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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이태원 레볼루션의 촬영은 수상할 정도로 빠르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이유에는 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인공 2인방이 지금껏 NG 한번을 내지 않은 상태로 계속 촬영을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촬영 감독의 자리에 앉아있었던 고동빈이 설렁설렁 촬영에 임했을 리는 없다.

         

       고동빈은 #24의 촬영의 마치고 현장에 나란히 서 있는 박하준과 설소영을 쳐다봤다.

         

       확실히 멀리서 보면 분명 좋은 그림이다.

         

       장차 배우들의 미래를 이끌 저 두 명이 서로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자체가 그림이 안 좋게 나올 리가 없다.

         

       그래. 분명 멀리서만 본다면…….

         

         

       “마지막에 시선 처리가 조금 미숙하던데 혹시 멍때렸어?”

         

         

       오늘도 어김없이 박하준이 옆에 있던 설소영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에 설소영은 익숙하다는 듯 눈앞의 남자와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머, 설마 그럴 리가요. 감독님도 그냥 넘어가셨는데 아마 선배님이 잘못 보신 것 같네요. 아, 그리고 시작 부분에서 대사 들어오는 타이밍이 조금 늦으시던데 설마 대사 까먹으신 건 아니죠?”

       “그것참 재밌는 소리네. 이미 #35까지 대본은 다 외워서 그럴 일은 절대 없을걸.”

       “그럼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31의 첫 장면에서 ‘강철’이 유아라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설소영의 질문에 박하준은 막힘 없이 대답했다.

         

         

       “애초에 쉬울 거라고 생각 안 했어. 그래도 나 혼자가 아니라 너희들이 있으니 무조건 돼. 그러니 아라야 나를 조금만 더 믿어줘. 이 정도면 대답이 됐을까?”

         

         

       박하준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정답을 말했다. 반대로 이번에는 그가 설소영에게 #33의 ‘유아라’의 첫 대사가 무엇인지 물었고, 설소영 역시 가볍게 정답을 읊었다.

         

       마치 무협지 속 절대 고수들이 서로의 무학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논검(論劍)을 펼치는 것 같은 광경.

         

       그 터무니없는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고동빈은 질린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제 6화 촬영이 끝났는데 저쪽은 벌써 8화 촬영을 하고 있네……’ 라고.

         

         

       고동빈은 쓴 미소를 지었다.

         

       연기라도 못했으면 당장 눈앞의 씬이나 잘 준비하라고 말하며 혼을 냈을 거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NG 한번 없이 완벽하게 촬영을 이어나가는 저 둘에게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래도 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피드백도 자주 오가니까 나름 괜찮겠지.

         

         

       “어쨌든 방금처럼 다음 씬의 촬영도 제 템포에 잘 따라오세요.”

       “음? 잠깐만. 누가 봐도 방금은 내가 너를 리드했잖아.”

       “선배. 아마 927 작가님이 그 말을 들으셨다면 코웃음 치셨을걸요?”

       “그분이 내 말을 듣고 웃는다고? 그건 오히려 좋은데.”

       “……?”

         

         

       어… 아마도?

         

       참고로 고동빈을 포함한 현장의 사람들에겐 그리 생소한 광경은 아니었다.

         

       애초에 저 둘은 첫 만남부터 계속 저런 느낌이었으니까.

         

       아까 말했다시피 멀리서 보면 그냥 사이좋은 선후배 관계지만, 가까이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살벌하다 못해 그냥 원수 수준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 정도로 서로를 의식하는 이유에는 어떠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이번 ‘이태원 레볼루션’에서 유일하게 927 작가의 선택을 받아 캐스팅된 배우라는 것.

         

       그들에게 있어서 927이라는 사람은 각각 어떤 사람일까?

         

       평생의 은인이자 연정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설소영.

         

       그녀는 자신을 주연으로 뽑아준, 그 사람의 기대에 보답할만한 연기력을 선보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최선을 다해 연기에 임한다.

         

       이는 박하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우로서 927 작가의 작품을 안 봤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기에 박하준은 어느샌가 927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되어있었고, 927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고자 하는 열망이 컸다.

         

       근데 이런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927 작가 쪽에서 먼저 캐스팅 의사를 표해왔다.

         

       그것도 무려 3번째 작품의 주인공 역으로…….

         

       927 작가가 어떻게 자신을 눈여겨보고 캐스팅까지 결심하게 됐는지는 박하준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을 뽑아준 927 작가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최선을 다해 증명하는 것뿐.

         

       연기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그 대상이 서로 비슷한 그들이었기에 대본 연습 때부터 어렴풋이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거기에서 그쳤다면 그들은 나영진이 서은우에게 말했던 것처럼 훈훈한 선후배 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927 작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욕심이 서로 많았고, 둘 다 연기에 한해서는 진심이었기에 지금의 라이벌 같은 구도가 형성된 것이었다.

         

       그렇다.

         

       이미 이 시점에서 그들의 사랑은 시작조차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이 중요한 사실을 서은우는 후에 깨닫게 된다.

         

       다만…….

         

       그가 그것은 깨닫게 되는 것은 그리 먼 훗날의 얘기는 아니었다.

         

         

         

       ***

         

         

         

       똑- 똑-

         

         

       “실례하겠습니다.”

         

         

       한편…….

         

       제작비의 조정 때문에 나영진이 유연정의 집무실에 방문했다.

         

       원래 유연정과 나영진이 일 적으로 대화를 나눈다면 딱 필요한 내용만 서로 깔끔하고 간략하게 말하기에 대화는 금세 종료된다.

         

       하지만 유연정이 작년 일본에서의 출장을 끝마친 뒤로는 조금 패턴이 바뀌었다.

         

         

       “그래서? 최근에 작가님으로부터 별말 없었어?”

       “예… 뭐. 워낙 사적으로는 대화를 잘 안 하시는 분이니까요.”

         

         

       유연정은 오늘도 나영진에게서 927 작가의 소식을 확인했다.

         

       어찌 보면 제작비 조정 안건보다는 이쪽 대화가 본론이었다.

         

       그녀는 종종 나영진을 통해 927 작가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

         

       뭔가 조금 미움받는 것 같지만, 당연히 927 작가가 자신에게 속내를 얘기할 리가 없었다.

         

       그나마 927 작가의 부가적인 소식을 들으려면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진 나 PD나 기획제작 1팀의 조용석밖에 없었다.

         

       어쨌든.

         

       최근 들어 유연정은 927 작가 쪽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얼마 전에 그가 선언했던 폭탄 발언 때문이었다.

         

         

       ‘……은퇴.’

         

         

       순간 유연정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927 작가의 3번째 작품.

       ‘이태원 레볼루션’의 제작 소식이 세상에 공표되자마자 그를 향한 대중들의 강압적인 태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아마 지금쯤 다들 한껏 기대의 부푼 마음으로 그의 3번째 작품의 방영만을 기다리고 있겠지.

         

       허나, 그들은 알고 있을까?

         

       당장 눈앞의 재미와 유흥을 위해 움직였던 그들의 경솔한 행동이 927 작가의 심경에 어떤 영향을 줬을지를…….

         

       유연정은 확신하고 있었다.

         

       아마 이번 3번째 작품의 방영이 끝나도 대중들의 태도는 이전과 비슷하겠지.

         

       그렇다면 그의 은퇴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게 된다.

         

       솔직히 유연정은 927 작가의 은퇴 판단이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대중들에게 어떤 큰 충격을 주지 않는 이상 저런 강압적인 태도는 계속 이어질 거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악영향만 끼칠 것이다.

         

       다만.

         

       유연정이 걱정되는 것은 그가 은퇴하고 다시는 이 업계로 돌아오지 않는 쪽이다.

         

       ……그래.

         

       이 최악의 미래만큼은 무조건, 어떻게든, 반드시 막아야만 했다.

         

       당연히 스튜디오엔믹스의 이익과 미래를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녀는 순수하게 927이라는 천재 작가가 사람들의 욕심으로 인해 사라지는 꼴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유연정이 최근 집요하게 나영진에게서 927 작가의 소식을 묻는 것도 그를 붙잡아 둘 일말의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조금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일?”

         

         

       문뜩 나영진이 927 작가가 박하준과 설소영의 대본 연습 현장 분위기가 어떤지 묻고는 다짜고짜 전화를 끊었을 때의 일을 얘기했다.

         

         

       “뭔가 그때의 은우 군은 조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거 제법 흥미로운 얘기네.”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유연정은 어째서인지 확신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927 작가의 은퇴 문제를 해결해줄 열쇠가 의외로 근처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며칠 전, 자신의 남편인 박용오에게 이런 임무를 내렸다.

         

       927 작가와 이번 드라마 제작과 관련된 얘기를 할 때, 그 ‘여배우’와의 관계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떠보라고. 혹여나 실수할까 봐 사전에 대사까지 미리 다 만들어줬다.

         

       다행히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한 남편의 말로는 그 얘기를 꺼내자마자 작가님께서 엄청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방금 나 PD의 얘기까지 듣고 나니 뭔가 서서히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밖에 없겠네.”

       “……무슨 소리입니까?”

         

         

       유연정의 혼잣말에 그녀의 앞에 앉아있던 나영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 게 있어. 우리 바람 같은 작가님의 마음을 붙잡아줄 열쇠를 찾은 것 같거든.”

         

         

       유연정은 싱긋 웃으며 생각했다.

         

       음… 아니지.

         

       이럴 때는 열쇠라기보다는 자물쇠가 좀 더 맞는 표현이겠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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