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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참 별일이 다 있는 하루였다.

       

       정의로운 도둑의 점사를 봐주다니···.

       

       그것도 진급에 관한 걸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건 또 무슨 일이래?”

       

       집으로 가는 길에 뜨문뜨문 영혼들이 보였다.

       

       공동묘지 근처라 원래부터 많기는 했지만 평소보다 확연하게 많은 수 였다.

       

       “귀신들 사이에 소문이 났나…”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제삿상도 올리고, 길 잃은 잡귀들의 밥도 챙겨 주기는 했다.

       

       그렇다고 이틀 사이에 이렇게 영혼들이 많아질리는 없다는 것이다.

       

       “이상한 하루네…”

       

       아무리 봐도 우리 집으로 향하는 게 맞았다.

       

       한을 풀어달라고 찾아온 거라면 나한테 들러붙어야 할 텐데, 영혼들은 부지런히 집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안면이 있는 잡귀 하나를 불러세웠다.

       

       “다들 어디로 올라가는 거야?”

       

       – ….

       

       잡귀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마저 가던 길을 갔다.

       

       “이 새끼가…”

       

       기껏 밥차려주고 이야기 나눠 주고 했더니 대우가 아주 찬밥신세였다.

       

       무슨 일인지는 올라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영혼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아주 골고루들 모였네.”

       

       집으로 갈수록 그 숫자가 늘어났다.

       

       벌써 내 눈에 보이는 영혼들의 숫자만 거의 스무명.

       

       아주 더러운 잡귀를 비롯해 각양 각색의 영혼들이 모여 있었다.

       

       “귀신이 곡 할 노릇이네.”

       

       한두 명도 아니고 말이다.

       

       멀쩡히 잘 죽어 있던 귀신들이 왜 갑자기 우리 집으로 모이냐는 것이다.

       

       한참을 걸어올라가던 나는 또 진풍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집이 멀찍이 보이는 곳.

       

       거기에 더러운 기운을 가진 잡귀들이 모여 벌벌 떨고 있었다.

       

       꼭 무언가에 겁을 먹고 길을 멈춘 것 같았다.

       

       “너희는 왜 못 가고 모여 있냐?”

       

       아까 말을 걸었던 잡귀가 손으로 집을 가리켰다.

       

       표정을 보니 우리 집에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평소에는 잘만 오더니?”

       

       신당을 제외하고는 딱히 잡귀들을 막을 부적을 놔둔 적이 없다.

       

       와서 밥이나 먹고 가라는 마음으로 나름 활짝 개방을 해 놓았다.

       

       이들을 막을 것이 전무하다는 소리다.

       

       “얼씨구? 너도 여기 있냐?”

       

       우리 집 대가리였다.

       

       집에서 쫓겨난 강아지 마냥 떨고 있는 걸 보니 뭔가 있기는 한 것 같았다.

       

       “갈수록 이상한 하루네…”

       

       다른 영혼들은 이상이 없는 걸 보니 잡귀들만 막은 듯했다.

       

       집과 가까워진 나는 들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

       

       굉장히 맑은소리였다.

       

       피리 소리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듣고만 있어도 절로 마음이 편안 해지는 것 같은 느낌.

       

       “…세레나?”

       

       그 소리의 주인은 세레나였다.

       

       마당가운데에 홀로 앉아 있는 세레나.

       

       그녀의 손에는 작은 나뭇잎이 들려있었고, 그 손이 입과 맞닿아 있었다.

       

       내가 들은 소리는 풀 피리 소리였다.

       

       “…법사가 따로 없네.”

       

       피리를 부는 법사를 보는 듯했다.

       

       굿을 할 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법사라고 한다.

       

       악기만 다룰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었다.

       

       나름의 신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곡조가 흥을 이끌어내고 신이 나게 만드니 말이다.

       

       지금 세레나가 하는 것이 그와 비슷했다.

       

       “…이걸 어떻게 알고 모인 거야?”

       

       풀피리 소리가 마을까지 울려 퍼질리가 없다.

       

       나도 근처에 와서야 겨우 들을 수 있었으니까.

       

       마당으로 들어선 나는 영혼들이 모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장승…”

       

       미묘하지만 분명히 어제보다 커졌다.

       

       이목구비도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두루뭉실한 느낌에서 조금 선명하게 바뀐 얼굴.

       

       분명히 마주 보고 세워놨던 것이 각기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천하대장군은 잡귀들이 모여 있는 방향을.

       

       지하여장군은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얘네들이 길을 안내했나보네.”

       

       잡귀를 쫒고 영혼들의 길을 안내해주는 표지판.

       

       장승의 참기능이라 할 수 있다.

       

       “세계수의 가지라서 그런가…벌써 기가 쎄네.”

       

       잡귀들이 벌벌떨고 있던 이유가 천하대장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들의 눈에는 마치 칼을 잡은 기사와 같은 느낌일 것이다.

       

       장승이 마당을 지키고 있으니 집으로 못 들어 올 수밖에.

       

       순간, 들려오던 풀 피리 소리가 뚝 멎었다.

       

       조화롭던 분위기가 깨어지며 영혼들이 나에게 눈을 흘겼다.

       

       “…오셨어요?”

       

       세레나가 민망한 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장승을 쳐다보는 것이 저것과 관련이 있는 듯싶었다.

       

       아무래도 세계수이다 보니 무언가 느껴졌을 것이다.

       

       “…식사 준비해놨어요.”

       

       어떻게 찾은 건지 집안에 숨겨 놓은 술도 꺼내온 것 같다.

       

       지금 제삿상쪽은 그윽한 술판이었다.

       

       세레나의 피리에 단체로 관람을 하던 중이었나보다.

       

       피리 소리가 끊긴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어르신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단 피리를 계속 불어 줘야 할 것 같은데?”

       

       “계속이요?”

       

       “다들 날 째려보고 있거든.”

       

       “….”

       

       세레나가 고개를 휙휙 돌렸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는지 금세 나에게로 시선이 돌아왔다.

       

       “일단, 그 전에 먼저 할게 있어.”

       

       “….?”

       

       밖에 있는 잡귀들도 불러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왕 차린 밥, 먹여서 보내는 게 마음이 편할 것이다.

       

       “으음…어떻게 해야 하려나…”

       

       장승의 방향을 억지로 돌려볼까 하던 나는 술병을 쥐고 그 앞으로 다가갔다.

       

       조르륵 –

       

       “나한테 악의가 없는 영혼들이니 괜찮을 거야.”

       

       장승을 어루만지자 영기가 저절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거짓말 처럼 잡귀들이 이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와…괜히 오라고 했나…”

       

       어지간한 장면을 가져다놔도 이 보다 더 공포스럽진 않을 것이다.

       

       흉측하게 생긴놈들이 떼거리로 몰려오는 꼴이라니···.

       

       하지만 여전히 장승이 무서운지 흘끔흘끔 눈치를 보고 있었다.

       

       “가서 밥이나 먹어. 세레나 덕분에 겸상을 하는 줄 알아.”

       

       – ….

       

       – ….

       

       세레나를 향해 인사를 하는 잡귀들.

       

       그래도 그동안 착실하게 교육을 시켰더니 아주 예의가 발라졌다.

       

       심지어 대가리는 삿된 기운이 처음 보다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나름 신당 지킴이라고 업이 벗겨진 모양이다.

       

       “너넨 도대체 언제 성불할래?”

       

       – ….?

       

       “어르신들 말고요…”

       

       도대체가 왜 이곳으로 오는 영혼들은 성불을 하지 않는 건지···.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얼른 갈길 가는 게 서로 편할 텐데 말이다.

       

       영혼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모두가 세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움찔.

       

       “소름 돋지?”

       

       끄덕.

       

       세레나도 신가물인데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가 없다.

       

       이 정도의 시선이라면 영감이 좋은 일반인도 괜히 오한이 들 테니까.

       

       “전부 피리 부는 거 기다리는 것 같은데?”

       

       “….영혼들만요?”

       

       “그럼?”

       

       세레나가 대답도 없이 걸어갔다.

       

       “…왜 저래?”

       

       – ….

       

       어르신들이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대가리새끼는 아주 머리를 던졌다 받았다하며 신나 있었다.

       

       “이 양반들이…”

       

       그리고 세레나의 피리소리가 그윽하게 퍼져나갔다.

       

       세계수와 똑 닮은 연주였다.

       

       너나 할 것 없이 조용한 연주에 빠져들어 갔다.

       

       바람이 스치는듯했으며 유난히 풀냄새가 짙었다.

       

       “….”

       

       조화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기운들이 어우러지다 못해 마음마저 조화로워졌다.

       

       이 순간만큼은 산자와 망자의 구분 없이 모두가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또한 선한 영혼과 악한 영혼의 구분도 없었다.

       

       사람이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마음이니까.

       

       “허….”

       

       어떻게 보면 굿과도 비슷했다.

       

       내가 하는 것이 다른 영혼을 대신해 놀아주는 것이라면,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다.

       

       “이래서 굿에는 음악이 필요하지.”

       

       굿이라는 것이 결국 신나게 놀면서 한을 내려놓는 것이다.

       

       다 같이 흥이나야 안 좋은 마음이 풀린다.

       

       굿을 하는 무당 또한 흥이나야 신이 난다.

       

       신나게 방울을 흔들어야 하니까.

       

       “요즘 너무 안 좋은 굿만 했네…”

       

       듣기만 해도 몸이 나른해지고 편안해졌다.

       

       잡귀들마저도 한을 내려놓고 조용히 세레나를 바라봤다.

       

       소리와 어우러진 세레나의 모습은 그림 같기도 했다.

       

       스으으 –

       

       바람이 불어왔고, 피리의 곡조는 구슬펐다.

       

       누구를 떠올리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영혼들의 마음을 흔들었으리라.

       

       이들도 누군가를 떠나온 사람들이니···.

       

       “듣기 좋네.”

       

       슬픔과 가까이에 사는 사람.

       

       그게 무속인이다.

       

       무업을 이어 나가는 동안에는 항상 한과 마주하며 사는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 고생했던 심신이 깔끔하게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

       

       그리고 피리의 소리가 멈추며 모두가 그윽함에서 깨어났다.

       

       – …

       

       세레나가 조용히 다가와 옆에 앉았다.

       

       “…어땠어요?”

       

       “다들 마음에 들어하네.”

       

       “당신을 말하는 거예요.”

       

       “…나?”

       

       세레나가 다음으로 한 말은 뜻밖의 말이었다.

       

       “…위로가 됐나요?”

       

       위로라는 단어가 새삼 낯설게 들려왔다.

       

       해주기만 하던걸 받아서 그런가···.

       

       “…크리스를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서요.”

       

       “….”

       

       뭐라고 해야 할까, 굉장히 낯간지러운 순간이다.

       

       이런 걸 영혼들은 어떻게 받아 온 걸까.

       

       앞으로 사연을 들어줄 때 신경을 좀 써야 할 것 같았다.

       

       “훌륭하네. 무당해도 되겠어.”

       

       “…”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뭐라도 말을 하지 않고는 버티기가 간지러운 침묵이었다.

       

       “…아직도 악몽 꿔?”

       

       “…”

       

       대답이 없는 세레나.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장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레나를 따라 시선을 돌린 나는 장승을 보고 멈춰 섰다.

       

       어느새 장승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이거 왜 이래?”

       

       “…”

       

       *** 

       

       아침이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세레나 포지션 괜찮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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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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