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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심청석, 내가 그를 아는 이유는 어찌 보면 표지우와 비슷했다.

       뉴스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사고.

       

       얼굴은 뉴스 구석의 작은 첨부 화면으로만 보아,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아마 사건이 터진 건 지금으로부터 대략 1년 후.’

       

       드라마 촬영 중에 일어난 사고였다.

       낙상사고.

       촬영장에서 발을 헛디뎌, 계곡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사고라 알려졌으나, 후에 선배 배우의 갑질로 인한 사고라는 게 밝혀졌다.

       스턴트맨이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연기를 강행했다던가.

       

       ‘배우의 갑질이라.’

       

       사실 여러모로 이슈가 많은 일이다.

       나는 운이 좋아서, 아역 시절에 딱히 그런 갑질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아역들은 다른 배우, 혹은 스태프에게 갑질을 당하기 쉬운 위치라고 한다.

       

       ‘운이 좋았네.’

       

       아무튼 나와 달리 심청석은 운이 좋지 못했다.

       연극판에서 넘어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혹은 단번에 대형 OTT 드라마로 옮겨온 그 재능에 열등감을 느꼈는지는 모른다.

       

       덕분에 한동안 국회에선 심청석법이니 하며, 배우들의 갑질에 대한 법안을 내놓겠다고 말이 나왔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아니, 거죠?”

       “네?”

       “마치, 곧 죽을 사람을 보는 눈이네, 요.”

       

       심청석은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앗, 무심코 그런 눈으로 봤었나.

       

       ‘근데 말투가 왜 저래.’

       

       어린 내게 존대하는 게 어색한가?

       계속 저렇게 말하면 대화에 큰 지장을 초래할 느낌이었다.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괜찮아요.”

       “아, 그래?”

       

       말을 놓으라고 하자마자 칼 같이 놓아버리는 심청석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나야 상관없긴 한데, 뭐라고 해야되나.

       

       ‘내가 선배인 건 아는 거지?’

       

       확실히 선배들이 좋아할 느낌의 후배는 아니었다.

       

       딱히 나는 선배라고 유세 부릴 마음은 없지만 말이야.

       ……진짜로.

       

       “그보다, 방금 본 건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흐음.”

       

       그는 기본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이었지만, 어투는 그렇지 않았다.

       말은 느리고, 동작이 그리 빠릿빠릿하진 못하다.

       확실히 괴롭힘을 당하면 고생하기 딱 좋은 상이다.

       

       “우선 준비가 됐으면 시작해보죠.”

       

       심청석은 내게 흥미가 식었는지, 그리 말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현재, 이곳에는 이번 극에 출연하는 인물들이 테이블에 둥글 게 앉아있었다.

       

       대본 리딩.

       드라마든, 연극이든 대본을 보는 모든 작업의 기본이다.

       단순히 대사를 내뱉고, 연기를 이어 나가는 것이 아닌 발음과 문장을 자신에게 어울리게 검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전 드라마 때는 가볍게 넘어갔는데.’

       

       아역이라 그랬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저마다 손에 쥔 대본의 스타일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편집한 대본들이다.

       참고로 나는 그냥 기본.

       

       딱히 손댈 것이 없다 싶었기에 처음 받은 걸 그대로 들고 있었다.

       

       “서연 씨, 연극 대본 리딩은 처음이죠?”

       “네.”

       

       가만히 앉아 대본을 살피고 있자, 송민서 역의 ‘이혜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원래 첫 리딩은 시간이 꽤 오래 걸리거든요. 좀 늦게 끝날 것 같은데, 괜찮죠?”

       “네, 집에는 미리 말해뒀어요.”

       

       그리고 안 괜찮아도 해야하는 일이겠지.

       여기서 늦었으니 그냥 가본다고 하면, 내 배역도 함께 가버릴 게 분명했다.

       

       “그럼 말했던 것처럼, 우선 서연 씨와, 청석 씨가 먼저 시작해볼게요.”

       

       왜 우리 둘인가,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다른 두 파트의 배우들은 이미 초연 때 호흡을 맞춘 배우들이었으니까.

       

       우리가 맡을 파트는 배우들이 전부 바뀐 탓에 사실상 진짜 ‘첫’ 리딩은 우리 뿐인 셈이다.

       

       ‘근데 그럼 송민서 역인 이혜진과 먼저 시작하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 거겠지.

       나는 대충 그렇게 생각하며 대본을 펼쳤다.

       

       배성학과 홍정희의 첫 만남이 나오는 2막의 도입부를.

       

       ***

       

       “그럼 시작합니다.”

       

       그런 심청석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둘에게 쏠렸다.

       심청석과 주서연.

       

       아마 이번 대본 리딩에서, 가장 많은 시선을 독차지할 이들.

       

       ‘극단에 떠오르는 샛별과, 천재 아역이라.’

       

       둘 다 확실한 캐릭터를 가진 이들이다.

       김청운은 힐끗 심청석을 보았다.

       

       솔직히, 조도율이 그를 추천했을 때는 제정신인가 싶었다.

       분명 능력은 있었지만, 말 그대로 야생마와 같은 녀석이니까.

       본연의 색과 고집이 강한 배우.

       

       이번에 연극이 처음인, 서연에겐 상당히 벅찬 인물이다.

       특히 이런 대본 리딩에서, 서연이 호흡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면 몇 번이고 지적할 이가 바로 심청석이다.

       

       실제로 배우 중에선 저런 심청석의 성격 때문에 기피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아! 홍정희 씨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공연마다 매번 찾아오시죠? 낯이 익어요.」

       

       아이돌인 배성학의 팬미팅 자리.

       그 대화가 극에서 배성학과 홍정희의 첫 대화다.

       

       날카로운 인상은 사라지고, 단번에 상큼한 미남만 남는다.

       딱히 표정 연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색깔이 또렷하게 느껴지는 발성.

       

       「아, 안녕하세요. 호, 호호홍정희라고 해, 해요.」

       

       그걸 받은 서연 역시 만만치 않다.

       오디션에서 표지우를 어떻게 이겼는지 보여주듯, 목소리 연기 뿐인데도 또렷한 감정이 느껴진다.

       발성도 훌륭한 수준.

       

       그걸 본 모두의 입에서 짤막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흠.”

       

       하지만, 심청석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눈을 찌푸렸다.

       

       “말을 너무 더듬는 거 아니야?”

       

       자칫, 쏘아붙이는 것처럼 들리는 말.

       단순한 연기자라면 기가 죽을 만큼 차가운 목소리다.

       물론 딱히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그냥 어조가 저럴 뿐, 순수한 의문이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으면, 송민서한테 그리 떠들지 않았을 걸요.”

       “그거랑 이건 다르지.”

       “아뇨, 이게 맞아요. 대본에는 ‘눈을 마주치며 말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 부분도 되도록 마주치지 않고 몸을 덜덜 떠는 느낌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서연은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이런 쪽에서 고집이 강했다.

       

       아역 시절, 멋대로 대본을 고쳤을 정도로 서연은 캐릭터 해석에 진심이었다.

       비록…… 그 이유가 심히 하찮은 것이었을지라도.

       

       아무튼 그런 심청석의 지적에, 서연도 똑같이 해주기로 했다.

       

       “연기가 너무 상큼하네요.”

       “…….”

       “캐릭터와 잘 맞지 않아요.”

       

       그런 서연의 말에 심청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설마 본인이 연기를 지적받을 줄 몰랐나 보다.

       

       “이 정도 톤으로 해줘야, 관객들에게 전달이 잘 돼. 경험이 적은 너는 잘 모르겠지만.”

       

       호오, 경험.

       서연은 무표정한 얼굴에, 입술만 살짝 비틀렸다.

       

       “경험이라, 심청석 배우님은 데뷔 날짜는 언제죠?”

       “……데뷔 날짜?”

       “참고로 전 10년 전.”

       “…….”

       “경험 부족은 누구?”

       

       그동안 쉬었다거나.

       연극은 처음이라거나.

       그런 의미 있는 반박은 듣지 않는다.

       

       ‘내 연기 경력은 10년.’

       

       서연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이어서 하죠.”

       “……그래.”

       

       그의 눈이 가늘어지며 잠시 서연을 보았다.

       어디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얼굴.

       

       그리고, 그건 서연도 바라는 바였다.

       

       이후 대본 리딩은 꽤 치열했다.

       방금처럼 반쯤은 농담이 섞인 기싸움은 아니었고.

       

       하나하나 장면을 놓고 이야기하며, 대본을 고치고 이어나갔다.

       일반적으로 대본 리딩 시간은 극의 두 배에서 세 배.

       

       즉 세 시간에서 다섯 시간 정도가 기본이다.

       하지만, 대본 리딩이 끝난 시간은 저녁 열 두시.

       

       무려 여덟 시간이 흐른 후였다.

       

       “……너무 열을 내서 죄송해요.”

       “아뇨, 아뇨.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서연 씨.”

       

       당연히 대본 리딩은 서연과 심청석만 하는 게 아니었다.

       다른 배우들의 것도 있었기에 이렇게나 시간이 걸린 거다.

       

       물론, 서연과 심청석이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긴 했지만.

       

       ‘얘는 진짜네.’

       

       슬쩍슬쩍 눈치를 보는 서연을 보며, 김청운은 내심 감탄했다.

       처음하는 대본 리딩이었음에도 아주 익숙한 모습이었다.

       아니, 드라마를 찍었을 때 해봤을 테니 ‘연극’에 한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확실히, 제작진이 신경 쓸 만 하겠어.’

       

       사실, 표지우보다 서연의 연기가 조금 못했더라도 붙는 건 서연이었을 것이다.

       태양을 숨긴 달의 아역.

       그 10년 만의 복귀가 연극이라면, 홍보로 이만한 게 또 없으니까.

       

       ‘복귀작’이라는 건 단 한 번뿐인 프리미엄 타이틀이다.

       연극이니 그 파급력은 공중파만 하지 않겠지만, 다른 연극과 비교하면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이다.

       

       ‘그 심청석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았으니.’

       

       본격적인 연기도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심청석 또한, 엄청난 재능을 지닌 배우였으니까.

       

       ***

       

       <과거, 추억을 보다!> 라는 예능이 있다.

       과거에 유행했던 예능, 혹은 드라마를 재연하는 예능.

       

       그 대상은 보통 그 ‘과거’를 모르는 십 대를 대상으로 한다.

       각 학교를 찾아가 옛 드라마의 명장면을 답습하는 경우도 있었고.

       

       한 때 큰 인기를 끌었던 예능을, 학생들이 직접 시연하는 것도 있었다.

       

       “이전에는 예능 파트였으니, 이번에는 드라마네요. 아니, 그냥 두 개 다 할까요?”

       “…….”

       “왜 말이 없어요?”

       

       예능국의 정민재 총괄 PD는 후배인 박건 PD에게 말했다.

       

       “그, 저희 종영까지 얼마나 남았나 해서요.”

       “……어음.”

       

       이전 시청률이 대략 6퍼센트.

       거의 간당간당한 목숨이다.

       

       거의 숨만 붙은 형국이라, 여기서 조금만 더 떨어지면 바로 종영이겠지.

       오래 살아봐야 이번 시즌이 마지막일 거다.

       

       “분명 시청자 참여 예능이 인기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학생들이 대상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끄응.”

       

       정민재 PD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예능이나 드라마를 재연한다는 것.

       그것을 학생들의 재기발랄한 모습으로 보여주면 재밌겠다 싶었다.

       실제로 시범 프로로 했을 때는 반응도 좋았고.

       

       하지만 현실은?

       시청률 단 6퍼센트.

       

       ‘그야, 제대로 재연하는 건 무리겠지.’

       

       그나마 연극 동아리라도 있는 고등학교면 괜찮다.

       만약 그마저 없으면 말 그대로 발연기의 향연이 장장 20분간 이어진다.

       

       그나마, 그건 그것대로 웃겨서 6퍼센트라도 유지하는 형국.

       

       “저희, 게스트 한 명 쓰죠.”

       “게스트?”

       “그래도 연기할 때 배우가 껴있으면 애들도 의욕이 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연기도 좀 더 볼만할지도?”

       

       홧김에 말한 것치곤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그럼 재연할 드라마에 출연했던 인물을 게스트로 쓰면 딱 좋겠네.

       정민재 PD의 생각은 빨랐다.

       

       “이거 드라마부터 정할 게 아니라, 배우부터 정해야겠는데요? 혹시 우리 예능에 출연할 좋을 배우 좀 알아요?”

       “저 압니다.”

       

       그때 한 스태프가 손을 들었다.

       평소 점심에 다 같이 제육을 시킬 때, 매번 홀로 국밥을 시키던 스태프였다.

       

       “음, 안다면 누구…….”

       “박정우 배우님이요.”

       “예?”

       

       국밥 스태프에게서 들려온 말에 정민재 PD는 순간, 자신이 제대로 들었나 싶었다.

       누구라고?

       

       “저희 아버지 사돈의 팔촌에 친구분의 아들이, 이전에 박정우 배우님과 함께 촬영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알게 됐습니다.”

       “그게 연락되긴 하는 지인이에요? 그냥 남인데?”

       “그럼요. 바로 얼마 전까지 카톡도 했는 걸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실제로 박정우와 이야기를 나눈 카톡을 보여줬다.

       

       ‘맙소사. 이게 된다고?’

       

       박정우라면, 최근 가장 뜨는 배우다.

       나이는 스물.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당당히 자립한 배우.

       

       그 훤칠한 얼굴은, 수많은 누나 팬을 양산했다던가.

       

       “박정우, 박정우…… 만약 된다면 드라마도 정해지네요.”

       “박정우가 출연했던 옛 드라마 중에 가장 히트했던 건 ‘태양을 숨긴 달’이죠?”

       

       그림도 좋다.

       만약 된다면 정말 프로그램을 살릴 기사회생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이번에 저희가 찾아갈 고등학교에 연극 동아리 있어요?”

       “아, 있습니다. 그것도 꽤 유명해요.”

       “됐네.”

       

       정민재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스마트폰으로 이번에 그들이 찾아갈 고등학교를 검색했다.

       연화 고등학교.

       

       바로 서연과, 지연이 현재 재학 중인 고등학교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걸 적으며 선배 배우 갑질 관련 사고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더 스펙타클해서, 그냥 간단한 낙상 사고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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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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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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