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4

       

       

       “···?”

       

       “사, 살려주신다면 뭐든지 할게요! 제발!”

       

       

       이건 또 뭐야.

       

       순간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잠깐 틈이 드러났지만, 땅에 머리를 박은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와아···. 그렇게까지 살고 싶어요?”

       

       “네! 네! 바, 발을 핥을까요?! 주인님!”

       

       “아뇨, 필요 없는데요.”

       

       “알겠습니다! 주인님!”

       

       

       주인님은 또 뭐야?

       

       누가 보면 뱀 수인이 아니라 개 수인이라고 착각하겠어.

       

       아니, 하반신이 뱀인 라미아처럼 생긴 여자라서 헷갈리지는 않겠지만, 행동이 말이지···.

       

       

       “하아, 어쩐담. 죽이려고 했는데.”

       

       “히, 히익! 죽이지 마세요! 저 빨래 잘해요!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해요! 집안일 노예로 써도 되지 않을까요?!”

       

       “···.”

       

       

       패닉 상태에 빠진 걸까. 말이 통할 것 같지 않다.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렇게 살고 싶을까?

       

       공격하거나 반항의 기미가 보이면 가차 없이 죽일 예정이었다. 어차피 죽여야 할 예정이었고, 별다른 감흥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살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오묘해졌다.

       

       지금껏 내게 덤벼든 놈이 이렇게까지 비굴할 정도로 살기 위해 행동한 적은 없었는데.

       

       

       [독자님, 고민하시는 거에요? 그냥 죽여버리면 괜찮을 텐데. 그러려고 오신 거잖아요?]

       

       “···그렇죠. 그래요.”

       

       

       작가님의 말대로다.

       

       저 뱀 수인은 소설 전개의 방해꾼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인형일 뿐.

       

       작가님의 설정 변경에 영향을 받아 생겨난 2,400여 명의 악역 인형 중 한 명일 뿐이다.

       

       게다가 이렇게 시간을 오래 끌고 있으면 공포에서 벗어난 빌런들이 갑자기 들이닥칠지도 몰랐다.

       

       그러면 수적 우위에 자신감을 얻은 저 여자는 다시 내 뒤통수를 노릴 수도 있겠지.

       

       죽이는 게 편하고 확실하다.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래, 그렇다. 죽이는 게 편하다.

       

       

       [···? 독자님?]

       

       “그 다리, 숨길 수 있나요?”

       

       “네, 네! 가능합니다! 숨길 수 있어요! 죽이지 말아주세요!”

       

       “집안일, 잘한다고 했던가요?”

       

       “예, 예! 맡겨만 주세요!”

       

       

       그녀에게 궁금한 점을 이것저것 던져보았다.

       

       그 질문들에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직감한 걸까. 화색이 돈 얼굴로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독자님?!]

       

       “메이드, 한번 보고 싶었거든요.”

       

       [우으, 변명이에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그래, 안다. 변명이다.

       

       작가님의 실수로 생겨난 2,400여 명의 빌런. 그중 1,600명을 제거하는 게 현재의 목표다.

       

       굳이 한 명을 살릴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그게 간부라는 중요 직책을 맡은 사람이라면.

       

       게다가 작가님과 틀어질 가능성마저 내포한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죽여버리는 게 상책이야.

       

       ···하지만, 하지만.

       

       비굴할 정도로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눈치챈 건지, 그녀가 다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동료를 죽인 적에게 머리를 박고 저렇게 웃는다니.

       

       인형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아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동료의 죽음에 분노하는 소설 속 멋진 등장인물이 아니라, 자기의 보신을 생각하는 현실적인 사람 같아서.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어서 실감이 가지 않는 멋진 사람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자주 보았던 평범한 사람을 보는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생을 구가하는 모습이 살아있는 걸 보는것 같아 속이 뒤틀렸다.

       

       

       “···그래, 비밀 결사의 일원이라는 건 어떨까요.”

       

       [네, 네···? 비밀 결사요?!]

       

       “마침 잘됐네요. 두 명밖에 없어서 허전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네?”

       

       “잘 왔어요, 스피라. 당신은 앞으로 아라크네의 일원입니다. 잘 부탁해요.”

       

       “네?!”

       

       

       아니, 그럴 리가.

       

       이 녀석은 인형이다. 틀림없어.

       

       그러니 이건 나의 변덕.

       

       사소한 변덕일 뿐이다.

       

       

       [우음, 확실히 비밀 결사가 고작 두 명인 건 조금···. 좋아요! 적대하는 조직의 배신자가 있는 비밀 결사···이것도 멋있어!]

       

       

       다행히도 작가님이 별다른 불만을 가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젠 동료가 된 스피라를 슬쩍 바라보았다.

       

       

       “자, 그럼 첫 번째 명령이에요. 메이드.”

       

       “네, 네! 무슨 일을 할까요?!”

       

       “방 밖으로 나가서, 옛 동료들을 죽이세요.”

       

       “?!”

       

       “···못하겠나요?”

       

       “아, 아뇨! 하겠습니다!”

       

       

       허겁지겁 방 밖으로 스피라가 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무거운 양털을 집어 던졌다.

       

       으윽, 너무 더웠어.

       

       생각보다 무겁기도 했고.

       

       

       “하, 하아···. 진짜 무겁네요, 이거.”

       

       [엄청 복슬복슬해 보이네요. 저도 안고 싶어요.]

       

       “물론 촉감이 기분 좋긴 했지만, 엄청 더웠거든요?! 이 꼴인데도! ···아니, 그것보다 빨리 옷 좀 주세요!”

       

       [아, 네. 깜빡할 뻔했네요.]

       

       

       깜빡할 게 따로 있지!

       

       아무것도 안 입고 있어서 양털 속에 파묻혀 있던 건데!

       

       하마터면 알몸인 거 들킬 뻔했잖아!

       

       딱 스피라 죽일 정도의 실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것도 격렬하게 저항했거나 일이 틀어진다면 모자랐을 거다.

       

       정확히 한번. 딱 한 번 공격할 실밖에 없었으니까.

       

       

       “자기 보신을 최고로 여기는 성격이라 다행이었네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아라크네 실시간 근황.jpg]

       

       (혐짤 주의 사진)

       

       (온통 붉은 피로 가득 찬 폐공장 사진)

       

       (뉴스 포털 하이퍼링크)

       

       

       위버멘쉬인가 뭔가 하는 빌런 조직 인원 몰살, 거기에 간부라고 생각되는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사망. 마지막 한 명은 실종.

       

       그들은 신인가?

       

       쓰레기 같은 빌런들 몰살시켜달라는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신께서 내려주신 사자인가?

       

       

       

       

       댓글 – 1176

       

       

       

       

       아멜리아는 휴대폰을 내려 댓글들을 확인해보았다.

       

       어깨너머로 같이 뉴스를 확인하던 시우의 입에서 우울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여기도 찬양, 저기도 찬양. ···다들 신났네.”

       

       “그야 그렇지. 자기들이 싫어하는 녀석들을 그야말로 지워버렸는걸.”

       

       

       시우는 아무래도 그 과열된 분위기가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댓글에도 간혹 그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댓글을 올렸지만, 이내 여론에 의해 뭇매를 맞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잘 모르겠어.”

       

       “나는 왜 이러는지 잘 알겠는데. 너도, 이 사람들도.”

       

       

       시우는 아무리 범죄자라도 사람을, 그것도 수백 명이 죽었는데도 찬양하는 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직접 빌런을 죽여봤기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의 무거움을 알고 있기에 그런 거겠지.

       

       생명의 무거움을 통감했기에, 그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듯했다.

       

       아무리 범죄자 집단이라고는 해도 말이야.

       

       ···하지만, 나는 이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도 알 것 같은데.

       

       

       “크건 작건, 빌런들에게 피해를 본 사람은 꽤 많으니까 말이야.”

       

       “그건···.”

       

       “알아. 저 사람들이 그 피해를 준 건 아닐 수도 있다, 그거지? 하지만 어떡해.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풀릴 것 같아? 저사람들 눈에는 다 똑같은 빌런이라고.”

       

       

       시민들은 초인이 아닌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빌런들은 대부분이 초인이고.

       

       그렇기에, 시민들은 필연적으로 빌런들의 초인범죄에 휘말리기 쉬웠다.

       

       

       “자기들이 당한 것에 비해 처벌이 낮다고 생각하는 거야. 피에는 피로. 눈물에는 눈물로.”

       

       

       빌런들이 사람을 죽여도 금방 석방되는 일은 종종 있었다. 만성적인 초인부족 현상 때문에.

       

       사법 거래를 통해 최전선에서 일정 기간을 복무하는 조건으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종종 있었다.

       

       

       “빌런은 사법 거래로 풀려나지만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잖아?”

       

       “···하지만, 빌런들의 최전선 생존율은 극악이야. 살아남기 아주 힘들다고. 최전선의 영웅들도 그들을 혐오하기에 그들이 위기에 빠지면 도와주지 않아. 고립된다고.”

       

       “그건 시민들도 알아. 하지만 돌아오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

       

       

       효율적인 방법이다.

       

       사법 거래로 협회는 부족한 초인 인력을 늘리고, 빌런은 평생 감옥에 썩는 대신 자유를 누릴 기회를 얻고.

       

       하지만, 감정은 효율을 따지지 않는 법.

       

       빌런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시민들은 빌런들이 자유를 누릴 기회가 온다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했다.

       

       최전선에서 생환한 빌런의 수가 지극히 적음에도, 아주 작은 수의 빌런이 사회로 복귀한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하는 거다.

       

       

       “어쩔 수 없지. 만약 내 부모님을 어떤 빌런이 죽였고, 그 빌런이 사회로 복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똑같이 행동할 거야.”

       

       “···그래. 그건 나도 이해해. 저 사람들을 뭐라고 하는 건 아니야.”

       

       “그럼 뭘 모르는 건데?”

       

       

       헛다리였나?

       

       시민들이 빌런들이 잘 죽었다며 축제 분위기인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있지, 이거. 아르테가 한 거겠지?”

       

       “···아마? 아라크네는 집단이라던데, 아르테가 참여했다면 그렇겠지.”

       

       “그럼 아르테는, 무슨 기분일까?”

       

       “응?”

       

       

       뜬금없는 소리를 들은 기분이었다.

       

       아르테가 무슨 기분이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게 가볍게 넘기고 싶었지만, 시우의 표정이 진지해 보여 쉽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을 때, 아르테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한동안 힘들었을 거야.”

       

       “그래. 그랬겠지.”

       

       “그럼, 저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아르테는 멀쩡할까?”

       

       “너, 무슨 소릴···.”

       

       “아르테가 지금 무슨 기분일지, 나는 잘 모르겠어.”

       

       

       아르테 이시스가 무슨 기분이냐니.

       

       뜬금없는 소리를 하고 있네.

       

       

       “당연히 별생각 없겠지. 걔도 빌런이라고, 빌런.”

       

       “···그런가?”

       

       “그래,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어떻게 꼬실지나 생각해 봐. 먼저 아티팩트를 찾거나.”

       

       “알았어.”

       

       

       그러나 그날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시우가 제대로 집중하지 못해 계속해서 잔소리를 퍼부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만 선작 달성! 와 짝짝짝!

    기념으로 노벨쨩에게 표지를 달라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다만, 일단 표지 ‘줘’만 해놓은 상태입니다.

    이미 첫 표지를 만드는 데 전력을 쏟아부어서일까요? 무슨 표지를 뽑고 싶은지도 생각이 나지 않네요.

    뭐, 제가 정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만요. PD님이 보고 정할 수도 있을 테니까.

    여러분들은 새 표지, 어떤 걸 보고 싶으신가요?

    ***

    사명진 님, 8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화이팅! 순항중이네요!

    레이호시 님, 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으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자세히는 말씀드리기 힘드네요.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예스에요 님, 39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제가 소설 속 ‘작가님’이었다면 소설에 집어넣어드렸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설함 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파이팅!! 독자님들 덕분에 항상 의욕이 나네요!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