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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목요일은 껑충 다가왔다.

        광고 촬영일이었다.

        

        

        “여기, 앨리스 리튼우드 생도의 무기 반출 허가증일세. 아카데미 비품이니 얌전히 가지고 돌아오도록.”

        

        

        앨리스와 난 오늘 하루 결석계 제출.

        추가로 각성자용 무기도 챙겼다.

        광고에 각성자가 나온다면, 응당 뭔가 보여줘야 할 거 아닌가.

        무기 없이 맨 손으로 그러는 건 멋 없는 짓이었다.

        

        

        “감사합니다… 아, 유진은요?”

        “난 그냥 들고 가면 돼. 각성자 자격증 있으니까.”

        “역시 유진! 대단해요!”

        “너도 졸업할 때쯤이면….”

        “잡담은 그만 하고, 잠깐 여기 좀 보게.”

        

        

        들뜬 우리 앞. 이사장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빈약한 할매젖을 펴며.

        주책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노파심에 말해두겠지만… 서유진, 눈이 왜 그러지?”

        “존안이 눈부셔서 그만.”

        “영혼 없는 아부는 관두고. 아무튼 조심하도록. 감이 좋지 않아.”

        

        

        이어 이사장은 우리더러 훈계에 들어갔다.

        

        무려 그녀를 S급 4위까지 만들어준, 단순하지만 그만큼 전천후로 쓰이는 고유 재능. ‘육감’을 들먹이며.

        

        

        “크게 거슬리진 않으니, 별 문제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너희는 약하니 말이다.”

        “천화에서 보디가드도 붙여준다니 문제 없을 거예요!”

        “그래도 긴장을 풀지 말거라. 방심하다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어.”

        

        

        그러며 그녀는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쭉 나열했다.

       ​

        소소하게는 내 사생팬의 습격.

        치료를 원하는 환자가 난리를 피우거나, 정치인이 나와 말 한 번 붙이겠다고 분위기를 망치는 것도 가능.

        심할 경우…

        

        

        “———빌런이 직접 네 목숨을 노릴 수도 있다.”

        

        

        빌런이 날 죽이려 할지도 모른다.

        이사장의 진심 어린 경고였다.

        

        그걸 들은 난, S급 4위이자 한국의 영웅 설하연이 받아 마땅한 존경을 표시…

        

        

        ‘그냥 소소하게 A급 게이트 터져서 그런 건데요. 제가 혼자 샤샥 해치우고 올 건데요.’

        

        

        존경은 무슨. 저 노친네 벌써부터 예전 같지 않나 보네.

        세월도 참 무상하지.

        

        과한 걱정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당연히 조심은 하겠지만… 윈터러만 아니면 괜찮겠죠. 한국만큼 빌런이 약한 나라도 드무니까.”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다른 나라에선 빌런을 미리 못 걸러내, 결국 각성자들 사이에 폭탄처럼 섞이는 와중.

        이사장 덕에 정식 각성자 중 빌런율 0퍼센트를 자랑하는 나라 아닌가.

        

        뭐, 그래서 걔네는 빌런타락한 거 깨닫자마자 각성자 등록 안 하고 산골로 튀지만…

        이 평화로운 나라에서 아카데미 없이 성장해 봤자 전국구 깡패밖에 더 되겠냐고.

        

        때문에 한국의 빌런은 허접, 잘 커봐야 C급 각성자 수준이었다.

        ‘각성자 증식 계획’의 실험체인 윈터러나 하루가 특이 개체일 뿐.

        

        이사장이 멋쩍게 웃었다.

        

        

        “하긴. 정말 그렇다면, 네가 나설 필요도 없이 천화의 보디가드 선에서 정리될 게야. 1급 빌런, 윈터러가 직접 행차하는 것만 아니라면.”

        “이사장님! 그 윈터러일 가능성은….”

        “없네. 그녀의 습격 전날, 난 불안해서 잠도 못 잤어. 만약 그녀가 유진을 노리는 거라면, 이 정도 불안으로는 안 끝나.”

        

        

        떨떠름한 미소가, 자기도 이건 좀 과보호라는 자각이 있던 모양.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의 눈가에 다시 염려가 실렸다.

        

        

        “그래도 조심하라는 건 진심이다. 생도들인 네게, 특히나 서유진 네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중얼중얼.

        

        “이 망할 협회장 떠넘기고 은퇴 후, 시골에서 유유자적 안빈낙도하려던 내 완벽한 인생 계획이….”

        

        

        진심 어린 걱정은 덤이었다.

        뭐라 중얼거리는 건 뭐, 기도라도 하는 거겠지.

        늘그막에 신 믿는 사람이야 많으니까.

        

        이번엔 딴죽 안 걸고 감사히 들었다.

        날 위해 기도해 주는데 초 치는 건 사람이 아니니까.

        

        

        ‘주신교 같은 사이비한테 비는 거면 거절하겠지만… 뭐, 1회차 때는 가톨릭 신자셨으니까.’

        

        -슬쩍.

        

        “저랑 앨리스, 둘 다 털끝 하나 안 다치고 다녀오겠습니다.”

        “네! 저흰 솔잎 동지니까요!”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 걱정 말라고 못을 박았다.

        우린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그 어떤 역경이 덮쳐도, 나와 내 아내는 피 한 방울 없이 무사할 거라고.

        

        

        * * *

        

        

        “대한민국의 왕은!!!!! 서유진이다!!!!!”

        “서유진으로!!!!! 정권을!!! 교체하라!!!!!”

        “대통령을!!!!! 해주세요오옥!!!!!!”

        

        -꽈드득.

        

        ‘…제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이러시는 겁니까?’

        

        

        장담한 게 무색하게, 결국 피 봤다.

        

        촬영 현장에 바글바글 몰린 민간인들.

        천화 쪽에서 잘 통제해뒀길래, 걱정 없이 들어섰는데…

        저 원거리 음파 공격 뭐야. 이 인파를 뚫고 쩌렁쩌렁 울리네.

        게다가 내용은 정신을 파괴하는 수준.

        

        덕분에 입 안에 피 비린맛이 확 퍼졌다.

        꽁이 다녀간 후론 처음으로 맛본 피였다.

        

        

        ‘장인어른,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선거운동. 아니, 최면이라도 거신 겁니까!?’

        

        

        문득 새삼 장인어른의 능력이 무서워진 건 덤이었다.

        

        이미지 메이킹 제대로 해주겠다, 성인군자로 만들어주겠다곤 하셨지만…

        최면 없이 이게 돼?

        저 아줌마는 아예 락커가 되셨는데?

        

        더 듣고 있다간 못 참고 터져버릴 것 같아, 거의 뛰듯이 도망쳤다.

        소란을 피해 먼저 도착, 풀 메이크업을 받고 있을 앨리스 쪽으로.

        

        

        “아, 유진! 방금 유진 어쩌고 하는 큰 소리가 들렸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나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힘들다 진짜.”

        

        

        분장실에 들어서고 나서야 축 뻗은 나.

        앨리스가 무슨 일이냐 보챘지만, 위험한 건 아니었다고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웃었다가 화장에 문제라도 생기면 문제니까.

        

        

        “서유진 님의 메이크업은….”

        “남자가 무슨 화장이에요.”

        “……확실히 필요 없겠네요. 오히려 스포티해서 좋을지도.”

        

        

        화장은 자연스럽게 패스.

        이어, 어제 막 전달받은 대본을 손에 쥐었다.

        

        땀 흘리며 검 휘두르다, 숲 그늘에서 땀 훔치고.

        음료수 맛깔나게 한 모금 하면 될 뿐인 대본.

        

        앨리스 쪽은 조금 대본이 복잡한 모양이지만…

        뭐, 저쪽은 그냥 존재 자체가 CM이니까.

        영국에서 일부러 솔잎의 눈 해외 배송으로 직구해 마시는 사람이니 문제는 없겠지.

        

        아무튼. 그러고도 앨리스의 화장이 끝나지 않길래.

        시간 때울 겸 주변을 돌며 인사나 하고 왔다.

        

        제발 이미지 안 망하게 잘 찍어달라는 아부의 뜻도 있고, 이런 미담이 하나 둘 쌓이면 도움이 될 테니까.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서, 서유진 님!?”

        “여기 비타민 음료 사 왔으니, 드시고 하세요!”

        

        -중얼중얼.

        

        “나중에 배우 일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확실히. 영화 배우 같은 거 하면 죽이겠네요.”

        “액션씬 하나는 CG 없이 잘 뽑을 테니까.”

        

        

        뒤에서 나와 음료수를 보며 수군거리는 걸로 보아, 막간을 활용한 이미지 메이킹은 성공적.

        난 음료수 박스를 다 턴 다음에야 귀환했다.

        

        앨리스의 화장도 슬슬 끝났겠거니 싶어.

        

        

        -끼익.

        

        “아, 유진!! 이거 봐요, 이거!!”

       

        “화장하고 이러니까, 저 진짜 K-POP 아이돌 같아요!! 연습실에서 춤 추게 생겼어요!!”

        

        

        끝나있더라.

        앨리스는 컨셉이 뭐더라, 영국에서 한국을 동경해 온 아이돌 연습생?

        딱 컨셉대로 나왔네.

        화장은 한 건지 안 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때요? 메이크업 제대로 하니까 저 달라 보이죠!”

        “딱히? 앨리스는 원래도 세상에서 제일 예뻤으니까. 오히려 평소가 조금 더 귀여운 것 같기도.”

        “……네!!!!?”

        

        

        내 시큰둥한 반응에 붉어지는 앨리스의 뺨.

        빠르게 실수를 깨닫고 정정했다.

        

        

        “무, 물론 지금도 엄청 예뻐! 첫날 봤으면 연예인인 줄 알았을 거야!! 아니, 어떤 연예인보다도 예뻐!!”

        “그, 그만….”

        “이거 광고 나오면 여신 소리 들을걸? 영국에서 온 귀엽고 아름다운 여신님이라고!”

        

        

        무차별 칭찬 폭격.

        

        하나같이 다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내가 과한 화장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 거지, 우리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건 사실이거든.

        

        

        “아, 알았으니까 그만… 부끄러우니까 그만…….”

        

        -부들부들.

        

        

        수습이 먹혔는지, 앨리스의 입꼬리가 위로 부들댔다.

        부끄러운 척 하면서도 싫지 않은 게 분명했다.

        역시 여자 칭찬은 하고 볼 일이라니까.

        

        

        -속닥속닥.

        

        “저런 사람이 진짜 있구나. 표정 하나 안 변하고 플러팅을 하네.”

        “심지어 본인은 진짜 모르는 모양인데?”

        “최면으로 눈치 틀어막은 거 아냐? 옛날에 여난으로 고생했다거나 그래서?”

        “그럴지도. 저건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니까.”

        

        

        그거 보고 스타일리스트들이 뒤에서 뭐라 떠들긴 했지만…

        잡담까지 귀담아들을 필욘 없겠지 뭐.

        

        

        * * *

        

        

        시간이 조금 흘러, 촬영 시간이 되었다.

        

        먼저 촬영에 들어간 건 나.

        수많은 촬영 장비들과 관계자들이 날 둘러쌌다.

        

        

        ‘1회차엔 적응 못 해서 어버버거리다 흑역사 만들었지만… 이번엔 다르단 말씀.’

        

        

        난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도 의연했다.

        오히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기까지.

        

        이런 촬영 따위, 금방 끝내겠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준비 되셨나요?”

        “예, 감독님!”

        “후후. 리테이크 많이 해도 상관 없으니 너무 힘 안 주셔도 돼요.”

        “알겠습니다!”

        “그럼, 레디…….”

        

        

        감독의 사인과 함께.

        나와 앨리스의 광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

        ———그런데 이제,

        

        

        -고오오.

        

        ‘이건… 게이트!!!!? 게이트가 벌써 일어났었나!!? 1시간쯤 여유 있으니까, 앨리스 촬영할 때 슬쩍 다녀오려 했는데!!’

        

        

        시작부터 게이트가 터지기 시작하고.

        

        

        “잠시만요!! 다들 도망치세요!!!”

        “예? 유진 씨, 무슨 말….”

        

        -챙!!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내가 초장부터 칼을 꺼내들며.

        

        

        “———들켰슴다!! 다들 빨리 저 새끼 조지러 가는 검다!!!”

        

        -파앗!

        

        “……!!!!?”

        ‘이 와중에 빌런들도 왔어!?’

        

        

        저 멀리서 빌런들이 날아오는.

        

        예상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난장판 광고 촬영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김이파리 님 10코인, Jisss 님 50코인 선물 감사합니다!
    감사의 1만 선작 기념 깜짝연참을 돗캉!

    + 중간에 대통령 어쩌구는
    인터넷에 ‘블랙핑크 로제 행사장 레전드’ 라구 떠도는 거 인용임니다
    보고 오면 유진의 당황이 이해가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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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2회차 최면교배 아저씨가 능력을 안숨김
Score 5.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Since I regressed, I decided not to hide my abilities.

“Hypnosis, huh? That’s amazing! Hypnotize me too!”

“How about me, instead of that sly fox? If you join our clan… you, you can hypnotize me!”

…Maybe I exposed it to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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