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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1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 세상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군. 내가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났다는 건 분명 여신의 힘이 사라졌다는 뜻일 터인데도.]

        

       그렇게 말하는 초대 황제의 모습은 뒤가 조금 비춰 보였다.

        

       [저건…… 여러분, 저건 환영에요!]

        

       일행 중 마법에 정통한 미아가 외쳤다.

        

       [환영이라.]

        

       황제는 천천히 허공으로 손을 뻗어, 그 허공 안에서 검 하나를 뽑아냈다.

        

       검은색 대검은 흉흉한 빛을 뿜고 있었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서로 마구 뒤섞인, 질서의 깨끗한 푸른 빛과는 다른 불길한 빛.

        

       그가 검을 휘두르자, 옆의 벽 몇 개가 부서졌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나는 내가 숨겨둔, 이 힘 그 자체가 현현한 존재. 하지만 그저 허상 취급하는 것은 불쾌하군. 나에게는 분명히 ‘형체’도, ‘힘’도 있으니까. 이 세상을 진정으로 해방할 힘 말이다.]

        

       혼돈을 사랑한 황제는 그렇게 말했다.

        

       [저길 봐!]

        

       클레어가 외쳤다.

        

       그의 가슴에서 푸른 빛이 빛났다. 톱니바퀴가 거기 있었다.

        

       [저건, 지보!]

        

       [……이걸 원하는가?]

        

       황제가 말했다.

        

       그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그렇다면, 좋다. 나는 투쟁을 피하지 않는 이이니. 먼 미래의 존재인 너희가 나를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그런 황제를 향해, 레오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한 사람을 돌려받아야겠어.]

        

       [호오, 사람이라.]

        

       [그래. 그게 누구인지는 몰라. 어떻게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도,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이 우리에게 있어 엄청나게 중요했던 인물이라는 건…… 알 수 있어.]

        

       [나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인물이겠군.]

        

       큭큭큭, 황제는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었다는 양 웃은 뒤,

        

       [좋다. 상대해주마. 다시 깨어나자마자 싸움이라니, 내가 살던 투쟁의 시대와 닮아 좋군.]

        

       [……좋아.]

        

       레오가 검으로 황체를 척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간다!]

        

       그리고 강렬한 전자기타 소리와 함께, 이 게임의 주제가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래, 원래 마지막 전투에서는 주제가가 나와야 제맛이지.

        

       나는 웃으며 버튼을 눌렀다.

        

       *

        

       “마지막 보스치고는 약하네.”

        

       “여신 때랑 마찬가지로 세상을 두고 싸우는 것처럼 시작했으면서.”

        

       “그건 시스템상의 배려입니다.”

        

       클레어와 앨리스의 말에 내가 답했다.

        

       “이미 이전에 보스전을 몇 번이나 했는데, 마지막에 더 어려운 보스를 깨라고 하면 너무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그보다는 주인공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가깝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네요.”

        

       “그, 그래도 너무 쉽지도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라스트 보스가 지나치게 약하면 그건 또 재미가 없다. 너무 봐주는 느낌이잖아?

        

       게다가 보스전은 HP를 깎을 때마다 컷신이 재생되어서 더 쉽게 느껴진 것도 있었다.

        

       한 번 컷신이 재생되고 다시 이어서 플레이하는 것이 뭐랄까, 최대 피통 깎인 보스를 다시 상대하는 느낌이었으니까.

        

       어쩌면 이래서 난이도를 비교적 쉽게 설정한 것인지 모른다.

        

       아무리 스킵 되는 컷신이라도 보스를 잡는 내내 세 번이나 봐야 한다면 2회차 이후에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테니까.

        

       특히 나처럼 모든 도전과제를 클리어하는 걸 목표로 한다면 더욱.

        

       [……나, 조금씩 기억나고 있어!]

        

       보스의 피통을 깎자, 보스의 가슴에 금이 가는 것이 컷신으로 재생되고, 그에 맞춰 클레어가 외쳤다.

        

       그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감돌았다.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레오가 그 말을 따라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앞에, 답이 있어!]

        

       황제는 비틀거리던 몸을 다시 똑바로 세웠다.

        

       다시 전투가 이어졌다. 황제는 궁극기마저 사용하면서 주인공 파티를 몰아세웠지만, 이미 최종 장비까지 다 맞추고 레벨이 오를 만큼 오른 캐릭터들에게 잘 통하지는 않았다.

        

       [이쯤되면 조금 불쌍하네ㅋㅋㅋ]

       [황제쟝 몇백년만에 깨서는]

       [개같이 쳐맞네 진짜ㅋㅋㅋㅋㅋ]

        

       그러게.

        

       조금 불쌍하네.

        

       뭐, 그것도 그냥 시스템이 그래서 그럴 뿐이고, 설정상으로는 여신 못지않게 강한 적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군요. 그녀는 분명히…….]

        

       [처음엔 좋지 않게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결국, 우리를 위해 싸워줬어요.]

        

       두 번째 컷신에서도 캐릭터들은 그런 대사를 했다.

        

       쩌적, 다시 황제의 가슴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푸른 빛이 쏟아졌다.

        

       다시 약간의 전투가 이어지고—

        

       [어리석은 놈들…… 그렇게 질서의 노예가 되는 것이 무엇이 좋은 것이냐? 진정으로 자유롭게, 모두가 힘 대 힘으로 대화하는 진솔한 세상이 더 훌륭하지 않으냐?]

        

       처음에는 쿨하게 나오던 황제가 조금씩 추해졌다.

        

       뭐, 이 게임 시리즈 공통이긴 했다.

        

       [그딴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레오는 그런 황제와 검을 부딪치며 말했다.

        

       [당신들의 전쟁 따위, 알 게 뭐야! 우리는 그저 우리 동료를 다시 데리고 오고 싶을 뿐이야!]

        

       레오가 황제와 격돌했다가, 뒤로 튕겨 나갔다.

        

       [레오!]

        

       샤를로트가 외쳤다.

        

       하지만 곧, 그녀는 황제를 보고 섰다.

        

       [물러서지 않아요. 절대로.]

        

       그리고, 피가 약 절반 정도 남은 황제와의 전투가 다시 시작되었다.

        

       

       *

       뭐, 이런저런 발악을 하긴 했지만, 원래 이런 게임에서 상대는 깨라고 만들어놓는 것이다.

        

       [크윽……!]

        

       [하아, 하아, 하아…….]

        

       황제가 크게 뒤로 물러나고, 레오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쩌적.

        

       황제의 가슴의 금이 거의 깨지기 직전까지 갈라졌다.

        

       [큭큭…….]

        

       황제는 다시 웃었지만, 이번의 웃음은 뭔가 해탈한 것 같은 웃음이었다.

        

       [그런가, 이것이, 이 시대 인간들의 선택인가.]

        

       [그래. 우리는 여신의 길도, 당신의 길도 걷지 않겠어.]

        

       [과연.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또 다른 자유라고 할 수 있겠지…… 좋다. 너희들은, 결국 나의 망집과 싸워 이길 수 있었군. 훌륭하다.]

        

       황제의 가슴이 완전히 깨져나갔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 미소 짓고 있던 황제의 반투명한 몸도, 산산이 조각나 깨져나갔다.

        

       그리고 화면을 덮은 것은 눈부신 푸른 빛.

        

       여신의 남은 힘이, 시간을 돌리는 데 필요했던 마지막 힘이 결국 풀려나고 있었다.

        

       그리고.

        

       [실비아!]

        

       레오가 그렇게 외쳤다가—

        

       [헉!]

        

       그렇게 외치며 황급히 몸을 돌렸다.

        

       레오뿐만이 아니라, 함께 따라온 다른 남자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였다.

        

       “…….”

        

       나는 말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웃음이 터지기 직전인 모습이었다. 심지어 미아도 눈을 가리는 척하고는 화면을 보며 어깨를 떨고 있었다.

        

       나는 다시 화면을 보았다.

        

       [언니!]

        

       [실비아!]

        

       아이들이 다시 돌아온 실비아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었다.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나는 차마 온전히 그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읍읍읍]

        

       채팅창도 대부분 웃는 글씨였고, 몇몇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참는다는 듯 그런 채팅을 쳐올리고 있었다.

        

       실비아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물론 이 게임 특성상 완전한 알몸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각도를 이리저리 교묘하게 비틀어, 바닥에 누워있는 실비아가 알몸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줄 뿐이었다.

        

       하긴, 그렇겠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다시 태어나는데 옷 같은 것도 같이 만들어질 리가 없지.

        

       없기는 한데,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으응…….]

        

       실비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여러, 분……?]

        

       [언니, 언니!]

        

       클레어는 이제 울고 있었다. 분명 헤어스타일은 내가 아는 클레어가 아니었는데도, 그 목소리 연기 덕분에 ‘클레어’라는 분위기가 확 살았다. 역시 베테랑 연기자는 다르다니까.

        

       클레어가 실비아를 끌어안고, 실비아는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실비아, 이젠 그런 선택 따위 하지 마.]

        

       앨리스의 말에 실비아는 그녀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가,

        

       [……그렇, 습니까.]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눈을 감고 입가에 살짝 미소 지었다.

        

       [여러분은, 저를 찾아주신 거군요. 저조차도 포기했던 저를…….]

        

       실비아가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해당 장면은 끝났다.

        

       *

        

       에필로그는 조금 더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몇 주 정도가 흐르고, 사태는 겨우 정상화되었다.

        

       여전히 세상은 뒤죽박죽 섞인 채다. 어떻게 사실 중 하나로 은근슬쩍 미끄러져 들어가는 식으로 인과는 맞춰졌지만, 그 시간대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두기로 했다.

        

       [정말이지, 여신의 힘이 남아있지 않았으면 어쩌려고 했냐고…….]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는 정말 방법이 그것뿐이라 생각하여…….]

        

       실비아가 앨리스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우리 언니한테 뭐라고 하지 마.]

        

       클레어가 정색하며 말하는 것을 보고, 앨리스가 쓰게 웃었다.

        

       [뭐, 돌아왔으면 된 거지.]

        

       레오가 그렇게 말하고,

        

       [아카데미 졸업할 때까지 잘 부탁해요.]

        

       샤를로트가 그렇게 말했다.

        

       [해피엔딩 최고]

        

       띠링, 하고 도네가 왔다.

        

       나는 그 말에 격하게 동의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병원 다녀오는 것때문에 하나가 밀리니 다른 일정도 주룩 밀려버리네요…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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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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