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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해저 2만리.

       

       그 숫자를 정확하게 계산하자면 해저 20만리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그 소설은 프랑스의 작가 ‘쥘 베른’의 SF적 상상력으로 가득 찬 모험소설이다. 잠수함이라는 신기술과 바다라는 미지의 공간을 탐험하는 이 소설은 모험의 낭만과 열정을 상징하는 불멸의 고전이 되었다.

       

       쥘 베른의 SF적 상상력은 단지 공상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현대에 하드SF라고 불리는 장르들과 비슷했다. 물론 현대를 기준으로 보자면 대포를 타고 달로 날아간다거나, 지구 중심에 공동이 있다는 이야기들은 터무니없는 헛소리로만 들리겠지만….

       

       쥘 베른은 그러한 ‘공상적 결과’를 이끌어내는 과정에 있어서 과학과 통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확신으로 가득 찬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니 이 소설을 번역함에 있어서도 그리 해야했다.

       

       현실에서 공상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을 한 명 알고있었다.

       

       

       “수석 마법사 밀리 클레앙입니다아…. 저 수석이에요오….”

       “네네. 수석 마법사님. 이번에도 약간의 ‘자문’을 부탁드리고자 잠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해해요오…. 저처럼 도움이 되는 사람은 달리 없을 테니까요오….”

       

       

       회색 마탑의 수석 마법사 밀리 클레앙.

       

       성격은 조금 유감스러웠지만… 그 능력과 지식의 방대함만큼은 확실했다. 상단의 선원들에게서 받은 여러 증언과 그녀의 지식을 합치면 이 세계의 사람들이 보기에도 꽤 그럴듯한 ‘SF 모험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게 제가 읽으면 되는 소설인가요오…? 헤로도토스 작가님의 신작…?”

       “네네.”

       

       “흐음…. 좋네요….”

       

       

       밀리 클레앙은 말이 굉장히 느렸지만, 글을 읽는 속도만큼은 빨랐다.

       

       나도 꽤 책을 빠르게 읽는 편이지만 그녀는 그 이상이었다. 그야말로 ‘천재’라는 말이 어울렸다.

       

       순식간에 원고를 읽은 그녀가 종이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거 좋네요오…. 마음에 쏙 들어요…. 제 취향으로는 탐정 소설이나 코난 사가보다 나을지도…?”

       “그런가요?”

       

       “네에…. 특히 굉장히 새로운 마법적 발상과 지식들로 가득차있어서 좋았어요오…. 그것을 유도하는 방식도 굉장히 합리적이고…. 헤로도토스 작가님께서도 마법을 공부하셨나요?”

       “아뇨.”

       

       “그러면 제가 가르쳐드릴게요오….”

       “사양하겠습니다.”

       

       “우선 마법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야겠네요…. 이걸 설명하려면 우선 제가 마법에 빠지게 된 계기를 함께 들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 늦었다.

       

       밀리 클레앙은 다크서클로 피곤해보이는 눈을 반짝이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법에 대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자랑이었다.

       

       하지만 꽤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간혹 있었다. 예를 들어 이 세계의 기술 문명─, 총화기, 마법기관차, 비행기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회색 마탑의 마법사는 확률을 다루니까… 총으로는 마법사를 죽일 수 없다는 거죠….”

       “네?”

       

       “화약을 사용하는 이상 불발이 날 수도 있고, 구조가 섬세한 탓에 한순간에 고장이 날 수도 있고, 궤도가 1차원의… 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이상 단순히 오조준할 가능성도 넘쳐나죠…. 총열이 터지거나 훨씬 사거리가 적게 나와도 이상하지 않고요…. 그래서 마법사가 군대의 천적이라 불리는 거죠…. 복잡한 장치일수록 마법사에게는 고철에 지나지 않으니까요오….”

       “으음. 그렇다면 마법사가 있는 이상 군대는 무용한 것 아닙니까?”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정말로 못 죽이는 건 아니에요…. 확률은 마법사에게 조금 더 평등하지만, 결국 누구에게나 평등하니까요…. 선으로 이루어진 탄도를 겹치고 겹치면 ‘반드시’ 죽지 않겠어요…? 제국에서 제식 총기의 표준화에 사력을 다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표준화는 곧 통계고, 통계는 곧 가능성이니까…. 마법이라는 건 결국 사건의 재현이거든요오…. 그래서 규격을 일치화하고, 제식을 갖추고, 사람 모양의 표적지를 상대로 훈련하며 명중의 확률을 높이는 거예요….”

       

       

       기묘한 이야기였다.

       

       무기를 표준화하고, 제식을 갖추고, 반복 훈련을 통해 숙달하는 것은 마법이 없더라도 군대라면 당연히 이루어져야하는 것 아닌가. 승리할 확률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보면 확실히 ‘의미있는’ 행동이었으나, 그것은 ‘마법적’인 기적이 없더라도 동일했다.

       

       저번 만남에서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법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궁극적으로는 마법이 없어도 가능해야한다.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으음…, 예를 들어, 어떤 학살자가 나타나서 세계의 인간을 ‘전부’ 죽여버렸다고 해보자고요오…?”

       “네네.”

       

       “그러면 그 사람은 마법적으로 보면, 어떤 사람이든 ‘확실한 죽음’을 결정지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돼요…. 그러한 것을 ‘초월’이라고 부르는데….”

       “이미 사람을 전부 죽였다면 결국 의미없는 힘 아닙니까?”

       

       “그렇죠오….”

       “그렇다면 초월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후후…, 그렇기에 꼼수가 필요한 거죠….”

       “음?”

       

       

       수석 마법사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 것인지 실실거리며 웃었다.

       

       다크서클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그림자 진 탓에 조금 음산하게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어떤 사람이든 그 부모와 절반 정도는 같으니까요오…. 그렇다면 아이는 각각의 부모의 ‘절반’에 해당하는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오…?”

       “네.”

       

       “만약, 어떤 위대한 왕조의 군주가 인류의 절반을 죽이고, 그 가능성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그 자식들이 왕이 되어 또 다시 그 시대 인류의 절반을 죽이고, 그들이 근친혼으로 자식을 낳아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가능성과 자신들의 가능성까지 함께 물려준다면… 그리고 이와 같은 짓을 몇 세대 동안 반복한다면….”

       “…….”

       

       “굉장히 일이 재미있어지지 않겠어요오…?”

       

       

       잠시 말을 멈춘 마법사가 홍차를 홀짝였다.

       

       그리고 주전자를 들어 잔에 홍차를 더 따르려고 하였으나, 주전자 역시 비어버린 탓에 붉은색 물방울만 몇 방울 떨어질뿐이었다.

       

       표정을 살짝 찌푸린 마법사가 찻잔을 옆으로 밀어버렸다.

       

       

       “뭐, 실제로는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고 그런 멍청한 시도를 하는 사람도 없겠지만요오…. 아, 비슷한 사례가 있기는 해요. 제국의 황제가 제국의 신민들에게 공경받을 ‘권리’를 가지고있다는 게, 꼭 법치적인 이야기만은 아니고…. 특히 선대 황제의 경우 꽤 많은 귀족들을 숙청한 탓에, 그 분위기가 황가에 깃들어있을 걸요…? 그래서 저희같은 마법사는 황족 근처에 가기도 힘들어요오…. 후후…. 사람 잡아먹는 뱀 앞에 선 기분이라서….”

       

       

       마법사가 무언가를 떠올리는듯 몸을 떨었다. 안색이 조금 나빠진 것 같다.

       

       그러고보니, ‘이스 공녀’에게서 비슷한 분위기를 느끼기는 했다.

       

       뱀 앞에 선 개구리가 된 기분. 포식자 앞에 선 피식자가 된 두려움.

       

       단순히 그녀가 가진 권력으로 인해 긴장했던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또한 어떤 마법적인 법칙이 작용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전자로는 차를 끓일 수 있지만, 찻잔으로는 차를 끓일 수 없는 게 마법의 한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런 마법적 발상으로 가득 찬 소설을 보면 참 즐겁단 말이죠오…. 후후…. 엉터리같은 것도 있지만… 실험해보고 싶은 것들도 조금 있고요오….”

       “그렇습니까?”

       

       “작가님도 마탑에 한번 방문하실래요오…?”

       “으음, 일단은 사양하겠습니다. 집필로 바쁠 예정이라서요.”

       

       “아쉽네요오…. 뭐, 저는 자문 정도만 해드리면 되니까요오…. 종이 몇 장 주실래요오…?”

       “네네.”

       

       

       밀리 클레앙은 고개를 끄덕이고 본격적인 자문을 시작했다.

       

       과학적이고 마법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그 스타일의 불꽃같은 분명함으로 말미암아 그림자에 숨겨진 여러 허구성에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일렁이는 불꽃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그 열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도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잿불의 반짝임, 노랗고 붉게 반짝이는 주변의 어둠, 춤추듯 움직이는 그림자.

       

       스타일이 분명해질수록 이야기에는 생명력이 깃들었다. 모험 소설이란 미지를 다루는 소설이었기에, 길을 밝히는 등불보다는 어둠을 불사르는 횃불에 가까웠다.

       

       그곳에는 어떠한 의심도 허구도 없다.

       

       

       [“폭군들은 바다를 다스릴 권리가 없소. 그들은 수면 위에서 사악한 권리를 주장하고, 서로 싸우고, 집어삼키고, 모든 것을 공포로 끌어내리겠지만─. 하지만 해저 30피트 아래에서는, 그들의 권력이 그치고, 권세가 쇠퇴하고, 그 지배력은 헛되이 사라질 테지!”]

       [“바다는 자유요!”]

       

       

       오직 자유만이 명백했다.

       

       그 어떤 억압도 우리를 한 장소에 묶어둘 수는 없다는 자유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모험 소설의 아름다움이었다.

       

       낭만의 아름다움이었고, 진보의 반짝임이었다.

       

       쥘 베른이 우리를 바다로 이끌었다.

       

       

       “으음! 훨씬 낫네요오….”

       “좋은 자문 감사합니다. 클레앙 수석 마법사님.”

       

       “제 자문은 언제나 탁월하죠…. 저는 수석이니까요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쥘 베른은 SF의 아버지로 추앙받지만, 쥘 베른 스스로는 본인을 과학 작가가 아닌 모험 작가로만 여겼습니다. 오히려 본인의 소설이 과학적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로서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지구를 묘사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쥘 베른 스스로는 정말로 대포를 타고 달로 날아가거나 열기구를 타고 아프리카로 날아갈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등장인물들을 ‘미지의 장소’로 데려가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고, 대포와 열기구 외에는 그곳으로 갈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탓에 이를 이용했던 것이었죠.

    과학적 발전과 그의 작품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쥘 베른은 ‘단순한 우연’에 불과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저작물이 워낙 많은 탓에 여러가지로 겹쳤을뿐이라는 거죠.

    하지만 과학자들이 그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 비전, 열정은 분명하게 존재하니….

    이 또한 ‘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겠네요.

    문학은 때로는 명백하게 존재하는 현실을 추문으로 만들고, 때로는 허무맹랑하지만 분명한 이상을 현실에 제시합니다. 그러니 문학의 역할이란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몇 분 정도 기다리면 등불이 켜집니다. 밝은 장소를 좋아하신다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

    #####

    [“인간의 무지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변덕으로 인한 것입니다. 작업에 실수는 없었습니다.”]
    [“자연의 법에는 저항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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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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