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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시청자들의 입에 붙어야 할 방송인의 아이디로는, 적절치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예나가 정한 아이디이기에, 나는 이를 차마 바꾸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다. 마음 속 어딘가에서 스며오는 불편함이 무엇 하나 함부로 바꾸지 못하도록 막는 탓이다.

        

       나오나 계정도……‘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 아이디는 그대로 보존해 두고, 새로 만들었고.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이건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사제를 플레이한 기록이 있는 계정으로 게임을 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

        

       삭제 안 한게 어디……아, 이건 좀 그렇지.

       

       아무튼, 나는 나름 부캐부터 부부부캐까지 나름 기존의 아이디를 존중해서 만들고 있다.

        

       처음에 만든 아이디, ‘따아먹고싶다’는 ‘불건전한아이디401278’을 거쳐 ‘아따먹’이 되고 말았지만-

       

       나는 이예나의 아이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4년 전부터 쓰던 기록이 남아있던 각종 사이트들의 아이디 내역을 캡쳐해가며, ‘따아’는 ‘따뜻한아메리카노’의 줄임말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장문 해명문을 패러데이 게임즈에 보내며 항변하기까지 했으니까.

       

       ‘절대 안 바꿔줘. 돌아가.’로 요약되는 매크로 답변밖에 못 받았다는 사실은, 가슴아픈 추억으로 묻어두기로 했다.

        

       세상엔 개인의 의지론 바꿀 수 없는 일들이 있는 법이니까.

       

       아마도.

        

       아무튼, 나는 더 이상 정체성에 관해서 혼란에 빠진 채 우울해하거나, 이예나와 나를 구분해가며 타자화하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과거 이예나가 남겨둔 흔적을 지우는 기분이 들 때면, 나도 모르게 흠칫하게 되는 것이다.

        

       옅은 한숨을 내쉬며, 어쩐지 차갑게 느껴지는 배를 한 번 쓸어내렸다.

        

       오후 7시.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놀러다니는 시간.

        

       평소라면 개운하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할 때지만, 지금은 침대에서 몸을 살짝 일으키는 것조차 너무나도 버겁고, 힘들다.

        

       침대에 붙들린 듯한 피로감과, 괜스레 눈물이 날 정도로 감성적이고 울적한 생각들의 연쇄.

        

       떨쳐내려 해도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과 우울감에 휩싸인 채 한참을 이렇게 몸을 웅크리고 있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천천히 깨닫게 된다.

        

       그 날이 다가오고 있구나- 하고.

        

       이 정도 감각이면……아마, 이틀…에서 사흘 후 정도 아닐까.

        

       진짜 싫다.

        

        

        

        

       한참을 포근한 이불과 한 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뭉그적거렸다. 마침내 굳게 결심하고 침대에서 기어나오니, 이미 오후 8시. 

        

       근처에서 죽을 파는 가게가 9시에 문을 닫으니, 직접 포장해오려면 어떻게든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다.

        

       샤워……해야 하는데.

        

       이 시기에는, 샤워가 너무……정말, 너무 싫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살짝 서늘한 온도로 샤워를 하면, 물방울 하나하나가 피부를 바늘처럼 살짝살짝 찌르고는 모래처럼 피부를 쓸며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호르몬이란 참 신비하다.

        

       그리고, 불쾌하다.

        

       샤워기를 손에 쥔 채 잠시 망설이던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차가운 물줄기를 확 틀었다.

        

       상남자는 냉수 샤워지.

       

       옛날을 기준으로도 과하게 차가운 물을 튼 건, 약간의 고집과 오기 탓이었다.

        

       아, 시원하다. 시원하다고 생각하자.

        

       ……비명이 나올 것만 같았다.

        

       .

       .

       .

       .

       .

        

       아직은 조금 서늘한, 3월 초.

        

       이제는 거의 교복처럼 느껴지는 츄리닝과 후드티를 걸친 채, 집을 나섰다.

        

       최근에 인터넷으로 구매한, 제법 두꺼운 재질의 펑퍼짐한 오버사이즈 후드티. 뭘 입어도 두드러지던 내 신체적 특징들을 감추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아이템이다.

        

       체감상, 길을 돌아다닐 때 남자들의 시선을 7할 정도는 줄여주는 정도의 효능이 있다.

        

       은신을 쓰면 이런 기분일까, 싶기도 해.

        

       마음같아선 마스크와 선글라스까지 끼고 싶지만……오히려 더 이목을 끌게 되어버린 경험을 한 이후론, 포기했다.

        

       얼굴 조금 쳐다본다고 어디 닳는 것도 아니고.

        

       다시 한번 옅은 한숨을 내쉬고, 미리 전화해둔 죽집으로 향했다.

        

       무뚝뚝한 아저씨가 운영해서 마음에 드는 가게다. 어디 아프냐는 둥의 스몰토크도 시도하지 않고, 처자가 참 곱다 따위의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를 칭찬도 하지 않으며, 아이돌이냐 같은 질문도 일절 하지 않는 아저씨.

        

       역시나, 오늘도 가게에 들어섰는데도 인사말조차 없다. 카운터에서 스윽-하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다시 핸드폰을 볼 뿐이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안녕하세요. 조금 전에 전화로 소고기 야채죽이랑 단호박죽 주문했어요. 소분해서요.”

        

       라고 하면, 그제서야 깔끔하게 포장된 죽이 담긴 쇼핑백을 건네며,

        

       “25,000원이요.”

        

       라고, 단 한마디를 하는 것이다.

        

       ……비싸긴 진짜 비싼데, 맛은 있다.

        

       아무튼, 나는 이 가게를 좋아한다.

        

       바로 옆에 베*킨라*스가 있는 점이 특히 좋다.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가게는 위치 선정이 절반 아니겠는가.

        

       나한테 죽 가게와 아이스크림 가게는, 한 세트 같은 거니까.

        

       “주문하시겠어요?”

        

       곧이어 들어간 아이스크림 가게의 카운터 앞에서 잠시 고민을 하고 있자니, 과도하게 친절한 점원이 말을 걸어왔다.

        

       ……너무 길게 서있었던 것 같긴 하다.

        

       “네. 파인트에 다크 초콜릿이랑…….”

        

       민트초코……아냐, 필요 없다.

        

       “쿠키앤크림. 그렇게 반씩 담아주세요.”

        

       왜 멀쩡한 아이스크림에 치약을 섞어.

        

       이번 달엔, 안 먹을 거다.

       

       하지만, 겨우 이틀 후에 후회할 수도……있긴 한데.

       

       후.

       

       ……결정했다.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빨간 페트로 살거야.

       

        

        

        

       그렇게 식량을 그러모으는 다람쥐마냥 양 손에 바리바리 응급키트를 구비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9시.

        

       책상 앞에 앉아, 큼지막한 소주병을 이리, 저리 기울이며 고민에 빠졌다.

       

       음…….

        

       오늘까진 술을 마셔도 되려나.

        

       체감상, 생리 직전에 술을 마시면 생리통이 더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숙취가 같이 와서 힘든 거일 뿐인 것 같기도 하고.

        

       내일 시작하지만 않는다면, 한 잔은 하고 싶은데.

       

       기울인 소주병이, 오뚝이처럼 다시 선다.

       

       이거, 점치는 도구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틀 후일까, 사흘 후일까.

       

       왼쪽으로 쓰러지면 이틀, 오른쪽은 사흘, 뒤집어지면 내일……대충, 그런 점을 칠 수 있지 않을까.

        

       제 아무리 고민을 해봤자 내 몸이 지 멋대로 정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쓸데없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음…….

        

       방송이나 켜두고 생각할까.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님이 방송을 시작하였습니다!]

       [도적부흥운동- 오늘은 자습입니다]

       

       뭐.

       

       힘들면 자습시킬 수도 있지.

       

       * * * *

        

       레반, 이시훈은 핸드폰에 떠오른 알림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자습? 도적부흥운동?

       

       몇 초 정도 흐른 후에는 어떤 스트리머의 방송 알림인지 깨달았으나- 이 스트리머를 왜 굳이 팔로우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드물게, 도적을 잘 하는 사람이긴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엮이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별 생각 없이 팔로우 버튼을 눌렀던 듯도 싶었고- 그 때 평소 취침시간을 훌쩍 넘겼던 탓에, 멍한 정신으로 대충 클릭했던 듯도 싶었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날의 방송이 조금 재밌었던 것 같기도 했다.

        

       자기도 모르게 부계정으로 채팅을 치게 만드는 방송이었다.

        

       자신의 방에서 쳤다간 바로 임시차단을 당했을, 그런 채팅들.

        

       ‘……부계로 방송 보는 정도는, 엮이는 거까진 아니긴 하지.’

        

       잠시 고민하던 레반은, 이내 트위트 창을 닫았다.

        

       한가하게 방송이나 보고 있기엔 할 일이 많았다.

        

       컨텐츠도 생각해야 하고……지튜브 영상각이 뽑힐만한 게임도 좀 해야 했다.

        

       요즘 빌드 깎는 방송을 너무 많이 해서 편집소스가 부족하다는 편집자의 하소연을 떠올리며, 방송 컨텐츠를 생각하던 그 때.

        

       -띠링

        

       화면 우측 하단에서, 디스코스 메시지 알림이 떠올랐다.

        

       [도댓: 시훈아]

       [도댓: 바쁨?]

        

       도댓, 최우현이었다.

        

       나오나가 출시되기 전, 다른 게임을 하던 시절에 같은 길드에서 활동하며 친해진 형.

        

       둘 다 나오나에 빠진 이후에는 티어가 너무 차이나서 어울리지 못한 기간이 좀 있었지만, 우현이 마스터까지 찍은 때부터는 종종 같이 게임도 하는 사이였다.

        

       [레반: 괜찮아요]

       [레반: 무슨 일이세요?]

       [도댓: 아, 별건 아니고]

       [도댓: 혹시 이번주 중에 듀오 컨텐츠 한 번 할래?]

       [도댓: 내일도 좋고]

        

       듀오라.

        

       피차 멘트를 과도하게 하기보다는 게임 플레이를 멋지게 보여주는 스타일. 레반 입장에서, 도댓은 제법 합이 잘 맞는 듀오였다.

        

       도적만 안 하면.

        

       [레반: 기사하실 거죠?]

       [도댓: ……상황 봐서]

       [레반: 뭐 도네 받았다고 도적하고 그러면]

       [레반: 우리 방에서도 법사해달란 미션이 나오는 수가 있어요]

       [도댓: ㅇㅋ 기사 하는 걸로 하고……암튼, 고고?]

       [레반: 네, 좋아요. 저 내일까진 빌드 깎을 거라, 모레 어때요?]

       [도댓: 콜]

       [도댓: 모레 8시부터?]

       [레반: 좋습니다]

        

       도댓과의 듀오 영상은, 레반의 지튜브 구독자들 사이에서도 제법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평소 게임 중에는 플레이에 관한 설명을 하거나, 도네 반응 정도만 하는 레반이, 편하게 농담도 하는 등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는 드문 컨텐츠인 덕분이었다.

        

       듀오 영상으로 한 4~5시간만 뽑으면, 편집 소스가 없단 소리는 안 나올 터였다. 편집자도 기뻐하리라.

        

       [레반: 내일까지 빌드 깎고, 모레는 도댓형이랑 듀오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편집자에게 메시지까지 보내 두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생각치 못하게 컨텐츠 고민이 해결되며 시간이 붕 뜬 상황.

        

       마우스를 빙빙 돌리며 망설이던 레반은, 

       

       ‘카운터를 플레이하는 걸 봐야, 빌드를 보완할 수 있으니까.’

       

       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부계정에서조차 로그아웃하고는 트위트 검색창에 ‘따뜻한아메리카노’를 검색했고-

       

       “뭐야 이거?”

       

       약 90여개의 방송이 떠오른 검색 결과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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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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