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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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버거리며 떠들어대는 말을 들어보니, 준비된 무대가 이게 끝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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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 들어가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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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 생각하며 내가 나왔던 곳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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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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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토겐은 상처는커녕 숨도 차지 않은 상태로 퇴장하는 리안을 보며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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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
    ​
    그의 손에는 귀족들이나 사용할 법한 금색의 망원경이 들려있었다. 망원경 너머엔 천진한 표정으로 퇴장하는 리안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
    ​
    ‘저 정도의 힘을 가진 녀석이..어떻게 저리 순수한 눈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
    ​
    이곳은 가장 추잡한 욕망이 모여드는 지소의 영역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강대한 힘을 가지기 위해 끔찍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이들이 널리고 널린 곳이었다.
    ​
    ​
    힘에 미쳐버린 이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해왔던 토토겐은 ‘강대한 힘’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
    ​
    아무런 대가 없이 쥐어진 힘이더라도 그 힘이 일정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은 빠르게 광기에 젖어 들게 된다.
    ​
    ​
    리안은 그런 당연한 법칙을 가볍게 부숴버렸다. 그 어떤 사람보다 맑은 눈으로 광대한 힘을 장난감처럼 다루고 있었다. 
    ​
    ​
    그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토토겐을 안달 나게 만들었다. 
    ​
    ​
    ‘내가 기대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
    ​
    리안의 장기를 보고 기절했던 토토겐은 정신을 차린 후, 자신이 리안에게 겁을 먹고 쓰러졌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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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봤던 걸 전부 환각이라 치부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넘어져서 기절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노가 누그러드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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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토토겐은 지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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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십 마리의 괴물들이 준비된 건 전부 이런 뒷배경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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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해야 저놈을 무너뜨릴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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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토겐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잘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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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소였다면 노예를 불러내 제 얼굴을 보여주며 겁을 주거나, 직접적으로 손을 봤겠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리안을 만나는 걸 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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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를 보고 기절했던 일을 전부 꿈이라고 치부하고 있지만,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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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을 불러내 괴롭힐 수 없는 상황에 할 수 있는 거라곤 마물을 돈 주고 사서 괴롭히는 방법밖엔 없었다. 
    ​
    ​
    ‘그래, 수십 마리로 안 된다면 수백, 수천 마리와 싸우게 만들면 된다!’
    ​
    ​
    토토겐은 소리 높여 제 비서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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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물을 더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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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비서는 눈치 빠르게 오뚜기를 부르기 위해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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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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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뿐하게 경기를 끝내고 아이리스가 기다리고 있을 제 방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말끔한 복도에 내려선 순간 누군가가 내 몸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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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왓!”
    ​
    ​
    몸이 뒤로 기울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
    ​
    “비,비앙카?”
    “으흐흥.”
    ​
    ​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한껏 풀린 얼굴로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당황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
    ​
    “무,무슨 일이세요?”
    ​
    ​
    성인 여성에게 안긴 게 처음이다 보니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손이 허공을 배회하며 곤란함을 숨기지 않고 내보였다. 
    ​
    ​
    “봤어!”
    “네?”
    “경기 봤다고! 세상에, 그렇게 강할 줄이야!”
    ​
    ​
    호들갑을 떨며 떠들어대는 말을 들어보니, 아이리스의 경기는 본 적 있지만 내가 경기를 뛰는 걸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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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의 오빠이니 꽤 강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정도로 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
    ​
    “감사합니다.”
    ​
    ​
    모든 게 마검의 덕분이라고 해도 칭찬은 언제나 달콤했다. 열이 오른 볼을 숨기지 못한 채 감사하다고 말하자 비앙카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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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싫다고 했지만..너는 어때?”
    “네?”
    “최상층으로 가는 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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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앙카를 따라가면 손쉽게 최상층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대신 아이리스와 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되는 건 내 실력이 전부 마검의 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
    ​
    비앙카는 분명 놀라운 재능을 가진 제자가 필요하다고 했었지, 아이템 빨로 경기를 쓸어버리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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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송합니다.”
    ​
    ​
    결국 나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그러자 비앙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이리스는 물론 나까지 제안을 거절하자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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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 혹시 싫은 이유를 알려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동생이 신경 쓰여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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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비앙카가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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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너희 둘 다 내 제자로 데려가면 되니까!”
    “하지만 전에는…”
    “으음, 이렇게 말하면 서운할지도 모르지만… 실력이 없는 사람까지 내 제자로 들여서 책임지기엔 조금 힘들어서 널 데려갈 수 없다고 했던 거야. 하지만 이젠 말이 다르지!”
    ​
    ​
    비앙카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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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넌 충분히 실력이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동생이랑 같이 최상층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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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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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상층에 올라가도 내 실력은 금방 들통나고 말 거야. 훈련할 때마다 마검을 휘두를 순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리스가 안전해질 수 있는 기회인데 내 실력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게 맞을까?’
    ​
    ​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있자 비앙카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
    ​
    “만약 고민되는 거라면 잠깐이라도 올라가서 견학이라도 해봐. 직접 보면 생각이 확실해질지도 모르잖아.”
    “아, 저는 이미 최상층에 올라가 봤었어요.”
    “대충 한 번 훑어보기만 했을 거 아니야? 꼼꼼히 살펴봐야 답도 쉽게 나올 거야. 지금 바로 올라가자!”
    “네? 아, 저는…”
    ​
    ​
    비앙카는 내 대답을 듣지 않고 벌떡 일어나더니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힘이 얼마나 강한지 순식간에 엘리베이터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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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아이리스가 저를 기다리고 있는데…!”
   “금방 보고 내려오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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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앙카가 딱 10분이면 된다며 양손을 펴 보였다. 
    ​
    ​
    ‘끙, 그 정도라면…’
    ​
    ​
    투기장 내 검투사 중 최고 권력자라고 볼 수 있는 그녀가 이 정도로 애원하니 못 가줄 것도 없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최상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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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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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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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앙카는 엘리베이터 입구 근처에 서서 입꼬리를 무서울 정도로 휘었다. 그녀는 오늘 봤던 아찔한 전투 장면을 떠올리며 몸을 작게 떨었다. 
    ​
    ​
    ‘아아 -…가까운 곳에 잘 익은 과일이 있을 줄이야!’
    ​
    ​
    수십 마리의 마물이 일순간에 토막 나 집어삼켜지던 장면을 떠올리자 몸이 베베 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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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힘만 있으면 챔피언의 자리를 노릴 수 있을지도 몰라!’
    ​
    ​
    챔피언, 최상층을 차지한 10명 중 가장 강한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언제나 1등은 대접 받는 법, 챔피언은 비앙카가 누리고 있는 것보다 더한 걸 누리고 있었다.
    ​
    ​
    ‘그 자리에만 앉는다면 -…지소님의 부하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
    ​
    노예의 신분이 사라지는 건 물론이고 마왕의 총애를 받는 지소의 부하로 들어갈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
    ​
    ​
    챔피언이 되어 지소 아래로 들어간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이가 백루였다. 잘만하면 지소의 오른팔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
    ​
    ‘하악,학…아아! 지소님!’
    ​
    ​
    비앙카는 자신이 사랑하는 지소의 존재를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자세를 바로 했다. 
    ​
    ​
    덜컹거리며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두 사람은 화려한 융단 위에 올라섰다. 
    ​
    ​
    “자, 저쪽이 내 방이야.”
    ​
    ​
    비앙카는 리안을 제 방으로 안내했다. 그녀의 그림자는 앞으로 일어날 포식이 기대되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일렁거렸다.
    ​
    ​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화려한 문 앞에 도착했다. 비앙카는 자연스럽게 제 방문을 열었다.
    ​
    ​
    “여긴 내가 아니면 문이 열리지 않아.”
    ​
    ​
    비앙카는 리안이 머무르는 층에는 없는 보안시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탁.
    ​
    ​
    무겁게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비앙카와 리안만 남게 되었다. 리안은 저번에 봤던 방과는 다른, 화려한 방안을 살펴보기 바빴다.
    ​
    ​
    “전에 봤던 방이랑 다르지?”
    “네, 달라요.”
    “최상층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집을 꾸밀 수 있어.”
    ​
    ​
    내부 구조는 물론, 가구의 디자인, 분위기까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한다.
    ​
    ​
    “만약 너희가 최상층으로 올라오게 되면 이곳에서 나와 같이 살게 될 거야. 여긴 빈방이 많아서 불편할 일도 없을 거야.”
    ​
    ​
    비앙카는 화려한 내부 시설을 소개해주며 리안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방을 구경하고 있을 때, 리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
    “집이 정말 좋기는 한데…아무래도 전 이만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뭐?”
    “10분은 훌쩍 지나기도 했고, 아이리스가 절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서요.”
    ​
    ​
    그 말에 비앙카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
    ​
    “오늘 구경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
    ​
    리안이 고민 한 점 없이 뒤를 돌아 비앙카의 방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비앙카가 리안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익명님! 약지님! pinong님! 익명님! 혈소연님! 후원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비앙카는 함부로 아무거나 주워먹으면 큰일이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결국 이상한거(리안)을 먹어버리기로 결심했어요.

그렇게 비앙카는…(다음에 계속)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목감기가 안떨어지네요 ㅠㅠ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어버버거리며 떠들어대는 말을 들어보니, 준비된 무대가 이게 끝인 것 같았다.

‘이만 들어가도 되겠지?’

그리 생각하며 내가 나왔던 곳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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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겐은 상처는커녕 숨도 차지 않은 상태로 퇴장하는 리안을 보며 이를 으득으득 갈았다.

‘젠장,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그의 손에는 귀족들이나 사용할 법한 금색의 망원경이 들려있었다. 망원경 너머엔 천진한 표정으로 퇴장하는 리안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저 정도의 힘을 가진 녀석이..어떻게 저리 순수한 눈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곳은 가장 추잡한 욕망이 모여드는 지소의 영역이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강대한 힘을 가지기 위해 끔찍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이들이 널리고 널린 곳이었다.

힘에 미쳐버린 이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해왔던 토토겐은 ‘강대한 힘’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쥐어진 힘이더라도 그 힘이 일정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면 인간은 빠르게 광기에 젖어 들게 된다.

리안은 그런 당연한 법칙을 가볍게 부숴버렸다. 그 어떤 사람보다 맑은 눈으로 광대한 힘을 장난감처럼 다루고 있었다.

그 모습이 기괴하면서도 토토겐을 안달 나게 만들었다.

‘내가 기대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리안의 장기를 보고 기절했던 토토겐은 정신을 차린 후, 자신이 리안에게 겁을 먹고 쓰러졌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그때 봤던 걸 전부 환각이라 치부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넘어져서 기절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노가 누그러드는 건 아니었다.

이에 토토겐은 지갑을 열었다.

수십 마리의 괴물들이 준비된 건 전부 이런 뒷배경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저놈을 무너뜨릴 수 있지?’

토토겐은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으며 잘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노예를 불러내 제 얼굴을 보여주며 겁을 주거나, 직접적으로 손을 봤겠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리안을 만나는 걸 피하고 있었다.

장기를 보고 기절했던 일을 전부 꿈이라고 치부하고 있지만,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피하고 있는 것이다.

리안을 불러내 괴롭힐 수 없는 상황에 할 수 있는 거라곤 마물을 돈 주고 사서 괴롭히는 방법밖엔 없었다.

‘그래, 수십 마리로 안 된다면 수백, 수천 마리와 싸우게 만들면 된다!’

토토겐은 소리 높여 제 비서를 찾았다.

“마물을 더 준비해야겠다.”

그 말에 비서는 눈치 빠르게 오뚜기를 부르기 위해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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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뿐하게 경기를 끝내고 아이리스가 기다리고 있을 제 방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말끔한 복도에 내려선 순간 누군가가 내 몸을 덮쳤다.

“우왓!”

몸이 뒤로 기울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비,비앙카?”

“으흐흥.”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한껏 풀린 얼굴로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당황을 숨기지 못한 채 말했다.

“무,무슨 일이세요?”

성인 여성에게 안긴 게 처음이다 보니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손이 허공을 배회하며 곤란함을 숨기지 않고 내보였다.

“봤어!”

“네?”

“경기 봤다고! 세상에, 그렇게 강할 줄이야!”

호들갑을 떨며 떠들어대는 말을 들어보니, 아이리스의 경기는 본 적 있지만 내가 경기를 뛰는 걸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아이리스의 오빠이니 꽤 강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정도로 강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연신 감탄을 쏟아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게 마검의 덕분이라고 해도 칭찬은 언제나 달콤했다. 열이 오른 볼을 숨기지 못한 채 감사하다고 말하자 비앙카가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이리스는 싫다고 했지만..너는 어때?”

“네?”

“최상층으로 가는 거.”

“아.”

비앙카를 따라가면 손쉽게 최상층에 도달할 수 있겠지만, 대신 아이리스와 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되는 건 내 실력이 전부 마검의 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비앙카는 분명 놀라운 재능을 가진 제자가 필요하다고 했었지, 아이템 빨로 경기를 쓸어버리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닐 터다.

“죄송합니다.”

결국 나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그러자 비앙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이리스는 물론 나까지 제안을 거절하자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그래..? 혹시 싫은 이유를 알려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동생이 신경 쓰여서요.”

그 말에 비앙카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너희 둘 다 내 제자로 데려가면 되니까!”

“하지만 전에는…”

“으음, 이렇게 말하면 서운할지도 모르지만… 실력이 없는 사람까지 내 제자로 들여서 책임지기엔 조금 힘들어서 널 데려갈 수 없다고 했던 거야. 하지만 이젠 말이 다르지!”

비앙카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넌 충분히 실력이 있다는 걸 증명했으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동생이랑 같이 최상층으로 가자!”

그 말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에 빠졌다.

‘최상층에 올라가도 내 실력은 금방 들통나고 말 거야. 훈련할 때마다 마검을 휘두를 순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리스가 안전해질 수 있는 기회인데 내 실력이 형편없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게 맞을까?’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있자 비앙카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고민되는 거라면 잠깐이라도 올라가서 견학이라도 해봐. 직접 보면 생각이 확실해질지도 모르잖아.”

“아, 저는 이미 최상층에 올라가 봤었어요.”

“대충 한 번 훑어보기만 했을 거 아니야? 꼼꼼히 살펴봐야 답도 쉽게 나올 거야. 지금 바로 올라가자!”

“네? 아, 저는…”

비앙카는 내 대답을 듣지 않고 벌떡 일어나더니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힘이 얼마나 강한지 순식간에 엘리베이터로 끌려갔다.

“저 아이리스가 저를 기다리고 있는데…!”

“금방 보고 내려오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비앙카가 딱 10분이면 된다며 양손을 펴 보였다.

‘끙, 그 정도라면…’

투기장 내 검투사 중 최고 권력자라고 볼 수 있는 그녀가 이 정도로 애원하니 못 가줄 것도 없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최상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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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익.

비앙카는 엘리베이터 입구 근처에 서서 입꼬리를 무서울 정도로 휘었다. 그녀는 오늘 봤던 아찔한 전투 장면을 떠올리며 몸을 작게 떨었다.

‘아아 -…가까운 곳에 잘 익은 과일이 있을 줄이야!’

수십 마리의 마물이 일순간에 토막 나 집어삼켜지던 장면을 떠올리자 몸이 베베 꼬였다.

‘그 힘만 있으면 챔피언의 자리를 노릴 수 있을지도 몰라!’

챔피언, 최상층을 차지한 10명 중 가장 강한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언제나 1등은 대접 받는 법, 챔피언은 비앙카가 누리고 있는 것보다 더한 걸 누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만 앉는다면 -…지소님의 부하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노예의 신분이 사라지는 건 물론이고 마왕의 총애를 받는 지소의 부하로 들어갈 기회까지 얻을 수 있다.

챔피언이 되어 지소 아래로 들어간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이가 백루였다. 잘만하면 지소의 오른팔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악,학…아아! 지소님!’

비앙카는 자신이 사랑하는 지소의 존재를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자세를 바로 했다.

덜컹거리며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두 사람은 화려한 융단 위에 올라섰다.

“자, 저쪽이 내 방이야.”

비앙카는 리안을 제 방으로 안내했다. 그녀의 그림자는 앞으로 일어날 포식이 기대되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일렁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화려한 문 앞에 도착했다. 비앙카는 자연스럽게 제 방문을 열었다.

“여긴 내가 아니면 문이 열리지 않아.”

비앙카는 리안이 머무르는 층에는 없는 보안시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탁.

무겁게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비앙카와 리안만 남게 되었다. 리안은 저번에 봤던 방과는 다른, 화려한 방안을 살펴보기 바빴다.

“전에 봤던 방이랑 다르지?”

“네, 달라요.”

“최상층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집을 꾸밀 수 있어.”

내부 구조는 물론, 가구의 디자인, 분위기까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너희가 최상층으로 올라오게 되면 이곳에서 나와 같이 살게 될 거야. 여긴 빈방이 많아서 불편할 일도 없을 거야.”

비앙카는 화려한 내부 시설을 소개해주며 리안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방을 구경하고 있을 때, 리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집이 정말 좋기는 한데…아무래도 전 이만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뭐?”

“10분은 훌쩍 지나기도 했고, 아이리스가 절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서요.”

그 말에 비앙카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오늘 구경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리안이 고민 한 점 없이 뒤를 돌아 비앙카의 방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비앙카가 리안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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