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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2

    “그래서, 그게 그렇게까지 억울한 일이었어?”

    남탕에 혼자 있으려니 등을 밀어줄 사람조차 없어 너무나 외로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예르나가 물었다.

    그에 다이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응, 진짜 서러웠다니까. 아들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어.”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어쩜, 온천에서 루크와 나눴던 이야기가 떠오른 예르나는 다이튼이 보기보다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며 미소지었다.

    그 미소를 본 다이튼은 예르나가 자신을 비웃는다 생각하여 괜히 입을 샐쭉거리며 말했다.

    “왜 웃는 거지? 나 농담 아니야.”

    “푸흡, 아니, 뭐. 그래 농담 아닌 거 알아.”

    그야, 오늘만큼 진심으로 보였던 적이 없었는걸.

    예르나는 뒷말을 삼켰지만, 다이튼도 스스로 했던 일을 알기에 더는 말할 수가 없었다.

    하기사, 그렇게까지 했는데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예르나는 다이튼의 표정을 올려다보며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날 임신 시키고 싶었던 거야?”

    “윽.”

    예르나가 웃으며 건넨 그 질문에 다이튼은 말문이 막혔다.

    아까 자신이 내뱉은 말을 그대로 돌려받는 듯 해서 굉장히 난감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할 때는 흥분해서 그냥 외쳐댄 말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좀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결국, 다이튼은 볼을 긁적이며 멋쩍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으음, 그. 싫어?”

    그에 예르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물론 예르나도 아이를 갖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 스스로도 아이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으며, 언젠가는 자신의 피가 이어진 새로운 가족 구성원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것은 모든 생물이 가진 공통적인 목표이자, 본능과도 같은 것이니 말이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닐 뿐이다.

    비록 자신이 직접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이미 돌보는 아이가 셋이나 있는 이 상황에 무턱대로 갓난아이를 갖는다는 건, 쉽게 생각하나 어렵게 생각하나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것은 동일했다.

    게다가 그 셋 전부 어릴 때 부터 키워본 건 아니라서, 사실상 이건 새로운 시도라고 보아야 했다.

    뭐, 이미 루크는 스스로 제 앞가림 뿐 아니라 심지어는 종종 자신들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돌봐 줄 수도 있을 정도로 성숙한 아이고, 파이리스는 사고를 많이 칠 뿐이지 그 아이 스스로의 안전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할 필요가 없는 반 정령인데다, 디아나는 종종 떼를 쓰긴 해도 원체 사고를 치는 경우도 거의 없고 조금만 더 있으면 아카데미에 입학할 나이라서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처음부터 낳아서 기르려면 상당한 걱정이 뒤따른다.

    예르나에게 그건 여러모로 미지의 영역이었으니까.

    출산도 그렇고, 말도 안 통하는 아기의 육아도 그렇고.

    그 의견에는 다이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쉽지는 않겠지.”

    다이튼도 자신부터가 애초에 부모에게 버려지는 아픈 경험을 겪어본 입장인데다, 거의 아기나 다름없던 디아나를 키워본 경험까지 있었으니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는 게 절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당장 아이를 갖고 싶다고 바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요즘 종족이 다른 결혼이 흔하고 전 대륙적으로 타 종족이 피가 섞인 혼혈 인구가 나날이 늘어가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부부가 종족이 다른 경우에는 통계적으로 난임인 경우가 많다고 하기도 했다.

    이는 전문적인 의학적 지식이 없는 일반인에게도 널리 퍼져있는 상식과도 같은 것.

    그러니까, 오늘처럼 특별히 많이 한다고해서 갑자기 없던 아이가 ‘뿅’하고 생기는 일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르나와 다이튼이 아직까지 그 고민에 대한 결론을 미룰 수 있는 핑계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꼬르륵.

    격렬한 운동 후에 으레 느껴지곤 하는 공복감이 몰려옴과 동시에, 다이튼에게서 배곯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만 것이다.

    그 소리에 예르나는 아이에 대한 걱정 따윈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긴, 먼 미래의 아이 보다는 당장의 식사가 더 중요하기는 하지.

    “후훗, 시계를 보니 벌써 밥 먹을 시간이네. 그래. 일단은 씻자, 이번엔 아들 대신에 내가 등 밀어줄 테니까.”

    그에 다이튼은 굉장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바랬어.”

    그렇게 다이튼은 자녀에 대한 생각을 보류하고 욕탕으로 향했다.

    임신 후 계획은 나중에 정말로 임신하면 그때 생각해도 되겠지.

    지금 당장은.

    그렇게 아이들과 눈사람을 만들고 나서 아침 목욕까지 무사히 끝마친 루크는 그 뒤로도 다이튼이 쥐어준 돈으로 간식거리를 사거나, 기념품 가게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기념품을 구매하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혹여 타이밍이 맞지 않아 민망한 장면이 보여지면 곤란할 테니 말이다.

    따로 연락이 올 때 까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 주기로 했으니.

    ‘흠, 그러고보니 조식 제공 종료 시간도 이제 곧이고,  슬슬 체크아웃 시간까지 다가오고 있을 텐데.’

    혹시 너무 집중해서 잊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며 간식거리를 먹으며 연락을 기다리던 찰나.

    -띠링.

    드디어, 다이튼으로부터 연락이 도착했다.

    -애들 데리고 와. 밥 먹으러 가자.

    “드디어 끝났나?”

    아마도 꽤나 쌓여 있었던 모양이다.

    곁에서 간식을 먹다 루크의 혼잣말을 들은 디아나가 물었다.

    “끝나다니, 뭐가?”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신경쓸 거 없는 일이란다.”

    “응?”

    루크는 대충 얼버무렸다.

    하긴, 애들이 이렇게 많으면 평소에 쌓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는 하지.

    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객실 앞으로 간 루크는 문 밖에 나와 있는 다이튼을 발견하고는 다가갔다.

    “다이튼!”

    “어, 루크. 잘 갔다 왔냐.”

    다이튼의 목소리에는 조금 힘이 없었다.

    꽤나 지친 것 같은 모양새인데, 표정은 또 아주 어둡지는 않은 것이 꽤나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반면에, 예르나는 조금 더 지쳐 보였다.

    조금 정신이 다른 데에 가 있는 것 같은 사람처럼 보인다고 해야하나.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게,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다.

    아침부터 너무 무리한 건 아니겠지?

    “예르나, 괜찮아요?”

    그러자 그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던 아이들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언니, 어디 아파?”

    “졸려?”

    루크의 걱정스런 물음에 예르나는 순간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당황했다.

    “으, 으응? 응, 물론이지. 난 괜찮아.”

    사실, 방금까지 예르나는 여운에 잠겨있던 상태였다.

    왜냐하면 오늘처럼 많이 한 적도 없었던데다가, 아무래도 침대가 아닌 곳에서 한 건 평소랑 다른 느낌이 들어서.

    ‘이랬던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게다가 루크의 활력차를 마시는 것으로 곧장 어느정도 회복한 다이튼과는 달리, 그 뒤로 이어진 예르나의 묘한 피로감은 루크의 활력차를 마셔봐도 그다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과연 다이튼이 활력차의 효과를 잘 받는 것인지, 아니면 예르나가 컨디션이 나빠서 오늘따라 효율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이래서야, 식사를 하고 난 뒤에 식곤증을 버텨낼 수는 있을런지 의문이다.

    그렇게 식사도  별다른 소동 없이 무사히 끝났다.

    ‘코스요리’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게 된 파이리스가 ‘나 왜 이렇게 쪼금밖에 안 줘! 나 아기 아냐!’라고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던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지.

    그 당시 종업원이 짓던 난처한 표정을 떠올린 루크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에휴.”

    이쯤 되면 이 온천 시설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다음에 또 올 수나 있으련지.

    그렇게 한숨을 내쉬던 루크는 사탕 묻힌 사과 꼬치를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까 전에는 다른 곳에서 시간을 때우느라 못 봤는데, 저런 것도 팔고 있었구나.

    “…….”

    빨간 사과의 표면에서 번들거리는 사탕의 모습이 굉장히 유혹스럽다.

    그 맛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입 안에 침이 고일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그것이 ‘꼬치’로 되어 있다는 점도 꽤 맘에 들었다.

    왜냐하면, 여태껏 루크가 먹어 본 꼬치요리 중에서 맛이 없었던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막연히 좋은 이미지가 생성되어왔기 때문이다.

    루크는 곧, 그 간식거리를 먹으며 그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로 결정했다.

    다이튼이 준 용돈도 아직 조금 남아있었고.

    그렇게 간식거리를 구매한 루크.

    원체 새콤달콤한 맛으로 널리 사랑받는 과일인 사과를 단 맛이 나는 사탕을 씌워 바삭하면서도 더욱 달콤하게 만들어낸 간식거리의 맛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맛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딱 생각했던 것 만큼 맛있었다.

    “음.”

    단 걸 먹으니 확실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손으로 입가에 묻은 끈적한 사탕을 혀로 닦아내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본 다이튼이 다가와 물었다.

    “뭐야, 밥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그걸 먹고 있어? 너 아까 배 부르다고 하지 않았었냐?”

    분명 이곳의 식사가 아주 맘에 든다며, 다른 음식도 다 한번씩 먹어보고 싶다면서 추가주문을 한게 불과 몇십분 전이다.

    그러니까 메뉴판의 한쪽 끝과 반대쪽 끝을 가리키며, 한꺼번에 전 메뉴를 주문 한 것이다.

    그 패기를 마주한 종업원은 ‘정말 괜찮겠어요?’하고 계속해서 되물을 정도였다.

    파이리스와 루크의 식사량을 아는 다이튼과 예르나에겐 전혀 이상한 장면이 아니었지만, 그걸 모르는 종업원에게는 상당히 별난 장면이었을 테니.

    실제로도 꽤 많은 양이 나왔지만, 파이리스와 루크에겐 큰 문제가 안 되었다.

    그러나 역시 그 양은 평소 루크가 먹는 양에 비해도 꽤 많은 수준이라서, 결국에는 배가 부르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납득하기 어렵다.

    배 부르다고 한 사람 치고는 굉장히 모순된 행보가 아닌가?

    게다가 식사 전에도 간식거리를 좀 먹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또 간식을 사먹고 있었다니.

    그에 루크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당연히 디저트 먹을 배는 따로 있지.”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뭔가를 더 먹기 싫을 정도로 음식을 뱃속에 넣더라도 디저트는 언제나 예외였다.

    그리고 이는 딱히 자신이 특별한 게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 널리 퍼진 보편적인 사실.

    그러니까, 모든 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성에겐 디저트를 위한 공간이 따로 있다’라고,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다이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음, 알겠어. 그게 네가 살이 찌는 이유구나.”

    “뭐라고?”

    루크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다이튼은 짐을 정리해야겠다며 순식간에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루크는 생각했다.

    손에 들고 있는 간식이 어딘가에 내려놓을 수 없는 꼬치만 아니었더라면 그는 이미 두 발로 서 있을 수 없었을 텐데.

    조금은 억울하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탕을 핥아먹는 루크도 있었는데, 둘중에서 고민하다가 크게 베어먹고 우물거리는 삽화로 골랐습니다.
    그 편이 다이튼에게 들켰을 때 더 쪽팔려 했을 것 같아서요.

    핥아먹는 삽화는 미사용 삽화로 보내두었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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