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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1.

       

       뒤에 숨어서 계략을 꾸미는 건 엘레나의 특기라고 봐도 좋았다. 

       

       물론 그게 엘레나가 다른 범상한 이들과 궤를 달리하는 어마어마한 천재라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묘수를 짜낸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엘레나의 특기이자 장기인 이유는 간단했다.

       

       엘레나는 주어진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이용할 수 있었고,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비상했다.

       

       바로 지금처럼.

       

       “……그렇단 말이지.”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의 산을 검토하며 엘레나가 입술을 훑었다.

       

       사실 그녀가 국정에 관여할 수 있는 분야는 지금처럼 이렇게 많지 않다. 어디까지나 엘레나는 그녀의 언니, 즉 황태녀의 유사시를 대비한 부속품 정도의 취급을 받는 2황녀였으니까.

       

       어디의 공작이니, 또 어디의 후작이고 어디의 백작이니 하는 허울 좋은 작위는 많이 갖고 있어도 영지나 실권은 거의 없는 게 그 방증일 터.

       

       다만 지금은 시기가 적절했다.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인데.”

       

       책상 위에 가득 쌓인 서류 사이에서 필요한 것들만 골라 빼낸 엘레나가 뇌까렸다.

       

       그녀의 모친, 그러니까 제국의 황제는 최근 들어 와병 중이었다.

       

       그리고 황태녀는 국경 부근에서 발생한 소란을 해결하기 위해 몇 주씩이나 수도를 비우고 있는 상태. 자연히 황제나 황태녀가 처리했어야 할 국정 현안의 일정 부분은 엘레나의 손으로 넘어왔다.

       

       그게 군사나 외교적인 측면의 민감한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의 결정권으로도 엘레나가 착실히 계획을 세우기엔 충분했다.

       

       혼잣말을 뇌까린 엘레나의 시선이 눈앞의 서류로 향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황제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축제와 무도회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실무자들의 계획서였다.

       

       ‘원래라면 황제도 병에 들었으니 간단하게 치르고 끝내려고 했겠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면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친목과 결속을 도모하는 자리인 만큼, 아예 치르지 않을 수는 없고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는 쪽으로 기울었던 것이 엘레나의 생각.

       

       하지만 그 비상한 판단력이 조금은 애먼 방향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황제의 탄신일 기념 축제와 그 축제에 수반되는 무도회를 어떻게 열지, 그 결정권은 오롯이 엘레나의 손에 쥐여져 있다.

       

       제국에서 일 년에 가장 큰 규모의 이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이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엘레나의 원대한 포부와 야망을 달성하는 건 일도 아닐 터.

       

       씩.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그림이 그려지고, 자연히 엘레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야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끌어올 수 있을지.

       

       순식간에 계산이 끝난 덕분에.

       

       평년처럼 화려하게 개최하는 계획안을 골라 승인 도장을 찍은 엘레나가 실무진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황녀 전하.”

       “3번 계획안을 입안한 게 경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엘레나의 호출에 곧장 달려온 실무자가 고개를 숙이자, 엘레나의 입꼬리가 한 층 더 올라가 묘한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올라간 입꼬리 그대로 도장이 찍힌 계획안을 넘겨주며 엘레나가 느긋하게 덧붙였다.

       

       “경의 계획을 채택하기로 결심했네. 가장 짜임새가 괜찮더군.”

       “감사합니다, 전하. 제 부족한 계획을 치하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보완할 부분이 있는데…….”

       “경청하겠습니다.”

       

       엘레나가 승자의 미소를 머금었다. 언뜻 사악하게도 비치는 그 미소와 함께, 거부할 수 없는 악마의 유혹처럼 은근한 목소리로 엘레나가 속삭였다.

       

       “원안보다 최대한 판을 벌리고 싶은데.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나?”

       “예.”

       “경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고 있지.”

       

       모든 것은 계획대로였다.

       

       

       

       2.

       

       수도로 상경해서 가장 좋은 점이 있다면, 우선 기반 시설 자체가 탄탄해서 할 게 많았다.

       

       다시 말해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는 의미였다.

       

       마법사가 마법을 익히는 것만 해도 바쁘지 놀 시간이 어디 있냐? 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못 이기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못 이긴다는 말도 있는데 뭐.

       

       그럼 나는 천재니까 노력까진 아니어도 즐기는 천재가 되면 되는 게 아닐까?

       

       누가 들으면 한심하게 여길 법한 생각이 절제되지 않고 머릿속에서 마구 뛰어다녔다.

       

       그도 그럴 게 술주정 사건 이후로 며칠간은 별다른 일이 벌어나지 않았고, 나는 그냥 닥치는 대로 마법책이란 마법책은 다 뒤지면서 섭렵하는 일정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그냥 막힌 게 있을 때마다 스승님한테 가서 물어보거나, 스승님이 바쁘다 싶으면 실피아에게 물어보면 끝.

       

       사실 마법사로서의 역량만 따지면 아무리 스승님이 대마법사라고 해도, 실피아는 드래곤인데 비교가 되겠냐고. 무리지, 무리.

       

       “……이건 술식을 조금 다르게 계산해 볼래요? 책만 보고 익히기에는 쓸데없는 사족이 붙어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감각을 익히는 건 마법사 개인마다 다른 문제라 어쩔 수 없어요.”

       “술식만 바꿔서 대입하면 되는 거예요?”

       “우선은 그렇긴 한데, 루드릭 군이 직접 해 보면서 감을 잡아야 하는 문제에요. 그 방법은 사람마다 전부 다른 거라 어떻게 알려줄 수는 없지만요.”

       “아하.”

       

       그래서 지금도 실피아에게 막히는 부분을 물어보고 있었다. 술주정 사건 이후로 나를 볼 때마다 가끔씩 얼굴을 붉히는 게 적응은 잘 안 되지만, 그래도 모르는 건 물어봐야지.

       

       전에 익히던 회복 마법의 사용 술식을 조금 비틀어서, 광역 마법으로 바꿔보려고 했는데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튼 역시 세상은 인맥이었다. 실피아한테 물어보니 바로 해결된 걸 보면 말이다.

       

       회귀 전의 내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여자가 다섯 명씩이나 꼬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살다 살다 드래곤한테 일대일로 개인 교습을 다 받아보기도 하고.

       

       ……반대로 생각하면 여자 다섯 명한테 꼬리를 치고 다녀서 천벌을 받아서 일찍 죽었을 수도 있겠군.

       

       음, 이번 생은 조심해야겠다.

       

       자리로 돌아와 실없는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실피아가 알려준 대로 해보자 금방 성공할 수 있었다.

       

       확실히 억지로 술식을 비틀어서 변형하다 보니 마법을 쓸 때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어딘가 억지로 뒤틀린 듯한 감각이 손끝에 남았다. 실피아가 말한 건 바로 이 의미였겠지.

       

       아무튼 이게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되는 걸 보니 세상은 학연, 지연, 혈연으로 굴러간다는 세상의 진리를 다시금 실감하고 있는데.

       

       벌컥.

       

       스승님의 연구실 문이 열리더니 스승님이 격양된 표정으로 나와서 외쳤다.

       

       “루드릭 군! 좋은 소식일세!”

       “갑자기 좋은 소식이요?”

       “황녀 전하께 주청을 드렸던 루드릭 군의 실습 일정이 잡혔다네. 이 늙은이가 기사단장을 닦달한 보람이 있었군!”

       “아.”

       

       잊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실전을 겪을 필요도 있다면서 황실 기사단이 정기적으로 훈련을 겸해 마물 토벌에 나설 때 종군 마법사로 동행하기로 했었는데.

       

       그 동안 일이 진척되지 않아 잊고 있었는데, 분명히 그런 말이 오갔던 적이 있었지.

       

       그냥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별로 꺼려지지는 않았다. 아직까지 실전에서 마법을 써본 적이 없기도 하고. 그냥 이참에 한 번 실전을 겪어보는 것도 정말 나쁘지는 않겠다- 정도의 감정이었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실피아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스승님, 저도 포함인가요?”

       “실피아 양도 실전을 겪어보는 게 어떻겠냐 싶어 같이 전하께 청을 올렸네만…….”

       

       스승님이 말꼬리를 흐리면서 주저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전하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겠네. 필요도 없으면서 괜히 옆에 있을 구실 찾지 말라고 하시더군.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네만.”

       “……칫.”

       

       급격히 어두워진 낯빛의 실피아가 얼굴을 찡그렸다.

       

       하긴, 드래곤이 무슨 실전을 겪을 필요가 있길래 마물 토벌에 같이 종군을 할까. 명분이라기엔 그건 말이 안 되지.

       

       바로 입구에서 짤려 버린 실피아를 향해 잠시 짧은 애도의 묵념 이후, 스승님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건 언제 출발하기로 한 건가요?”

       “내일일세.”

       “……네?”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내일이라네. 황제 폐하의 탄신일을 기념하여 조만간 큰 축제가 있을걸세. 그때는 황실 기사단이 경비를 서기 위해 대거 동원될 터이니, 그 전에 빨리 해치우는 게 일정상 맞을 거라더군.”

       “이렇게 갑자기……?”

       

       군대 훈련도 하루 전날에 갑자기 통보는 안 하는데, 이 동네는 역시 뭔가 이상하다.

       

       “그럼 저는 지금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 거 아니에요? 바로 짐부터 싸고 준비해도 모자란 게 아닌지…….”

       “하하, 바로 맞췄군!”

       

       그 말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스승님이 내 등을 떠밀었다.

       

       빨리 올라가서 준비 안 하고 뭐하냐는 제스처.

       

       얼떨결에 연구실 밖으로 떠밀린 나는 황당한 눈으로 스승님을 바라봤지만, 스승님이 푸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참고로 루드릭 군에게 내가 까먹고 있다가 늦게 알려준 건 아닐세. 이번 건에 대해 협조와 차출을 위한 정식 공문이 오늘 아침에야 도착했지 뭔가?”

       “……그러면 아침에 알려 주셨어도 되잖아요.”

       “내가 연구에 집중하느라 공문이 온 걸 지금에야 봤지 뭔가. 미안하게 됐다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연구실 문이 닫혔다.

       

       “…….”

       

       나는 한참 동안 닫힌 문을 바라보면서, 하고 싶은 말은 많아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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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I Don’t Want To Be the Protagonist of a Romance Novel

로판 주인공 하기 싫습니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reincarnated as the eldest son of a noble family with nothing to do.

Even if I put aside the fact that the world I was reincarnated into is a little strange.

– Northern Grand Duchess Eileen is confused after realizing she has regressed.

– Admiral Lassiel realizes she has regressed and immediately turns the fleet around.

– Princess Elena prepares to inspect the Weiss County, chewing over the past.

What is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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