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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2

       부모의 눈에 자식은 늘 어려 보인다.

         

       그것은 용선아 또한 마찬가지.

         

       그녀의 눈에 비치는 딸은 늘 부족하고, 어렸다.

         

       저 여린 것이 궁주가 되어 독한 결정을 내릴 수는 있을까?

         

       저 착해빠진 것이 혹 사기라도 당하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제 딸을 기재라고, 똑똑하다고 말해도 걱정은 떠나지 않았다.

         

       그랬는데.

         

       “현 북해빙궁의 궁주는 저예요, 어머니. 본궁을 위협하는 존재를 막아서는 것은 궁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 제아무리 어머니라도 제 책임을 빼앗아 가실 수는 없답니다.”

       “허….”

         

       언제 이리도 컸단 말인가.

         

       어느새 이리도 의젓해져 제 어미의 곁을 지키려 하는가.

         

       그것은 썩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용선아.

         

       구태여 사지로 들어서겠다고 고집부리는 딸을 막아설 수 없음을 직감한 탓이었다.

         

       못 본 사이 장성하여 제 자리를 이어받아 궁주로서의 책무를 들먹이는 딸의 앞길을 어찌 가로막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네 마음대로 하거라.”

         

       딸의 목숨이 소중하여 대놓고 허락할 수도 없는 아쉬운 마음에서 나온 퉁명스러운 대답.

         

       그런 어미의 마음을 이해한 용설란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이윽고 합심한 모녀의 손발이 어우러졌다.

         

       “핫…!”

       “이얍!”

         

       현경에 오른 용선아에게 제 딸은 여전히 모자라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북해빙궁의 심처에서 정순한 음기를 쌓으며 어머니의 뒤를 잇기 위해 피나는 노력 끝에 일구어낸 화경의 경지는 중원 무림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실제로 그녀의 조력이 더해지자 만년빙정으로부터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죽…, 어라…!]

         

       오직 죽음만을 목적으로 한 살기등등한 공격 속에서 노니는 두 모녀.

         

       막지 못하는 공격은 피하고.

         

       피할 수 없는 공격은 뚫는다.

         

       혼자로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순풍에 돛을 매단 듯 수월하게 흘러간다.

         

       이대로라면 백우진이 부탁한 일각을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이 들던 그때.

         

       [크으으…!]

         

       부풀어 오른 만년빙정에서 쏟아지던 한파가 순식간에 멎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넘실거리던 기운들이 전부 구슬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직감이 머릿속에 경종을 울리는 그 순간.

         

       [크…, 아아아아…!]

         

       분노로 가득 차오른 포효와 함께 부풀어 오른 구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빠른 속도로 빗금을 더해가는 구슬의 표면.

         

       갑작스러운 이상 현상에 모녀는 자세를 풀지 않고서 유심히 녀석을 지켜보았다.

         

       어느덧 구슬의 표면이 무수한 균열로 뒤덮였을 즈음.

         

       파아앙-!

         

       청명한 소리와 함께 구슬의 겉면이 터져 나갔다.

         

       허공을 비산하는 새하얀 조각들.

         

       일견 자멸하는 것처럼 보이는 파열의 순간.

         

       그러나 그것은 자멸이 아닌 우화(羽化)였다.

         

       번데기에서 탈피하여 나비가 되듯.

         

       콰콰콰콰-!

         

       산산조각 흩어진 구슬 안에 고이 잠들어 있던 것이 마침내 세상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구슬의 형태에 맞춰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던 몸뚱어리가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머리 위로 자라난 구불구불한 두 개의 뿔.

         

       그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새하얀 머리.

         

       한기를 머금은 일그러진 눈, 삐죽 솟은 코, 톱날처럼 자라난 날카로운 이빨.

         

       뾰족하게 솟아오른 투명한 얼음들을 갑옷처럼 두른 괴물.

         

       용선아조차 밑바닥을 가늠키 힘든 최악의 마물이 마침내 눈을 뜨고 말았다.

         

       [죽인…, 다….]

         

       앞으로 더 오랜 시간 잠들어 있어야 할 마수를 깨운 것은 다름 아닌 분노였다.

         

       두 모녀의 날래고 현란한 움직임을 잡지 못하는 순간, 순간이 분노로 쌓였다.

         

       저들처럼 팔과 다리가 있다면 직접 붙잡을 수 있을 텐데.

         

       이 자리에 고정되어있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만 있다면.

         

       차곡차곡 쌓인 분노 어린 바람이 마침내 단단하게 둘러싸고 있던 껍질을 깨버린 것.

         

       그러니 놈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불완전한 상태로 깨어나게 한 두 모녀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것.

         

       [죽인다아아아아아아-!!]

         

       녀석이 포효하자 주변 전체가 요동친다.

         

       외침만으로 자아내는 거센 기파에 온몸이 진탕될 지경.

         

       “크윽….”

         

       이를 악문 용선아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곧장 제 곁에 위태롭게 서 있는 용설란을 뒤로 물렸다.

         

       “란아는 이제 물러서거라.”

       “하, 하지만…!”

       “어서 물러나래도!”

         

       제아무리 장성한 딸의 고집이라도 지금의 그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조금 전까지는 승산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제 딸과 함께 백우진에게 부탁받은 일각을 무사히 버텨낼 수 있을 거란 확신 어린 승산이.

         

       하나 지금은 아니었다.

         

       하염없이 쏟아내던 한기가 전부 놈의 몸에 갈무리되었다.

         

       그 기운이 한데 모여 쏘아질 공격은 자신조차 막아낼 수 있을지 의아할 정도.

         

       “궁주로서의 책무는 지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나아갈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테지.”

         

       용기 있게 나설 때가 있으면 슬기롭게 물러나야 할 때도 있는 법.

         

       용설란은 아랫입술을 꽉 문 채로 물러났다.

         

       더 이상 제 어머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다시 혼자 된 용선아가 죽음마저 각오한 채 검을 들어 올렸다.

         

       하나 솔직히 의문이었다.

         

       ‘저것을 죽일 수 있는가?’

         

       일각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버티면 저 괴물을 죽일 수 있는가.

         

       새파랗게 젊은 사내가 자신조차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몸은 여전히 그가 말한 일각을 버티기 위해 각오를 다진다.

         

       ‘참으로 어이없군.’

         

       이런 제 모습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을 지경.

         

       쿵-

         

       쿠웅-

         

       제 신장의 두 배는 될 법한 괴물이 지축을 뒤흔들며 다가온다.

         

       분노한 눈동자는 여전히 용선아에게로 향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

         

       구슬에서 깨어나 한층 더 예민해진 감각에 자꾸 무언가가 밟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거리는 대략 삼십 장 정도.

         

       그곳에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는 사내가 자꾸만 시선을 잡아끈다.

         

       주변이 온통 제가 내뿜는 기운으로 떠들썩한데, 오직 그곳만이 고요하다.

         

       이질적인 분위기로부터 느껴지는 극도의 불안감.

         

       넘쳐흐르는 힘에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부추기는 불붙은 자신감에 물을 끼얹는다.

         

       그로 인해 냉정해진 사고가 경고한다.

         

       이곳에서 저 사내야말로 유일하게 불완전한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노라고.

         

       제아무리 머리끝까지 치솟은 분노라고 해도 제 생명의 위기보단 그 무게가 덜한 법.

         

       [크르르…!]

         

       대상을 재설정한 녀석이 얼음 위를 내달린다.

         

       “……!”

         

       눈으로 좇는 것조차 쉬이 허락되지 않는 속도에 자세를 낮추고 수비 태세를 굳히는 용선아.

         

       하나 녀석의 목표는 그녀가 아니었다.

         

       눈부신 속도로 제 곁을 지나쳐 가는 녀석을 보고서야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런…!”

         

       상대가 백우진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순간 차오르는 당혹감.

         

       그러나 그녀는 빠르게 안색을 회복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만회할 기회는 있다.

         

       이를 위해 그녀는 전신의 내공을 전부 끌어올린 채 취설무흔을 운용하여 몸을 날렸다.

         

       시시각각 좁혀지는 거리.

         

       뒷일 따윈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거리를 좁히는 데에만 몰두한 그녀가 마침내 녀석을 따라잡았다.

         

       [비…켜라!]

         

       어느새 제 앞을 가로막는 용선아를 향해 거칠게 손을 뻗는 마물.

         

       “큭…!”

         

       놈의 손아귀에서 뿜어지는 가공할 한파에 양팔을 교차시킨 두 팔이 얼어붙는다.

         

       얼마 남지 않은 내공을 빠르게 녹였으나, 늦었다.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든 놈의 주먹이 제 머리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새하얀 강기가 실린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것을 본 그녀는 직감했다.

         

       저것을 맞는 순간 죽는다고.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 치명상이라도 피해 보려 애쓰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다.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에 순간 체념하듯 팔을 떨어뜨릴 즈음.

         

       [……!]

         

       별안간 녀석이 주먹을 거두고서 몸을 뒤로 날린다.

         

       그리고.

         

       스걱

         

       귀를 섬뜩하게 만드는 소리와 함께 조금 전까지 놈이 서 있던 땅이 갈라졌다.

         

       아마 그대로 있었다면 제아무리 단단한 녀석의 몸이라도 두 동강이 났을 터.

         

       “감이 좋네.”

         

       그녀가 하려 했던 말이 다른 이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백우진.

         

       눈을 감은 채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던 그가 마침내 눈을 뜬 것.

         

       가까스로 일각이라는 시간을 채우는 데에 성공한 것일까.

         

       “이제 물러나 계십시오.”

         

       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제게 말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가까스로 버텨낸 일각 동안 그는 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고민하던 그때.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낮게 으르렁대는 상대를 향해 백우진이 걸음을 내디딘다.

         

       얼어붙은 땅 위로 닿는 가벼운 걸음.

         

       그러나 그 뒤의 현상은 전혀 가볍지 않았으니.

         

       콰드득-!

         

       그의 발끝을 기준으로 다섯 갈래로 쏘아진 기운이 땅을 온통 헤집어버리는 게 아닌가.

         

       이를 본 용선아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고작 한 걸음으로 자아내는 가공할 파괴력 또한 놀라웠으나, 진짜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처, 천마군림보…!?”

         

       그가 펼친 보법이 천마의 독문무공인 천마군림보였기 때문.

         

       용선아에게 부탁하여 벌어낸 일각 동안 백우진은 누가 볼세라 꼭꼭 숨겨둔 무공의 봉인을 풀어내는 것이었다.

         

       물론 단순히 천마신공의 구결대로 기운을 움직이는 것만은 아니었다.

         

       고작 그 정도에서 그칠 것이었다면 굳이 일각이라는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을 테니.

         

       천마신공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역천(逆天)의 무공.

         

       일각이라는 시간은 역천의 묘리를 이용해 제 심상 자체를 뒤집는 데에 필요한 시간이었으니.

         

       “와라.”

         

       그가 입을 여는 순간.

         

       슈와악!

         

       순백의 세상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새까만 어둠으로 물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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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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