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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1

    다음날 아침.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난 루크는 낯선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온천여행을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내가 언제 잠들었지?’

    침대로 가는 순간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마지막까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 기억이 나는데…….

    아. 그렇군, 아마 마지막까지 눈이 내리는 걸 보다가 스르륵 잠들어버린 모양이다.

    잠들어버린 자신을 예르나나 다이튼이 침대로 옮겨 눕혀준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작은 한숨이 나왔다.

    추억에 그렇게나 깊이 잠겼던 것일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던 루크는, 이내 팔목으로 눈을 가리곤 ‘훗’ 하고 웃어버렸다.

    ‘엄밀히 따지면 나의 추억도 아닌데 말이지.’

    깊게 따져보면, 자신은 사실 그저 루크 이루시에게 몰두한 관객에 불과했다.

    루크라는 배역의 몸에 깃들어, 그의 생애를 함께 체험한 열성적인 관객, 말이다.

    배역과 한몸이 되어 울고, 웃고.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하다보니 스스로를 ‘루크 이루시’라고 착각하고 만, 멍청한 관객 말이다.

    그러나, ‘레니에’가 ‘나’의 첫사랑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자신이 ‘루크 이루시’ 본인으로서든, 그 배역에 몰입한 관객으로서든, 처음으로 마음 속 깊이 사랑한 존재는 레니에가 유일하다는 것은 동일했기 때문이다.

    그래, 루크와 자신은 여자를 보는 눈도 동일했던 모양이다.

    ‘첫사랑이라…….’

    당시 첫눈이 마법의 재료로서 우수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사랑을 찾을 수 없는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인 그들로서는 마법에 첫사랑의 감정을 섞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루크에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굳이 첫눈의 힘을 빌 것도 없이, 지금의 루크는 스스로 첫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지금의 루크에게 첫눈은 그저 추억을 불러오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 만큼이나 촘촘히 쌓인, 수많은 추억들을 말이다.

    “……슬슬 일어날까.”

    너무 포근한 침대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법이다.

    이럴 때엔 자제심을 발휘해야지.

    -스윽.

    일어나면서 좌우를 돌아보니, 먼저 눕혀둔 아이들은 이미 몸을 일으킨 건지 보이질 않았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일까?

    아이들이 이렇게 일찍 일어날 수가 있다니. 

    루크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가 보니, 예르나와 다이튼이 맞이해 주었다.

    “여, 잘 잤냐.”

    “일어났니?”

    그 인사에 대충 고개를 끄덕인 루크가 묻는다.

    “애들은요?”

    “저기서 놀고 있어.”

    예르나가 눈내린 마당을 드러낸, 거실의 미닫이 문 방향을 가리켰다.

    첫눈이 밤사이 계속 내린 모양인지, 마당에 소복히 눈이 쌓인 모습이 마치 흰색 이불을 덮어놓은 듯 포근해 보였다.

    바닥에도, 작은 소나무에도, 돌 위에도 온통 하얗다.

    예쁜 풍경이었다.

    먼저 일어난 아이들이 그 작은 마당에서 그 하얀 이불을 마구잡이로 걷어내면서 놀고 있지만 않았다면.

    “으! 또 던지니까 흩어졌어!”

    “하하! 파이, 그거 제대로 안 뭉치면 잘 안 던져질걸! 이렇게, 말이야!”

    -퍼석!

    “아!”

    그렇게 마당의 풍경은 엉망진창이 되어갔다.

    그래도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노는 모습을 보니 이것도 마냥 나쁘진 않아 보였다.

    음,아니. 오히려 이전 풍경의 적막한 분위기보다는 이 활기찬 느낌이 더 나을지도?

    그나저나 눈싸움인가.

    그것도 그리운 추억이군 그래.

    예전에 레니에와 케일이 눈싸움을 걸어오는 것을 아이스볼트로 대응했더니 그딴 건 눈싸움이 아니라 그냥 싸움이라며 화를 냈던 게 떠올랐다.

    그걸 무시하고 몇번 더 다중 아이스볼트 세례를 날렸더니, 결국 그것을 참다못한 케일이 칼을 빼들고 아이스볼트를 모조리 베어내며 달려드는 바람에 얼굴에 눈 묻은 주먹으로 얻어 맞았고, 레니에는 그걸 치료해주는 척 하면서 자신의 입과 옷 속에 눈을 집어 넣었다.

    그렇게 그 눈싸움은 모두가 만신창이가 될 정도가 되어서야 끝이 났었다.

    “훗.”

    그 때를 생각해보면 자신도 참으로 철없는 시기였지.

    쓸데없는 짓에 힘을 낭비한 대가로, 그날은 오래가지 않아 야영을 해야했으니까.

    루크가 그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짓고 있을 무렵, 다이튼이 말했다.

    “아, 루크. 일어난 김에 밥 먹기 전에 애들 좀 데리고 목욕탕 좀 다녀와. ”

    “응? 목욕탕을?”

    다이튼의 말에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냐하면, 객실 내에 이미 온천이 있는데 굳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목욕을 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좀 있다가 가족탕에서 씻기지 그러나. 나도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잠도 덜 깼고…….”

    “음.”

    그러나 다이튼은 대답하지않고 미묘한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대체 그게 뭐하는 건가, 하고 잠깐 고민하던 루크는 예르나의 헛기침소리를 듣고 나서야 뒤늦게 그 제안의 진의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아.”

    과연, 부부만의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말이렷다?

    그런거면 진작에 그렇게 말하지.

    처음부터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말했으면 굳이 되물을 필요도 없었을텐데.

    “그런 거로군?”

    루크가 다이튼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며 잘 알아 들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다이튼은 머쓱한지 괜스레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아무튼, 애들 좀 데리고 가서 놀아. 용돈 줄 테니까, 나가서 애들이랑 천천히 간식이라도 먹으면서. 응?”

    간식이라, 딱히 그걸 원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는 돈을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네, 뭐. 그리 하도록 하지.”

    그럼, 오는 길에 천천히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기로 할까.

    어제 지나가면서 슬쩍 보니까 민트초코 맛도 있는 것 같던데 말이다.

    곧 루크는 다이튼의 제안대로 아이들을 씻기러 나왔다.

    헌데 아이들은 밖에서 눈 덮인 풍경을 보더니 또 뭔가에 꽂혔는지, 목욕할 생각은 뒷전으로 하고는 시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렇게 아이들이 뛰어나간 곳은 직원들이 미처 눈을 치우지 않은 쪽.

    시설로부터 조금 떨어진 장소의 눈 덮인 풍경이었다.

    “디아나, 여기는 눈이 많아!”

    “그러네! 파이, 우리 눈사람 만들자! 다른 사람들도 다 볼 수 있게, 크게!”

    “응! 큰 눈사람!”

    아이들은 곧장 눈덩이를 뭉치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눈사람을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흠.”

    ‘눈사람이라.’

    그러고보니 예전에 레니에가 눈사람을 꽤나 크게 만들어서 자랑해온 적이 있었지.

    그러면서 눈사람이 사람들을 포근하게 안아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하길래, 그걸 아이스골렘으로 만들어 준 적도 있었다.

    …뭐, 결국 눈뭉치만으론 레니에의 생각만큼 포근한 느낌을 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제 스스로 주변의 눈을 이용해 몸을 늘리며 사람들을 압사시키려 드는 거대 아이스골렘과 사투를 벌인 기억은 결코 지루한 기억은 아니겠지.

    “이만큼?”

    “아냐, 오빠처럼 만들려면 더 커야 돼!”

    “응!”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던 눈 내린 풍경은 눈사람을 만든다는 목적의 아이들의 발자국으로 뭉개지고 손으로 흉하게 퍼내어지면서 어느새 객실의 마당에서 벌어진 참사와 똑같은 풍경이 재현되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눈 덮인 풍경을 훼손해가며 만들어내는 눈사람은, 눈 뿐만 아니라 흙까지도 함께 퍼내는 바람에 흙으로 얼룩덜룩 지저분하기만 했다.

    그걸 만들어낸 것이 눈사람 만들기의 장인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뭐, 어떻게 보면 오히려 이 편이 귀여운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걸 만든 것이 가족이라 마냥 좋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만.

    그래도, 이왕이면 더 예쁘게 만드는 게 낫겠지?

    잠시 손을 좀 봐 줄까.

    그렇게 생각한 루크는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 곁으로 다가와 흙 위에 흰 눈을 덮어서 모양을 다듬으며 말했다.

    “나도 도와주마.”

    “와! 정말?”

    “좋아!”

    그렇게 어느정도 완성이 된 것 같이 보이던 때, 디아나가 나뭇가지를 가져와서 얼굴에 화난 표정을 그렸다.

    “응? 디아나, 눈사람의 표정이 화가 난 것 같은데, 무슨 일이냐?”

    그러자 디아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왜냐면, 오빠는 우리한테 맨날 화내니까. 이거는 오빠 눈사람이거든!”

    “아.”

    과연, 그런 것인가?

    루크는 피식 웃어버렸다.

    하긴, 아이들을 혼내는 역할은 주로 다이튼이었으니..

    디아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제는 배 부분에 낙서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의 두드러지는 특징인 복근을 표현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음. 그렇구나.”

    확실히, 그렇게 보면 얼추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디아나는 의외로 표현력이 좋구나.

    나중에 커서 조각가가 되려는 걸까?

    아무튼, 눈사람이 완성되었으니 이제 슬슬 일어날 시간이다.

    “다 됐느냐? 그럼 이제 씻으러 갈까?”

    루크의 물음에, 아이들은 동시에 대답했다.

    “안돼!”

    “안된다니?”

    눈사람이 이렇게 멋지게 완성되었는데도, 아직도 더 놀 거리가 남았단 말인가?

    루크가 의문을 담아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이들이 대답했다.

    “예르나 언니도 만들어야지!”

    “루크 언니도!”

    “나랑 파이도!”

    그 대답에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이런, 온가족을 다 만들 생각이었단 말이냐.

    당했다.

    이거 꽤나 시간이 걸리겠는데.

    뭐, 예르나와 다이튼에게는 희소식이겠군.

    “호오, 호.”

    “으, 차가워.”

    “수고했다. 손이 차갑지? 얼른 온천에 가서 몸을 녹이자꾸나.”

    ““응!””

    그렇게 루크와 아이들은 몸을 돌렸다.

    완성된 눈사람 가족들을 뒤로하고서.

    그 순간.

    -휘잉—.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소나무의 잎을 한 차례 흔들고 지나갔다.

    그러자, 소나무 잎에 걸쳐져있던 눈덩이가 쏟아지고 말았다.

    툭, 투둑.

    그렇게 예르나와 다이튼 눈사람 사이에 뒤늦게 쏟아진 솔잎 묻은 눈덩이 두개.

    그건 마치, 눈사람같았다.

    멋진 눈사람 가족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응애 나 애기 눈사람!

    Ps. 루크가 만든 눈사람가족은 의외로 강도가 강해 누가 와서 발로 차면 부상을 입을지도 모릅니다.
    눈사람 함부로 발로 차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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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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