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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44 – 아이는 일찍 자야해요>

     

    롯토는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정말이라니깐. 그 아이, 정전이 일어나기 전에 분명히 말했어. 오늘은 정전사고가 일어날 거라고. 그 타이밍에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아니라니깐! 분명 그 아이가 일으킨 거야. 본인이 아니면 배후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손을 써서 도왔던 것이 틀림없다고!”

     

    롯토의 동기들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롯토. 지쳤을 때는 푹 쉬는 게 좋아요.”

    “많이 아파 보이는데 모임에는 당분간 나오지 말고 몸조리에 신경 쓰세요.”

     

    더 이상 자신들의 모임에 얼굴을 내비치지 말라는 완곡한 표현!

    제국에서부터 안면을 트고 교분을 나누었던 이들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평판이 무너진 롯토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좋을 대로 이용당하고 버려진 신세지만 거기에 항의라도 했다간 대놓고 비웃음을 당할 뿐이다.

     

    “…그래. 나중에 괜찮아지면 연락할게.”

    “빠른 쾌유를 기원할게요.”

    ‘비겁한 녀석들.’

     

    입만 산 인사 따위, 믿지 않는다.

    파벌에서 쫓겨났으니 얼굴 볼 일은 없겠지.

    조금씩 멀어지다가 어느 순간 남남이 될 거다.

     

    부웅! 파아앙!

     

    늦은 시각.

    갑갑한 마음에 훈련장에서 땀을 흘리고 나온 롯토.

    지친 몸과 마찬가지로 땀에 찌든 것처럼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에 서늘한 예기가 어렸다.

     

    “누구냐!”

    “풋. 너무 느려.”

     

    뒤를 잡혔다.

    수련 후에 지친 몸이라도 이렇게 간단히 배후를 허용하다니.

    보통 실력자가 아니다.

     

    파밧

     

    땅을 박차며 간격을 벌리자 달아날 생각도 않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상대.

    가면을 쓴 여학생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친구들끼리 했던 이야기, 진짜야?”

    “…뭘 묻고 싶은데.”

    “오크노디가 정전사고를 알고 있었다는 말.”

    “진짜야. 모두가 아이에게 진 수치심에 비겁한 변명을 둘러댈 뿐이라고 여겨도 사실은 사실이야. 난 거짓말하지 않았어.”

    “믿어.”

    “…정말로?”

    “봐버렸는걸. 그 아이, 정전이 일어나자마자 근사한 검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의 눈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여.”

     

    가면을 쓴 암살자 즈앙.

    그녀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흐려지지 않는다.

    특히나 ‘마나’를 사용했다면 알 수밖에.

     

    ‘안법을 쓰면 보이는걸. 마나의 움직임도.’

     

    대련장의 세이프티가드가 사라지는 순간을 틈타 정확히 다리를 절단한다. 그런 검이었다.

    빛이 꺼지자마자 물러서거나 주저하기는커녕 정확히 적을 향해서 두 걸음 다가오며 다리를 향해 검기를 실은 검을 펼친다.

    그때의 반응속도는 미리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면 반응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스승은 재단의 장학생들 따위, 경계할 필요도 없는 잔챙이들이라고 했지만…’

     

    그 아이는 달라.

    즈앙은 빙글 돌아서며 롯토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래도 어디 가서 너무 떠들고 다니지는 마.”

    “협박하는 거야?”

    “협박? 그런 번거로운 짓, 하지 않아. 그냥 베어버리면 그만인걸. 이건 어디까지나 좋은 이야기를 들려준 답례. 널 위해 건네주는 충고야.”

     

    즈앙은 경고했다.

     

    “아무리 신입생들의 시설이라고 해도 아카데미의 시설에 손을 대어서 원하는 타이밍에 정전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조직이 있다는 거잖아.”

    “……!”

    “나라면 신입생 하나는 가뿐히 실종시킬 수 있는 조직의 심기를 대놓고 거스르고 다니진 않아.”

     

    롯토는 두려움에 그만 휘청거리다가 주저앉았다.

     

    “아, 아으, 아…….”

     

    무서워.

    도와줘.

    그런 말을 꺼내려 손을 뻗어보았지만 지척에 있었을 즈앙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졌다.

    격이 다르다.

    가문에서 붙여준 무투가와의 개인과외. 만들어진 명성. 떠받드는 칭찬들.

    진정한 고수들 앞에선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오늘, 그녀는 세 번이나 벽을 느꼈다.

     

    오크노디.

    그녀를 막아낸 헤스티아.

    그 둘에 못지않은 가면을 쓴 아이까지.

     

    앞으로는 쥐 죽은 듯이 지내자.

    없던 겸손함도 부르는 경험 덕분에 착한아이로 살자고 다짐하게 된 롯토였다.

     

     

    * *

     

     

    대련장을 나오자 지젤과 손오천에게 꾸중을 들었다.

     

    “위험했잖습니까. 그런 약한 적을 상대로 진심으로 검을 휘두르다니. 자칫 사고라도 났다간 입학 전부터 큰 징계를 받을 뻔했습니다.”

    “와하하! 쥐방울아, 그렇게 사람 써는 재미가 들면 네 사진은 졸업앨범이 아니라 현상금수배지에서 먼저 볼 거다. 전국구 오성급 스타라도 되고 싶냐?”

    “우으으. 너무해요. 기껏 열심히 싸우고 왔더니 별 다섯 개 붙은 현상수배자가 될 거라는 소리나 듣고.”

     

    사고잖아, 사고.

    아무튼 내 탓 아님!

     

    “하나도 너무하지 않아.”

    “이사벨 언니!”

    “헤스티아 씨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큰일이 났어.”

    “죄송해요…”

    “사과는 됐고, 감사인사나 제대로 해둬.”

    “네에.”

     

    원작게임에서처럼 사람이 죽는 사고가 일어나면 이렇게 무마할 수는 없었겠지만.

    본래 계획했던 다리 한짝 날리기도 못했고.

    인명사고도 없으니 대련은 흐지부지 끝났다.

    롯토는 죽다 살아난 얼굴로 달아났고, 시비를 걸었던 B그룹 상급반들도 분한 얼굴로 이쪽을 노려보다가 함께 물러났다.

     

    [그룹경쟁(2) 이벤트를 달성했습니다.]

    [챕터보스의 조기타락 트리거를 저지했습니다. 이벤트 성공보상으로 50000포인트를 습득합니다.]

    [A그룹에 소속감을 느끼는 학생들의 호감도가 일제히 상승합니다.]

    [불명예스러운 대결로 인해 B그룹에 소속감을 느끼는 학생들의 호감도가 하락하지 않습니다.]

    [B그룹에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학생들의 호감도가 일제히 하락합니다.]

    [몇몇 실력자들이 당신의 빠른 반응에서 위화감을 느낍니다.]

    [실력자들의 주목도가 올라갑니다.]

    [실력자들의 호감도가 변동합니다.]

     

    돌핀팬츠를 위한 싸움과 달리, 근육여캐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조금 의욕이 나질 않는다.

    나설 때야 욱해서 나섰지만 호감도의 격동을 보고 있으려니 속이 쓰리다.

    쟤들이랑 친해지면 졸업 후에 출세가도는 따 놓은 당상인데!

    호감도가 나락으로 꺾인 지금.

    출세가도는커녕 권력의 힘으로 찍어 눌림 당하지 않으려면 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확실한 실력을 구축할 필요만 생겼다.

     

    “앗, 저기요!”

     

    급히 걸음을 옮기는 헤스티아.

    그녀를 불러보았지만, 나를 돌아본 헤스티아의 눈이 내 주변으로 몰려드는 인파를 훑었다.

    이내 무뚝뚝한 얼굴이 되어서는 홀로 대련장을 빠져나가는 헤스티아.

     

    ‘불쌍한 아싸녀석…….’

     

    사람이 많으면 부담스러운 아싸의 심리상, 곁에 있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재빨리 달아다는 걸음이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저기, 아까 그 검술은 뭐였어?”

    “수석이라더니 진짜 강하다!”

    “나중에 나랑 같이 훈련하지 않을래?”

     

    나도 아싸잖아.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여학생들의 무수한 손길 앞에 눈앞이 핑핑 돌며 어지러워진다.

     

    “으에엥. 도와줘요, 이사벨.”

    “…후우. 다들 물러나. 오크노디는 방금 대련이 끝나서 지쳤어. 지친 아이한테 이렇게 갑자기 몰려들면 애가 무서워한다고.”

    “앗, 미안.”

    “무섭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

    “혹시 내키면 내일 새벽 4시에 기숙사 앞으로 나와. 같이 달리기 하자!”

     

    새벽 4시라니.

    너무 일찍 일어나잖아.

     

    “싫어요.”

    “에에. 너무해~”

    “키 크려면 수면시간은 지켜야 한다고요!”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하는 나.

    제안을 했던 여학생이 손을 들더니 내 머리를 쿡 짚었다.

    그리고는 제 앞으로 손을 당겨오더니…

     

    몰캉

     

    가슴 높이에서 정리 당했다.

     

    “에. 뭐야 그거. 나도 할래.”

    “킥킥. 애기긴 하네.”

    “이 정도 높이면 아침 10시까지는 자야겠는데?”

     

    팬티스타킹녀들의 집단괴롭힘 못지않은 돌핀팬츠녀들의 악질스러운 장난질에 입술이 삐죽 나왔다.

     

    “윽, 나는 턱 바로 밑인가.”

    “훗. 밑가슴 까지 내려왔어.”

    “분하다… 쇄골까지밖에 오지 않다니.”

     

    못된 돌핀팬츠들.

    남의 머리높이 가지고 승부욕 불태우지 마!

     

     

    * *

     

     

    한참을 키 높이 능욕을 당한 끝에 울적한 얼굴로 돌아온 기숙사.

    피로에 지친 걸음으로 방으로 향하다가 커다란 덩치에 앞이 가로막혔다.

    머지.

    벽에 부딪혔나?

    고개를 드는데 벽이 아니라 사람 다리였다.

    에.

    뭐야 키 너무 커.

    고개를 들고 또 들어도 보이지 않는 얼굴에 인간으로서 패배감을 느낀다.

     

    “오크노디.”

     

    바로 몇 시간 전에도 들어본 목소리다.

    엄청난 키의 주인은 바로 헤스티아였다.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아, 아니에요. 그냥 방에 돌아가려고…”

    “아아. 돌아가는 길이었나. 방해해서 미안했어.”

     

    나란히 걸어서 방까지 걸어간다.

    뒤에서 걷고 있는데도 헤스티아의 커다란 그림자가 내 얼굴을 덮다 못해 그림자까지 덮어버리는 광경은 굴욕적이기까지 했다.

    큭.

    남캐로 빙의했으면 190cm의 헤스티아 따위, 머리 높이 하나는 가뿐히 넘길 수 있는데.

    항상 내려다보기만 하던 시선으로 누군가를 올려다보는 기분은 정말 묘하다.

    나보다 약한 사람들이 위에 있고 내가 아래에 있으니 마치 약자가 된 기분마저도 든다.

    앞으로 100cm 정도는 더 크지 않으면 안 되겠어.

    결의를 다지며 방문을 여는데 뒤에서 깜짝 놀란 기척이 느껴졌다.

     

    “오, 오크노디.”

    “응?”

    “네가… 네가 111호에 살고 있었어?”

    “그런데요?”

    “그럼 날 도와줬던 것도… 매일 밤……”

    “네? 뭐라고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후다닥 도망치듯이 112호로 향하는 헤스티아.

    세상에서 가장 눈치 없는 사람도 알아차릴만큼 정직한 반응이었다.

    저 인간, <대답하는 문>과 나누었던 대화를 나와 나누었다고 착각하고 있구나.

     

    ‘노리긴 했지만 정작 무슨 대화를 했는지를 모르니 찝찝하네.’

     

    대충 혼밥 먹는데 주변에서 술렁거려서 불편해.

    훈련장 줄 서는데 자리 대신 맡아줄 친구가 없어서 계속 줄 서있느라 힘들어.

    그런 얘기나 했겠지?

     

    “저기, 헤스티아.”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안녕히 주무세요.”

     

    피로한 눈을 손으로 부비며 하품을 하니 “어어, 너도.” 하는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말도 안 듣는 벽을 한 번 째려보고는 그냥 침대에 몸을 던졌다.

    잠이나 자자.

     

     

    * *

     

     

    헤스티아는 깨달았다.

     

    ‘매일밤 나랑 대화를 하느라 오크노디가 제때 잠을 못 잤구나!’

     

    그 아이 덕분에 많은 위로를 얻었지만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아이가 저렇게나 피곤해해서야 어른답지 못하지 않은가.

    헤스티아는 반성했다.

    앞으로 벽에 말을 거는 것은 9 to 9.

    오전 9시와 오후 9시 사이를 준수하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인도 모르게 영업시간이 정해진 대답하는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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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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