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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2

        

         

       “흐….”

         

       대통령과 총리는 한동안 요양을 거쳐야 하는 능력자들을 떠올리며 마른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서로 시선을 마주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꼴이 아주 우습게 되었습니다.”

         

       [ 그렇지요. ]

         

       그리곤 그들은 같은 존재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우리가 눈이 돌아간 걸 보고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 이때가 기회다 싶었겠지요. 그게 그놈들 본성 아니겠습니까? ]

         

       “게다가 미국도 반쯤 돌아있는 것도 보았을 테고…. 하하하. 이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속이 뒤틀리는 느낌입니다. 그놈들이 좋아하면서 환호성 질렀을 것만 떠올려도 정말, 정말로 짜증이 나는군요.”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한국과 일본이 싸웠을 때 가장 이득을 볼만한 나라.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게만 집중해서 싸울 때 가장 많은 이득을 취한 존재.

       반쯤 돌아버린 미국의 개입이 없다고 판단하자마자 한국과 일본에 손을 뻗은 개자식들.

       한국과 일본이 독도에 집중하고 있을 때 사람들을 파견해서 주물과 주술을 쓸어간 빌어먹을 놈들.

         

       [ 빌어먹을 중국 놈들. ]

         

       대놓고 테러를 저지르며 주물을 털어간 용의자, 중국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중국밖에 없습니다. 이 동아시아에 기회 되었을 때 냉큼 끼어들어서 주워 먹을 만한 놈들이 그놈들밖에 없어요. ]

         

       총리는 돌려 말하는 평소의 화법도 집어치우고 시뻘건 얼굴로 중국을 욕했다.

       그리고 대통령 역시 총리를 제지하기는커녕, 맞장구를 쳤다.

         

       “대담하다 못해 무식하게까지 느껴지는 짓거리를 벌일만한 놈들이 러시아, 중국밖에 더 있습니까? 그런데 러시아일 가능성은 적습니다. 왜냐? 러시아가 일을 벌였으면 미국이 조용히 있을 리가 없으니까.”

         

       [ 그렇지요. 아무리 상태가 안 좋아 보여도 미국의 주적은 러시아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러시아일 리가 없겠죠. ]

         

       “그리고 중국 놈들 하는 거 보면 뻔한 거 아닙니까? 눈이 시뻘게져서 세계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주물, 주술을 긁어모으고 있는 것 같던데….”

         

       [ 예. 그 말대로입니다. 뻔하고, 뻔하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본과 한국의 것도 훔쳐보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 아니겠습니까! ]

         

       그들은 확신했다.

       이번 일을 벌인 것이 중국일 것이라고.

         

       한국과 일본이 독도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을 때, 한국과 일본에 테러를 저지르며 물건을 훔친 것이 중국일 것이라고 말이다.

         

       증거?

       증거는 없었다.

       얼마나 준비를 철저하게 했는지 남아있는 증거가 없었다.

         

       하지만 심증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이 빌어먹을 놈들이 EMP로 죄다 망가뜨리고, 인질을 잡아놓고 폭탄을 설치했습니다. 인질 대하는 것에서부터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느껴진다고 보고가 올라왔지요. 그럼 뻔한 거 아닙니까? 사람이 썩어 넘쳐나서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나라가 중국 아닙니까?”

         

       [ 일본에선 폭탄을 퍼붓듯이 써댔습니다. 그 많은 폭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범인은 뻔합니다. 중국밖에 없어요. 국가 차원에서 나서지 않고서는 힘든 수준의 폭탄이란 말입니다. ]

         

       생명을 우습게 보는 태도.

       출처 불명의 폭탄.

       가장 이득을 본 나라.

         

       이 모든 것이 말하고 있었다.

         

       중국이 범인이라고.

         

       대통령과 총리는 확신하고 중국을 욕했다.

       그리고, 중국을 욕하며 생긴 묘한 동질감 속에서 그들은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서로에게 쓸데없이 에너지를 쏟는 것은 멈추고, 중국을 견제하자고.

         

         

         

        * * *

         

         

         

       묘한 분위기를 가진 빌딩.

       그 최상층에 한 남성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니, 이것을 침대라고 부를 수 있을까?

         

       휑하다 못해 황량하게까지 느껴지는 실내의 모습에 맞추려는 의도가 있기라도 하듯, 남자가 누워있는 침대는 침대라고 부르기에는 뭔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돌.

         

       남자가 누워있는 것은 거대한 돌이었다.

         

       잘 깎여서 평평하고, 광택이 좌르르 흐르는 거대한 돌.

       사이즈는 킹(King)사이즈라고 불리는 2인용 매트리스 정도의 크기일까.

       돌은 마치 자신이 돌침대라도 되는 것처럼 네모반듯하게 깎인 채 황량해 보이는 최상층 구석진 곳에 있었다.

         

       하지만 돌이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아무리 봐도 돌은 침대가 될 수가 없었다.

       반듯하게 조각되고 깎이고 손질되어 있기는 하나 돌침대와는 아예 모습 자체가 달랐으니까.

         

       저건 침대가 아니었다.

       침대가 아니라…그래.

         

       제단.

         

       제단의 형상과 흡사하다고 해야 맞으리라.

         

       사람이 손수 거대한 돌을 깎고, 손질해서 정성껏 만들어낸 제단 말이다.

       그것도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그리고 그 제단 위에 남자가 있었다.

       딱 봐도 비싸고 가벼워 보이는 이부자리를 깔고, 비단으로 만든 잠옷을 몸에 걸친 채 턱을 괴고 있다.

         

       무료함을 달랜 채 허공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왕족이나 귀족처럼.

       혹은 무언가를 기다리며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토끼처럼.

         

       그렇게 남자는 시선을 한 곳에 집중시킨 채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줄을 끌어당기는 소리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있었고, 층수를 알리는 숫자는 계속해서 변화해가며 엘리베이터가 작동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멈추고, 띠-잉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딱 멈추어 섰다. 그리고 스르륵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오며 남자를 불렀다.

         

       “어이, 오래비! 살아있어?”

         

       누군가에게는 오래비.

         

       “오빠…? 병문안 왔는데….”

         

       누군가에게는 오빠.

         

       “진성아, 괜찮니?”

         

       누군가에게는 진성.

         

       그리고.

         

       “쯧….”

         

       누군가에게는 피가 이어져 있지는 않되 한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는 식구.

         

       그렇게 그들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남자를 향해 걸어왔다.

         

       제각각의 감정을 안은 채 말이다.

         

         

         

        * * *

         

         

         

       “이렇게 병문안을 와주신 것에 참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진성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이들을 환대하듯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고쳤다.

       그는 몸을 일으켜 돌 위에 걸터앉았고, 허공에 손을 뻗어 저 멀리 있는 의자를 자신의 근처로 끌어당겼다.

         

       진성이 손을 뻗자 의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히기라도 한 듯 살짝 뜬 채 진성이 누워있는 돌 근처에 촤라락 놓였고, 돌 근처 벽에 세워져 있던 접이식 테이블 역시 촤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펴지며 의자 근처에 놓였다.

         

       “좋은 의자는 아니나 잠시나마 엉덩이를 붙이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것이니, 부디 앉아주시지요.”

         

       진성은 평소 저택에서 사용하던 말투를 사용하며 그들을 자신 앞에 앉혔다.

         

       그렇게 이씨 가문 사람들과 박진성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진성이 성인식 이후 독립을 한 후, 처음으로 말이다.

         

       이양훈.

       이양훈의 부인들.

       그리고 이세린과 이아린까지.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모두 자리에 앉자, 진성을 잠시 바라보던 이양훈이 입을 열었다.

         

       “영상 봤다.”

         

       짤막하고 투박한 한 마디.

       하지만 그 말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있었다.

         

       “불꽃이 대단하기는 하더구나. 후유증은 좀 있는 것 같기는 해도.”

         

       이양훈은 못마땅한 듯 진성을 바라보았다.

       비단으로 만들어진 잠옷을 입고 있는 진성의 몸은 대부분 가려져 있었지만, 잠옷이 차마 가리지 못한 목 위쪽이나 손발만 보더라도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시뻘겋게 변해버린 피부.

       피부에서는 땀으로 보이지 않는 액체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아마 저 번들거림 대부분은 화상을 가라앉히고 회복하기 위해 바른 연고의 번들거림일 테지만, 그 연고 사이사이에도 연고와도 다르고 땀과도 다른 액체가 보였다.

       저것은 필시 화상에서 오는 진물이겠지.

         

       “듣기로는 약 잘 바르고 좀 쉬면 흉 하나 없이 괜찮아질 거라고 하던데. 맞느냐?”

         

       “예. 의사도 그리 말하였고,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특별한 일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병원에서 준 약만 바르면 금방 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쯧.”

         

       이양훈은 진성의 말에 잠시 혀를 차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쇼핑백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나무 상자였다.

         

       “막 사회에 발을 디딘 남자가 얼마나 바쁜지 안다. 사나이가 이런 거에 시간을 허무하게 소비해서 되겠느냐?”

         

       그는 그렇게 말하며 상자를 열었다.

         

       달그락.

         

       작은 소리와 함께 열린 상자는 조개처럼 자기 속살을 드러내었다.

       상자가 열리자 차가운 드라이아이스가 자아내는 연기가 아래에 자욱하게 깔리며 물안개처럼 퍼져나갔고, 여자 귀신의 숨결처럼 냉기를 품은 채 사방으로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렸다.

       마치 구름이 한을 품고 폭포를 이루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 냉기의 중심.

       드라이아이스의 연기 속에 모습을 반쯤 감추고 있는 물건이 있었다.

         

       “네팔에서 구해온 영약이다.”

         

       새끼손가락 마디 하나보다 작은 크기의 말린 애벌레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볼품없어 보이는 외형은 영약이라고 보기엔…분명히 모자람이 있어 보였다.

         

       “설표(雪豹)의 거처에서 발견한 동충하초다. 영물에 가까운 설표의 거처에서 수십 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녀석인데, 강하지는 않아도 냉기를 품고 있다고 하니 화상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겠지. 몸보신용으로 먹거라.”

         

       하지만 볼품없어 보이는 외형과는 내력이 심상치 않았다.

         

       히말라야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사람도 보기 힘든 설표, 그것도 영물에 가까울 정도로 특별한 설표의 거처에서 발견한 동충하초라니.

       게다가 설표의 영향을 받아 냉기까지 품고 있다고 한다.

         

       수집품으로서의 가치만 생각해도 꽤 값이 나갈 것 같은 물건이었다.

         

       게다가 강하지 않지만, 냉기를 품고 있다고?

       강하지 않기에 반발도 적을 것이니, 몸보신용으로 쓰기 딱 좋은 영약의 조건 아닌가.

         

       아마 수천 정도는 써서 구했으리라.

         

       하지만 이양훈은 수천만 원짜리 물건을 선물로 주면서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몸보신용으로 먹으라며 말을 툭 던졌을 뿐.

         

       진성은 이양훈의 배려에 미소를 지었다.

         

       “큰 도움이 되겠군요. 잘 먹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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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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