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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

         

         

         드워프에겐 암흑 시야가 있다. 애초에 지하에 틀어박혀 사는 족속들이었으므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비록 대낮처럼 어둠을 가로질러 볼 수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쨌건 어둠 속에서도 비교적 명확히 사물을 인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아스투크는 다가오는 사내를 볼 수 있었다.

         

         

         ‘…큰 드워프?’

         

         

         아스투크는 혼란에 빠졌다!

         

         

        *

         

         

         “이자벨.”

         “아, 아저씨?!! 여긴 어떻게…?!”

         “다친 곳은 없나.”

         

         

         이반은 저벅저벅 걸어와 이자벨의 곁에 섰다. 그는 잠시 츳, 하고 혀를 찬 뒤에 이자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네! 네, 저는. 전 괜찮아요!”

         “다행이군. 그럼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있어라.”

         

         

         요인 경호는 절멸부대 기초 훈련과정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어둠 속에서 완벽한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는 노릇.

         

         격전 앞에서 경호 대상의 위치를 항상 파악해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물론 이반은 무척 효율적인 사람이었으므로, 그 말이 어떻게 들릴지 고려하지 않았다.

         

         

         ‘나 이거 본 적 있어… 로맨스 소설에 자주 나오는 그런!’

         

         

         이자벨의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긴장감이 탁 풀리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리가 떨렸다. 공포가 뒤늦게 닥쳐왔다. 어쩌면 흔들다리 효과일지도 모르지만, 죽음의 위기 앞에서 나타난 사내라면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그 자리에 있어라.’라는 말.

         

         마치 고대의 용을 무찌르고 올 때까지 기다려달라 말하는 이야기의 기사처럼.

         

         

         ‘이건 고백이네. 하, 참. 곤란하네…. 어쩔 수 없나. 바로 덥썩 받아주는 건 좀 그러니까, 응. 일단 주말에 시간 괜찮은지 물어나 보고. 포상으로.’

         

         

         이자벨은 혼란에 빠졌다!

         

         

        *

         

         

         왼손엔 권총, 오른손엔 장검. 허리에 걸린 단검 다섯 자루와 등에 비껴찬 도끼가 한 자루.

         

         무장 상태를 빠르게 점검한 이반은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겁을 먹었군. 이반은 낮게 숨을 들이켰다.

         

         생물에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몇 가지 징후가 있다. 호르몬 기작이 그것이다.

         

         마력으로 인한 신체 강화, 신경전달계통의 극단적인 능률 상승은 여러가지 연쇄 작용을 가져온다. 개중엔 각 감각 기관의 증폭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테면 후각이 그렇다. 공기 중에 떠도는 아주 작은 냄새마저 포집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분비된 땀이 증발하며 발생하는 휘발성 체취마저도 감지할 수 있다. 초인의 영역에서 이는 굉장히 중요한 지표에 속한다.

         

         상대의 감정을 읽을 수 있으니까.

         

         아직 이 미개한 전근대 사회엔 호르몬이라는 단어가 없지만, 사람의 구조는 동일한 법이므로 감정에 따라 체취가 미묘하게 변하고.

         

         이는 ‘살기’나 ‘공포’, ‘애정’ 따위의 감정을 물리적으로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생물이 공포를 느낄 때 분비되는 코르티솔. 이 독특한 향취가 드워프 사이에서 진득하게 스며 나오고 있었다.

         

         

         “두려운가.”

         “개소리를!”

         

         

         아스투크는 이를 아득 물었다. 놈은 혼자다.

         

         전쟁이란 결국 사기의 싸움이므로, 기세에서 밀려선 싸움이 성립되기도 어렵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반과의 싸움을 ‘전쟁’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애써 무시하며 무기를 들어 올렸다.

         

         

         “절멸부대. 이 저주 받을 것들… 내 너를 죽여 먼저 떠난 동지들의 넋을 기리겠다!”

         “그렇게 말들 하더군.”

         

         

         아스투크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말들을 해?

         

         순간 오싹, 하고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저런 말을 수차례 들어왔고, 그들 모두를 죽였다는 담담한 고백이다.

         

         아스투크는 침중한 눈으로 도끼를 들었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방진을 짠 모두가 일제히 병장기를 들어 올렸다.

         

         철컥, 철컥.

         

         금속이 마찰하는 묵직한 소음이 갱도를 울린다.

         

         

         아, 그립군.

         

         

         갱도에서 드워프 방진을 마주했던 지난 전장의 기억.

         

         광산전쟁 당시의 일이다.

         

         이반은 검을 들며 생각했다. 시야가 제한된 좁은 실내, 통로 전체를 가득 채운 드워프들. 도끼나 탄환이 먹히지 않는 끔찍한 방진.

         

         그 시절,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때 그의 곁엔 그를 보조할 다른 대원들이 언제나 함께했다.

         

         이제 그들은 없다. 이반은 진득한 상실감 속에서 검을 고쳐 쥐었다.

         

         하지만, 지금 저들은 그 시절의 군세가 아니다. 기껏 해봐야 서른 남짓. 많이 잡아도 오십이 넘지 않는 소규모 보병대다.

         

         그리고 그는 그 시절의 이반 페트로비치 대위가 아니다.

         

         광산 전쟁으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이반은 10년만큼의 경험을 쌓았다.

         

         

        *

         

         

        -타앙—!!

         

         

         시작은 사격. 위협과 동시에 시야 확보가 목적이다.

         

         공간이 휘우뚱 분절되는, 느릿한 시간 감각 속에서 이반은 질주했다.

         

         멈춰선 드워프 방진은 거북이와 같다. 단단하고 미련하며 느긋하다. 그러니까 전술의 층위를 속도에 두어야 한다.

         

         

         “놈이 온다!!”

         

         

         겁에 질린 목소리가 갱도를 울린다. 익숙한 일이다.

         

         드워프는 보통 마족군에서 후방 침투조에 속했고, 그런 종류의 작전은 절멸부대에게 가장 적합한 환경이었으니까.

         

         그러니 전쟁 시기 드워프를 가장 많이 죽인 개별 부대로 언제나 절멸부대가 꼽혀 왔다.

         

         

        -카앙!

         

         

         반가운 인사말은 검격. 곧장 내려 찍는 이 한 수는 페이크다. 가장 선두에 선 놈이 반응조차 하기 전에 견갑을 가볍게 후려쳤다.

         

         놈의 무기가 곧장 내질러온다. 허공을 가르는 파공성만 듣고 몸을 틀어 피했다.

         

         눈을 감고 초를 헤아린다. 이반은 자신의 걸음 수를 정확히 세고 있다.

         

         한 보폭에 86cm. 다섯 걸음 뒤에 이자벨이 있다.

         

         방진의 수장까지 닿는 데엔 일곱 걸음. 방진의 가로폭은 열세 걸음.

         

         그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는, 열일곱 걸음.

         

         

        -카앙!!

         

         

         순식간에 몸 위로 쏟아지는 각종 병장기를 피하며 파고들어 한 번.

         

         카앙, 카가각! 가장 앞에 선 녀석의 팔꿈치 아래에 장검을 쑤셔 박는 데 들리는 소음.

         

         철컥, 철컥. 무거운 갑옷을 입은 녀석들의 움직임이 맞물리며 들리는 마찰음.

         

         감은 눈 아래로, 발포 당시 망막에 맺혔던 놈들의 형상이 일그러진다.

         

         주변 소음을 하나하나 도해해 분석하며, 실시간으로 놈들의 위치와 자세를 수정해나간다.

         

         

         “이 괴물!!”

         

         

         한 놈의 껍질을 ‘박피’하고 팔뚝을 썰자마자 그런 소리가 들렸다.

         

         괴물이라. 우습다. 이반은 진짜 ‘괴물’들의 싸움을 알고 있었다.

         

         

        -카득!

         

         

         팔이 썰린 녀석의 끔찍한 비명을 무시한 채 몸을 빙글 돌려 두 걸음 반 옆으로.

         

         이제 막 도끼를 내려 찍기 위해 팔을 번쩍 들고 있던 녀석의 목덜미 틈, 그 아래에 단검을 쑤셔 박고 다시 한 걸음 반 오른쪽으로.

         

         

        -카각!

         

         

         다음 녀석은 전투 망치를 들고 내지르고 있었다. 묵직한 파공성을 고개 옆으로 흘리며 자세를 낮춰 장검을 꼽아 넣었다.

         

         카득. 아슬아슬하게 이가 나가 있던 장검이 부러졌다.

         

         예상한 일이다. 싸우는 순간부터 검의 날이 깎여 나가는 것을 손끝 감각으로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당황하지 않는다. 이반에겐 이 수준의 내구성이 익숙했다.

         

         

         “놈이 무기를 놓쳤다!!”

         

         

         아니, 놓은 거다.

         

         이반은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두 걸음 옮겼다. 바로 발치 아래에 정확히 도끼가 떨어져 있다. 처음 팔을 자른 녀석이 놓친 무기다.

         

         그걸 줍자마자 허릴 돌려 다음 공격을 피해내고, 왼손을 들어올린다.

         

         

         조준, 호흡 정렬, 격발.

         

         

        -타앙—!!

         

         “끄으아아아악!!”

         

         

         부러진 장검은 그 어금니를 한 녀석의 갑옷 틈에 박아두고 있었다. 정확한 핀포인트 사격. 정 위에 망치질을 하듯 녀석의 가슴팍이 터져 나간다.

         

         그대로 권총을 허공에 던지고 앞으로 달렸다. 놈이 놓친 전투망치를 왼손으로 낚아채고 몸을 틀었다.

         

         한 손을 위로, 다른 한 손을 옆으로.

         

         그리고 고스란히 교차하며 내려 찍어서.

         

         

        -콰앙!!

         

         

         떨어진 도끼가 한 녀석의 투구에 박히자마자, 오차 없이 휘둘러 친 망치가 그 녀석의 머리를 후려 갈겼다.

         

         놈의 몸에 힘이 빠지며 비틀, 쓰러지자마자 망치를 던지고 공중의 권총을 낚아챈다.

         

         조준 없이 정면으로, 다섯 걸음 앞에 있는 지휘관을 향해.

         

         격발.

         

         

        -타앙—!!

         

         

         이번엔 눈을 떴다. 다시금 전황이 한 눈에 들어왔다. 권총의 화염이 잦아들 때 다시 눈을 감고 변형된 방진의 상황을 뇌리에 그린다.

         

         전장의 소음, 놈들의 체취, 망막 아래에 새겨 넣은 놈들의 위치. 양뺨을 스치는 바람의 감각.

         

         호흡과 호흡 사이의, 초인들의 전장.

         

         

         아, 그립군.

         

         

         이반은 다시금 되새기며 달렸다.

         

         사람의 몸은 연약하니까. 세 치도 되지 않는 단검에 찔려도 무력화 되고 마니까.

         

         근접 백타란 언제나 목숨을 걸고 벌이는 생과 사의 기로다.

         

         그 사이에서, 명백히 불리한 상황에서, 적진 한 가운데에서.

         

         적의 심장부를 향해 질주하는 이 감각을 잊고 살았다. 마지막 전투 이후로 4년간, 전투라고 불릴 만한 상황 자체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 익숙한 전장에서 이반은 어떤 향수마저 느끼고 있었다.

         

         이반은 대단히 객관적인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자신이 고장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일상 속에서 더욱 도드라지는 감각이었다. 평범하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소외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 삶이 명멸하는 이 순간만큼은. 그는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아직 전쟁 속에 살고 있었다. 전장을 혐오하면서도, 일상을 그리면서도. 고향을 바라면서도.

         

         그리운 전우들의 체취를 느끼며, 이반은 걸음을 헤아렸다.

       

       

         이제 한 걸음.

       

        

         86cm 앞에 놈들의 ‘머리’가 있다.

         

         

        *

         

         

         희미하게 웃으며 동지들을 ‘도살’하는 광인에게서 무슨 느낌을 받아야 할까.

         

         숨을 쉴 때마다 한 명씩 동지들이 쓰러져 간다.

         

       

       

         막아, 죽여, 안 돼! 하지마! 내 팔! 으악!

       

       

        

         그 속에서 비명은 음절 단위를 넘지 못했다. 단말마만 울리는 그 전장 위에서.

         

         절멸부대의 광인은 아무런 말 없이, 묵묵하게 ‘작업’을 이어 나갔다.

         

         부서진 갑옷이 머리 위로 튀어 오른다. 찢겨 나간 사지와 핏방울이 허공에 비산한다.

       

         

         폭풍이다. 개개인이 항거할 수 없는 재난의 형태를 띄고 있다.

         

         말 그대로 휘몰아치며, 무기를 들고, 쥐고, 내달리며.

         

         마침내. 그의 눈 앞에 훌쩍 다가왔을 때에도.

         

         놈의 호흡은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나는 제 5 용장 직할 3대대, ‘웹메이커’ 공병단 소속… 아스투크 상급 대위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반 페트로비치.”

         “…하….”

         

         

         아스투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래. 그랬군. 살아 있었어. 하필이면 이 숲에, 가장 정확한 순간에 난입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것이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그 수염. 우릴 따라한 건가?”

         “…?”

         

         

         이반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이반은 대단히 냉철한 사내였으나, 선왕에 대한 모욕을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대답 대신, 그는 이름 모를 병사가 들고 있던 도끼를 휘둘렀다.

         

         

        *

         

         

         “이제 움직여도 된다.”

         “저 다리 풀린 것 같아요.”

         

         

         이자벨은 저벅저벅 다가오는 이반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웃었다.

         

         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격전이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전투였다. 바로 뒤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어도 격전의 열기가 그녀에게까지 닿는 듯했다.

         

         솔직히, 압도적이다.

         

         그녀는 양팔을 쭉 뻗으며 말했다.

         

         

         “업어 주세요.”

         

         

         다리가 풀렸다니 걷길 기다리는 것보단 업고 가는 편이 낫다.

         

         이반은 효율적인 사람이었으므로 아무 말 없이 등을 내어주었다.

         

         곧 따듯한 손이 그의 목덜미를 감쌌다.

         

         

         “다치셨어요?”

         “아니.”

         “고생하셨네요.”

         “그래.”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저녁이라도 사드려도 될까요?”

         

         

         이반은 지금 방첩사령부 소속 언더커버 요원이었다.

         

         그는 청빈한 사람이었으므로, 경호 대상의 금품을 부정취득하지 않는다.

         

         

         “아니.”

         “엑.”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의 용어 해설)

    하렘 : 히로인들이 주인공을 꼬셔야함

    아카데미 : 오십 명의 드워프 시체 앞에서 펼쳐지는 가슴 따듯하고 설렘 가득한 러브코미디

    *

    예비군때문에 오늘부터 수요일까진 한편만 올라갑니다!

    다음화 보기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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