을 걸친 흑묘가 뻥튀기를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당도경은 포권해 보였다.

         

       “여러분들의 후의에 이 당모 감사드리오.”

         

       “성취가 있으셨소!”

         

       “축하드리오 당 대협!”

         

       그제야 깨달음이 온전히 갈무리 된 것을 확인한 낭인들이 포권하며 화답했다. 당도경의 시선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흑묘를 지나 호천안에 도달했다.

         

       호천안은 혈옥비와 금자 백 냥짜리 전표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승부?”

         

       “좋소.”

         

       호천안은 담백하게 허공으로 주사위를 던졌다. 잔 내부가 모두 보이도록 뒤집어 잡은 양 손. 당도경은 어쩐지 웃음이 나오는 기분을 느끼며.

         

       주사위도, 잔도 아닌 호천안의 손을 응시했다.

         

       당도경은 하나의 잔을 집었고.

         

       호천안은 웃으며 나머지 잔들을 자빠뜨렸다.

         

       “오..!”

         

       “드디어!”

         

       낭인들의 감탄사와 함께 개봉된 당도경의 잔 속에는 1이라는 숫자가 위로 와 있는 주사위가 들어 있었다.

         

       호천안은 전표와 혈옥비.

         

       그리고 골패를 당도경의 손 위에 올려주었다.

         

       “야 형, 이것은..?”

         

       “곧 필요할 거요.”

         

       호천안은 옆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 몸이 두들겨 맞기라도 한 듯 욱신거리는 상황에서 거의 두 시간에 가깝게 도박 기술을 펼친 탓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가시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렇군.”

         

       당도경은 창 밖의 기운을 느끼며 대답했다. 한층 깊어진 내공과 한결 더 예민해진 감각이 낭인객잔 바깥에서 다가오는 당가인들의 기척을 잡아냈다.

         

       [비밀 지켜요.]

         

       당부하는 흑묘의 말에 당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천안에게 난폭한 수단을 사용한 여자이기는 했으나 나름대로 호천안을 위하는 듯 하니…

         

       호천안에게 은원패를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깨달음에 들기 전 흑묘의 말을 기억해낸 당도경은 인내심을 발휘해 그런 충동을 눌러내며 호천안을 향해 포권을 해 보였다.

         

       “정말, 정말로…많은 신세를 지고 갑니다.”

         

       “가시게.”

         

       힘없이 손짓해보이는 호천안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당도경은 자신을 향해 포권해 보이고 있는 낭인들을 둘러보았다.

         

       “고맙소 여러분들. 당모는 오늘의 일을 잊지 않을 것이오.”

         

       “보중하시게 대협!”

         

       “가족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야지!”

         

       시끌벅적한 인사를 뒤로 하고 당도경은 낭인객잔을 나섰다.

         

       “도경 오라버니!”

         

       “도경아!”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두 사람을 당독기가 제지하며 물었다.

         

       “당도경. 절연 선언을 취소할 생각은 있는가?”

         

       당도경은 대답하려다 말고 빙그레 웃었다. 곧 필요할 것이라. 뭐 이런 의미였을까.

         

       쉬익!

         

       당독기는 눈을 부릅떴다. 갑자기 당도경이…암기를 던졌다고? 놀라는 한 편 동시에 손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던진 것은 골패인가.

         

       잡아내기 위해 손을 움직이려는 순간 골패가 셋으로 갈라졌다.

         

       아니 처음부터 골패는 셋이었다. 그저 하나처럼 보이도록 던졌을 뿐.

         

       타다닥!

         

       당독기의 손에 세 골패가 모두 잡혔으나 당독기의 눈은 크게 뜨여 있었다.

         

       “삼환비도…? 어찌 네가 이런 기술을.”

         

       “죄송합니다. 숙부님. 그리고 사천당가의 여러분.”

         

       당도경이 무릎을 꿇었다.

         

       “절연이라는 참람된 말을 입에 담은 죄인이지만 용서를 구합니다. 당가가 있었기에 도경이 있었다는 것을 그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도경이지만 사천당가의 일원으로서 노력해보고 싶습니다.”

         

       “오라버니이이!”

         

       “도경아!!”

         

       두 사람이 무릎을 꿇은 당도경에게 달려들어서 얼싸안았다. 당도경은 쓰게 웃었다. 이리 좋아하는 혈족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당독기가 다가와 당도경의 어깨를 짚었다.

         

       “암기술에 다시 도전할 생각이냐?”

         

       “예. 그저 제가 도경이 아닌 당도경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암기를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권법 역시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허허…”

         

       “그저 이제는 당가제일권법에서 당가제일무공을 창안하기로 정했을 뿐입니다.”

         

       당독기는 어처구니없는 당도경의 선언에 실소를 흘렸다. 얼싸안고 기뻐하던 두 사람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래. 내 똑똑히 지켜 보마.”

         

       당독기가 몸을 돌렸다.

         

       “갈 길이 멀다. 이미 당가타에서는 너 때문에 난리가 났을 터.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오라버니! 내 도와줄 테니까 걱정 마세요!”

         

       “이놈아 뭐해! 한시라도 빨리 도착해야 수습이 쉬워!”

         

       채근하는 둘을 보며 당도경은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당도경 에피소드는 다음편으로 인해 마무리 됩니다.

    물론 이 편으로 모든 사건은 끝나고 다음편은 후일담 같은 이야기지요.

    다다음 편부터는 또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집니다.

    공모전 기간 이후에는 바로 플러스로 가게 될 테고 공모전 안에 따라와 주신 분들을 위해서 플러스로 전환되기 전 당도경 에피소드까지는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우다다 써버렸네요.

    내일 마무리 편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공모전을 마칠 수 있겠네요.

    당도경 에피소드가 마음에 드셨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오탈자 지적 늘 확인하는 대로 수정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래도 한 두 시간 반응을 살피고 잠이 들었는데 오늘은 기절할 예정입니다.

    댓글의견도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모든 부분을 피드백 해드릴 수 없는 부분이 아쉬울 뿐이네요.

    그럼 작가는 이만 물러갑니다.

    총…총..총..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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