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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긴급)어디에 있습니까?]

       

        한유리와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뜬금 없는 사람에게서 문자 메세지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안젤리카 ‘더 글로리아’ 플리머스. <성녀>되시겠다.

       

        “뭐야? 뜬금 없이.”

       

        승천전이 시작한 이후로는 함께 게임을 하자는 연락이 없어서 이제 게임이 질린 건가 싶었다. 헌데 이런 저녁 시간에 문자라니.

       

        [ 나 집 가는 중. 왜? ]

        [ 설명할 틈도 없습니다. 서둘러 당신 집 건물 옥상으로 오십시오! ]

       

        “……이게 뭐야?”

       

        곧장 도착한 답장에 절로 눈이 가늘어졌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지, 굳이구태여 나와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겠다는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또 김 빠지는 얘기나 하려고 불렀겠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나는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이제 막 기숙사 아파트에 도착한 참이다. 건물 옥상에서 안젤리카가 기다리는 것 같으니, 녀석과 잠깐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건물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 나는 이내 옥상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끼이익!

       

        그리고 옥상 문을 젖히자 녹슨 경첩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반갑습니다.”

       

        그곳엔 한 여자가 하늘을 바라본 채로 서 있었다.

       

        <성녀> 안젤리카. 그녀의 새하얀 사제복이 시야에 밟혔다.

       

        “무슨 볼일이야? 뜬금 없이 만나자고?”

        “당신에게 긴히 전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긴히 전할 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또 한가한 농담이나 할 줄 알고 있었는데, 진중한 안젤리카의 표정을 보니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슨 말인데?”

        “후우! 놀라지 말고 들으십시오.”

        “그래. 말해봐.”

        “예언이 내려왔습니다.”

       

        안젤리카의 굳은 목소리에 나조차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 타이밍에 예언이라. 이건 원작에서 없던 내용인데?

       

        “내용은? 설마 알려줄 수 없는데 나를 찾아온 건 아닐 거 같고.”

        “예언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다가오는 승천전의 8강, 그곳에서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뭐?”

       

        생각보다 묵직한 정보에 일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메시아는 도대체 뭐고, 승천전 8강에서 원작에 없던 사망자가 발생할 거라고?

       

        “메시아라면, 뭐 구원자. 그런건가?”

        “정확합니다. 교단에서 말하는 메시아는 이 땅에 내려서길 기도하는 마지막 성자입니다.”

        “……잠깐. 그말은 결국 8강 진출자 중에 진짜 세상을 구원할 사람이 있다는 거야?”

        “…….”

       

        안젤리카는 내 질문에 입을 여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구원자라니. 이거 생각보다 일이 더 커지는 느낌이다.

       

        “난가?”

       

        황당하지만, 나름대로 논리적인 추론 끝에 나온 답이다.

       

        8강 진출자 중에서 세 사람, 그러니까 <원소술사> 이성혁이나 <비를 내리는> 송수아, 그리고 나를 제외하면 모두가 비중 없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뭐…… 굳이 따지자면 나도 사실상 엑스트라에 가까웠지만, 보이는 행보가 평범한 조연 수준은 아니잖아?

       

        “자화자찬도 이정도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안젤리카가 황당함 가득 담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해가 가는 반응이긴 하다만, 만약 누구라도 내 입장이 되었다면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제법 사안이 무겁긴 하다. 8강 진출자 중에 구원자… 그러니까 성자가 있고, 그 성자가 죽을 거란 얘기잖아?”

        “맞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에게 한달음에 달려온 것입니다. 당신에게 경고하는 것. 그게 제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입니다.”

       

        씁쓸한 표정의 안젤리카가 고개를 젖혔다.

       

        겨울밤 하늘엔 크고 하얀 둥근 달이 떠올라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빛의 성녀에게 퍽 잘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고맙다.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알려주는 거야?”

       

        어깨를 으쓱인 나는 나지막히 말했다.

       

        사실 <성녀>에게 내려오는 예언, 즉 신탁은 누군가에게 발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애당초 그녀가 들은 신의 음성 하나하나가 세상을 풍파로 몰아넣을 강력한 위력을 가진 덕분이다.

       

        그렇기에… 안젤리카는 ‘예언’을 되도록 발설하지 않는다. 

       

        당장 <히사있>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그녀가 예언을 타인에게 말하는 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은 일이고.

       

        “우리는… ‘전우’지 않습니까.”

       

        무거운 표정의 안젤리카가 작게 말했다.

       

        전우, 전우라. 그거 참 좋은 울림이구나.

       

        “그런데.”

        “말씀하십시오.”

        “같이 게임을 하는 것도 전우로 치는 거야? 아니면 빌런의 꿈에서 신성력을 무상 제공한 걸 말하는 건가?”

        “……!”

       

        안젤리카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하긴, 그녀의 유일한 역린을 쥔 사람이 나니까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는 갔다.

       

        적어도 학생회장, <재창조의>한유리가 그런 프라이버시를 발설할 위인은 아니니까.

       

        “농담이야.”

       

        팔을 붕붕 휘두르는 안젤리카의 모습에 픽 웃은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섰다.

       

        아직 쌀쌀함이 물씬 느껴지는 겨울밤이다. 사제복으로 둘둘 무장한 안젤리카는 추위가 느껴지지 않는 모양인지, 태연한 얼굴로 옥상 난간에 서 있었다.

       

        “참으로 장난스러운 사람입니다.”

       

        하아.

       

        안젤리카가 입을 벌려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곧장 새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이, 꼭 그녀가 입은 사제복과 같은 색이었다.

       

        “장난쳐서 미안하고, 걱정해줘서 고맙다.”

        “…….”

        “짧지만 네 생각도 알겠고.”

        “그렇습니까?”

       

        태연한 내 목소리에 안젤리카의 고개가 나를 향했다.

       

        굳이 그녀의 입으로 듣지 않아도, 나는 안젤리카가 내게 하고픈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승천전을 기권할 생각은 없어.”

        “진심입니까? 신이 내리는 예언을 비트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 위험에 빠질 필요가 있습니까?”

        “잊었어? 네가 예언한 송수아의 죽음을 비튼 사람이 누구인지.”

        “……!”

       

        경악한 표정의 안젤리카가 입을 벌렸다.

       

        그녀가 내게 하려는 말은 간단했다.

       

        신이 8강 진출자 중에서 구원자라는 ‘성자’의 죽음을 예언했으니 나더러 기권을 권하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당장 승천전 8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낸 건 맞지만, 내 목표는 그보다 훨씬 위에 있으니까.

       

        거기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있고.

       

        “바보입니까? 당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걱정은 고마운데, 모순이야.”

        “모… 순?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제가 거짓을 논한다는 뜻입니까?”

        “그럴리가. 그냥 빛의 신이 내리는 예언이 이상하다는 걸 지적하는 거야.”

       

        파르르.

       

        휘이잉-!

       

        때마침 찬바람이 불었다.

       

        <성녀>의 자랑인 찬란한 은빛 머리칼이 반짝이며 휘날린다. 그녀의 곧은 자색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신성교단이 섬기는 빛의 신이 내리는 신탁은, 대체로 세상이 위험해지거나, 위대한 영웅의 죽음에 대한 것이지.”

        “그렇습니다. 진정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주의 뜻입니다.”

        “잘 알고 있으니 얘기가 빠르겠네. 너도 8강 진출자 중에서 세 사람을 유력한 후보로 뽑았을 거야.”

        “맞습니다. 대단한 추리력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간단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히사있>에서만 등장하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해괴한 존재, 빛의 신. 그 작자가 예언하는 ‘성자’이며 죽음이 예정된 사람이 누구인지.

       

        ‘나를 경계하는 느낌이 물씬 풍기잖아?’

       

        내가 기권하게 만드려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신의 변덕, 뭐 그런 거려나.

       

        “이성혁이나 송수아는 죽지 않아. 아니, 죽을 수가 없어. 원소술사는 마법계 능력자면서도 현실을 비틀 힘을 가졌고, 송수아는 이미 죽음을 한번 비켜간 덕분이지.”

        “…….”

        “너도 그걸 알고 나한테 찾아온 거잖아? 유력한 후보인 내가 걱정되서.”

        “역시 당신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명탐정 저리가라할 추리력입니다.”

        “추리는 아니고, 경험에서 우러난 판단이지. 아니면 너랑 비슷한 예지 능력일 수도 있고.”

       

        그리 중얼거린 나는 옥상을 한바퀴 빙 돌았다. 이어서 안젤리카의 앞에 서서 작게 말했다.

       

        “예언을 깨부술 생각이야.”

        “그, 그게 무슨……?”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빛의 신이 내리는 예언은 반드시 일어나는 강제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강제력이 신의 뜻이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현상이다?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웃을 소리다.

       

        ‘빛의 신에 대한 정보는 떡밥만 무성하고 속시원한 답이 나온 적이 한번도 없었단 말이지.’

       

        신이 날 지목한 이유? 간단하다.

       

        나는 밉보인 모양이다. 형체가 존재하는지, 실존하는 건지 알 수 조차 없는 빛의 신이란 놈에게. 원인은 뻔했다. 죽음이 예정되었던 송수아의 미래를 비튼 것이 시발점이 됐을 것이다.

       

        원작에 등장하지도 않는 놈이 튀어나와 제 욕망대로 행동하니 고깝게 보일 수도 있고.

       

        그렇기에.

       

        “나는 빛의 신을 의심해. 그 존재 자체가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쪽이거든.”

       

        <성녀>앞에서 과한 언사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고 해야할 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안젤리카를 방패막이로 세운 미지의 신이 언제고 내 앞길을 막을 테니까.

       

        “신성 모독입니다!”

       

        다시 한번 안젤리카가 경악스러운 음성을 흘렸다.

       

        “빛의 신은 누구지? 예수? 알라? 부처? 그도 아니면 프리무르티? 혹은 부두신?”

        “빛의 성녀 앞입니다. 그분이 천벌이 내릴 수도 있습니다. 부디 말을 삼가십시오……!”

        “아니.”

       

        탁!

       

        시원하게 웃은 나는 손을 튕겼다.

       

        현실 공간의 존재를 거절하는 공허가 나와 안젤리카 사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계획이 조금 틀어졌다. 편안하게 이야기의 끝을 보겠다는 목표는 동일했으나, 그 과정이 조금 수정될 필요성을 느꼈다.

       

        사아악!

       

        그리 내려앉는 어둠 속, 나는 멍한 얼굴의 안젤리카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믿는 빛이 하늘이라면.”

        “……!”

        “내가 하늘에 서겠다.”

       

        나는 <성녀> 앞에서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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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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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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