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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2

   조이 파트란.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 속에서 가장 높은 마력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캐릭터이며 공작 영애라는 지위와 달리 허술한 부분이 많아 유저들에게 호감을 샀던 동료NPC.

   

   무언가를 할 때 일정확률로 대실패를 저지르는 히든 패시브가 있어서 많은 유저들의 혈압을 올리기도 했던 마법사.

   

   그래도 동료로 들일 수 있는 마법사 중에서 가장 잠재력이 높고 다재다능하다는 점 때문에 결국에는 채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

   

   모니터 너머에 있을 무렵 내 파티에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을 사람.

   

   나는 조이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단순히 내가 게임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러한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그런 이유에서 시작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며 나에게 조이는 진짜 친구가 되었으니까.

   

   무서운 외모와 달리 소심하고.

   

   놀림 당하면 쉽게 화를 내고.

   

   그러면서도 진짜로 투정을 부리진 못해서 금방 풀어지고.

   

   정말 맛있는 걸 먹을 때면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바보 같은 미소를 짓고.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는 투덜거리는 그녀는 어느새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안 소중한 것은 아니다.

   

   모두들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조이를 볼 때면 던전 앞에서 주저앉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서 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 때의 광경이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난 조이를 더더욱 지켜야 할 사람으로만 바라봤던 걸지도 모르겠다.

   

   소울 아카데미 최고의 마법사가 아니라 약하디 약한 내 친구로 말이다.

   

   공동 전체로 조이의 마력이 퍼져나간다.

   

   거짓된 진실을 지우고 숨어있던 진실을 드러내는 그녀의 마법은 마법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허술해 보였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놀라웠다.

   

   저 허술함으로 나나 페이비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이적을 이루어 낸 거니까.

   

   <허. 마법사 그 노친네가 이 광경을 봤다면 기뻐했겠군.>

   

   할아버지의 탄성을 뒤로 한 채 바뀌어가는 세상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게임 속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마주한다.

   

   – 띠링

   

   [조이 파트란의 호감도가 85를 넘습니다.]

   [그녀가 당신을 완전히 신뢰합니다!]

   [조이 파트란과 당신의 연이 짙어집니다.]

   [용사의 혼이 그녀를 기적으로 인도합니다.]

   

   쏟아지듯 떠오르는 메시지를 읽고 있던 중 애써 고개를 든 조이와 눈을 마주했다.

   

   힘겹게 눈웃음을 지어 보이는 조이를 마주하고 나서야 난 내가 웃음을 터트리고 있음을 이해했다.

   

   “이런 걸 할 수 있으면서 왜 여태 얼빵하게 있었던 거야! 주인공 병에 걸리기라도 한 거야? 얼빵한 조이?!”

   

   조이가 완벽히 나를 신뢰한다고?

   

   하하. 알겠어.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를 믿는 조이가 이런 모습을 보여 줬는데 맨 앞에 서 있는 내가 서투른 모습을 보여서야 완전 허접 같으니까.

   

   “헛짓거리를 하는 구나. 내가 이런 것에 대처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는가.”

   “못 하지♡ 등신아♡”

   

   조이의 앞을 가로 막으며 연금술사를 노려본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하도록 만든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 친구들이 나의 옆에 선다.

   

   페이비가.

   

   아서가.

   

   프레이가.

   

   조이가.

   

   저 마다의 무기를 꾹 붙잡고 앞을 바라본다.

   

   과거 연금술사의 앞에 섰을 때 나는 혼자였다.

   

   도저히 대항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저 재앙을 홀로 가로 막아야만 했다.

   

   이제는 아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홀로 모든 것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발악을 하는가.”

   “헛소리 말고 처 발릴 준비나 해♡ 병신들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찌질아♡”

   

   숨을 가다듬는다. 방패에 담았던 신성을 거두어 심장을 중심으로 신성의 영역을 만들어낸다.

   

   몸 안에서 바깥으로 퍼져나가려는 따스함을 몸 안으로 거둔다.

   

   그리고 기도한다.

   

   허접 주신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일하는 사도를 위해 무어라도 내놓으라고.

   

   위에서 백수마냥 낄낄거리고 있을 거라면 뭐라도 하라고.

   

   당신의 사도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승리의 선봉을 설 수 있도록. 저 좆밥들의 얼굴을 뭉개버릴 수 있도록.

   

   축복을 내리라고.

   

   [영웅의 기백이 당신의 걸음에 힘을 더합니다.]

   [성인의 길을 걷는 당신에게 축복이 주어집니다.]

   [여신의 축복이 당신이 움직임에 확신을 심습니다.]

   

   몸 전체를 휘감는 고양감.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확신.

   

   그 어떤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극복할 수 있으리란 믿음.

   

   그 속에서 입꼬리를 끌어올린 나는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나무를 바라본다.

   

   숲을 지키는 거인의 나무.

   

   기나긴 세월 속에서 지혜를 얻어 숲의 주인으로 선정된 자.

   

   지금은 공허의 권능에 의해 정신을 잃고 연금술사에 의해 개조 당해 우리를 공격하는 적.

   

   저 자를 어떻게 도발해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하니 순식간에 결론이 도출됐다.

   

   머릿속으로 떠올린 단어를 약점파악을 통해 검증한 나는 이성이 날아가 버린 나무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와아♡ 뿌리가 썩어 문드러진 것 좀 봐♡ 불쌍하네♡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질 못했는데 앞으로도 못 쓰게 된 거잖아♡”

   

   거인의 나무는 숲에서 태어난 변종이다.

   

   본래 그 곳에서 자라나서는 안 될 것이 무언가의 기적을 통해 자라난 물건이지.

   

   애초에 종부터가 다르기에 거인의 나무는 오랜 시간 숲을 지켜 오면서도 그 곳에서 아무런 자손도 남기지 못했다.

   

   인간으로 표현하자면 몇백년 묵은 동정이란 거지.

   

   “으음♡ 잘 생각해보면 썩어도 별로 달라질 건 없나?♡ 여태 못 썼는데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질 것도 없잖아?♡ 차라리 썩어버리는 게 명예로울지도?♡”

   – 크어어!

   

   여태까지 자리를 지키며 나무 뿌리를 통해서만 우리를 위협하던 거인의 나무가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를 향해 달려든다.

   

   나무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큰 저 녀석의 돌격은 분명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나는 조금도 겁을 먹지 않았다.

   

   거짓으로 자신의 행동을 가리지 못하는 이상.

   

   이성을 잃은 채 마구잡이로 팔을 휘젓는 이상.

   

   저 녀석은 썩은물의 지식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나무가 자신의 팔을 치켜든다.

   

   살아 움직이는 공성추가 나를 향해 휘둘러진다.

   

   아직 아냐.

   

   조금만 더 기다려.

   

   저 팔이 맨 위에 도달했다가 아래로 내려오는.

   

   지금.

   

   태앵!

   

   패링이 성공했음을 알리는 청량한 소리와 함께 공성추가 저 멀리로 튕겨난다.

   

   나라고 해서 멀쩡한 것은 아니다.

   

   거인의 나무가 지니고 있는 힘은 성벽을 무너트릴 수 있는 것이니 패링에 성공했다 한들 어느 정도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지.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무척이나 곤란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내가 혼자였다면 말이다.

   

   “타올라라!”

   

   아서가 쏘아낸 불꽃이 나무의 얼굴 부분에 착탄해 시야를 빼앗는다.

   

   “도끼를 들고 올 걸.”

   

   프레이가 휘두르는 검이 나무에 커다란 자국을 남긴다.

   

   그 즈음에서 정신을 차린 거인의 나무가 자신의 뿌리를 휘둘러 프레이를 공격하려 했지만 그 나무뿌리를 조이가 일으킨 바람이 잘라낸다.

   

   그를 본 프레이는 기어코 한 번 더 상처를 새기고 나서야 뒤로 물러섰다.

   

   “건방진 것들!”

   

   이런 전황이 당혹스러웠는지 연금술사가 자신의 흑마법을 통해 지원을 하려 하지만.

   

   “주제를 모르는 것은 어느 쪽 일는지요.”

   

   페이비가 만들어낸 정화의 기운이 그를 가로 막는다. 악신의 추종자들의 정 반대편에 서 있는.

   

   거짓의 끝에 진실이 된 성녀의 신성 앞에서 부정은 제 힘을 다하지 못할 지어니 연금술사는 자신에게까지 다가오려는 신성을 막느라 급급했다.

   

   – 크으어!

   

   방금 전 합을 나누고 무작정 돌진해선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일까.

   

   거인의 나무가 다시금 자신의 뿌리를 박아 넣으려 한다.

   

   허나 난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한 번 밀려났다고 바로 포기하는 거야?♡ 정말 근성 없네♡ 하긴 그러니까 여태 동정인 거겠지♡”

   – …

   “평~생 그러고 살아♡ 다른 나무도. 새도. 벌레도. 모두가 싫어하는 나무로 남아서 어딘가에 처박혀 있어♡ 어떻게 보면 다행이네♡ 네 열등한 종자가 안 퍼져서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거잖아♡”

   

   눈이 돌아간 나무가 또 다시 내게로 돌진한다.

   

   내게로만 돌진한다.

   

   내게만 공격을 가한다.

   

   주먹을 후려친다.

   

   방패로 튕겨내 틈을 만들었다.

   

   뿌리를 휘둘러 날 묶으려 든다.

   

   움직임으로 회피함과 동시에 살살 긁어서 움직임을 흐트렸다.

   

   썩은 열매를 던진다.

   

   신성으로 막은 후 동정 냄새가 지독하다며 비웃었다. 또 다시 나무가 돌진해온다.

   

   그 과정에서 내가 항상 최선의 움직임을 취하진 못했다.

   

   충격을 버티느라 흐트러진 움직임 속에서 자잘한 상처가 새겨지고 몸에는 충격이 누적되지만 그럼에도 난 여유를 잃지 않았다.

   

   굳이 상대에게 공격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방패 뒤에 감추어진 메이스가 위협으로만 남아있어도 괜찮으니까.

   

   방어와 도발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이토록 편한 거였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방패의 뒤에서 거인의 나무가 흐트러진 것을 보고 앞으로 내달렸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저걸 제압하는 것이다.

   

   숲의 주인이 본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난 저를 구원하는 걸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달려가면서 난 메이스를 작게 만들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계속된 공격 속에서 상처가 누적된 나무의 움직임은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느렸다.

   

   바로 앞까지 달려 온 나를 보고서도 팔을 휘두르는 것조차 하지 못할 만큼.

   

   나무의 붉은 눈을 마주한 나는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빈손에 신성을 담았다.

   

   부정을 허락하지 않는 주신의 신성. 어둠을 쫓아내는 태양의 기운.

   

   그것이 잔뜩 실린 주먹으로 나무의 얼굴을 후려치자 나무의 거구가 허공으로 살짝 떠올랐다가 바닥에 널부러졌다.

   

   잠시간 움찔거리던 나무는 더 이상 움직일 기운이 없는 듯 일어나지 못했다.

   

   “훌륭했습니다! 알른 영애! 너무나도 고귀하며 강맹한 모습이었습니다!”

   

   나무가 멀쩡히 살아있기를 바라며 걱정스레 저를 살피고 있으려니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변태사도가 경탄 어린 목소리를 냈다.

   

   그가 지껄이는 헛소리를 무시한 채 곰이 있던 곳을 살피자 대 자로 뻗어버린 곰의 모습이 보였다.

   

   곰의 배는 느릿하게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악신의 권능이 사라지자마자 저를 제압한 건가.

   

   저 녀석의 패턴도 제대로 모르면서.

   

   …평소의 역겨운 모습만 아니라면 진짜 사도다운 사도인데 말야.

   

   <루시야. 앞을 봐라.>

   

   할아버지의 말을 따라 고개를 들자 로브 아래로 드러난 촉수로 도망치는 연금술사의 모습이 보였다.

   

   뭐야. 질 것 같으니까 도망치는 거야?

   

   언제는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이제는 살고 싶은 가봐?

   

   “푸하하핳♡”

   

   내가 웃음을 터트린 순간 연금술사의 움직임이 멈춘다.

   

   “좆이 썩어 문드러진 채 떨어져서 그런가?♡ 하는 짓이 여자애만도 못 하네♡”

   

   살짝 돌아간 얼굴에서 연금술사가 날 바라보는 것이 보인다.

   

   “뭐해?♡ 도망치는 것도 포기한 거야?♡ 뒤뚱뒤뚱 움직여봐야 답이 없단 걸 드디어 눈치 챘구나?♡”

   “…”

   “그럼 이제 어떡할래?♡ 뭐든 해 봐♡ 추하게 발악하면 유언 정도는 들어줄 수도 있잖아?♡ 아~♡ 아니다♡ 그냥 뒤져♡ 네 역겨운 입냄새를 맡으면 질식해서 죽어버릴 것 같은 걸♡”

   “빌어먹을 년이이이이!”

   

   내 쪽으로 달려드는 연금술사를 보며 나는 메이스를 다시금 손에 쥐었다.

   

   다른 숲의 주인 둘은 몰라도.

   

   저건 마음껏 때려도 상관없잖아?

   

   그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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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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