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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혹시 저거 따라하면 화산파가 대가리 깨러 쫓아오냐?” 

   

    그 질문에 춘봉이의 표정이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괴상하게 변했다.

   

    “진짜…?”

    “뭐가 진짜야.”

    “아니, 다른 검법도 아니고 매화검법을…? 저게 한 번 보고 따라할 만한 게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한 번 보고 따라는 못 하지. 그냥 흉내 정도?”

   

    서준의 생각에 매화를 피우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화산의 매화가 인정받는 것은 그와 어우러진 치밀한 검법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무림에 검기를 저런 식으로 흩날릴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

   

    아마 아닐 거다. 단지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

   

    왜 이십사수매화검법에 검법이라는 이름이 붙었겠는가.

   

    만약 매화를 피우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검법이 아니라 매화신공이니 뭐니 하는 이름이 붙었겠지.

   

    매화검법에서 중요한 건 검이다.

   

    하지만 서준은 저 매화 자체에서 가능성을 보았을 뿐이다. 

   

    혼원신공을 한층 완성에 가깝게 끌어올릴 가능성의 편린을.

   

    “그게 뭔….”

   

    혼자 끙끙 앓던 춘봉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근데 어지간히 똑같은 게 아니면 화산파 차원에서 제재가 들어오진 않을걸? 얘네가 나름 도사들이라 상식은 있어서.”

    “어지간히 똑같으면 어떻게 되는데?”

    “으음…. 단전은 확실히 부서질 것 같고…. 사지근맥이 잘릴지도? 아, 참회동 같은 데 갇히는 건 무조건이고 장로 성격이 불같으면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릴 수도 있긴 하겠다. ”

   

    와 정말요? 존나 무섭네. 

   

    “근데 웬만하면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전혀 다른 무공끼리도 가끔 유사점이 있을 때가 있어서 그런 부분은 꽤 까탈스럽게 판단하거든. 뭐, 저기 장로랑 면담은 아마 확실히 하겠지만.”

    “오….”

   

    초절정 장로랑 단둘이 면담? 그건 좀 거시기 한데.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즈음 운작도 시연을 마치고 비무장에서 내려갔다.

   

    “곧바로 비무를 시작하겠소!”

   

    보아하니 운작이 아닌 다른 화산파의 무인이 심판을 맡은 듯했다.

   

    아마 저기 높은 곳에 앉아있는 종인이라는 장로는 안전 책임관 같은 자리 아닐까?

   

    초절정쯤 되면 절정의 무인들끼리 비무를 치르더라도 사고가 나기 전에 방지할 수 있을 터였다.

   

    “순서는 제비뽑기로 정하였소. 우선 십칠 번과 사십이 번! 삼심이 번과 백이 번! 오 번과…….”

   

    이곳에는 총 여덟 개의 비무장이 있었는데, 오늘 총 64번의 비무를 치러야 하는 만큼 빠르게 진행할 생각인 듯했다.

   

    “칠십팔 번과 이십칠 번!”

   

    칠십팔 번. 서준의 번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서준이 씩 웃었다.

   

    “갔다 올게. 잘 보고 있어.”

    “금방 끝날 것 같은데 잘 보긴 무슨.”

   

    춘봉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가 보기에 이 비무 대회의 우승자는 제 오빠가 유력했다.

   

    제아무리 섬서 전체에서 무림인들이 몰려들었다지만, 위치가 조금 있는 이들은 이런 대회에 나오지 않는다.

   

    그야 체면이 있지 않은가.

   

    참가 조건에 제한이 없다지만 느닷없이 무당파의 장로가 여기 참가한다면 전 무림에서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게다가 구파의 제자나 세가의 자제가 참가하는 일도 거의 없다.

   

    멀기도 하고, 별다른 이득이 없으니까.

   

    용봉지회쯤 되면 몰라, 화산파에서 축제 대용으로 여는 비무 대회에 참가할 만큼 한가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후딱 끝내고 와!”

   

    그런 생각으로 춘봉이 손을 휘젓자 서준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비무장 위로 올라갔다.

   

    심판이 패를 확인하고나니 상대 역시 비무장 위로 올라왔다.

   

    몸에 적당히 근육이 붙은 여인이었다.

   

    서준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여인이 씩 웃었다.

   

    “왜 그리 보지?”

    “어…. 말이 좀 그렇네요.”

   

    보지라니. 남사스러워라.

   

    서준이 질색하자 여인이 얼굴을 붉혔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다!”

    “아, 네. 그렇겠죠.”

   

    턱을 긁적이며 비무장 아래로 시선을 향하자 성의없이 손을 흔드는 춘봉이가 보인다.

   

    “음. 아무튼 빨리 시작할까요?”

   

    나 이서준. 여자라고 봐주는 남자가 아니다.

   

   

    *

   

   

    대련이 시작됐다.

   

    홍유연은 검을 뽑아든 채 자신의 상대를 노려보았다.

   

    ‘초면에 성희롱을….’

   

    여인의 몸으로 무림에 발을 들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내뱉는 인간의 사고방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으…. 후우….

   

    차분히 심호흡한 그녀가 사부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부드럽게 발을 내밀었다.

   

    ‘연아,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 여인은 사내와 싸울 때 항상 불리함을 감수해야 한단다.’

   

    어쩔 수 없는 태생적 차이다. 

   

    사내는 여인보다 대체로 힘이 세다.

   

    육신의 힘이라는 것은 경지가 낮을수록 크게 작용하여 평범한 여인이 사내를 이기기 힘들게 만든다.

   

    ‘하지만 너도 드디어 경지에 올랐으니, 이제부터는 이전의 습관들을 하나씩 버려갈 차례란다.’

   

    여인으로서의 불리함을 상쇄하기 위해 익혔던 잡기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버려낸다.

   

    ‘여인은 사내보다 몸이 유연하니 항상 네 유리함을 상기하며 전투에 임하거라.’

   

    예, 사부님.

   

    앞으로 나아가던 그녀의 허리가 급격하게 꺾인다.

   

    내뻗은 발이 상대를 지나치고, 거꾸로 보이는 세상 속 상대의 옆구리가 훤히 보인다.

   

    ‘이겼다.’

   

    그녀가 검을 휘둘렀다. 

   

    상대가 얄밉다지만 대련은 대련. 옆구리를 베는 정도로 끝내기로 했다.

   

    그리고,

   

    쐐액-!

   

    검이 허공을 갈랐다.

   

    “어…?”

    “뭐해요?”

   

    위로 뛰어오른 상대의 얼굴이 보인다.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것을 본 듯 의아한 표정.

   

    그녀의 마지막 기억은 빠르게 가까워지는 신발의 밑창이었다.

   

   

    *

   

   

    콰아앙-!

   

    위로 뛰어올라 검을 피해낸 서준이 여인의 얼굴을 발로 내리찍었다.

   

    “진짜 뭐 한 거지?” 

   

    왜 거기서 그런 초식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승자! 이서준!”

   

    심판의 선언에 발 아래를 살핀 서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세게 찍었나?’

   

    허접한 친구 같던데, 조금 봐줄 걸 그랬다.

   

    입맛을 다신 서준이 비무대에서 내려왔다.

   

    – 어찌 여인의 얼굴을 저리….

    – 극악무도한 자로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딱히 신경 쓰진 않았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재충전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볼따구 내놔잇!”

    “아오 좀…!”

   

    후다닥 달려들어 면사 너머로 춘봉이의 볼을 주무르자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다.

   

    주화입마?

   

    내가 봤을 때 춘봉이 볼 몇 번 주무르면 열반에 들어 알아서 치료된다.

   

    주화임마! 꺼져 임마!

   

    서준이 혼자 실실 웃고 있으니 춘봉이 손을 내밀어 그의 고개를 강제로 돌렸다.

   

    “그만하고 저기 좀 봐봐.”

    “아 왜!”

   

    강제로 돌려진 시선이 한 비무장을 비췄다. 그리고 그곳에는 예의 그 여인이 있었다.

   

    “삼두마녀.”

    “뭐?”

    “아, 그런 게 있어.”

   

    여인은 여전히 죽립을 푹 눌러 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한 자루의 검이었다.

   

    “오…?”

   

    검이 여인의 키보다 크다.

   

    여인의 키가 작은 건 아니었다. 그냥 검이 큰 거다.

   

    아니, 정확히는 길다.

   

    검신의 너비는 보통의 검과 비슷해보이는데도, 검신의 길이며 손잡이의 길이까지 평범을 훨씬 넘어섰다.

   

   그것이 여인의 품 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건 또 뭐냐.”

    “큰 검.”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닌데요.”

   

    춘봉이를 빤히 쳐다보자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도 몰라. 저런 기형검 쓰는 건 나도 처음 봤어. 저건 참마도도 아니고, 그냥 대검이라 해야 되나?”

    “뭐? 금춘봉이 모르는 게 있다고?”

    “내가 뭐 백과사전이냐?”

    “아니었어?”

    “지랄.”

   

    그러는 사이 여인의 대련이 시작됐다.

   

    그녀의 상대는 커다란 도끼를 든 사내였다.

   

    사내가 여인에게 달려들며 무어라 입을 놀렸다. 아마 대충 가슴이 어쩌고 하는 내용 아닐까?

   

    그리고 대련이 끝났다.

   

    “오….”

   

    기다란 검집을 땅에 박은 여인이, 그것을 축 삼아 빙글 돌며 도끼를 피해내고 사내의 턱에 장심을 꽂아넣은 것이다.

   

    “승자, 소소!”

   

    순식간에 끝나버린 대련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순데?”

    “응. 고수네.”

   

    춘봉이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세가 쪽인 것 같은데. 왜 굳이 이런 대회에 나온 거지?”

    “몰라. 어차피 이기면 그만이잖아.”

   

    서준이 하품을 하자 춘봉이 한숨을 내쉬었다.

   

    “방심하다 큰코 다친다.”

    “방심?”

   

    서준이 씩 웃었다.

   

    “난 싸울 때는 방심 안 해.”

    “퍽이나 그러겠다.”

   

    – 백이십오 번!

   

    춘봉이의 번호다.

   

    자리에서 일어난 춘봉이 죽립이 흐트러지진 않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갔다 온다?”

    “엉. 빨리 끝내고 와.”

    “노력은 해볼게.”

   

   

    *

   

   

    춘봉이가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번 대회에서 춘봉이는 청운신검을 쓰지 않는다 했다.

   

    화산파는 그래도 믿을 만하지만, 혹시 모르니 일단 감추고 싶다고.

   

    그러니 사실상 춘봉이의 전력이 상당히 제한되는 셈이었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이기지 않을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커다란 집단에 소속된 무인과 그렇지 않은 무인의 차이를.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춘봉이와 삼두마녀를 보면 대충 감이 온다.

   

    쟤네는 그냥 검빨부터가 다르다.

   

    내공이고 뭐고, 쌓아온 검의 근본부터가 다른 느낌이다.

   

    ‘안타깝네.’

   

    그러니 무수한 무인들이 구파일방이니 육대세가니 하는 단체에 그리 목을 메는 거겠지.

   

    하늘이 내린 재능이 있지 않고서야 평범한 무인이 그들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할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은 하늘이 내린 재능이 있어서 예외지만.

   

    “보자….”

   

    그렇게 느긋하게 춘봉이의 대련이나 구경하려던 참이었다.

   

    “어?”

   

    가만히 앉아서 비무를 지켜보던 화산파의 장로가 눈을 크게 뜨더니, 벌떡 일어나 춘봉이가 있는 비무장으로 훌쩍 뛰어든다. 

   

    “저 새끼 뭐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장로의 손이 춘봉이에게 뻗어진다.

   

    궤적 끝에 놓인 것은 춘봉이의 얼굴이다.

   

    뭘 하려는 거지?

   

    판단 따위 하지 않았다.

   

    삐이────────

   

    이명과 함께 이성이 흐려지며 시야가 빠르게 점멸한다.

   

    즉각 반응한 몸이 전신의 내공을 폭발시키며 신형을 앞으로 쏘아냈다.

   

   

    콰아앙────────!!!

   

   

    마치 시야가 끊긴 듯한 착각. 이어붙여진 장면에 장로의 놀란 표정이 나타난다.

   

    서준의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찬란한 금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기로 이루어진 모든 것을 담는다.

   

    손을 뻗었다.

   

    목표는 장로의 손목.

   

    붙잡아 내던지려는 순간 무언가 터져나왔다.

   

    “크읍…!”

   

    목구멍 너머로 울컥 피가 올라온다.

   

    장로의 내공이 그의 내부를 타격했다.

   

    “씨발년이….”

   

    그래봤자 내공. 결국에는 기가 변한 것.

   

    서준의 재능이 장로의 수법을 단숨에 간파했다.

   

    그리고는 오히려 그 흐름을 이용해 스스로의 내공을 더욱 가속한다.

   

    거령신공.

   

    폭주한 내공이 날뛴다. 거칠어진 흐름에 내공이 한 떨기 한 떨기 떨어져나온다.

   

    “…손 안 치우냐?”

   

    탁하게 죽어 무채색으로 물든 매화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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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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