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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오늘따라 루즈에서는 밤하늘의 별들이 유독 잘 보였다.

       거리 전체가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루즈의 빛과 소음 공해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던 장미 풍차 카바레가 휴업이었기 때문이다.

         

       장미 풍차는 내부 수리가 그 이유라고 발표했지만, 도시 사람들 대부분이 그 발표에 의구심을 가졌다.

         

       경영자 브왈레의 억척스러움은 유명했다.

       얼마 전 배우가 낮의 무대에서 사고로 사망했을 때도, 밤의 무대는 그대로 진행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지난 10년간 장미 풍차가 쉰 날은 한 손에 꼽을 수 있었다.

       그때의 사유들이 자연재해, 마수 출현 같은 전 도시적 재앙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오늘의 휴업은 이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기자들이 장미 풍차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직원들에게 달라붙어 정보를 캐내려 애썼으나 별 소득은 얻지 못했다.

       질문을 받은 직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지나갔다.

         

       결국 기자들은 서커스 그랑프리 개막식을 앞두고 장미 풍차가 정말로 내부 수리를 한다고 결론짓고 물러났다.

         

       어차피 그들은 이번 일 말고도 취재해야 할 일들이 넘쳤다.

       곡예사들끼리의 난투극이라든가, 그랑프리 참가자 인터뷰라든가, 하수도에서 떠내려온 정체불명의 시체 같은 일 말이다.

         

       사람들의 추측과 달리 내부 수리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카바레 내부의 비밀장치, 지하로 향하는 비밀통로 몇 곳이 막히고 메꾸어졌다.

       인부들이 일하는 동안 카바레의 1번 홀에서는 장례식이 열리고 있었다.

       카바레의 유령에게 희생당한 피해자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장례식은 최대한 조용히 진행되었다.

       축제를 앞두고 공연히 뒤숭숭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즈 기마경찰대의 부사관 사보 역시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는 브왈레의 요청을 받고 이번 수사를 총괄했다.

         

       유령에게 직접 습격을 받았던 이본느의 증언을 정리하고, 카바레 지하에서 비밀의 공간을 찾아내고,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한 것도 모두 그였다.

       보고서만 올리면 사건은 그대로 종결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끝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꽤 많았다.

       치료 불가능하다고 했던 이본느의 상처를 치료한 유령이라는 자의 정체나 소녀들을 살해한 범인의 행방 같은 것 말이다.

         

       범인은 절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지하의 공간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몇 년간 산 흔적이 분명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본느를 치료해준 유령이라는 자의 증언이 의심스러웠다.

         

       혹시 그가 모든 사건의 범인 아닐까?

       그래놓고 있지도 않은 존재를 범인으로 만들고 없앴다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이본느 양을 치료해주고, 이런 사실들에 대해 털어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사보의 추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경찰서에서 온 부하들이 그를 찾았기 때문이다.

       별일은 아니었다.

       부서장이 또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단단히 그를 골탕 먹이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장미 풍차를 나온 사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밤하늘의 별이 평소보다 밝아 보였다.

       이곳 거리가 이렇게 조용한 건 이 도시로 오고 처음 봤다.

         

       사보는 안식을 되찾게 된 소녀들의 명복을 빌었다.

         

       “응?”

         

       어느 여관의 옥상에서 뭐가 희끄무레한 것이 하늘로 치솟는 것이 보였다.

       사보는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유령 소리를 자꾸 듣다 보니 헛것이라도 본 모양이었다.

       사보는 말에 올라 부서장이 매달려 있다는 현장으로 출발했다.

         

       그가 방금 바라본 여관의 옥상.

       그곳에는 마야가 서 있었다.

         

       여관에 돌아와 곯아떨어진 그녀는 방금 잠에서 깼다.

       옥상에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무심코 환상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도시의 규칙을 기억하고는 서둘러 흩어버렸다.

         

       마력이 허공에 모래처럼 흩뿌려졌다.

         

       무엇을 만들려고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금방 스러져버린 환상.

         

       환상 마법사는 종종 무의식적으로 환상을 만들어내곤 했다.

       밤마다 귀신이 출몰한다는 기숙사의 소문이 알고 보니 악몽을 꾸는 환상 마법사 때문이었다는 것은 아카데미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마음에 상을 그리는 기존 환상 마법사들의 이야기였다.

       

       마야가 만드는 환상은 명백히 의도를 가지고 계산을 해 그 외형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뭘 떠올렸더라?

         

       마야는 자신의 양손에 쥔 붓을 바라봤다.

       거기엔 자신도 모르게 구상한 물감이 묻어있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까만 밤하늘에 총총 박힌 금빛의 별들.

         

       물감의 색깔과 일치했다.

       아마 하늘을 올려다봤다가 자기도 모르게 구현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마야는 옥상의 벤치에 앉았다.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 등불에 비춰봤다.

         

       은막의 서커스단의 단장, 아르노가 건넨 초청장이었다.

         

       그는 내일 오전까지 서커스단으로 와달라고 했다.

       그만큼 오늘 그녀가 만든 유채꽃밭의 환상이 훌륭했다고 했다.

       이러한 환상 마법을 개발한 그녀의 재능에 대한 찬사도 덧붙였다.

         

       그토록 바라던 제안을 받았다.

       환상 마법의 대가가 인정한 덕에 자존심도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기뻐하지 못했다.

         

       자신이 개발했다고?

         

       아냐.

       내가 만든 게 아니야.

         

       다면체 환상은 자신이 구상한 게 아니었다.

       외형을 짜고 그 위에 표면을 그려 넣는 것.

       그건 모두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 남자의 아이디어였다.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도중 마야는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하면 되는 건가요?

       -네?

       -이걸 받는 대가로 제가 무엇을 하면 되죠? 단장님의 서커스단에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마야는 그가 자신에게 이런 엄청난 것을 가르쳐주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상식대로 생각하면,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재능이었다.

       이런 고난도의 계산 능력이 필요한 마법은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아마 이걸 사용할 만한 재능을 찾아 환상 시연장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적합자였다.

       하지만 그라고 이런 엄청난 것을 공짜로 전해줄 리 없었다.

       5년, 아니, 10년.

       그 정도의 봉사를 요구하는 건 당연했다.

       마법사인 그녀가 보기에 이 환상 마법에 그 정도의 가치는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듣더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야 양이 가고 싶은 길을 가세요. 은막의 서커스단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았나요?

       -하지만……이런 걸 받고 그냥 갈 수는 없어요. 혹시 돈이나 다른 걸 요구를 하셔도…….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마야 양이 원하는 길을 걸어가세요. 그게 제 요구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그가 이 마법의 개발자라고 발표하는 것도 거부했다.

       큐브 하나 만들지 못하는 자신이 환상 마법을 개발했다고 해봤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 했다.

       그녀가 증언해준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그는 돈도, 학문적 영예도 모두 별 가치 없는 것 취급했다.

       그녀의 재능도 원하지 않았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이상한 사람.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평생 별난 아이라고 시선을 받아왔던 그녀가 보기에도 그는 이상했다.

         

       원래 마야는 이런 초청장을 받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품에서 다른 봉투를 꺼냈다.

         

       아빠가 은막 아르노에게 자신의 딸을 잘 부탁한다고 보낸 편지가 그 안에 들어있었다.

         

       처음부터 이걸 쓰면 문제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당당히 도전해서 실력으로 입단하고 싶었다.

       만약 그래도 안 되면, 최후의 최후에 이 편지를 보여주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용하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했다.

       오롯이 그녀의 힘만은 아니었다.

       그 남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이해해주었다.

       그에 맞춰 최선의 길을 찾아주었다.

       옆에서 이끌어주고 응원해주었다.

       자신이 낸 결과를 인정해주었다.

         

       은막 아르노에게 인정을 받았을 때보다, 그에게서 수고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더 기뻤다.

         

       마야는 손에 든 두 장의 종이를 등불 안으로 집어넣었다.

       종이에 불이 붙었다. 바닥에 던진 두 편지가 서서히 재로 변해가는 것을 마야는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가 애초에 은막의 서커스단에 들어가려고 했던 이유.

       그것은 부모님이 있었던 곳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환상 마법을 익히기에 그보다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마야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까만 하늘에 금빛 별.

         

       그녀는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마침내 찾아낸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스승’이라고 할 만한 사람을.

         

         

       ***

         

         

       어제 마야를 은막의 시험에 합격시키고 돌아온 나를 기다리는 건 엘라의 잔소리였다.

         

       “정말 고맙네! 정말 고마워! 재밌으셨어요? 루즈 관광은? 내일로 선발은 끝이야. 끝! 정작 구한다는 곡예사는 한 명도 구해오지 못했잖아! 뭘 하고 돌아다닌 거야? 누구는 단원들을 지도하고, 프로그램 준비하고, 소도구를 만들고, 다른 경쟁 서커스단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바빠죽겠는데 말이야!”

         

       평소라면 원더스타인에게 이렇게까지 쏘아붙이지 못했을 그녀였다.

       하지만 충혈된 양쪽 눈에, 눈 아래 거멓게 낀 기미에 거친 피부까지.

       너무나 고생한 탓에 사소한 두려움 따위 잊어버린 듯했다.

         

       미안한 표정을 짓고 싶었지만 내 얼굴은 활짝 웃고 말았다.

         

       “며칠만 좀 더 수고해주세요.”

         

       순간 엘라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튄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방에서 유라크네가 타다 준 차를 마시며 곧 있으면 들어올 보상에 대해 생각했다.

         

       원더스타인의 과거 기억이 담긴 메모리 디스크.

       받자마자 입이 무거운 환상 마법사를 한 명 고용해 재생해볼 생각이었다.

         

       어떤 비밀이 담겨 있을까?

       트릴 트릴로 제로를 풀어나가는 열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이번 퀘스트에 무려 2주나 투자했다.

         

       용사들의 미래에 관련된 퀘스트였다.

       절대 허튼 보상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기대감에 부풀어 하루를 기다렸다.

       이제 곧 있으면 선발 마감 시간이었다.

         

       그때, 엘라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표정은 어제보다 상당히 풀려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의외라는 눈빛을 던졌다.

         

       “당신도 뭐……노력은 했네.”

       “네?”

         

       무슨 말이지?

       나는 그녀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고전적인 방식을 좋아하지만, 환상도 잘 쓴다면 나쁘지는 않지. 2주 정도 해보고 느낀 건데……지금처럼 배경, 소품, 특수 효과 내가 다 준비하는 건 무리야. 내 몸이 못 버티겠어. 당신 같은 농땡이 단장이랑 일하려니 말이지. 어쨌든 인력을 구해와 준 건 고마워.”

       “네?”

         

       무슨 말이지?

       인력이라니?

         

       엘라가 문을 열었다.

       그녀의 뒤로 하얀 머리카락의 마법사가 따라 들어왔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단장님.”

       “마야 양이 여긴 왜?”

         

       나의 말에 그녀는 나만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원하는 길을 걸으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왔어요. 제가 원하는 곳으로.”

         

         

       [‘마야 렌데린’이 단원 목록에 추가되었습니다.]

       [‘서브 퀘스트-마법사’를 실패하셨습니다.]

         

         

       갑자기 몰려오는 피로감에 나는 온몸에 힘이 빠졌다.

       ——–

         

         

         

       마법사 마야 (끝)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1년 8월 13일
    -도로시 님,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인절손 손절 안 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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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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