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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한편 키르린은 먹던 케이크도 내팽개쳐 놓고 아카데미 동문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아까 특기생 소피에가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며 점점 커지는 통에 느긋하게 케이크나 먹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디안이 나이틀리를 개인교습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키르린이 먼저 디안에게 무릎 꿇고 부탁했으니까.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둘의 관계가 이런 방향으로 발전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내가 너무 안일했어…. 둔하고 게을러 터져서는…. 멍청하긴!

       

       만약 소피에 학생이 한 말이 정말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안 되는데!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아카데미 동문에 도착한 키르린이 본 것은 서로 연결한 두 대의 수레에 실려 오는 육중한 트롤과 수십 명의 경비병들.

       

       “조심조심! 왼쪽 천천히 움직여!”

       

       그앞에서 디안이 양팔을 움직이며 수레를 유도하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교장님 오셨어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트롤입니다. 아카데미 동쪽에 출몰한 것을 잡아 왔어요. 저놈 피를 쓰면 질 좋은 회복물약을 만들 수 있거든요.”

       “아카데미 동쪽이라면… 동문 밖?”

       

       당연한 질문을 던지는 키르린을 디안이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맞아요.”

       “나이트리 학생이랑 개인교습하러 간 거 아니었어…?”

       “웨이버 교수랑 나이틀리랑 같이 갔어요. 이왕 사냥하는 거 나이틀리 대마물전투 실습도 겸해서요.”

       “그래? 그게 정말이야? 하아, 다행이다….”

       “뭐가 다행이라는 겁니까? 어? 울어요?”

       

       디안의 말에 키르린이 황급히 촉촉해지 눈가를 닦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좋아서….”

       “좋죠? 저놈 피로 만든 회복물약은 일부는 우리가 쓰고 나머지는 모두 2황녀님께 보낼 겁니다. 현장요원들용으로요. 그럼 2황녀님께서 우리를 어여삐 보시고 더 많은 지원도 해주시고 교장님도 자리 지킬 수 있고….”

       

       흥에 겨워 말하는 디안을 키르린은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빤히 바라봤다.

       

       소피에 학생이 오해를 했구나…. 정말 다행이야….

       

       

       # # # # #

       

       

       당장이라도 눈물을 후두둑 흘릴 기세인 키르린을 보며 생각했다.

       

       왜 저러는 거야? 그리고 갑자기 가터벨트에 스타킹이라니?

       

       원래 바지 입고 다니지 않았었나?

       

       “수석교수님!”

       

       그때 마법대응교수 오렌디가 허공에서 나타나 내 옆에 내려섰다.

       

       “북문 쪽 지하연구실에 마법구축을 완료했습니다.”

       “확실하게 한 거지?”

       “그럼요. 트롤 하나쯤 행패를 부려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어요.”

       “잘했어.”

       

       이번에 포획한 트롤은 북문에 안 쓰는 지하연구실에 가둘 계획이다.

       

       오렌디가 이미 내 지시를 받고 거기에 이런저런 마법들을 걸어 뒀고 저 트롤은 거기 갇혀서 정기적으로 헌혈을 할 것이다.

       

       그것도 실습의 일종으로 수업에 포함시킬 수 있겠지.

       

       자고로 마물은 사냥하면 부산물이 쏠쏠한 법이고 특히나 트롤은 그 피가 아주 귀하니까 취급하는 법을 배워둬서 나쁠 거 전혀 없다.

       

       “계속 이동한다! 앞에 애들 치우고!”

       

       경비대를 인솔해 무사히 트롤을 지하연구실에 집어 넣고 이스메라 교수를 불렀다.

       

       “헉?!”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트롤을 본 이스메라 교수가 기겁하면서 헛숨을 들이켰다.

       

       “뭐… 뭔가요, 저건?!”

       “트롤입니다.”

       “트롤인 건 아는데, 저게 왜 아카데미에 있어요?!”

       “제가 잡아 왔어요. 회복물약을 만들려고요. 트롤의 피의 효능에 대해서는 교수님도 잘 아시죠? 그래서 말인데요.”

       

       트롤의 활용방안에 대해 설명하자 이스메라 교수가 질색팔색을 하면서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짓은 할 수 없어요!”

       

       평소라면 호호 웃으며 말을 빙빙 돌렸겠지만 내 계획이 어지간히도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문제 없어요, 이스메라 교수님. 여러 사람이 좋은 일이에요. 저 트롤만 빼고. 그런데 트롤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살아 있는데….”

       

       채식주의에 박애주의와 자연보호주의까지 가지가지한다.

       

       “됐고, 이론학과에 제조과목이 있죠? 거기다 실습으로 포함시키세요. 트롤 제어하는 건 우리 전투학과에서 지원하겠습니다.”

       “교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한테 더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을 잘 아는 이스메라가 키르린을 돌아봤다.

       

       “디안이 잡은 거니까 디안이 하자는 대로 하자.”

       

       말문이 막힌 이스메라가 묻는 눈빛으로 나를 들아봤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이스메라의 복장을 터뜨렸다.

       

       “마음대로 하세요. 단 문제가 생기면 두 분께서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그러죠, 뭐. 그럼 이스메라 교수님도 동의하신 겁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교장님과 전투수석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뿐입니다. 이건 확실히 할게요.”

       “그러세요.”

       

       저저 엘프년이….

       

       

       # # # # #

       

       

       이후로는 평소와 똑같았다.

       

       힌드라스타는 그때 졸업1반 양아치들을 혼내준 이후로는 이렇다 할 말썽 부리지 않고 잘 적응하고 있다.

       

       다시 본체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도망갔다간 라이너스가 쫓아올 테니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게 상책이지.

       

       물론 라이너스는 오지 않을 테지만. 애 보느라 바빠.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놈에게서 편지가 한 통 더 왔다. 초대장이었다.

       

       이제 외부인이 집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으니 빠른 시일 내에 올 수 있는 날을 알려달라는 내용.

       

       이번주 주말이 적절할 듯 싶어서 그렇게 답장을 보냈다.

       

       올리시아에게는 시내에 나가서 갓난아기 있는 집에 가져갈 적당한 선물들을 좀 알아보라고 시켰다.

       

       내가 직접 고르고 싶은데 이거야 원 바빠서 시내에 나갈 틈이 있어야지.

       

       그런데 혹시 로르마네도 초대했으려나 궁금하네. 교단 총사무장이라 아마 시간 내기 어려울 듯한데 말이야.

       

       로르마네는… 안 왔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어서….

       

       로르마네는 정말이지….

       

       그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린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그것을 서둘러 떨쳐냈다.

       

       아무래도 교내순찰을 돌아야겠어. 가만히 앉아 있다간 계속 생각나겠다.

       

       실습용 목검을 집어 들고 교수동을 나와 교내를 활보했다.

       

       “안녕하세요, 수석교수님….”

       

       나와 마주친 학생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하며 주춤주춤 옆으로 비켜섰다.

       

       이상하네. 예전에는 와글와글 몰려와서는 시끄럽게 굴더니 오늘은 왜 이러지?

       

       “히익?!”

       

       또다른 학생은 마치 불결한 뭐라도 본 것처럼 호다닥 도망치기까지. 이거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거기 너! 이쪽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고 시선을 회피하는 학생 하나를 지목했다.

       

       “얼른 와, 얼른.”

       “저 아무 것도 안 했는데요….”

       “내 눈을 피한 게 잘못이야.”

       

       학생이 가까이 오자 실습용 목검을 어깨에 걸치며 물었다.

       

       “요즘 무슨 일 있냐? 왜 다들 나를 피해?”

       “아무 일도 없어요….”

       “이 녀석이? 똑바로 말 안 해?”

       “정말로 아무 일도 없어요!”

       

       비명처럼 말끝을 올리며 학생이 멀리 달려가 버렸다. 뭔가 일이 있기는 한가 보네.

       

       같은 학생인 나이틀리에게 한번 물어볼까.

       

       힌드라스타에게는 애초에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 녀석은 나이틀리와 달리 나에게 엄청나게 적대적이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게 분명해.

       

       역시 나이틀리에게 가보자.

       

       

       # # # # #

       

       

       한편 나이틀리는 추종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이틀리. 너도 들었지? ‘그 소문’ 말이야.”

       

       그 소문이란 지금 아카데미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디안-나이틀리 스캔들’.

       

       젊고 유능하고 잘생기고 위트 있는 수석교수가 아카데미 수석에 혈통 좋고 예쁜 여학생과 그렇고 그런 사이란다.

       

       대체 어느 누가 이 소문에 편승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진작 아카데미가 뒤집어져야 할 소문인데 의외로 조용하다.

       

       그것은 소문을 유통하고 소비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쉬쉬하면서 암암리에 말을 옮기고 있기 때문.

       

       디안 교수는 전투수석교수에 예전부터 소문으로 비밀황자다, 힘을 숨긴 귀족이다 등등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리고 나이틀리의 경우는 이미 차가운 성격에 대귀족 톨루즈가의 영애라 일반학생들은 말조차 걸지 못하는 존재.

       

       이런 이유로 나이틀리와 친하다고 착각하는 추종자들만 용기를 내어 나이틀리에게 그 일을 언급하고 있는 중이다.

       

       “어떤 소문이지?”

       

       평소라면 ‘좆까지 말고 저리 꺼져’라는 뜻의 표정과 말을 했을 나이틀리가 오늘만큼은 다소 온화한 태도로 추종자들에게 물었다.

       

       “그, 왜… 전투수석교수가… 너를 교수실로 불러서 강제로 나쁜짓을 했다고….”

       

       ‘단 둘이 아카데미 동문으로 나갔다’가 현재는 ‘교수실에서 강간을 당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까지 파생되고 있었다.

       

       ‘전학생이라 몰라서 그러는데’라 시작한 힌드라스타의 분탕이 여기까지 온 것.

       

       그 말을 들은 나이틀리는 코웃음을 쳤다.

       

       “강제로 뭔가를 한 적은 없어.”

       “뭐가 있기는 한 거야?”

       “있기는 하지. 하지만 그건 나와 교수님만의 비밀이야. 너희들까지 알 필요는 없어.”

       “그럼… 교수님하고 사귄다는 게 정말이야…?!”

       “말했잖아? 너희가 알 필요 없는 것들이라고.”

       

       개인교습은 비밀이니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사귀지 않으니 사귄다고 하지도 않았다.

       

       “세상에….”

       

       추종자들이 입을 막으며 서로를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보는 나이틀리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내걸렸다.

       

       안 그래도 요즘 아카데미 내에서 디안 교수의 인기가 하늘을 찔러서 내심 걱정을 하던 차였다.

       

       거기다 뛰어난 특기생이 선발되어 들어오면서 행여나 디안 교수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는 거 아닌가 했는데.

       

       갑자기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퍼뜨리면서 오히려 좋아졌어.

       

       그냥 입 다물고 있기만 해도 알아서 다들 디안 교수와 나를 단단히 엮어주고 있잖아?

       

       최초 소문 유포자가 어떤 미친 인간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감사해야겠어.

       

       디안 교수는 내 거야. 나만의 개인교수라고. 아무한테도 못 줘….

       

       “야, 나이틀리! 뭐 좀 물어보자!”

       

       그때 저편에서 디안 교수가 나이틀리를 불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마음 같아서는 이번 구간은 연참으로 빨리 빼고 싶은데 현생이 바빠 그러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하루의 유일한 낙이 AI그림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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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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