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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0

        

         

       역장 밖으로 나서는 것은 힘들었다.

       밤중에 그들을 괴롭혔던 악귀들과 다시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을 이겨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한 발자국을 걸을 때마다 저 나무 그늘에서, 저 수풀에서, 시야의 밖에서 악귀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그들을 덮치고 몸을 갈기갈기 찢지 않을까 하는 공포를 품은 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공포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움직이게 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용기라 할 수 있으리라.

         

       두려움의 대상을 떠올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감정.

       ‘동료’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움직이게 하는 의지.

         

       그것이야말로 용기라.

         

       그렇게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움직였다.

         

       동료를 찾기 위해서.

       한밤중에 역장 밖으로 나섰다가 실종되어버린 두 사람을 찾기 위해서.

         

       그렇게 그들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며 섬을 수색했다.

       다행히 독도는 그리 크지 않은 곳인지라 한 바퀴 둘러보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았음에도 두 사람은 발견되지 않았다.

         

       섬을 이리 돌았는데도 나오지 않는다니.

       그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찢겨 죽었다면 핏자국이, 육편 자국이 있어야만 한다.

       도망을 쳤다면 도망친 흔적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

         

       아무런 흔적도 없다.

       마치 증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럴 수가 있는가?

         

       그들은 이 기이한 상황에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어딘가 자신들이 놓친 곳이 있을 거라고.

       간과하고 넘어간 곳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섬을 더 샅샅이 뒤져보았을 뿐이었다.

         

       “여기! 뭔가 이상한 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열매를 맺었다.

         

       섬 바깥쪽에 나 있는 자그마한 해식동굴로 보이는 곳에 둘이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섬에 나 있는 흠집.

       파도가 깎아내린 구멍.

       수위가 조금만 높아도 물에 뒤덮여서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그 자그마한 흔적에, 분명한 주술의 흔적이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냐고 묻는다면….

         

       바닷물 위에서도 활활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 주술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화르르륵.

         

       불꽃.

       불꽃이다.

         

       장작도 없이, 기름도 없이.

       바닷물 위에서 불꽃은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은 마치 아지랑이처럼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가며 위로 솟구치고 있었고, 파도의 일렁임과 함께 공기를 이리저리 일그러뜨리며 자신이 환상 속의 존재라는 것처럼 존재감을 발하고 있었다.

       그 색채는 불꽃의 붉은빛과 바다의 푸른빛, 땅에 퍼져있을 싱그러운 초록색을 모두 품고 있음이라.

         

       참으로 아름다운 형태의 불꽃이라 할 수 있으리라.

         

       불꽃은 피어나며 넓게 퍼졌고, 퍼지고 번져나가며 동굴의 입구로 보이는 곳을 얇게 막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장막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밤중 베이스캠프를 지켰던 역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불꽃은 그렇게 동굴의 입구를 대문처럼 막아 세웠고, 넘을 수 없는 벽처럼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파도의 출렁임에 뿌리의 형태를 바꾸어가면서도 끝없이 이어지며, 동굴의 입구를 가리는 틈새에 그 어떠한 구멍도 생기지 않게 촘촘하고 완벽하게 공간을 점유하며 그렇게 타오르고 또 타오르고 있었다.

         

       바닷물을 장작으로 해서 타오르는 불꽃이라!

         

       “저거, 주술이지요?”

         

       “예. 화염주술(火焰呪術)…인 것 같군요. 꽤 수준급인 것 같은데…. 누가 사용한 걸까요?”

         

       “흠. 그건 모르죠. 한국의 주술사가 썼을 수도 있고, 사이고 신관이 썼을 수도 있죠.”

         

       동이 틀 때 어둠을 사르며 번져나가는 불길을 그러모아 피워낸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동굴의 입구에서 피어나는 저 불꽃은 악귀가 습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마저도 사그라들게 만드는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접근해봅시다.”

         

       게다가 보기에만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윽, 이거 열기가 너무 강하지 않습니까?”

         

       “흠…. 양기(陽氣)나 화기(火氣)를 사용하는 무공 익힌 사람 아니면 위험하겠습니다.”

         

       “열기에서 몸을 보호하는 마법을 사용하면 접근해도 될 것 같기…는 한데. 저게 주술이라면 어떤 효과가 나올지 몰라서…. 별로 가고 싶지는 않네요.”

         

       “주술이면 그럴 수 있지요. 어떤 효과를 보일지 모르니…. 일본에서 오신 음양사 분께선 저 주술에 대해서 좀 아시겠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화염 계열 주술인 것 같기는 한데…. 그쪽 계열 사람들 주술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한 효과를 보이는 것들이 많아서…. 흠.”

         

       조금만 접근해도 몰아치는 어마어마한 양의 열기.

       조금만 접근해도 오븐에 들어간 것처럼 숨을 턱 막히게 할 정도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음에도 이 정도의 열기가 퍼지는 것이라면, 저 벽을 만지기라도 한다면 그 즉시 잿더미가 되리라. 그것도 아니면 접근하다가 푹 익혀진 고깃덩어리가 되어서 바닷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신세가 되거나.

         

       강렬한 위력의 주술이었다.

         

       그리고 그 강력함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안심하게끔 해주었다.

         

       “아무래도 악귀를 피해서 저기로 간 것 같지요?”

         

       “예. 어떻게 잘 숨고, 화염주술로 악귀가 못 들어오게 막은 것 같은데….”

         

       “저 정도 위력이라면 악귀가 접근도 못 했을 것 같군요.”

         

       “그렇죠. 아무리 강대하다고 해도 귀신의 약점은 양기(陽氣)와 화기(火氣) 아니겠습니까? 특히나 물귀신에서 비롯된 악귀라고 했으니 더더욱 그렇겠지요. 그러니 아마 저 안에 있는 사람은 무사할 겁니다.”

         

       “예. 분명 그렇겠지요. 다만….”

         

       저 강렬한 불꽃은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있는 한 악귀는 이곳을 침범하지 못한다고.

       밤중에 악귀들이 아무리 창궐한다 한들 피어오르는 불꽃에 몸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만약 그러했으면 악귀들이 잿더미로 변하고, 그 재조차도 불살라졌을 것이라고.

         

       그리고 사람들은 불꽃의 위용에 수긍하고, 이해했다.

         

       저 안에 있는 사람이 무사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문제는.

         

       “…저 안에 한 사람이 있을지, 두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 안에 몇 명이 있을지…였다.

         

       하나.

       혹은 둘.

         

       둘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하나라면…안타깝게도 사망자가 생겨난 셈이다.

         

       사람들은 기대와 불안을 품은 채 부산히 움직였다.

       저 불꽃을 뚫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낮이 밝고 악귀가 물러갔다.’라는 사실을 전달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저 강력한 불꽃을 뚫고 전달하기에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음양사들이 사용하는 식신은 종이를 재료로 하는 것들이 많았기에 저 불꽃에 가까이만 가도 타버릴 것이 뻔했고, 영능력자들에게 맡기기에는 저 불꽃이 파사와 퇴마의 힘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에 말 좀 전하려고 했다가 강력한 영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무인이나 마법사가 직접 가기에는 저 불꽃이 품고 있을 주술적 효과가 무서워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냥 열기와 불꽃만 생각하며 갔다가 갑자기 생기가 빨려버린다거나,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효과가 있어 피를 토하면서 기절하게 만든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렇기에 그들 역시 나서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기계를 쓰기에는…안타깝게도 장비가 없었고.

         

       따라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이봐-! 끝났어-! 해가 떴다고! 악귀는 사라졌어—!”

         

       철썩거리는 시끄러운 파도 소리를 꿰뚫고 저 동굴의 안쪽에 있을 주술사에게 닿을 수 있도록 거대한 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무인들이 맡았다.

         

       이는 그들의 폐활량과 목청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컸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인들이 목소리에 기를 실어서 하는 기예인 ‘사자후(獅子吼)’를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인들은 기를 끌어올려서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다른 능력자들이 이어 플러그를 끼거나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음에도 ‘조금 소리가 큰데?’라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인의 외침이 닿은 것일까?

         

       동굴의 입구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던 불꽃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불꽃이 서서히 숨을 죽임과 함께 근처를 가득 메운 열기 역시 빠르게 식기 시작했고, 식어버린 곳에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자리를 메우며 짭짤한 바다 내음을 풍겼다.

         

       그리고 불꽃이 모두 사그라들었을 때.

         

       동굴의 안쪽에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숫자는….

         

       하나.

       그리고, 또 하나.

         

       “후우….”

         

       “둘 다 무사했군….”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청년.

       그리고 여우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

         

       그 둘이 동굴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둘의 모습을 보며 환호했고, 빠르게 접근해 두 사람을 들쳐메었다.

         

       생존을 확인하고 기뻐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동굴을 빠져나오는 그들의 걸음걸이가 심상치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주술을 유지한 것은 저 박진성 주술사라서….”

         

       그나마 여우 가면을 쓴 남자는 조금 피곤한 듯 휘청이기만 할 뿐, 상태 자체는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박진성은 달랐다.

         

       주술의 부작용 때문인지 몸 곳곳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는데, 딱 봐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 물집이 있거나 진물이 흐르고 있지는 않았으나, 방치한다면 덧나거나 감염이 될 위험은 충분해 보였다.

       게다가 도망칠 때 바다에 몇 번 빠지기라도 한 것인지 몸 곳곳에 마른 소금 자국들이 가득했고, 초췌해 보이는 표정과 계속해서 감기려 하는 눈은 박진성 주술사의 피로도를 한눈에 짐작하게 했다.

         

       “이런. 이 사람 상태가 그리 좋지 않군…. 빨리 배로 갑시다. 이 빌어먹을 섬도 빠져나가고, 뭍으로 가서 박진성 주술사를 병원에 좀 입원시켜야겠어요.”

         

       사람들은 박진성의 모습을 보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박진성은 무인 중 한 명의 등에 업힌 채 배까지 편안하게 이동하였고.

         

       저벅.

         

       여우 가면을 쓴 신관은 그 뒤를 따랐다.

         

       이제 독도에 미련은 없다는 듯이.

       비틀거리기는 하되 묘하게 홀가분해 보이는 걸음걸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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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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