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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사람이 할 말은 있는데 또 너무 기가 막혀서 또 말문은 안 트이고 하면 입만 뻐끔거린다.

       팽대산이 딱 그랬다.

         

       청이 낄낄거렸다.

         

       “너무하네. 우리 우정이 이 정도였어? 산?”

         

       “하……”

         

       청이 생각하기에 장난은 서로 즐거워야 했다.

         

       조금 정도를 넘어도 살짝 언짢게 만드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상대의 기분이 상하면, 장난이 아니라 시비가 되고 만다.

         

       그러니 이 정도에서 밝히는 게 맞았다.

       여인스럽게 굴어봐야 더 짜증만 유발하겠지.

       이 정확한 선의 가늠이야말로 청이 가지고 태어난 진정한 재능이었다.

         

       얘는 좀 정신 차리게 두고.

         

       청이 방향을 돌렸다.

         

       “그런데 이쪽 친구는 술을 혼자만 드시네? 나도 한 잔 주면 안 될까요?”

         

       청이 식탁 위의 포개진 잔을 들어 내밀었다.

       창빈 도장이 움찔 몸을 떨고는 허둥지둥 술병을 잡았다.

       그리고는 술병을 양손으로 고이 잡아 아주 공손한 모습으로 덜덜 떨면서 잔을 채워주었다.

         

       “어. 여기……”

         

       “아니, 손을 왜 이렇게 떨어요?”

         

       “아, 아니, 아닙니다. 수전증이 좀…….”

         

       수전증이라니?.

       뭐지? 고수가 아니었던 것인가?

       하기야 뭐 다니는 일행마다 절정의 무인이고 막 그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청이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자. 그럼 그쪽도 한 잔 받으시고.”

         

       “아. 예.”

         

       창빈이 급히 잔을 비워 앞으로 내밀었다.

         

       수전증이라더니 그 증상이 심한 모양이었다.

       어찌나 덜덜덜덜 떨어대는지 술을 따라주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청은 절정 후기의 고수였다.

       절정 후기에 도달한 무인의 가장 위대한 면모 중 하나는, 떨리는 술잔에도 술을 깔끔하게 따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초절정을 넘어 화경의 경지에 이르면 날아가는 술잔에도 술을 따를 수가 있다고 했다.

       예로부터 고수가 존경받은 이유가 이러했다.

         

       “자, 반가우니까, 한잔, 건배.”

         

       “건배……”

         

       청이 맑은 술을 쫙 들이켰다.

       향이 코로 돌아 빠져나오는 독한 백건아였다.

         

       역시 부잣집 도련님들이라 이것도 보통 술이 아니네.

         

       빈속에 들어간 화끈한 독주가 불을 토했다.

       청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캬. 좋다.”

         

       길고 늘씬한 손가락이 말린 어포를 집어든다.

         

       중원의 예쁜 손 사랑은 예로부터 유명했다.

       미인의 조건에 무조건 손의 모양을 따졌다.

       섬섬옥수니 옥지소비라고 하는 말이 그랬다.

         

       멍하니 그 하얀 손가락을 바라보던 팽대산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손 모양이 원래 저랬던가?

         

       갑자기 오른 미모며 손의 형태를 보니 짚히는 구석이 있기는 했다.

       환골탈태.

       초절정에 올라 신체가 재구성되면 본연으로 가진 미색 역시 훌쩍 뛰어넘곤 했다.

         

       “그새 초절정에 올랐나?”

         

       청이 어포를 아작아작 씹어먹으며 대답했다.

         

       “아니? 작은 깨달음을 얻기는 했지만.”

         

       정말로 작은 깨달음이었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깨달음이었다.

       절정에 도달하고자 할 때 필요한 깨달음이다.

         

       대충 야매로 건너뛰고 배운 청이 먼저 경지를 이루고 나중에 깨달음을 보충하는 아주 기이한 성장을 했을 뿐.

         

       그 사실을 모르는 청만 스스로 대견해했다.

         

       이야. 깨달음을 얻는 게 티가 나나 보네?

       물론 아니었다.

         

       “환골탈태라도 한 줄 알았지. 아니면 뭔가? 주안술이라도 익혔나?”

         

       “주안술?”

         

       청이 그 표정이 되어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무구한데 멍청한 표정.

         

       “아.”

         

       팽대산이 작게 중얼거렸다.

       오랜만이라 이 무식함을 잊고 있었군.

         

       “주안공은…… 아니, 됐다. 얼굴이 변했길래 하는 소리다.”

         

       “아. 무공 몇 개 익혔거든. 예뻐지는 거래.”

         

       “선녀공을 익혔다고? 그 새에?”

         

       “와! 선녀공 아시는구나!”

         

       “도대체 그 소리는. 하아.”

         

       쉽게 구할 수 있는 선녀공의 효능이란 피부 및 치아 미백과 눈동자의 광택, 그리고 쓸모 없는 군살의 제거 정도였다.

         

       물론, 이는 중원 미인상의 핵심이었으니 그 공능은 무척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중원 미인들의 소양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미색의 형태 자체를 가꾸어 주는 선녀공은 정말로 흔치 않았다.

         

       미인들 많기로 강호에 이름 쟁쟁한 여인 방파의 비전들 정도나 될까.

       신녀문이나 주작문, 천화전당, 환희궁……

         

       아니면 무공의 부작용으로 사내까지도 여인과 같은 꼴이 되고 만다는 북해빙궁의 마공 아닌 마공 정도일 것이다.

         

       “이번에 사부님이 생겼거든. 이 몸의 천재성을 알아보시는 바람에. 워낙에 부탁을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제자가 되어드렸지.”

         

       “대체 그게 무슨 무례한 소리를. 아니, 됐다. 그 스승이란 분도 이해하셨을 테니 가르치셨을 테지. 어쨌거나, 스승를 모셨다고?”

         

       “어. 서문수린이라는 분이셔. 성씨도 주셨다? 그래서 내가 서문청임.”

         

       “컥.”

         

       갑자기 옆에서 술 잘못 넘어간 소리가 났다.

         

       “컥, 크헉, 크어어……”

         

       오십 도가 넘는 독한 술이 기도로 넘어가면 고수고 나발이고 추한 꼴이 되고 만다.

       창빈이 심하게 기침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어찌어찌 애써 포권을 취했다.

         

       “소저, 혹시 신녀문의 태상장로로 계신 대모 서문수린 어르신을 말씀하시는……”

         

       “아! 우리 사부님 아시는구나!”

         

       “아니, 그, 말씀을 낮춰 주십시오……”

         

       “아. 이 친구, 도문 출신이구나?”

         

       청이 신기해서 창빈을 보았다.

         

       서문수린이 말씀하기를 괜히 앞에서 까불거리는 도사나 중놈이 있으면 자신의 이름을 대라고 하셨다.

       걔네 장문인이 와도 제자한테는 함부로 할 수 없을 거라면서.

         

       “아니, 검우. 검우가 진정 여중제일검객이시자 당대의 검후께 검을 사사했단 말이오?”

         

       “어? 내가 말 안 했던가?”

         

       “안 했소. 과연 검우의 검력이 보통의 검력이 아니다 생각했소만. 천하제일검가의 후계자와 검후의 제자가 검으로 친우가 되어 만나다니. 이런 놀라운 인연이……!”

         

       “뭐 그렇게 특별한 일인가? 그런 식으로 의미를 부여하면 모든 인연이 범상찮은 법인데.”

         

       “그래서, 검후께서는 정녕 어검강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오?”

         

       “어검감? 몰라. 아. 대신 검 타고 날아다니시기는 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핵꿀밤의 공포는 당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어검비행! 진정 그런 경지에 오르셨단 말이오? 아. 세상에. 한 번 찾아뵙고 그 지고한 검식을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으련만.”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남궁신재가 곧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헐떡거렸다.

         

       청이 대충 대꾸해주고 있자니, 불퉁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남궁 형. 이야기 중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녀문에 이름을 올린 건가?”

         

       “아니. 문외제자. 나도 사정이 있어서 가입은 힘들다고 했더니, 사부님이 그래도 괜찮다고 하셔서.”

         

       “으음.”

         

       팽대산이 신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대모가 제자가 되어달라 붙잡았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미 강호의 최고 배분이신 어르신께서 굳이 문외제자라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제자로 들일 정도라면야.

         

       생각해보면 또 그럴 만 하기도 했다.

       젊은 나이에 절정 후기에 들어선 여류 무인.

       대모의 성정이 세간에 알려진 바의 절반만 하더라도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하필 저 놈, 아니 남궁 형이랑 동행을 하고 있지?”

         

       “그야 검우니까?”

         

       “도대체 그 검우란 게. 아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알겠다마는……”

         

       “화산 보러 가고 있었거든. 검절벽? 그게 볼 만 하다고 그러던데? 화산 자체도 궁금하고.”

         

       “아니, 말을 해도 그리 가볍게. 아니. 됐다. 아니지. 잠깐.”

         

       팽대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른 일행은?”

         

       “없는데?”

         

       다른 일행이 없다고?

       팽대산의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단둘이 여행을 하고 있다는 건가?”

         

       “그렇지?”

         

       “암만 그런 성격이란 걸 안다마는, 여인의 몸으로 외간 사내와 둘이서 여행을 하지?”

         

       청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봤을 때 우리 검우는 그런 거 안 따져. 세상에 검 든 사람이랑 안 든 사람밖에는 없을 껄?”

         

       “그렇소. 세상에는 오로지 두 종류의 사람뿐이지. 과연 내 검우, 아니 마음마저 통해 이젠 지검이라고 해도 되겠소.”

         

       “오우. 지검.”

         

       지음의 고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진하기로 유명한, 전설적인 우정의 소유자 백아와 종자기의 일화였다.

       둘의 우정 수준이 입으로 말할 필요가 없이, 연주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이후로 가장 친한 친구를 소리를 아는 사람, 지음이라고 했다.

         

       “괜히 말 돌리지 말고.”

         

       다시 대화를 가져가는 팽대산의 목소리가 한 음정 내려앉았다.

       청이 손바닥을 들었다.

         

       “잠깐! 멈춰! 뭐야? 아직도 서운한 상태야? 거기 있었어봐야 뭐해. 흑영회? 맞나? 걔네랑 사생결딴을 낼 수도 없고. 약한 쪽이 째야지.”

         

       “그 이야기가 아니었다만…….”

         

       팽대산의 목소리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굳이 신경을 쓸 필요가 있나?

         

       이 정신 나간 여자가 누구랑 여행하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 말대로, 검치는 세상에서 여인에게 제일 무해한 사내가 맞았다.

       둘이서 여행이라 해도 그저 온종일 대련이나 했을 테지.

       원래 그 외에 머리에 든 것이 없는 놈이다.

         

       “어쨌거나, 화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응.”

         

       “마침 잘 되었군. 마침 나도 창빈 형과 함께 화산으로 귀환하는 도중이었으니.”

         

       “음? 같이 가자고?”

         

       팽대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왜? 싫은가?”

         

       “아니. 나야 좋은데…….”

         

       청이 고개를 돌렸다.

         

       창빈이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으며 짧게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다가, 제게 오는 시선에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저건 무시해라. 평생 소원이 여인과 여행해보고 싶다고 한 형님이니, 이참에 소원 하나 들어준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아니, 팽 아우, 저건이라니. 그래도 내가 잠룡지회의 맏이인데, 말이 넘,”

         

       “그 맛있다는 술이나 드시죠. 여인 있으니 참 맛있을 것 아닙니까?”

         

       “크흠.”

         

       어쩐지 기세를 끌어올리고 하는 소리였다.

       창빈이 얌전히 잔을 들었다.

         

       “그래서, 객잔은 잡았고?”

         

       “아니. 여기가 좋대서 왔는데, 여인들이 벽을 쌓았더라고. 우리 산이 여기 있겠구나 싶었지.”

         

       “안 잡았다는 소리군. 그럼 지금 잡지.”

         

       그리고는 점소이를 불러다 방까지 탁 잡아주는 것이었다.

         

       역시 친구 좋다는 게 뭐야.

       게다가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아주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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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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