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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1

    <441 – 남의 시험을 대신 치르면 안 되는 이유>

     

    우드득 꽈드득.

    뼈와 살이 접히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부풀어 올랐던 몸이 다시 줄어든다.

    보고 듣기만 해도 고통스러워 보이는 광경을 즈앙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렇게까지 귀엽게 죽으려는 거야? 어차피 목숨은 하나뿐인데.”

    “사랑에 빠져서 그런 걸 거야!”

    “그래?”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귀엽고 멋진 모습만 보이고 싶은걸!”

    “오크노디도 싱 앞에서는 그러고 싶어?”

     

    오크노디가 손가락을 입에 물고 고민했다.

     

    “아마도?”

    “그런 것치고는 싱의 평판을 열심히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던데.”

    “몰?루”

     

    그게 사랑이 맞나?

    즈앙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어려운 고민은 나중에, 쉬운 일이 먼저다.

     

    스승인 륭 노사의 가르침이 행동방침을 정해줬다.

    암살자에게 사람의 마음은 어렵고 혼란스럽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명쾌하고 쉽다.

    일단 죽이고 생각하자.

    피와 땀을 잔뜩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은 까마귀수인에게 수리검을 한 손가락에 끼우고 빙빙 돌리며 다가가던 그때였다.

     

    “그만! 다들 나쁜아이처럼 나쁜 짓부터 먼저 떠올리면 어떡해?”

     

    티토소가가 토다닥 달려와서 두 팔을 벌리고 까망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 티토.”

    “싫어!”

    “저건 위험한 적이야. 진심으로 싸우면 오크노디는 몰라도 난 이길 자신 없어.”

    “죽이지 않고 이용하면 되잖아!”

    “이용?”

    “시험장 어딘가에 있는 생명의구슬을 찾아오라고 시키고 그 대신에 비밀을 지켜주는 거야. 그러면 아무도 죽거나 죽이지 않을 수 있어!”

    “왜 그래야하는데?”

     

    즈앙의 의문은 합당했다.

    저거 죽이고 생명의구슬 만드는 게 더 빠르잖아.

     

    “아참. 말하는 걸 깜빡했당. 생명의구슬을 만들려면 가치 높은 영혼이 배어든 피와 살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시험상대로 들어온 상대를 다 죽여야 해!”

     

    즈앙의 고개가 지금까지 기울어졌던 순간들 중에서 가장 크게 기울어졌다.

     

    “그걸 다 죽일 생각이었어?”

    “못 할 거 머 있어?”

    “어떻게?”

    “잘?”

     

    어려운 고민은 나중에, 쉬운 일이 먼저다.

    즈앙은 죽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티토가 맞아. 살려주자.”

    “헤헷. 즈앙은 친구니까 알아줄 거라고 믿었어!”

     

    즈앙의 의문은 합당하게 해소됐다.

    하나도 힘든 걸 어떻게 다 죽여?

    오크노디는 몰라도 즈앙과 티토소가는 크게 다치거나 죽을지도 몰랐다.

    결론은 같지만 사고과정은 다르다.

    티 없이 해맑은 티토소가의 미소가 양심을 콕콕 찔렀다.

     

    <무감>

     

    그 콕콕거림이 이젠 아프지 않다.

     

     

    * * *

     

     

    “까망이 살해당하기 싫으면 순순히 생명의구슬을 찾아와. 찾아오지 못하면 죽이겠어.”

     

    라이프코어Life core.

    사령술의 경지에 도달한 사령술사들이 만들어내는 생명의 정수.

    감독관 파시블 예프는 지식으로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 있다.

     

    만 명 이상의 생명을 죽여 그 힘을 한데 뭉친 것.

    혹은 소수의 강자의 영혼을 갈아 넣어 뭉친 것.

     

    어느 쪽이건 효과는 동일하다.

    영혼이 내지르는 고통에서 비롯된 음에너지를 반영구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영혼의 감옥.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악의 상징, 제국이 지정한 금지된 기술, 금기 중 하나가 바로 라이프코어다.

     

    “아주 난처한 제단을 만들었군요. 확실히 라이프코어가 없으면 여길 지나갈 수는 없겠습니다.”

     

    제단에 새겨진 마나술식이 말하고 있다.

    이 공간의 정체와 라이프코어가 필요한 이유를.

     

    “그 제안, 받아들이죠. 대신 까망 양에게는 포로로서 인도적인 대우를 요청합니다.”

    “그럴게요!”

     

    오크노디는 순순히 대답했다.

    감독관은 조금 불안해졌다.

    저 아가씨가 인도적인 대우라는 개념을 이해했을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우할 예정입니까?”

    “티테이블을 깔고 포춘쿠키랑 밀크쉐이크를 대접할 예정이에요!”

     

    다행히 이번 대의 조나의 아가씨는 상식인이었군.

    재단에 암암리에 도는 소문마냥 영혼의 절규를 즐겨먹는 소악귀는 아니었다.

     

    “까망 양.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구해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감독보좌인 제가 감독관님의 짐이 되다니…”

    “평상시에는 그만큼 제가 신세를 지지 않았습니까. 이럴 때라도 한 건 해드려야죠. 이렇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오히려 기쁜 마음입니다.”

     

    감독관은 라이프코어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죽엉.”

    “생명의구슬이 어디 있는지 아냐고 물었엉.”

    “저택의 바깥, 오는 길에 보았던 절규하는 원념들의 어둠 저편에 있습니다. 그 어둠이 곧 라이프코어에서 새어나온 생령들의 원혼입니다.”

    “죽엉.”

    “그딴 게 1학년 시험장에 왜 있냐고 물었엉.”

    “조기교육 아니겠습니까? 재단만큼 아카데미도 학구열이 뛰어났나봅니다.”

    “죽엉.”

    “<모험가의 지형적응> 강의랑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엉.”

    “라이프코어가 언데드에게 스며들면 고위언데드가 되지만 대지에 스며들면 데스필드가 됩니다. 원혼이 소용돌이치며 이상현상이 빗발치는 마나과포화지대. 이 또한 엄연히 ‘지형’이라고 분류할 수 있죠.”

     

    그딴 지형에 발을 들일 사람이 있겠냐 싶지만 사다코 교수는 자기 학생들을 향한 기대치가 대단히 높은 모양이었다.

    베테랑 모험가들도 수행하길 꺼려할만한 <데스필드 선행정찰> 의뢰와 동급의 시험을 치르게 만들다니.

     

    “죽엉.”

    “나가 죽으랬엉.”

    “하하.”

    “죽엉.”

    “가기 싫엉.”

    “그래도 가야 합니다. 까망이 없으면 저희 지부의 예산관리는 엉망진창이 되고 반년도 지나기 전에 여러분도 야생으로 돌아가야 할 겁니다.”

    “…죽엉.”

    “그건 싫엉.”

    “그럼 서둘러서 구해옵시다. 재단의 꼬마아가씨가 변덕을 부려서 까망이 다치기라도 했다가는 협상도 끝나니까요. 그러면… 제가 아주 많이 화가 날 것 같거든요.”

     

    사람 좋은 호구.

    먹이 주는 집사.

    만만하게만 여겼던 중년인의 평상시와 다른 진지한 모습에 죽엉무새와 싫엉무새는 한동안 그의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팔랑.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듯이 펼치는 날갯짓.

    얼빠들이 얼굴을 보듯이 수인들은 힘만 바라본다.

    지금의 감독관에게는 힘이 느껴졌다.

    두 부엉이수인은 얌전히 감독관의 앞과 뒤를 지키며 지시를 따랐다.

     

     

    * * *

     

     

    까망은 가방에 들어갔다 싶으면 명백히 가방보다 더 큰 물건이 끝도 없이 나오는 배낭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티테이블부터 시작해서 접시와 다과, 음료까지 테이블 한 상이 뚝딱 차려진다.

     

    “오크노디. 천장에서 먼지가 자꾸 떨어져.”

    “파라솔도 있어!”

     

    꽂을 구멍도 없는데 어디다 두려나 싶었던 파라솔은 그냥 힘으로 꾹꾹 꽂아 넣어서 테이블 한복판에 삐딱하게 자리했다.

     

    “티토는 뭐 먹을래?”

    “밤에 단 거 먹으면 살쪄!”

    “그럼 쓴 거 먹어!”

    “히잉…”

     

    울상을 지으며 잡초더미를 뒤적이는 티토소가의 옆에서 오크노디는 얼음을 오도독 오도독 씹어 먹었다.

     

    “맛있어?”

    “공포영화는 얼음 넣은 콜라를 마시면서 봐야 제 맛이야!”

    “영화가 뭔데?”

    “음,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나만 안전한 장소에서 구경하는 거야!”

    “그럼 우리도 지금 영화 보는 거네?”

    “그렇지?”

     

    즈앙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어렸다.

     

    “새로운 취미가 생긴 것 같아.”

    “다행이네!”

    “…당신들이 바라는 대로 되지는 않을 겁니다.”

     

    정신 나간 티 테이블에 넋 놓고 있던 까망이 뒤늦게 적의를 드러냈다.

     

    “감독관의 경호원들은 재단 소속 수인 사이에서도 엄선한 인재입니다.”

    “저희보다 강해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야성을 깨우친 수인에게는 제 2의 형태가 존재한다.

    인간형의 제 1형.

    야수형의 제 2형.

     

    “죽엉무새와 싫엉무새는 부엉이수인. 소리 없이 날아들어 먹잇감의 목을 비트는 타고난 암살자입니다. 밤과 어둠은 그들이 살아온 시간이죠.”

     

    저택 너머의 어둠도 저들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감 넘치는 까망의 발언에 티토소가가 묘한 얼굴로 즈앙을 쳐다봤다.

     

    “그거 전에 즈앙도 했던 말 아니야?”

    “시끄러.”

    “혼자 가기 무서워서 지난주에도 나랑 같이 손잡고 왔잖아!”

     

    암살자로서 누구보다 밤과 어둠,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던 즈앙이었지만 지금은 매주 사다코 교수님의 강의시간이 될 때마다 티토소가와 손을 꼭 잡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기는 딱한 처지가 되었다.

    당연히 그녀의 실력이나 자신감이 허풍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다코 교수님은 급이 다르잖아.”

     

    귀신들린 춤추는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인형을 회수해오는 강의에서 천신만고 끝에 입수한 인형이 고개를 180도 돌리고 캬캬캬 웃어댈 때는 정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런 일이 매주 반복되니 아무리 강심장인 즈앙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오늘은 그런 강의들의 총집편인 중간고사라고. 당연히 무섭지.”

     

    까망의 얼굴에 떠오른 분한 기색이 사라졌다.

    저 말의 반만 진짜라고 해도 감독관님이 위험한 거 아닌가…?

     

    “저기, 당신들… 평소에 이 강의에서 무슨 일들을 겪었습니까?”

     

    오크노디와 즈앙, 티토소가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더니 꼬꼬마들답지 않은 인생 다 산 노병처럼 해탈한 얼굴이 되었다.

     

    “빛을 보면 낫을 들고 달려오는 저승의 옥졸들의 방해를 뚫고 캠프파이어하기!”

    “발을 디디면 가라앉는 늪지대에서 늪귀신의 시체를 밟고 올라가서 살아남기.”

    “숫자를 셌어요.”

     

    그나마 평온해 보이는 티토소가의 대답에 까망이 애써 마음의 위안 삼아 물었다.

     

    “가끔은 날먹하는 강의도 있나보군요.”

    “눈을 뜨면 끔찍한 일을 당한다고… 절대로 눈을 떠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열심히 셌어요. 3000까지… 이제 강의 끝났대서 눈 떴는데 귀신이 한 말에 또 속았어… 힝잉잉…”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감독관과 경호원들이 다 죽어나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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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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