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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

       서늘한 검광이 번뜩인다.

         

       백우진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그 주변으로 서너 개의 잔상이 생겨나 그의 눈을 어지럽혔다.

         

       “크읏…!”

         

       어느새 주변이 백우진이 자아낸 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이 실인지, 허인지 구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도검지옥이라는 게 진짜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가까스로 실초를 파악해 공격을 막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대체 뭐냐, 이 검술은!’

         

       모든 것이 제각각이다. 엉망인 것 같으면서도 탄탄함이 느껴지고, 느린 것 같다가도 먹이를 낚아채는 범의 그것처럼 표홀하다.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

         

       어디에 닿을지, 언제 닿을지, 어떻게 닿을지. 꼭 주변에 안개가 짙게 껴있는 것처럼 한 박자 이상 느리게 반응하게 된다.

         

       종잡을 수 없는 백우진의 재수 없는 성격을 고스란히 옮겨 담은 듯한 검술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다.

         

       검은 사용자의 의념에 따라 그 행동을 달리하는 법이다. 예컨대 쾌검식을 운영하고자 한다면 그에 맞는 초식과 더불어 보다 빠르게 검을 휘두르고자 하는 의념이 뒤따라야만 한다.

         

       그렇기에 더욱 의아했다. 백우진이 품고 있는 의념은 대저 무엇이기에 이토록 검이 들쭉날쭉할 수 있단 말인가.

         

       “자아, 다리 비었다.”

         

       비처럼 쏟아지는 검격을 막아내느라 하단에 대한 방비가 약해진 것을 틈타 백우진의 다리가 바닥을 쓸 듯 휘둘러졌다.

         

       “이런…!”

         

       헛된 상념에 빠져버린 탓에 피할 시기를 놓치고 만 남궁수가 신형을 잃었다.

         

       ‘안 된다!’

         

       꼴사납게 바닥을 구를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그를 일깨웠다. 가까워져 가는 땅에 손을 짚은 채 힘껏 밀어 허공으로 떠올라 신형을 바로잡았다.

         

       우와아아!

         

       곡예와 같은 움직임에 관객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후욱, 후욱…!”

         

       정작 본인은 십 년 감수한 표정이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남궁수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예상에 없던 일들이 마구마구 벌어지고 있다. 그중 제일은 눈앞에서 실실 웃고 있는 백우진이었다.

         

       ‘어떻게 이런 실력을!’

         

       지금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기연이라도 얻은 건지.

         

       남궁수에게 이번 비무제는 많은 것들이 걸려 있다.

         

       신룡이라는 별호, 무림의 동도들에게 제 이름을 각인시킬 기회 그리고 유화연까지.

         

       무엇 하나 아직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제 것을 빼앗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가진 것 대부분이 눈앞의 백우진이라는 벽에 가로막혔다. 허나, 전부가 막힌 것은 아니었다.

         

       ‘네놈에게만은 질 수 없다.’

         

       그토록 깔보고 괴롭히던 상대에게 패배하는 것만큼 우스꽝스럽고, 치욕스러운 일은 없다. 남궁수는 그런 치욕을 감내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남궁수의 기운이 다시금 날카롭게 벼려지기 시작했다.

         

       중단에 세운 검으로부터 심상찮은 예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제왕검형(帝王劍形)의 발현이었다.

         

       백우진은 무서우리만치 무덤덤한 표정으로 눈앞의 검을 응시했다.

         

       장엄한 기세를 품은 검이 날카롭게 쇄도했다. 백우진이 옆으로 움직여 피하자 피했다고 생각했던 검이 기다렸다는 듯 방향을 틀어 재차 쇄도했다.

         

       느리지만 우직하게 상대방을 노리고 들어오는 집요함. 제왕검형은 수많은 검법들 중 둔검의 묘리를 품고 있는 몇 안 되는 검법 중 하나였다.

         

       둔검은 한 문장으로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다른 검식들과는 달리 하나로 정의를 내리기 무척이나 어려운 검식이다.

         

       단순히 얘기하면 쾌검과 정반대되는 느린 검이 된다. 허나, 단순히 느리면 남의 칼 맞아 죽기 딱 좋을 텐데 누가 이를 사용할까.

         

       제왕검형은 이 둔검이 가지는 느림의 미학에 ‘기세’라는 답을 적어 넣어 만들어졌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을 마치 세상 모두가 자신의 것이라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는 제왕의 모습으로 둔갑시킨 것이 남궁세가식 둔검인 제왕검형인 것이다.

         

       ‘압박감이 꽤나 강하네.’

         

       제왕검형의 압박감은 실로 상당했다. 검에서 새어 나오는 기세가 자연스럽게 주변을 옭아매 상대의 몸을 무겁게 만드는 강제력을 발휘했다.

         

       느릿하게 다가오기에 더욱 그 압박감이 생생하게, 또 오래 전해진다.

         

       검을 쳐내도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려 재차 돌아온다. 답답한 마음에 역으로 쾌검식을 이용해 반격하려 해도 소용없다.

         

       채앵!

         

       중단에 검을 세운 상태에서 자신을 향해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내는 데에는 아주 약간 팔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공략할 길이 막막하고, 점점 다가오는 검의 압박감은 거세진다. 아마 대부분의 적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최후를 기다릴 터. 실로 제왕의 모습이라 할 만했다.

         

       “확실히 이 세상 검술이 뛰어나긴 하네.”

         

       판타지 세계보다 무림의 검술이 확실히 뛰어나다. 검에 대한 무리가 해박하고 명확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백우진이 판타지 세계에서 배운 검술 중에는 제왕검형과 마찬가지로 둔검을 스스로의 묘리로 풀어낸 검술이 존재했다.

         

       그곳 세상에서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서 훔쳐 배운 것인데, 그는 이 검술을 두고 공간을 지배하는 검술, 공간검이라 칭했다.

         

       요체는 제왕검형과 비슷하나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가 두 가지 존재한다. 첫 번째는 기운을 발산해내는 주체다.

         

       제왕검형이 검을 매개로 기운을 발산한다면, 공간검은 주체가 둘이다.

         

       바로 검과 사람.

         

       “스읍.”

         

       가볍게 폐에 숨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단전에 잠들어 있던 내공을 일시에 해방한다.

         

       적잖은 양의 내공이 실오라기처럼 뿜어져 나와 일정 공간에 멈춰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주변을 유영한다.

         

       두 번째는 제왕검형이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간을 얽어매는 거라면, 공간검은 오로지 이 공간 전체를 잡아먹는 것이 주고, 압박감을 주는 것이 부라는 점이었다.

         

       느리지만 끊임은 없던 남궁수의 검과 걸음이 동시에 멈춰 섰다.

         

       “이, 이건.”

         

       남궁수 또한 느낀 것이다. 제왕검형의 권역이 백우진이 내뿜은 기운으로 인해서 잡아먹히고 있다는 것을.

         

       “네놈이 어떻게 제왕검형을…!”

         

       그것도 남궁세가의 절기인 제왕검형과 매우 흡사한 형태로 말이다.

         

       “그건 네가 알 거 없고.”

         

       걱정해야 할 건 따로 있지 않을까?

         

       그와 동시에 제왕검형이 억지로 붙들어 두었던 권역이 결국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백우진이 느껴야 했던 압박감을 역으로 남궁수가 느끼기 시작했다.

         

       “크윽!”

         

       사방에서 칼을 겨누고 있는 듯한 감각에 남궁수가 뒤로 물러나려 하자 백우진의 검이 자연스럽게 그의 퇴로를 차단했다.

         

       “이, 이 자식.”

         

       발악하듯 검을 휘둘러 백우진의 요혈 곳곳을 노렸지만, 부동 자세 그대로 팔만 움직여 가볍게 공격을 막아냈다.

         

       이미 이 공간은 백우진 개인의 것이나 다름없어진 상태였다. 어느 쪽으로 공격을 시도해도 결국엔 남궁수의 것보다 백우진의 검이 먼저 그곳에 도달해 검로를 미리 차단했다.

         

       ‘말도 안 돼.’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온몸에 엄습했다. 무엇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고, 무엇으로도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함.

         

       바로 무력감이었다.

         

       고개를 반쯤 떨군 남궁수의 모습에 백우진은 주변을 잠식하고 있던 기운을 다시 불러들였다. 일부는 이미 자연과 동화되어 사라졌고, 고작 3할 정도의 내공만을 회수할 수 있었다.

         

       “어우, 내공 딸려.”

         

       몸 전체로 기운을 발산하는 덕에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만큼은 제왕검형을 웃돌지만 그만큼 많은 내공을 잡아먹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내가, 내가….”

         

       어딘가 고장난 사람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있는 남궁수에게 다가갔다.

         

       “야, 궁수야. 정신 차려.”

         

       처음 느끼는 무력감, 넘쳐흘렀던 남궁세가 검술에 대한 자부심, 백우진에 대한 분노. 그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 남궁수를 심마(心魔)에 빠트리려 하고 있었다.

         

       “어허, 도피 금지.”

         

       심마에 빠져들면 외부와의 감각이 차단되어 스스로 빠져나오기 전까진 누구도 깨울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때려도 남궁수는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된다.

         

       ‘그건 안 되지, 음.’

         

       그러기 전에 남궁수의 뺨을 세차게 갈겨주었다.

         

       짜악-!

         

       호쾌한 소리와 함께 흐릿해져가던 녀석의 시야가 조금 돌아와 이쪽을 멍하니 바라봤다.

         

       끊임없이 입으로 무언가 소리를 내던 녀석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네놈, 네놈만 없었다면…!”

         

       남궁수가 달려들었다. 세련되었던 움직임들은 모두 내팽개친 채 오로지 본능만이 남은 짐승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이는 또 다른 심마였다. 조금 전의 심마가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유형이라면, 지금의 심마는 분노에 몸이 잠식되어 보이는 모든 것들을 향해 적의를 터뜨리는 유형이었다.

         

       이 또한 외부 고통에 둔감해지기에 필히 막아야만 하는 녀석이었다.

         

       “새끼가 자꾸 도망질이야.”

         

       백우진은 검을 집어넣고 호리병을 손에 쥐었다.

         

       “죽어어어!”

         

       남궁수가 노리고 들어오는 곳은 명백한 사혈(死血)이었다.

         

       이를 본 주변 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넓어진 시야에 들어왔다.

         

       생각처럼 위험한 공격은 아니었다. 본능만 남은 형태라 공격이 무척이나 단조로워 피하는 것은 물론 반격을 가하는 것도 자유자재로 가능했으니.

         

       “빠샤!”

         

       길게 찌르고 들어오는 검을 옆으로 비켜서는 것으로 간단히 피해낸 뒤, 호리병 아랫부분을 이용해 남궁수의 턱주가리를 그대로 돌려버렸다.

         

       뻐걱!

         

       “크아악!”

         

       영 좋지 않은 소리와 함께 강렬한 통증을 느낀 녀석의 몸이 벌러덩 뒤로 넘어갔다.

         

       “끄으으…!”

         

       턱이 옆으로 살짝 돌아가 있는 게 보였다. 백우진은 비무대를 향해 다가오는 무리들을 일별한 뒤 황급히 남궁수에게 다가갔다.

         

       “야, 궁수야. 시간이 없어.”

       “무, 무슨….”

         

       정신이 되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락가락하는 녀석의 앞머리를 꽉 움켜쥐었다.

         

       “어헉!?”

         

       번쩍 뜨인 시선이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탄 채 히죽거리며 웃는 얼굴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백우진을 또렷하게 응시했다.

         

       “너 때릴 시간이 얼마 없다고, 인마.”

         

       그와 동시에 솥뚜껑만 한 주먹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아, 안 돼.”

       “돼!”

         

       뻐억!

         

       상쾌하다 못해 청량감이 느껴질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는 백우진의 얼굴.

         

       

       그것이 정신을 잃기 전 남궁수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남궁수의 참교육 1회차 집행 완료,,,

    이제야 한편을 써서 올리게 되옵니다요,,,

    컴퓨터 SSD 이슈에 노벨피아 선작 1만 기념 표지에 대해 또 양식 맞춰서 보내고 하느라 어제 오늘 정말 홍역을 앓았네요…

    오늘은 꼭 저녁 9시에 맞춰 새로운 편을 들고 오겠습니다. 연참도 최대한 빠른 시일내로 자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늦은 연재나 휴재가 없도록 백업도 착실히 하고, 건강관리도 잘하고! 심혈을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하단 말씀 동시에 전합니다.

    염치없지만 선작, 댓글, 추천, 알람 설정 한번씩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ㅎㅎ!

    P.s 후원 감사의 말씀

    모코코자빠졌네 님!

    또 다시 후원 감사합니다…! 선작 1만, 정말 꿈만 같은 숫자를 달성해 너무 기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Wicky 님!

    또 후원을 해주셨군요 ㅠㅠ 심지어 훈련 후 30분의 시간을 제 소설 보는 데에 써주시다니,,, 제가 앞으로 더 잘하겠습니다 엉엉!

    우비람 님!

    전 작가님께서 후원을 해주실 때마다 뭐랄까,,, 강호의 도리가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저도 조만간 조공을 하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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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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