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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스스로를 잭이라고 소개한 그는 내 앞에 바짝 엎드려 있었다.

        ​

        “서, 설마 기사단 간부급이 되시는 분이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

        “몰랐으면 범죄가 없던 일이 되나?”

        ​

        “죄송합니다!”

        ​

        “죄송하면 일 끝나나?”

        ​

        브란덴의 선임 기사들이 새내기들을 가르칠 때 쓰던 화법으로 적당히 그를 이리저리 굴렸다.

        ​

        일단, 목적은 달성했다. 아무래도 이번에 물린 놈은 틀림없이 범죄 조직과 연이 닿아 있었다.

        ​

        그런 놈들이니 성국 한복판에서 사람을 죽이길 시도하지. 물론 이곳 유흥가가 워낙 이런저런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 죽이는 걸 그냥 넘기는 곳은 아니었다.

        ​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일을 스스럼없이 저지른다는 건, 모르긴 몰라도 든든한 뒷배가 있다는 뜻이었다. 최소한 제 목숨 정도는 건져줄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이런 일을 저지르는 거겠지.

        ​

        물론 그건 이제는 상관없는 이야기긴 했다. 내게 돈을 다 털리고, 습격조차 실패로 돌아간 시점에서 끝난 이야기니까.

        ​

        마리아는 옆에서 이리저리 구르는 잭을 보며 감탄했다.

        ​

        “…이게 진짜로 되네요.”

        ​

        “거봐. 된다니까.”

        ​

        그렇게 대꾸하고는 잭의 석궁을 집어 들어 이리저리 살폈다. 마력이 느껴지는 걸 보니 뭔가 마법이 걸려있긴 한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마리아라면 알 수도 있겠지만,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

        이런 사람들이 쓰는 마법이랄 것이 다 뻔했다.

        ​

        장력을 높이고 화살의 속력과 관통력을 더해주는 마법 같은 것들이 더해져 있겠지.

        ​

        어차피 범죄조직이 고용할 마법사라 해봐야 대부분 4위계였기에 엄청 복잡한 마법은 쓸 수 없었으니까.

        ​

        슬쩍 곁눈질로 마리아의 반응을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석궁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여기 걸려있는 마법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는데도 그러는 걸 보면, 그녀가 보기에도 걸려있는 마법이 별것 아니라는 의미였다.

        ​

        석궁은 적당히 구석으로 던져두고, 엎드린 채 원산폭격 자세를 하고 있던 잭을 불렀다.

        ​

        “야.”

        ​

        “예, 옙!”

        ​

        “너 어디 출신이냐?”

        ​

        “제, 제국 출신입니다!”

        ​

        “그럴 것 같더라.”

        ​

        억양이 딱 제국식이라 혹시나 하긴 했는데, 진짜 제국 출신인 모양이었다.

        ​

        사실, 오소독스 자체가 토박이라 할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륙을 집어삼킨 종교의 심장부에 외지인 유입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일반적으로 성국 수도에 외지인이 유입된다 하면 종교인들을 생각하겠지만, 범죄자들의 경우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지?”

        ​

        잭은 잠시 망설였다. 그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답했다.

        ​

        “가,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

        “거짓말이네.”

        ​

        퍽!

        ​

        정강이를 걷어찼다. 기사의 힘으로 일반인을 제대로 걷어차면 진짜 큰일이 날 수도 있기에 힘을 빼고 다리만 휘두른 수준이지만, 정강이는 원래 뭐든 얻어맞으면 더럽게 아픈 곳이다.

        ​

        “아악!”

        ​

        잭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일부러 바깥에서 들으라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지만, 마리아가 사일런스 마법을 써놔서 소리가 새 나갈 걱정은 없었다.

        ​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

        마리아는 순수하게 내 판단의 근거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

        뭐, 내가 사람 말만 듣고 진위를 판별하는 기술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어지간히 오래 본 사이가 아니라면 습관이나 버릇 같은 것도 모르는데 어떻게 판단하겠어.

        ​

        “진짜 가족들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카지노에서 올인 같은 거 안 하거든.”

        ​

        “아.”

        ​

        그러니까, 애초에 가족을 운운한 시점에서 거짓말은 확정이라는 거다.

        ​

        이런 부류의 사람을 내가 한두 번 만나본 게 아니라 대강의 레파토리는 파악하고 있는데, 보통 가족을 들먹이는 놈들은 하나같이 다 거짓말을 하는 놈들이더라고.

        ​

        “탈락이네.”

        ​

        그리고,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 앞에서 대담하게 거짓말을 내뱉는 놈들은 애초에 신뢰할 수가 없는 놈들이다.

        ​

        만약 최소한 안 들킬 법한 거짓말을 하는 잔머리라도 굴릴 줄 아는 놈들이면 모를까, 이렇게 전형적인 사기꾼들은 동업하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 컸다.

        ​

        슬쩍 곁눈질로 옆을 살폈다.

        ​

        ‘특히나 지금처럼 다른 사람이 함께라면 더 그렇겠지.’

        ​

        “뭐가요?”

        ​

        “있어. 그런 게.”

        ​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날 납득시킬 수 있는 수준의 말을 꺼냈다면 그래도 목숨 정도는 보전해줄 생각이 있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속이려 든다면 나도 굳이 구제해줄 필요가 없었다.

        ​

        “안내해. 네가 석궁을 구한 곳으로.”

        ​

        “끄으윽, 아, 알겠습니다.”

        ​

        아쉽게도 잭은 앞으로 우리와 함께할 수 없었다.

        ​

        시궁창에 산다고 모두 시궁쥐인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는 평범한 시궁쥐인 모양이었다.

        ​

        ―――

        ​

        잭이 안내한 곳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식당이었다. 하지만 딱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

        여긴 숨겨진 게 많은 곳이라고.

        ​

        “안쪽에 뭔가 있어요.”

        ​

        마리아도 그걸 느꼈는지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

        물론 건물이 대놓고 나 수상한 곳입니다 팻말을 걸어둔 건 아니었다. 일반적인 건물로 위장하는데 그런 걸 걸어두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애초에 대놓고 나 수상한 곳이라고 티를 내는 놈들은 수상해지고 싶어 할 뿐 공권력이 뜨면 부리나케 도망가는 아마추어들이다.

        ​

        그럼에도 이상을 눈치챈 건, 역시 마력 탓이었다.

        ​

        식당 주제에 문 너머에서부터 마력이 풀풀 풍겼다. 문 너머에서부터 이 정도면, 마력을 다 모으면 5위계 마법 정도는 발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위계에서부터는 마법을 발동할 때 필요한 마력이 제곱수 단위로 높아진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양이었다.

        ​

        “진짜 여기 맞겠지?”

        ​

        “그, 그렇습니다!”

        ​

        “진짜를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이 일이 잘 풀리면 네가 걸었던 돈을 돌려줄 수도 있거든.”

        ​

        그러자 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까 확인한바, 이놈은 죽인다는 협박은 잘 통하지 않았다. 어차피 돈을 못 찾으면 죽는다는 결과는 확정됐기 때문이겠지.

        ​

        그러니 미끼를 던졌다. 효과는 확실했다.

        ​

        “지, 진짜 여기가 맞습니다! 정 미덥지 않다면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

        아무래도 진짜인 모양이었다.

        ​

        확신을 얻고 마리아에게 작게 속삭였다.

        ​

        “저번에 보여준 배리어 마법, 그거 나까지 같이 커버할 수 있어?”

        ​

        “영역 지정도 영창으로 조절할 수 있어요. 그래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좀 힘들긴 한데….”

        ​

        “그 정도야.”

        ​

        어깨가 닿을 정도로 그녀의 옆에 붙었다.

        ​

        “이 정도면 될까?”

        ​

        “네.”

        ​

        마리아도 이젠 익숙해졌는지 내가 갑자기 훅 가까워졌다고 당황하지 않았다. 이건 좀 아쉬웠다.

        ​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바로 써줄 수 있어?”

        ​

        마리아는 잠시 고민했다.

        ​

        “그런 건 한 번도 해본 적 없긴 한데….”

        ​

        그녀는 잭을 곁눈질로 살피고 그에겐 보이지 않는 각도로 손을 뻗어 마법을 시전했다.

        ​

        “―――, ――――.”

        ​

        그리고는 빠르게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그대로 멈췄다. 변화는 내게도 느껴졌다. 마력이 대량으로 움직이다 마치 뭔가에 걸린 것마냥 탁 멈췄다. 그리고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은 채 유지됐다.

        ​

        30초 정도 그 상태를 유지하던 마리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

        “파이어볼.”

        ​

        화륵.

        ​

        작지만, 순간 화상을 입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뜨거운 불꽃이 피었다 사라졌다.

        ​

        “가능은 하네요. 마법을 일부러 멈춰두는 동안 마력이 계속 소모되긴 하지만, 아마 10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요.”

        ​

        “그 정도면 충분해.”

        ​

        이러면 준비라 할 건 모두 끝났다.

        ​

        우리는 잭을 앞세운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말 그대로 평범한 식당이었다. 그 모습에 마리아가 의아해했다.

        ​

        “이건 그냥 식당 아닌가요…?”

        ​

        충분히 의문을 가질 만 했다. 실제로 어떻게 보더라도 평범한 일반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이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커플, 4인 가족, 노부부 등 위장으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도 많았다.

        ​

        그리고, 이런 착각이 바로 이들이 노리는 바였다.

        ​

        “식당으로 위장했다고, 딱히 식당을 운영하지 않는 건 아니거든.”

        ​

        그런 내 말을 증명하듯 잭이 종업원에게 주문을 넣었다.

        ​

        “파인애플 피자 하나 주시게.”

        ​

        명백히 메뉴판에는 존재하지 않는 메뉴였다. 그 기상천외한 이름에 마리아가 표정을 찡그릴 정도로 괴기한 이름이었다.

        ​

        “파인애플 피자라뇨.”

        ​

        다행히 이 세계는 간악한 캐나다인의 사악한 발명품이 침공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역시 황족이라 그런지 근본이 넘치는 마리아에게 속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

        그리고, 머지않아 종업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다만, 그는 잭의 얼굴을 보고 표정을 찡그렸다.

        ​

        그걸 보는 즉시 알아차렸다.

        ​

        얘가 석궁을 전해준 놈이구나.

        ​

        확신이 서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대한 요란하게 책상을 뒤엎으면서.

        ​

        “무슨 손님 접대가 이따위야!”

        ​

        “큭?!”

        ​

        갑작스런 상황에 종업원이 당황했다. 그리고 식당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

        “무슨 짓을…?”

        ​

        마리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내 신호에 맞춰 배리어를 펼칠 준비를 하던 그녀였기에 더 당황한 것 같았다.

        ​

        “여기 주인장 나오라 그래!”

        ​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난동을 부렸다.

        ​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듯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맞닥뜨리면 누구든지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법이었다. 아마 굉장히 다양한 인간군상을 상대해봤을 종업원도 식당이 아닌 조직의 일로 사람을 부르고 식당의 일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처음 상대해본 모양이었다.

        ​

        그는 어버버 거리며 날 주저앉히려 했다.

        ​

        내가 바라던 반응이었다.

        ​

        “아이고! 종업원 놈이 손님한테 힘 쓰려 하네! 내가 살다 살다 이런 놈한테도 무시를 당하는구나!”

        ​

        그렇게 말하며 종업원을 밀쳐내고 의자를 내던졌다.

        ​

        “꺄악!”

        ​

        사람이 전혀 없는 곳으로 던졌지만, 애초에 이런 상황 자체가 정상적이진 않았다. 손님들은 허겁지겁 소리를 지르며 식당 밖으로 빠져나갔다.

        ​

        여러 사람이 나와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드 익스퍼트는 일반인 몇 명이 나온다고 힘으로 묶어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

        기어코 이곳을 지키던 병력으로 보이는 이들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 나왔다. 아마 다른 종업원이 이야기를 전한 모양이었다. 그들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잭의 표정도 새하얘졌다.

        ​

        “얌전히 있지 못해!”

        ​

        그들은 망설임 없이 내게 달려들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

        “아, 안 돼!”

        ​

        그리고, 처음 우리를 맞이하러 온 종업원이 소리를 질렀다.

        ​

        아마도 그는 뭔가 수상하다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걸 확인하고 왈패들을 역으로 두들겨 패며 슬쩍 종업원을 곁눈질했다.

        ​

        ‘눈치는 좀 있는 것 같은데.’

        ​

        그는 하나둘 쓰러져가는 왈패들을 보며 곧장 안으로 도망쳤다. 바깥이 아닌 안으로.

        ​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처럼.

        ​

        아무래도, 데려갈 놈의 후보를 하나 찾은 것 같았다.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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