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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2

        

       어떤 단순한 종류의 반복 작업, 특히나 명확한 진척도를 작업자가 확인할 수 있는 종류는 사람을 푹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복잡하게 말했지만, 수를 놓거나 옷을 짜는 등의 행위들이란 동양과 서양을 가리지 않고 사천 년이 넘도록 이어진 취미다.

       청의 고향에서는 화면을 보고 조작하는 취미 역시 그 일환이라고도 하겠고.

         

       특히 완성되었을 때의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중원 전도에 지도를 맞대 알아보던 천유학의 심정이 딱 그러했다.

       끝나자마자 짜기라도 한 듯이, 고생했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었다, 하는 선고가 내려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뭣……?”

         

       “흡정마공, 흡성대법? 아. 살중살 모르시는구나. 살중살이라는 최악의 마공인데요, 너무 끔찍해서 십대마공도 아니고 따로 분리를 해서 최악이라고 꼽는 무시무시한 마공이래요.”

         

       청에게 모른다는 소리를 듣다니.

       그것도 귀기울여 잘 들었다면 결국에는 흡정마공이 뭔지 저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청의 고향에서, 오늘은 흡정마공에 대해 알아볼 텐데요, 정말 놀라운 마공이랍니다. 여러분들도 조심해야겠죠? 하고 아무 영양가 없이 그림만 잔뜩인 게시글과도 같은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이를 갈며 이 원한을 잊지 말라며 대대로 가훈으로 내려주어야 할 크나큰 치욕이다.

       하지만 천유학은 그럴 정신이 없다.

         

       “그게 무슨 소리냐? 기껏 지도를 맞춰서, 내가 두 달 동안 잠도 줄여가며, 강연 끝나면 자기 전까지 이 침침한 지하 골방에 처박혀서 지랄을 떨었는데……”

         

       “음. 그 지도랑 이 지도랑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리 내!”

         

       거의 이형환위, 한 걸음에 청의 앞으로 슥 솟구친 천유학이 다급히 장보도를 빼어 둘을 척 펼쳐놓는다.

         

       “이거, 씹.”

         

       천유학의 눈에서 불꽃이 확 튄다.

         

       “아니, 이런 자세한 장보도가 있었으면 진작 먼저 가져오질 않고……!”

         

       천유학이 청을 사납게 노려보다가, 이내 그 순진무구한 표정에 푸욱 한숨을 내쉬고 만다.

         

       “아니다. 네가 무슨 잘못이겠냐. 이거 말이다, 후, 같은 지도다. 이게 훨씬 자세하게 그려져 있군.”

         

       “같은 지도요?”

         

       “자세한 쪽이 원본이고, 누가 이걸 보고 베껴 그렸겠지. 혹여 들킬까 봐서 암호로 대처까지 하면서. 아마 몰래 베껴서 나돌던 것이 녹림 놈들한테 흘러들어간 것이 아니겠냐. 하하. 두 달. 하하하…….”

         

       천유학이 비틀비틀 걸어가, 마치 하얗게 불태운 사람처럼 의자에 턱 걸터앉는다.

       그러다 버럭 소리를 지르기를.

         

       “거 시끄럽네! 그 새끼들 낑낑 앓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물어볼 거 없으세요? 그냥 죽여다 관아에 갖다주고 올 거 그랬나?”

         

       “살려……”

         

       “에잉. 애초에 그런 걸 왜 끌고 들어와?”

         

       “뭔가 궁금하신 게 있으실 줄 알았죠.”

         

       “장보도를 어디서 구했나나 좀 캐 봐라.”

         

       “국경 근처의 무명묘에서 주웠다는데요?”

         

       “하아. 더 들어볼 것이 뭐가 있겠냐. 그냥 치우고, 그래, 살중살, 흡성대법이라.”

         

       천유학이 쩝 입맛을 다신다.

         

       “그냥 보물 찾아서 그게 흡성대법 비급이 딱 나왔으면 얼마나 짜릿했을까. 에고고. 기운이 쫙 다 빠지네. 살중살이나 되는 마물을 가만히 둘 수도 없고……”

         

       “흡정마공이 그리 위험해요?”

         

       “그럼, 위험하지. 말이라고 하냐?”

         

       남의 진기를 빼앗는 대표적인 수단이라고 하면 방중술 계열의 색공들이 있다.

       하지만 남의 진기가 오란다고 척 다가와 스며들겠는가.

       그러니 도가 원류 상생의 방줄술이란 빼앗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어 주는, 흡인이 아니라 증여에 있으니 엄밀히는 빼앗는 행위가 아니다.

         

       물론, 원류의 방중술이 그러하지, 보통 색공들이라 하면 빼앗는 수법들이다.

       그냥은 못 뺏어오니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여 혼백을 쏙 빼놓도록 유도하니 압도적 쾌락으로 극한에 내몰고서야 기를 뺏는다.

         

       “갑자기 색공을요?”

         

       “들어 봐라. 남의 진기를 빼앗아 오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소리지. 그런데 흡정마공은 그런 게 없어. 그냥 닿는 순간 아주 쫙쫙 뽑아먹는다고 하더라.”

         

       그냥 닿는 것만으로도 진기가 빨려나가니 이는 그저 진기를 잃고 말고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저 닿는 것만으로도 기혈의 흐름이 강제되어 바깥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

         

       즉, 기혈의 완전한 제압이라는 뜻이다.

         

       몸이 닿았을 뿐인데 내공이 무력화되며 동시에 진기가 뽑혀나가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는 무공의 고하를 따지지도 않는다.

       막 흡정마공을 익힌 애송이라고 해도, 어떻게 화경의 고수를 단단히 붙들 수만 있다면 그 고강한 내공을 무력화시킨다.

         

       물론, 화경의 고수쯤 되면 외공으로도 튼튼한 초인들이다.

       막 흡정마공을 익힌 애송이가 곧장 화경에게 달려들었다가는 기를 빼앗고 자시고 그냥 순수하게 맞아죽겠지만.

         

       그리고 흡정마공의 소유자는 그렇게 빼앗아 삼킨 내공으로 더욱 경지가 오른다.

         

       “엥. 너무 사기 아니에요? 그딴 무공이 왜 존재해요? 말도 안 되잖아요. 뭐 약점도 없고 그래요? 잡히면 끝?”

         

       “흡정 중에는 취약하다고 하니 홀로 상대하지 말라고들 하는데, 그러니 살중살, 최흉의 마공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냐. 흡정의 부작용으로 사람이 미쳐버리기까지 한다고 하니, 닿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놈이 미친놈이기까지 해.”

         

       “미쳐요?”

         

       “사람의 진원은 곧 혼백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여럿 섞인 놈이 제정신을 어찌 유지하겠느냐, 라고 하던데, 나도 남의 진원을 품어본 적이 없으니 그 부분은 모르겠다. 뭐, 아니면 너무나 강한 무공이라 그렇게 사악한 것으로 취급하며 지우려는 걸 수도 있고.”

         

       “음.”

         

       “하지만 흡정마공의 주인 중에 멀쩡한 놈이 단 한 놈도 없었으니, 미쳐버린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아니면 너무나 강한 힘을 가져서, 혹은 그저 빨아먹을 내공 주머니로만 보여서? 그렇게 더는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러며 천유학이 몸을 일으킨다.

         

       “그러니 마땅히 우리가 그 흉악한 물건을 치워야 하지 않겠느냐?”

         

       “엥? 저희가요? 왜요?”

         

       그에 천유학이 버럭 역정을 낸다.

         

       “이년아, 차기 신투라는 년이 왜요는 무슨 왜요야? 세상에 해로운 보물들을 치우는 게 신투가 할 일 아니냐?”

         

       “아. 맞다. 내가 신투지.”

         

       “아직 아니다. 이거 괜찮은가? 내 사조님들께 큰 누를 끼친 것은 아닌가 모르겠네.”

         

       한림원의 시강학사가 신투다!

       천화검이 다음 대 예비 신투다!

         

       이 놀라운 사실에 병주삼흉이 필사적으로 못 들은 척을 했다.

       그저 살고 싶어서.

       물론, 그냥 노력만 가상했다고 하겠다.

         

       살고 싶었으면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지.

         

         

       —-

         

         

       산동으로 떠난다는 말에 진장명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바다 보러 가?”

         

       “어, 거기가 바다가 보이는 동네인가?”

         

       중원 지리 몰라요인 청이라서 산동성이 바다에 붙어있다는 정도는 알지만 그 동네가 해안에 있었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진장명은 바닷가 출신이다.

       바닷가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유년기를 보낸 장소가 해안 도시라고 들었던 것 같다.

         

       “바다가 보이면 좋겠다. 조개구이 먹게.”

         

       진장명이 드물게 청스러운 소리를 한다.

         

       청이야 해물보다는 고기라서 해물은 먹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뿐이다.

       하지만 진장명은 아마 말은 안 했더라도 내륙에서는 먹을 수 없는 해산물들이 계속 생각나기는 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저런 조개구이 같은 거.

       미개한 중원의 물류 상황으로 내륙에서는 먹을 수 없는 바닷가만의 진미니까.

         

       그러고 보니 좀 무심했던가.

       어쩐지 가리비 귀걸이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더라니.

         

       청이 생각하기에 그리 위험한 여정은 아닐 터였다.

         

       그냥 가서, 지도 보고 좀 헤메다가, 땅을 팔 수도 있고 아니면 존 모 씨처럼 고대의 유적 같은 데를 좀 돌아다닐지도 모르고.

       그러다 비급 찾으면 바로 불태워 없애버리고 돌아오면 끝.

         

       “그래. 바닷가 아니면 바닷가까지 가면 되지. 가서 조개구이 실컷 먹자. 음. 중원에서도 무한 제공하는 가게가 있으려나?”

         

       뭐, 금은은 넘쳐나는 청이다.

       무한으로 즐길 수 있는 가게가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무한으로 즐길 만큼의 두툼한 용돈 전표 뭉치를 가진 청이다.

         

       그리하여 칠월 그믐.

       참고로 그믐은 달의 마지막 날을 부르는 말으로, 그러니까 태학당의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태원을 출발했다는 뜻이다.

         

       피서 동안 순수하게 배움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시강학사 천가의 장원 문을 두드리려는 한림원 학사들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마차 하나 빌려다가-

       마차를 빌리는 데에 천유학의 반대가 있기는 했다.

       좋은 다리를 놔두고 왜 굳이 마차를 빌리냐는 것이다.

         

       “하지만, 덥잖아요.”

         

       “마차 타면 안 덥냐? 여름 마차도 안 타봤어? 오히려 사방이 막혀서 더 찜통이다. 답답하기도 하고.”

         

       “저랑 타시면 안 더워요.”

         

       “……?”

         

       여기 인간 공기 조절기 그 자체 서문청이 간다!

       한참 경지를 초월한 막대한 내공의 압도적 출력이 뿜어내는 시원한 한기다.

       넓지 않은 마차 내부 정도야 금세 쾌적하게 식혀버린다.

         

       “캬, 좋구나. 제자 잘 둬서 이런 호사를 다 누리네. 한여름에 이 무슨 호사냐.”

         

       “거 봐요. 좋죠? 그런데 장명이 춥니? 좀 떠는 것 같은데?”

         

       “아아안추워어.”

         

       찬 바람 쌩쌩 뿜어내는 청의 품에 떡하니 안겨있으니, 처음에야 극락에 든 표정으로 푹신한 머리받이에 머리를 파묻은 진장명이다.

       그런데 굳이 말하자면 냉방기 바로 코앞에 자리를 잡은 셈이었으니, 어째 갈수록 소름이 돋고 몸이 덜덜덜.

         

       한여름에 의복을 더 껴입을지언정 청의 무릎 위에서 내리고 싶지는 않은 모양.

         

       태원에서 남하하여 하남으로.

       정주에서 좀 둘러볼까 했지만 다들 그냥 마차 안에서 내리고 싶지 않은 기색이다.

       바깥에서는 청 혼자만 시원하기 때문에 결국, 이 대 일 다수결의 민주적 절차로 길을 서두르기로.

       익숙한 개봉 땅에 도착하니, 세상에 대체 이게 무엇이야.

         

       “와. 그냥 다 벗고 다니네.”

         

       진설의 말로는 올 여름에는 단흉이 크게 유행할 것이라고 하더니, 진짜로 농담 안 하고 딱 그 가운데만 가려놓고 돌아다니는 수준이다.

       가슴이 타기는 싫었는지 다 비치는 면사로 가려놓았는데, 음, 참으로 보기에 흐뭇한 광경이로다.

         

       청의 눈길이 지나는 여인에게서 떠나질 못하니, 진장명이 그 시선을 따라갔다가, 제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풀이 팍 죽는다.

         

       아씨, 자꾸 가슴 까고 다니니까 눈에 막 보이는데, 손도 막 심심한데.

       마침 품 안에 가슴 모양뿐이라도 가슴을 가진 꼬맹이가 안겨있기는 한데, 아무리 그래도 스승님 앞에서는 좀 그렇잖아.

         

       그런데 여인의 밀도가?

       청이 곧 특이사항을 알아차렸지만, 사실 지금이 일행을 늘릴 때는 아니다.

         

       그냥 놀러 가는 중이면 모를까, 신투 일로 가는 길에 옥기린 등장 확률이 높다고 찾아다니기는 좀 그렇잖아.

         

       그리하여 개봉 지나서 동쪽으로 쭉쭉.

         

       산동성에 닿으니 어째 햇볕은 쨍쨍 더위가 더욱 극성을 부린다.

       성도인 제남 땅 지나서 정구, 치박, 청주, 유방, 내서.

       내서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내려가면 바로 목적지인 즉묵현에 도착한다.

         

       그리고 즉묵현 남쪽에 자리잡은 거대한 산이 있어서, 멀리 안 가도 즉묵현에서부터 바로 그 산세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스승님, 설마 그게 저 산에 있다고.”

         

       “그래. 저 산에 있다.”

         

       청의 인상이 팍 썩었다.

       중원에 솟은 다른 산들처럼 엄청나게 높아서 웅장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되게 좌우로 넓지 않나? 딱 봐도 산세가 그냥 산세가 아닌데?

         

       “그, 혹시, 정확한 위치라던가?”

         

       “원래 보물찾기가 이런 거다. 나올 때까지 찾는 거지.”

         

       모른다는 소리다.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기묘한 느낌을 받았으니.

         

       어째 사람들이 노산 방향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내쉰다?

         

       왜? 노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풍습이라도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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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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