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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여우, 여우라. 참으로 좋은 동물이지.”

         

       진성은 영국에서 용병 활동을 할 때 보았던 붉은 여우들을 떠올렸다.

       다른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화력이 좋은 길고양이처럼 붉은 여우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았고, 재주를 부리거나 애교를 부려서 먹이를 얻어먹는 등 영악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게다가 지능까지 좋아서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널려있는 여우들 덕분에 진성은 손쉽게 주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심장사상충(Dirofilaria immitis)이나 에키노콕스(Echinococcus)같은 기생충도 손쉽게 수집할 수 있었고, 그렇게 수집한 재료들을 이용해 암살 의뢰를 수행하곤 했었다.

       특히 에키노콕스로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 반응을 일으켜 죽이면 알레르기 때문에 사망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자연사로 위장하기도 참 좋았다.

         

       ‘여우 가죽으로 그렇게 주술을 쓰고 다녔거늘, 참으로 그립구나.’

         

       게다가 여우의 쓰임새는 기생충 수집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우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그것이 부정적인 면으로도, 긍정적인 면으로도 묘사되곤 했지만 공통으로 ‘지혜로움’이라는 것이 깔려있기에 범용성이 좋은 편이었다.

       당연하게도 지혜와 관련된 동물이기에 여우로 거는 주술은 지혜에 영향을 주는 것이 많았다. 주술마다 차이는 있었으나 대부분의 여우 관련 주술은 뇌의 기능을 향상하는 것이 많았고, 그 덕분에 진성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여우 가죽을 챙겨 다니며 동료들에게 주술을 걸어주곤 했었다.

         

       ‘나중에는 걸어준다고 해도 피했지만. 쯧쯧쯧.’

         

       뇌 기능 활성화.

       하지만 뇌라는 것은 매우, 매우 섬세한 것이다.

       그것을 인위적으로 활성화를 시키니 문제가 안 될 리가 없었다.

         

       전두엽에 문제가 생겨서 과집중 상태에 놓인다거나, 배외측전전두피질이 맛이 가버려서 응용력이 크게 떨어진다거나, 안와전두엽의 손상으로 분노조절 장애에 걸린다거나 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게다가 어떤 마법사는 뇌파 이상으로 마법이 불안정하게 변하기도 했고, 도파민 신경계 이상으로 전투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그 때문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여우 가죽으로 주술을 걸어주고, 그 덕분에 더 뇌 기능이 망가지는…악순환이 반복되기도 했다.

         

       비난?

       하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진성을 비난하진 않았다.

         

       애초에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 하고, 전투 시작 전에는 디자인된 약물을 마시고 나서는 것이 일상인 것이 용병이다. 진성의 주술이 아무리 뇌를 망가뜨린다 한들 약을 퍼마시는 것보다 망가지겠는가.

         

       특히 세계 3차 대전이 터진 후에는 반쯤 정신줄을 놓고 다니는 놈들이 대부분이었으니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사는 것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했다. 뇌를 절제하는 것도 아니고 살짝 고장 나는 정도인데 그거 가지고 난리를 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용병 생활이 거칠긴 했지만, 보람은 있었지.’

         

       물론 제 몸을 지나칠 정도로 사리는 놈들은 진성을 질색하며 멀리했다.

       기생충으로 사람을 망가뜨리고 탄환 쓰듯이 동료 목숨을 소비한다는 이유였다.

       그들은 진성과 진성의 동료들을 미친놈이라 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여우 가죽은 물론이고 여우만 봐도 기겁을 하곤 했다.

         

       “여우. 여우라.”

         

       진성은 문득 이아린이 떠올랐다.

         

       ‘맹수를 모방하는 무공. 거기에 여우. 흠.’

         

       그는 무언가 고민하는 듯 슬쩍 핸드폰을 꺼냈다가 리세를 쳐다보았다.

       리세는 얌전히 진성의 한 발 뒤에 서서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진성을 공경하며 뒤따르는 모습처럼 보였다.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는 말하자면 개에 속할 것이다. 그리고 여우 역시 개에 속하니….’

         

       리세의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가 전등 빛에 반사되며 빛을 발했다. 신력 때문인지 유난히 윤기가 흐르는 머리카락은 광택이 있는 실처럼 빛을 발하며 흐르는 것 같았다.

         

       진성은 뒤를 돌아 리세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슬쩍 쓰다듬었다. 리세는 그것에 살짝 놀라는 듯했으나 진성에게 그대로 몸을 맡기려는 듯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흐음.”

         

       진성은 매끄러운 명주실처럼 부드럽고 매끄럽게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의 감촉을 느꼈다. 그리고 광케이블에 신호가 점멸하듯 빠르게 머리카락의 끝까지 도달했다가 다시 몸으로 되돌아가는 신력의 흐름 또한 느꼈다.

         

       “넘치는 신력이 머리카락까지도 흐르는구나.”

         

       리세에게 아낌없이 부어지는 신력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흐를 정도로 넘쳐났다.

         

       ‘일단 문자는 보내보는 것이 좋겠구나. 어차피 둘 다 여우를 받으면 실은 없고 득만 가득하니 차이가 있다 한들 선후의 차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아린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곤 돗토리현과 관련된 권력자가 누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며 리세와 함께 숙소로 향했다.

         

         

        * * *

         

         

         

       『 러시아에서 생활은 견딜 만 하느냐? 나는 일본에서 잘 지내고 있다. 좋은 정보 덕분에 수확도 좀 있었고, 지금에 와서는 여유가 생겨 축제 구경을 좀 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축제를 보니 네가 생각나서 이렇게 문자를 보낸다. 국제 교류라고 하더라도 휴일은 있을 터, 짬을 내서 일본으로 넘어와서 같이 축제 구경을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소개해줄 인맥도 있고 줄 선물도 있다. 』

         

       이아린은 무공 수련이 끝나고 확인한 핸드폰에 와 있는 긴 문자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놈의 오래비, 이제야 연락을 하네.”

         

       그녀는 얼굴에 반가움과 기쁨을 한가득 띄우며 문자를 천천히 읽었고, 잠깐 고민을 하다가 핸드폰을 들고 이세린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타다닥!

       탓!

         

       그녀는 단순히 뛰어가는 것이 아닌, 창문을 넘고 창밖의 나무를 타고 넘는 등 짐승처럼 움직이며 순식간에 방에 도착했고, 익숙하게 창문에 똑똑 노크를 했다.

         

       “…이 바보가.”

         

       이세린은 살짝 인상을 쓰며 창문을 열어주었고, 고양이처럼 방으로 점프하는 이아린을 향해 잔소리를 날렸다.

         

       “내가 창문, 창문으로 드나들지 말랬지. 맨날 그렇게 다니니까 러시아 학생들이 퓨마 커리안커(Puma Корея́нка)라고 부르잖아!”

       “왜~퓨마 커리안커. 영어로는 퓨마 코리안 걸! 히어로 이름 같지 않아? 멋지잖아~”

       “그…. 하아.”

         

       이세린은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이아린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찬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을 굳게 걸어 잠그곤 물었다.

         

       “그, 그래서…. 이번엔 또 뭐야?”

         

       이아린이 교환 학생으로 와서 얼마나 사고를 치고 다녔는가.

       허구한 날 기행을 일삼고 다니는 것이 일과였다.

         

       햇빛이 좋을 것 같다는 이유로 수업을 빼먹고 옥상으로 올라가 일광욕을 하지를 않나, 곰이 맥주를 마시는 것을 보고 얻어 마시고는 취하지를 않나…. 심지어는 그 곰이랑은 코드가 잘 맞은 모양인지 종종 만나서 맥주와 콜라를 마시는 친구가 되기까지 했다.

         

       “이번엔 경고받을 정도는 아니지?”

         

       그렇기에 이세린의 말투는 자연스럽게 걱정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아린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경고와 벌점에 대한 걱정.

         

       하지만 이아린은 자기가 맨날 사고만 치는 줄 아냐며 적반하장으로 이세린에게 화를 내더니, 스마트폰을 그녀에게 쓱 내밀며 소리쳤다.

         

       “자! 봐! 오래비한테 문자가 왔어!”

         

       이세린은 그 말에 스마트폰을 건네받고는 문자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러시아에서 생활은 견딜 만 하느냐….’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되는 진성의 문자는 정말 길었다.

       그동안 보내지 않은 내용을 모조리 한 군데에 쑤셔 박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길었다.

         

       그렇게 한참 문자를 읽던 이세린은 순간 글을 내리는 것을 멈췄다.

         

       “노린내가 나.”

         

       선물.

       그 단어에 꽂히기라도 한 듯 이세린은 그대로 시선을 멈췄다.

         

       [ 선물, 선물이라. 단어에서 이렇게 지독한 노린내가 풍기는 것은 참으로 간만이로다. 무슨 비밀을 품고 있길래 이리도 지독한 내가 나는지 모르겠구나. ]

         

       악마 역시 노린내 때문에 코가 아프다는 듯 찡그렸다.

       낙타의 얼굴로 찡그리니 얼굴이 구깃구깃 구겨진 것 같아 우습게 보이기도 했으나, 그 얼굴에는 진지함이 한껏 묻어 있었다.

         

       [ 선물이라는 것은 필시 비밀을 품고 있는 단어이고, 비밀과 관련된 것이라면 나의 영역이다. 그러니 계약자야, 비밀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계약자야. 너 역시 이 단어에서 풍기는 것에 대한 편린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이세린은 노린내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며 문자를 확대하고 ‘선물’이라는 글자에 집게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이세린의 시야에는 금빛 실타래가 허공을 부유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비문증처럼 허공에 뜬 채 의미 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고, 밝은 조명을 눈앞에 두고 눈을 감았을 때 빛이 새어 들어와 눈이 부시게 하는 것처럼 그것들은 끊임없이 빛을 발하며 서로 뭉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형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은빛으로 빛나는 진동이 싹 퍼져나가며 금빛 실타래를 감쌌고, 금빛 실타래는 하늘거리며 움직이며 그 형상을 이루니 그 모습이 금색 실로 그린 그림과 같았다.

         

       ‘여우.’

         

       금빛 실은 여우의 형상을 그렸다. 금빛 여우는 윤기가 흐르고 반짝반짝 빛나는 털을 하고 있었는데, 금빛 실로 만들어져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물방울도 그대로 타고 흐를 것 같은 매끄럽고 아름다운 털을 하고 있었다. 그 여우는 두 개의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무언가를 먹고 있었는데, 그것은 납작하고 네모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손.’

         

       하지만 그 즐거움도 잠시. 여우에게 거대한 손이 닿았다.

       거인의 손을 연상케 만드는 손은 닫힌 눈꺼풀에서 여백으로 만든 것처럼 잘 보이지 않는 희끄무레한 어둠의 색을 띠고 있었고, 그것은 여우를 쥐어짜기라도 하려는 듯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그리곤 그것을 반죽하듯 움직이며 금빛 실타래를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형상은 사람의 모습을.

       사람의 모습을….

         

       ‘어?’

         

       사람의 모습이 변한다.

       어린아이가 손으로 크레파스를 쥐어 잡고 대충 그린 것 같은 사람의 형상이 뭉개진다. 형상이 뭉개지고 다시 실타래가 되어 뭉치가 되고, 다시 풀려나며 그 형태가 뚜렷해진다. 핵처럼 중간에 박힌 작은 원, 그리고 그 원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커다란 원의 선. 그리고 마치 번개가 퍼져나가듯 원에서는 가느다란 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그것들은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어느 선을 기점으로 움직임을 멈추며 또 다른 도형을 만들어나갔다.

       그 도형은 완만히 곡선을 그리는 선 두 개가 만들어내는 형태.

       그 모습이 마치 눈과 같다.

         

       눈.

       사람에서 눈으로.

       사람의 형태가 눈으로 변했다.

         

       그 눈의 모양은 웃기라도 하는 듯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윽!”

         

       이세린은 그 순간 눈에서 느껴지는 짜릿함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퍼뜩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 허? 이게 무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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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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