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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검봉(劍鳳) (4)

       

       

       

       

       “뇌룡의 팔을 분질러놨다고 들었다.”

       

       가주실로 오자마자 아버지가 뱉은 말이다.

       오랜만이라는 인사도 근황을 묻는 말도 없이 대뜸 말이다.

       

       ‘…하필 물어본다는 게.’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만, 참 한결같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 말을 해야 할까?

       

       “아뇨, 분지른 건 아니고 살짝 부수기만….”

       

       그렇게 고민하고 툭 하고 뱉어진 말이 고작 이거였다.

       

       사실 같은 말이 아닌가 싶었으나, 뭐라도 뱉고 봐야 할 것같았다.

       다행히 내 말에 아버지는 그다지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왜 그리하였느냐.”

       

       중요한 건 이것이었으니까. 

       이미 다 전해 들었을 텐데 다시금 묻는 것은 내게 직접 듣고 싶다는 뜻이겠지.

       

       나는 심호흡을 잠시 한 뒤 천천히 말을 꺼냈다.

       

       “뇌룡이 제게 먼저 비무를 하자 권하기에 받았습니다. 그리고선 살초를 섞기에 그만큼 보복했습니다.”

       

       참 간단한 설명이지만, 실상 저게 전부였다.

       나도 자꾸 깝죽거리길래 도발을 섞긴 했지만, 넘어온 놈이 잘못이지 뭘.

       

       “뇌룡이 살초를 섞었다고?”

       “예, 내공은 쓰지 않기로 했는데, 목검에 내기를 담더라고요. 살기도 느꼈고요.”

       “증인은.”

       “주위에 사람은 많았죠.”

       

       제대로 느꼈을 사람은 당 소가주 정도?

       당소열 또한 같이 있었지만, 끝나고 어쩐지 멍해 보이는 얼굴이니 믿음이 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되었다.”

       

       참 언제봐도 담백한 사람이다.

       아들내미가 뇌룡을 이겼다는데도 반응이 고작 이거였다.

        나는 이런 아버지가 흔들리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자식이 마인이 되었을 때든, 핏줄들이 하나씩 죽어갈 때든, 하물며 본인이 죽을 때조차 말이다.

       

       무거운 분위기를 참고 가만히 서있으니, 아버지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성취가 있었나 보구나.”

       “…예?”

       

       이건 아버지가 언젠가 식사자리에서 구연서에게 했던 말이다.

       우습게도 이번엔 그 말을 내가 듣고 있었다.

       

       뜬금없이 3성까지 올랐음에도 아버지는 딱히 신경 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정말 과할 정도로 담백하다.

       

       “좋구나.”

       “…감사합니다.”

       

       별것 아닌 말에도 삐죽삐죽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잠재웠다.

       나이가 몇인데 이깟 칭찬 하나 받고 좋아하다니….

       

       ‘어찌 보면 처음 들어보는 말인가.’

       

       칭찬을 들은 적이 있었나? 아마 없었을 거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감상에 이토록 쉽게 젖는 것이겠지.

       

       아버지는 간단하게 전후 사정을 알아보고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하는 걸까.

       

       보고 있던 서찰을 접더니 다른 용건을 꺼내 들었다.

       

       “남궁과의 마찰이 있었다면, 마침 거기 있었다던 네 약혼녀도 만났겠지.”

       “….”

       

       올것이 왔구나….

       

       아…. 약혼녀.

       저 말이 왜 이렇게 소름이 끼치는 거지. 

       

       제멋대로 고이는 침을 꿀꺽 삼킨 뒤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무엇을 말이냐.”

       “남궁과의 약혼 말입니다.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뜬금없는 일이었다.

        전생의 없었던 일이란 것은 물론이고 하물며 남궁이라니?

       

       내 당혹스러움을 뒤로하고 아버지는 가볍게 툭 말을 뱉는다.

       

       “장로회에서 결정한 사항이다. 네게도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

       

       아니긴요 시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남궁비아랑 약혼이라는 말 같잖은 상태가 발생한 걸까.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으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팽가와의 파혼은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이번 일까지 네가 망치리라 생각지 않는다.”

       

       내가 약혼을 맘에 들지 않아 하고 있음을 알아챈걸까.

       나는 아버지의 말에서 두 번은 봐주지 않는다는 얘기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되면 당장 꺼낼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우선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사락.

       

       서찰이 피고 접히는 소리가 가주실에 조용히 울린다.

       나는 묵묵히 서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버지가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직 용건이 남았다는 소리였으니까.

       

       톡톡.

       

       약지로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다. 

       뭔가 고민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습관.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나와 같은 습관. 내가 닮은 모습.

       

       이럴 때마다 결국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서 조금 어지러웠다.

       

       “조금 있으면 여름의 중심이다.”

       

       아버지의 말에 내가 정신을 차렸다. 

       이건 갑자기 무슨 소리지.

       

       “예, 여름이죠.”

       

       안 그래도 점점 더워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근데 그걸 갑자기 왜 말하는 걸까.

       여름이라…?

       

       “조금 있으면 화산에서 제화전(第華戰)이 시작될 것이다.”

       

       아버지의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화산이라는 말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전생에 불타 사라지던 화산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떠올리지마.’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심호흡을 반복했다.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 있나?”

       “…아닙니다. 그게 어떻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버지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들고 있던 서찰을 내게 건넸다.

       나는 조심스럽게 서찰을 받아들고 펼쳤다.

       

       그리고 적혀있는 글귀를 보고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걸 왜 저한테 주십니까?”

       “데려와라.”

       “제가 왜요…?”

       “그래야 하니까.”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야?

        찌푸려진 미간을 풀지 않고 아버지에게 되물었다.

       

       “저 방금 사천에서 오는 길인 건 아시죠?”

       “일주일 정도 뒤에 출발할 수 있도록 해주마.”

       “거절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나 보네요…?”

       

       사천에서 오자마자 또 멀리 가라고 하는 건 무슨 개 같은 경우일까. 

       더위라도 드신 게 아닌가 싶었지만, 화공을 익히는 무인이 더위는 개뿔….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던 건가?’

       

       구가는 혈족을 함부로 밖에 나돌게 하지 않는다.

       구희비야 가진바 재능이 너무 뛰어났기에 눈에 띌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달랐다. 

       

       세가의 자제가 세상을 겪고자 여행을 떠나는 일은 적지 않다고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나이도 아직 어렸고, 소가주가 되지도 않았는데 밖으로 쉽게 내보내려는 의도를 잘 모르겠다.

       

       하물며 더더욱 내가 밖으로 나돌면 위쪽에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도 같은 생각이라 보고 있었는데, 나보고 그 먼 곳까지 갔다 오라고?

       

       “가주님, 아무리 그래도 대뜸 화산까지 갔다 오라는 건 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

       “예? 아 그럼 안 가는 걸로….”

       “대신, 다녀온다면 비고를 열어 태선단(兌仙團)을 주마.”

       “…당연히 아들인 제가 가야죠, 다녀오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까요?”

       

       영약이 튀어나오니 나도 모르게 즉답을 박아버렸다.

       

       …너무 속물적이었나?

        살짝 찡그린듯한 아버지의 눈빛에 마음이 조금 쓰라렸다.

       하지만 태선단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림의 소환단 바로 아래에 있다는 영약, 먹고 제대로 흡수만 한다면 20년 치 내공은 얻어갈 수 있는 영약이다.

       저 말은 여차하면 정말 구가의 비고를 열어서라도 주겠다는 말일 것이다.

       

       기연 덕분에 내공은 분명 많이 늘어난 상태지만, 이건 쥐똥만 했던 과거와 비교해서 그런 것이지, 결과적으로 많은 편은 아니었다. 

       결국 육체도 육체지만, 내공도 급한 건 아직 똑같다는 것이었다.

       

       “…일주일 뒤에 갔다 오면 되는 겁니까?”

       

       일주일은 처리할 일들이 있어 좀 부족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더 필요한가?”

       “열흘 뒤에 가면 안 되겠습니까.”

       

       내 말에 아버지가 그렇게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서찰로 시선을 옮긴다.

       뭐가 읽을게 저리도 많은 걸까.

       

       ‘열흘인가.’

       

       다행히 허락을 받아냈다.

       

       이렇게 되면 산서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열흘, 오자마자 먼 길을 다시 떠나려니 뼈아프지만, 태선단이라면 그럴만했다.

       

       되려 이런 일에 태선단까지 꺼내 든 아버지가 이상한 일이었다.

       헛된말을 뱉을 사람은 아니니 거짓은 아니겠지만, 이게 태선단을 꺼내들만큼 중요한 일일까.

       

       

       가만히 서 있던 내게 아버지는 손으로 문쪽을 가리켰다.

       

       “용건은 이만 되었다. 쉬러 가거라.”

       “예.”

       

       나도 더 있긴 부담스러워 가고 싶은 참이었다.

       이러면 당장 며칠 안으로 하오문도 찾아가야 했고, 수련도 겸해야 하니 조금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화산이라.’

       

       만천에 화려하게 피었던 매화가 기억 속 한켠에 머물고 있다.

       그 모든 게 불타는 모습 또한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감히 화산에 발을 디뎌도 되는 걸까. 

       

       ‘생각하지 마.’

       

       좋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이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항상 그렇듯, 홀로 삭혀야 했다.

       

       ‘시킨 일만 끝내고 오면 되는 거야.’

       

       내게 시킨 일, 그것만 생각하자.

       가주실의 문을 닫고 나와 아버지가 내게 시킨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화산에 있는 막내를 데려오라는 말이었다.

       

       

       

       

       

       ******************

       

       

       

       

       처소로 돌아오니 이미 이장로와 구희비는 떠난 뒤였다. 

       오자마자 그렇게 난동을 부려놓고 정작 다시 왔을 땐 사라져있다니.

       

       물론 나야 평화로운 처소로 돌아왔으니 다행이지만.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향하는데 멀리 빗자루를 들고 있는 검존이 눈에 보인다.

       

       검존 또한 날 발견했는지 조심스럽게 예를 취한다.

       …오랜만에 봤지만, 저런 검존의 모습은 항상 부담스럽다.

       

       “히잉….”‘

       …응?’

       

       뭔가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리기에 검존의 뒤편으로 시선을 옮기니, 위설아가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들어 벌을 서고 있었다.

       아까의 구희비 앞에서 본능에 따라 벌서고 있던 내 모습과 닮았다.

       

       “쟤는 왜 또 저러고 있는 거지…?”

       

       서러운지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흐른다.

       그럼에도 검존은 우는 위설아를 신경도 쓰지 않고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왜 저러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아, 쟤 사천에 몰래 따라온 거였지.

       

       한달간 말도 안 하고 비웠던 탓에 돌아오자마자 붙잡혀서 혼나는 중인 것 같았다.

       

       “도련니이임….”

       

       이런, 가만히 지나가려다 위설아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위설아가 도와달라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가출은 좀 심했지.’

       

       그냥도 못 구해줄 상황인데 하다못해 혼내는 사람이 검존…?

       이걸 구해주는 건 좀 무리였다.

       

       “…그, 밤이 되면 추우니 적당히 하고 들어가세요 들.”

       

       내가 검존에게 한 말이다. 뭐라도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았다.

       그러자 검존 또한 사람 좋은 웃음을 띄며 대답해준다.

       

       “예,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련님.”

       “…아뇨 뭘.”

       

       여름인데 춥긴 개뿔.

       내 되지도 않는 변명에 위설아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도련니이이임…!”

       “어허! 누가 벌 받는 중에 언성을 높여 높이긴!”

       

       검존의 호통의 위설아가 강아지마냥 서럽게 낑낑거린다.

       

       미안하다. 

       근데 이건 어쩔 수 없어. 네가 택한 일이야, 열심히 감당하렴….

       

       끝내 모른 척 방으로 들어왔다.

       밖에서 위설아가 서럽게 날 또 부르지만 애써 못 들은 척 귀를 막았다.

       

       우선 몸이 피곤하니 눕고 싶었다.

       대낮부터 약혼이니 화산이니 구희비니 하는 일로 진을 너무 뺐다.

       

       조금 있으면 밤이 찾아올 테니, 이른 잠에 빠져도 괜찮을 것이다.

       지친 머리를 바닥에 뉘고 조금 쉬려니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도련님 시종 홍와입니다.”

       “무슨 일이야?”

       “저녁 식사는 어쩌실 건지 여쭙고자 찾아왔습니다.”

       “….아, 입맛이 별로 없으니, 안 먹을게.”

       

       시종은 내 말에 알겠다며 사라졌다. 

       만두라도 좀 집어 먹을까 싶었지만, 정말 입맛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자고 싶었다.

       이따 일어나서 야밤에 뭐라도 먹지 않을까, 달밤에 수련을 해도 괜찮고.

       

       그렇게 시종을 보내고 누운 뒤 반시진도 안돼서 곧바로 후회를 해야 했다.

       잘 자고있는데 누가 내 방문을 휙 열고 소리쳤기 때문이다.

       

       “동생! 저녁밥을 안 먹을 거라고!?”

       

       만두를 손에 든 구희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_ _ )

    과연 그 먼 곳까지 여동생을 데리러 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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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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