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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1

       창졸간에 벌어진 상황.

         

       바닥에 쓰러져 피를 한 움큼 토해내고야 깨달았다.

         

       “쿨럭…, 카학!”

         

       무언가 제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음을.

         

       이제 곧 죽는다는 것도.

         

       “아아….”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대로 눈을 감는다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테니.

         

       다만, 죽기 전에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희아야!”

       “연희!”

         

       쓰러지는 자신을 향해 놀란 얼굴로 달려드는 용선아와 용설란.

         

       ‘말해야 해….’

         

       지은 죄가 무거워 씻어낼 수 없음을 안다.

         

       그렇다고 해도 속죄해야만 한다.

         

       단 한 푼이라도 그들을 향해 지은 죄가 가벼워질 수만 있다면.

         

       아니,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딱 한 가지뿐이었다.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털어놓는 것.

         

       “희아야, 정신 차려보거라, 희아야!”

         

       그리운 이름을 연신 외쳐대며 쓰러진 제 목과 등을 받쳐주는 용선아.

         

       ‘그랬었지….’

         

       희아(熙兒).

         

       용선아는 어릴 적 자신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잠시나마 그녀의 딸이 된 듯하여,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어미의 사랑이 이런 느낌일까 짐작하며 남몰래 기뻐하곤 했었는데.

         

       “궁…주님.”

       “그래, 희아야. 정신을 놓아선 안 된다. 내 금방 치료해줄 터이니…!”

         

       용선아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그녀의 꿰뚫린 심장을 본 까닭이었다.

         

       다른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폐든, 간이든, 위든.

         

       환부를 잠시 얼려 출혈을 강제로 멈춘 뒤 살릴 방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 심장은 아니었다.

         

       그곳은 얼려선 안 되는 곳이기에.

         

       “치이잇…!”

         

       힘겹게 손을 뻗어 도리 없는 제 죽음 앞에서 노성을 토해내는 용선아의 손을 붙잡는다.

         

       차가우면서, 뜨겁다.

         

       겉으로 느껴지는 것은 차갑기 그지없는데, 그 속에 자리한 따스함 또한 느껴진다.

         

       “궁주님….”

       “그래, 희아야.”

       “만년빙정을…, 쿨럭! 검게 물들인 것은 마기…입니다.”

       “마기…!”

       “하나…, 그것은…, 흐으…, 만년빙정을 오염시키기 위한 수단이…, 커흑, 아닙니다.”

       “뭐라…?”

         

       몇 년 전.

         

       한 여인이 찾아와 중원에서 암약 중인 마교도임을 증명하는 표식을 꺼내 보였다.

         

       연희는 물었다.

         

       이곳까진 무슨 일로 왔느냐고.

         

       그러자 여인은 대답했다.

         

       만년빙정에 볼일이 있어 왔노라고.

         

       그 말을 남긴 뒤, 그녀는 다음 날 새벽 홀연히 떠났다.

         

       그리고 며칠 뒤에 돌아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떠들어댔다.

         

       “만년빙정을 이용하여…, 마, 마물을 만들 것이라고…, 그리…, 큭, 말했습니다.”

         

       떨리는 손가락 끝이 제멋대로 부풀어 오른 만년빙정을 가리킨다.

         

       강대한 힘을 지녔으나 그것을 다룰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 구슬.

         

       그것이 멋대로 몸을 부풀리고, 줄이고, 넓히고, 좁히기를 반복하고 있다.

         

       마치 자아가 존재하는 듯, 살아 있는 생명체인 것처럼.

         

       이는 그 여인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실행되고 있다는 뜻이니.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 흐…, 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이는 미래를 위한 초석이라고.

         

       훗날 천마께서 중원 정벌을 천명하였을 때.

         

       그때를 대비하여 미리 심어두는 재앙의 싹이라고 말이다.

         

       그녀가 말한 그 훗날이 지금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 완전한 계획의 성공은 아니라는 뜻.

         

       “지금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쿨럭! 쿨럭!”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저것을 막아야만 한다.

         

       미처 이어지지 못한 말은 용선아와 용설란의 가슴에 똑똑히 닿았다.

         

       시야가 점점 흐릿해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온몸으로 퍼져 나가던 통증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는다.

         

       필시 죽음에 한없이 가까워진 상태이기 때문일 테지.

         

       곧 있으면 끊어질 의식은 이기적이게도 한 가지 바람을 품었다.

         

       “궁…주님.”

       “그래, 희아야.”

       “다음 생에는…, 궁주님의 딸로 태어나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눈물을 쏟아내는 용설란에게로 옮겨진다.

         

       “아가씨의 언니든…, 동생이든…, 그리 태어날 수만 있다면…, 아아, 얼마나 좋을까요.”

         

       찰나의 상상만으로도 느껴지는 진한 기쁨의 여운에 미소 짓는 연희.

         

       용선아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다음 생에 내 딸로 태어나는 것을 허하마. 그러니….”

         

       애써 웃는 얼굴로 말을 잇는다.

         

       죽음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조금만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기쁘고 또 기쁘다.

         

       다음 생에라도 그녀의 딸로 태어날 수 있게 되었음에.

         

       그 사실이 기쁘기 한량없어.

         

       “감사…, 합니다.”

         

       그녀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

         

         

       * * *

         

         

       매섭기만 할 뿐이었던 바람이 바뀌었다.

         

       살의 그리고 악의.

         

       닿기만 해도 온몸에 꺼림칙한 기분을 자아내는 것들이 가득 실려 있다.

         

       “마물….”

         

       전부 들었다.

         

       그녀가 죽기 전 했던 말들.

         

       몇 년 전 홀연히 찾아왔다는 여인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진미연.”

         

       마교에서 마물에 미친 여자라면 그 여자뿐일 테지.

         

       입가에 씁쓸함이 맴돈다.

         

       “그렇게 부숴도 부족했나….”

         

       차마 마교 안에서 그녀를 죽일 순 없어 대신으로 기반을 부수었다.

         

       그 넓은 산에 야금야금 숨겨둔 것들을 용케도 다 찾아내어 흔적도 없이 박살을 내버렸건만.

         

       그런데도 그녀는 연구를 이어 나갔고, 또 다른 성과를 얻은 듯했다.

         

       본디 마물이란 살아 있는 동물을 대상이 마기에 물들어 변이되어 만들어지는 존재.

         

       한데 진미연은 만년빙정을 마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고 일정 부분 성공한 듯하다.

         

       [힘이…, 부족해.]

         

       제멋대로 구슬이 부푼 것으로 모자라 말소리까지 새어 나오는 걸 보면.

         

       후우웅-

         

       거센 바람이 불 때마다 손가락 끝이 굳어 감각이 무뎌진다.

         

       그것은 발끝도 마찬가지.

         

       그만큼 몰아치는 한파가 거셌다.

         

       현경 고수의 몸에 영향을 미칠 만큼.

         

       ‘장기전은 불리하겠어.’

         

       조금씩이지만 감각이 무뎌져 가는 게 느껴진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건 자신일 터.

         

       ‘최대한 빨리 끝낸다.’

         

       하나 혼자의 힘으로는 무리다.

         

       점차 마물로 변해가는 만년빙정을 단숨에 부수려면 그만큼 거대한 기운이 필요하다.

         

       아직은 미약하나 자아를 얻은 녀석이 이를 두고 볼 리가 만무한 상황.

         

       그리하여 백우진은 도움을 청했다.

         

       “조금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뭐든 말만 하게.”

         

       용설란에게 조금 전 숨이 끊어진 연희의 시체를 맡긴 뒤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용선아에게.

         

       “자네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몸. 목숨이 위태로운 일이라도 얼마든 감내하겠네.”

         

       백우진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이쪽에서 원치 않습니다.”

         

       그러자 용선아의 눈에 이채와 더불어 짙은 호기심이 서렸다.

         

       “호오…, 어째서?”

         

       그녀의 물음에 백우진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따님께서 궁주 자리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용선아가 차게 웃었다.

         

       “그것참…, 마음에 드는 이유로군.”

         

       대체 어느 부분이 그리 마음에 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의아해하기도 잠시.

         

       “잠시 시간을 끌어주십시오.”

       “얼마면 되겠나.”

       “…일각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 정도라면 얼추 되겠군.”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용선아가 백우진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한파 속.

         

       그녀의 걸음은 마치 제집 안방을 거니는 듯했다.

         

       제아무리 매서운 한파라고 해도 그녀는 빙공의 고수.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그녀에게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음이니.

         

       “하앗-!”

         

       날카로운 기합성과 함께 달려든 용선아가 부풀어 오른 만년빙정을 향해 검을 내지른다.

         

       [……!]

         

       빠드득!

         

       그러자 제 몸에 날카로운 고드름을 잔뜩 피워 이를 막아내는 만년빙정.

         

       전력을 다해 내지른 일검을 막아낼 정도로 단단한 고드름이 형태를 바꾸어 그녀를 노린다.

         

       슈슈슉!

         

       귀에 들이치는 거센 바람 소리를 꿰뚫는 파공음.

         

       사혈만을 노리고 들어오는 지독한 살수(殺手) 앞에 선 그녀의 신형이 별안간 자취를 감춘다.

         

       거센 눈보라 속에서 무수히 나타나는 그녀의 잔영(殘影).

         

       취설무흔(吹雪無痕).

         

       북해빙궁의 궁주와 그 후계자만이 익힐 수 있는 빙백신공(氷白神功)에 수록된 보법이 지닌 신묘한 힘이었다.

         

       취설무흔은 이름 그대로 거센 눈보라 속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보법.

         

       만년빙정이 쉼 없이 한파를 쏟아내는 이 땅 위에서 취설무흔은 제 위력을 극한으로 발휘할 수 있었으니.

         

       빠드득!

         

       슈슉!

         

       콰콰콰콰!

         

       단단하기 그지없는 얼음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화시켜가며 쏟아내는 만년빙정의 변화무쌍한 공격조차 그녀의 실체를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백우진이 말한 일각 정도는 손쉽게 벌어들일 수 있을 터.

         

       그러나 문제는 현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내공 소모가 극심하군.’

         

       취설무흔은 거센 눈보라 속을 잔상으로 가득 채울 만큼 빠르고 현란한 보법.

         

       그렇기에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눈을 현혹시키는 데에 더없이 위력적이란 장점과 동시에 내공의 소모가 극심하다는 단점 또한 존재한다.

         

       하물며 평범한 수준도 아니고 극성으로 발휘할 때라면 더더욱.

         

       더군다나 그녀의 몸은 온전치 않은 상태.

         

       내단을 통해 단전을 채웠다곤 하나, 가사 상태에 빠진 몸을 깨우기 위해 절반 이상을 끌어다 쓴 탓에 남은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상태라면 반각 정도면 내공이 모두 소진되어 텅 비어버릴 터.

         

       ‘모자라다.’

         

       그렇게 되면 백우진이 부탁한 일각을 채울 수 없게 된다.

         

       그 말인즉, 이대로 피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뜻.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은 정해져 있다.

         

       ‘몸으로 직접 부딪치는 수밖에!’

         

       상대의 변화무쌍한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는 것.

         

       각오를 다진 그녀가 눈보라 속에서 노니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얼음 폭격.

         

       좀처럼 보이지 않는 틈에 일정 부분 피해는 감내하기로 마음먹은 그녀가 고통에 대비해 이를 악물던 그 순간.

         

       “하아앗!”

         

       자신을 꼭 닮은 기합성과 함께 쏟아진 기운이 쏟아지는 폭격의 일부분을 지워낸다.

         

       그곳에 만들어진 작은 틈.

         

       거기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제 딸이었다.

         

       “설란…!”

         

       네가 왜 여기에 있느냐고.

         

       연희의 시신을 데리고 나가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쏘아붙이려던 찰나.

         

       “현 북해빙궁의 궁주는 저예요, 어머니. 본궁을 위협하는 존재를 막아서는 것은 궁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 제아무리 어머니라도 제 책임을 빼앗아 가실 수는 없답니다.”

       “허….”

         

       허탈하게 웃는 용선아.

         

       설마 딸에게 선수를 빼앗길 줄이야.

         

       이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그녀는 참으로 난감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연재가 많이 늦었네요…

    요 며칠 글이 뜻대로 뽑히지 않아 난항을 겪는 중이니, 독자님들의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따흑,,,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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