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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1

   조이의 눈이 허공을 나는 루시를 바라본다.

   

   자신을 밀쳐내고서 대신 공격을 받아내고 허공으로 떠오르는 그녀를 본다.

   

   날개도 없으면서 중력을 무시한 채 날아가는 이를 본다.

   

   눈이 감기는 것이 당연함에도 조이는 멍하니 루시가 올라가는 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퉁!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영원과도 같았던 상승에 비해 하강은 일순이었다.

   

   바닥에 떨어져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는 루시를 본 조이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고 멍하니 그녀가 있는 곳만을 바라봤다.

   

   나 때문에.

   

   내가 대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영애가.

   

   알른 영애가.

   

   터엉!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조이는 신성방벽에 의해 가로 막힌 나무 뿌리를 확인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왕자님! 켄트 영애! 공격에 대처해 주십시오!”

   “일단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복수. 해야 해.”

   “그리고.”

   

   – 쿠아아!

   

   곰의 외침이 공간에 존재하던 모든 소리를 잡아먹는다.

   

   귀를 찢어버릴 듯한 그 소리에 모두가 무심코 귀를 막는 그 때에 곰이 돌진을 할 준비를 한다.

   

   거체를 지닌 곰은 겉보기에는 느릿할 것 같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곰이 자세를 취하기 무섭게 그 신형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콰아앙!

   

   살갗을 찌릿하게 만드는 충격음의 너머에는 프레테가 서 있었다.

   

   여신의 축복을 담은 가죽 장갑을 낀 채 두 손으로 곰의 거체를 막아내는 그의 온 몸에는 혈관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건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저 나무를 상대하는 데 집중해 주십시오!”

   

   프레테는 곰의 미간을 후려치는 것으로 물러나게 만들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영롱한 빛을 지니고 있는 검은 불온한 기운으로 가득한 이 곳에서도 선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쿠웅!

   

   프레테가 곰을 상대하는 와중에도 나무뿌리는 신성방벽을 후려치고 있었다.

   

   페이비는 장벽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장벽이 얼마 안 가 무너질 것이라는 건 분명했다.

   

   “성녀님. 없애.”

   “허나 아직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방법이.”

   “괜찮으니까.”

   

   프레이의 단호한 어투에 페이비가 고개를 끄덕인다.

   

   “셋 셀게요.”

   “응.”

   

   셋.

   

   둘.

   

   하나.

   

   신호에 맞춰 페이비가 장벽을 지워버린 순간 프레이의 검이 허공을 가른다.

   

   그 뒤를 잇듯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바닥에 늘어선 것은 검은 색으로 물든 나무뿌리 들이었다.

   

   “눈을 믿지 마. 진짜일 수도 가짜일 수도 있어.”

   “구분하는 방법은?”

   “보면 알잖아.”

   “젠장. 도움이 안 되는 군!”

   

   아서와 프레이가 연이어 날아드는 나무뿌리를 막아내는 동안 루시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부의 갑옷이 움푹 파인 것을 보면 큰 충격을 받은 게 분명할 터인데 그녀는 페이비의 신성마법을 거부하고 다시금 방패와 메이스를 쥐었다.

   

   “저 따위 실뿌리에 맞았다고 내가 힘들어 할 것 같아? 되도 않은 짓하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허접 성녀.”

   

   조이는 강한 체 하며 앞으로 발을 내딛는 루시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여태까지 전투를 거듭해오며 피부에 새긴 여러 자잘한 상처들.

   

   항시 최전선에 서 있던 탓에 온갖 것을 뒤집어써서 윤기를 잃은 머리카락.

   

   피로가 느껴지는 눈가.

   

   항상 맨 앞에서 모두를 이끌었던 루시는 그 누구보다 힘들었을 것이다.

   

   내색은 하지 않아도 지쳤을 것이다. 수많은 아픔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을 것이다.

   

   일어서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루시는 다시금 앞을 향해 나아가려고 했다.

   

   콰앙!

   

   갑작스레 다가온 루시가 조이의 옆을 후려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나무뿌리가 바닥에 널부러진다.

   

   조이는 또 다시 루시에게 지켜진 것이다.

   

   “푸하핳. 표정 봐. 왜 얻어맞은 건 난데 네가 바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뿌에엥하면서 울려고 그래?”

   “죄송…”

   “얼빵아.”

   

   조이가 무심코 사과의 말을 내뱉으려는 것을 끊어내듯 루시가 목소리를 낸다.

   

   “착각하지 마. 난 내가 할 일을 한 거야.”

   “…”

   “그러니까 너도 네 할 일을 해. 얼빵아가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히죽 웃음을 흘린 후 루시가 몸을 돌린다.

   

   꼬마아이처럼 자그마하지만 너무나도 커 보이는 그 등의 뒤에서 조이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이런 식으로 해서야 언제까지고 지켜지는 입장으로 머물러야 할 것이다.

   

   루시의 옆에 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루시의 뒤에 있어야만 하겠지.

   

   조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루시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친구라는 것은 서로를 돕는 관계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관계가 아니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마법으로 저 나무를 공격하는 것?

   

   그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

   

   저 강대한 존재에게 내가 아무 준비 없이 즉석에서 만들어낸 공격이 의미를 지닐 수 있나?

   

   친구들을 보조하는 것?

   

   이건 내가 아니라도 페이비가 알아서 해 줄 일이야.

   

   괜히 저 사이에 내가 끼어들어봐야 오히려 방해만 되겠지.

   

   그럼 난 뭘 해야 하지?

   

   아서처럼 전선에도 서지 못하고.

   

   루시처럼 상대의 모든 걸 파악하는 것도 아니고.

   

   압도적인 힘을 지닌 것도 아닌 내가 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후우.”

   

   심호흡과 함께 지팡이를 다잡은 그녀는 주변으로 자신의 마력을 퍼트렸다.

   

   마법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은 마법을 통해 분석하고 재현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는 마법만능주의에 빠진 광인들의 헛소리라며 웃고 넘기지만 조이는 그것이 완벽하게 틀린 말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를 몸소 펼쳐 보인 사람을 그녀는 알고 있으니까.

   

   현 왕국 최강의 마법사.

   

   그녀의 첫 스승.

   

   조이가 아는 최고의 마법사.

   

   파트란의 주인이자 그녀의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광경을 여전히 기억하는 그녀는 평생 닿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그 광경에 도전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충분히 마력이 퍼져나갔다 확신한 조이는 눈을 감고 자신의 마력 속에서 자연의 마력이 움직이는 것을 관조했다.

   

   “겨우 이 정도야?♡ 뿌리 크기가 작으니까 힘도 없네♡”

   

   세상을 세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왕자님. 그거 가짜.”

   “젠장! 대체 너희 둘은 이걸 어떻게 구분 하는 거냐!”

   

   현상을 현상으로 보지 않고.

   

   “위대하신 주신이시여. 부정을 몰아내소서.”

   

   기적조차도 분석을 하고자 하는 마법사의 사고.

   

   그 속에서 조이는 자신이 여태 배워왔던 마법들을 떠올렸다.

   

   마법의 기원이 자연의 기적을 재현하려 하는 데에서 시작되었다고 했었나.

   

   그 때는 그저 역사의 이야기정도로 생각하고 넘겼었는데 그거 생각보다 중요한 이야기였네.

   

   마법의 기원이 자연의 재현이라면 그 반대도 가능하단 소리니까 말야.

   

   가능해. 지금의 나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추측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은 마법의 지식으로 대체한다.

   

   그래도 어려울 것 같은 부분은 여러 개의 마법진을 사용하는 걸로 보충한다.

   

   마력의 양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영애께서 선물해 준 것은 여전히 내 몸에 붙어 있으니까.

   

   다시금 눈을 뜬 조이는 귀족 영애 답지 않은 사나운 웃음을 지으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허공에 퍼져 있떤 그녀의 마력이 마법진을 그려낸다. 아카데미에서는 결코 가르칠 리 없는 마법.

   

   얼기설기 제멋대로 얽혀 있어 마법이라 부르는 것조차 애매한 무언가.

   

   누군가 본다면 저게 발동되기나 하겠느냐 말할 물건.

   

   마법진의 모습은 그토록 허술했지만 조이는 자신이 만들어낸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가자.”

   

   조이의 마법이 발현된 순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보이던 것들이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공허의 권능을 마법으로 해석하고 파훼해내는 이적.

   

   이를 벌이느라 자신의 모든 마력을 다 쓴 조이는 탈진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가 선명한 웃음소리를 듣고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루시의 눈동자가.

   

   진심 어린 즐거움으로 가득한 그녀의 눈이.

   

   조이를 칭찬하고 있었다.

   

   “이런 걸 할 수 있으면서 왜 여태 얼빵하게 있었던 거야! 주인공 병에 걸리기라도 한 거야? 얼빵한 조이?!”

   

   루시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은 조이는 눈썹을 치떴다가 웃음과 함께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지금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

   

   오히려 이제 시작된 거나 다름 없잖아.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건 이 모든 게 끝나고 난 후로도 괜찮아.

   

   “헛짓거리를 하는 구나.”

   

   저 멀리에서 흘러나온 가래 끓는 목소리가 공동 전체를 가득 채운다.

   

   얼굴을 휘감은 붕대의 너머에서 붉은 빛을 발하는 눈동자가 조이를 바라본다.

   

   “이런 것에 내가 대처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가.”

   

   압도적인 격이 조이를 짓누르며 그녀의 마법을 무너트리려 든다.

   

   “못 하지♡ 등신아♡”

   

   그걸 가로막은 것은 그 무엇보다도 믿음직스러운 작은 어깨였다.

   

   자그마한 몸을 기점으로 뻗어 나온 태양과도 같은 신성이 조이에게로 향하는 불온한 기운을 쫓아낸다.

   

   “내가 그걸 허락할 거라고 생각해?♡ 뇌수가 썩어서 머리가 안 굴러가나 보지?♡”

   “당신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것이 조이 뿐이라 생각하지 마시죠.”

   

   그 뒤를 잇듯 페이비의 신성이 조이의 마법 위에 덧씌워진다.

   

   부정을 허락하지 않는 성녀의 신성이 조이가 일으킨 기적을 공고하게 만든다.

   

   “이제야 재미있어졌군. 제대로 날 뛸 수 있겠어.”

   

   드디어 환각을 구분할 수 있게 된 아서가 웃으며 자신의 검을 다잡고.

   

   “난 재미없어 졌는데.”

   

   상대가 약해졌단 사실에 프레이가 실망감을 토해내며 검 위에 오러를 싣고.

   

   “방해물은 이제 없습니다.”

   

   페이비가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축복을 부여하고.

   

   “처발릴 준비나 해♡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찌질아♡”

   

   루시가 자신의 메이스 위에 신성을 더한다.

   

   뒤편에서 그 모든 광경을 본 조이는 지팡이를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키고는 당당히 그 옆에 섰다.

   

   과거의 악몽에게 복수를 할 시간이 찾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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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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