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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3

       한 밤 중 잠에서 깨어난 회사의 서버 팀장 네르흐는 자신의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서류를 보고서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 잠들었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 일을 하다가 그대로 뻗어버린 건가.

       

       영생에 한없이 가깝다는 대마법사인 내가 체력이 방전되어서 기절하다니.

       

       백호가 이야기하던 대로 체력부족이라는 건가. 내가 전성기 시절이었다면…

       

       음. 그래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눈 한 번 안 붙이고 일에 몰두한 지가 어언 3주 가까이 되어가는 상황이니까.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이상 이 고행을 견디기는 어렵지.

       

       “끄으읏!”

       

       기지개를 키는 것으로 잠을 떨친 네르흐는 책상 위에 그녀의 부하들이 올려둔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간식과 종이를 발견하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팀장님 키 크셔야 할 것 같아서 깨우지 않았습니다!’

       ‘일어나시면 이 간식 드시고 영양분 보충하세요!’

       “이런 선물을 줄 바에는 그냥 집에 들어가서 자라고 이야기해주는 게 낫지 않냐.”

       

       하긴 그래봐야 집에 들어가진 않았을 것 같긴 한데.

       

       하아. 부하 녀석들은 날 너무 잘 안다니까.

       

       부하들이 놔두고 간 커피 우유를 한 모금 마신 네르흐는 바깥바람을 쐴 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기이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들 퇴근해서 어두컴컴해야 할 회사의 사무실 이곳저곳이 등대마냥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뭐야?

       

       네르흐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저들이 긴박함 때문에 저러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면 여태까지 네르흐가 편히 잠들어 있을 수 없었을 터이니.

       

       그렇다는 것은 각자 저 마다의 이유 때문에 세상을 등대로 만들고 있단 것인데.

       

       마법사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한 네르흐는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을 걸기 좋은 사람을 찾았다.

       

       회사에서 근무한 기간이 긴 그녀는 회사의 직원 대부분과 안면이 있었지만 얼굴을 아는 것과 말을 걸기 편한 것은 전혀 달랐다.

       

       아는 사람에 한정해 여포가 되는 귀찮은 성격인 네르흐는 부하 직원이라 할지라도 첫 만남에 말을 거는 걸 불편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서버팀 그 녀석들 다 어디로 간 거야.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으면 너네도 눈치를 보고 알아서 남아야 하는 거 아니냐?

       

       서버팀 노예 그 놈은 또 어디로 간 거고. 퇴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녀석이 왜 자취를 감추고 있는 거야.

       

       내가 일어나는 걸 기다리다가 무슨 일인지 알려 줄 생각을 해야지.

       

       누구 없나? 아는 사람이…

       

       아! 샤인! 저 녀석의 짜증나는 얼굴이 이렇게 반가운 건 처음이야!

       

       “야. 샤인!”

       “어머. 서버 팀장님. 방금 전까지 새근새근 주무시던 걸 보았는데 드디어 일어나셨군요?”

       “그건 됐고! 지금 여기 뭔 일이냐? 왜 다들 퇴근을 안 하고 있는 거야?”

       

       평소라면 자길 놀리는 거냐며 투덜거렸을 서버팀장이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것보다 당장의 호기심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샤인은 서버팀장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서 슬며시 웃음을 흘렸다.

       

       “아마 이것 때문일 겁니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모니터의 화면이었다.

       

       업무용으로 쓰기에는 다소 과할 정도로 비싸고 성능이 좋은데다 커다랗기까지한 그 화면에는 한 사람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아라?”

       “네. 아라님입니다. 지금 슬로우쿡 방송을 하고 계시죠.”

       “…아아. 설마 다들 얼마 뒤에 열릴 요리 대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거야?”

       

       아라가 방송을 하는 걸 보고 심사위원 중 하나인 그녀의 취향을 알아내 점수를 따겠다는 속셈인가.

       

       참. 다들 열심히 산다니까. 그까짓 대회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거람.

       

       괜히 관심을 가졌단 생각에 네르흐가 쓴웃음을 지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샤인은 그것과는 다르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 방송을 본다 해서 요리 대회에 도움이 되진 않아요.”

       “응? 왜?”

       “그게 음. 잠시만요. 이건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보여드리는 쪽이 이야기가 빨라서.”

       

       자신의 다른 모니터를 킨 샤인은 마우스를 움직여 한 폴더를 열었다.

       

       그 곳에는 아라가 방송을 할 때마다 그 모두를 녹화해둔 파일들과 그 방송에서 재밌었던 여러 부분들만 따로 따서 모아둔 하이라이트 파일이 존재했다.

       

       “…이건 또 뭐냐.”

       

       아라 방송의 편집자도 아닌 일반인치고는 다소 과하다 싶은 정성에 네르흐가 질린다는 듯 샤인을 바라보았지만 정작 샤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오늘 방송 초반에 나온 건데요.”

       

       샤인이 보여준 영상 속에는 아라가 기름으로 범벅이 된 떡 비스무리한 것과 그 위에 조개가 올려진 정체 모를 음식을 앞에 두고 있었다.

       

       “저건 무슨 음식이야? 처음 보는 거 같은데.”

       “파스타요.”

       “응?”

       “정확하게는 봉골레 파스타입니다. 조개의 감칠맛을…”

       “아니 그게 뭔진 알아. 근데 저게 파스타라고? 진짜?”

       “이 말이 거짓이라면 제 뿔을 잘라서 드리도록 하죠.”

       

       용의 상징인 뿔을 내걸 정도라면 저게 진짜 파스타라는 건데.

       

       뭐냐. 내가 회사에 틀어박혀 일과 마법의 연구를 병행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게 파스타로 규정될 수 있는 거지?

       

       아무리 봐도 파스타보다는 음식물쓰레기 쪽에 가깝지 않아?

       

       그 파스타의 모양새만 하더라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는데 네르흐를 더한 충격과 공포로 몰아 넣은 것은 아라가 파스타를 입 안에 털어 넣는 모습이었다.

       

       ‘뭐어. 이 정도면 나쁘지 않군.’

       

       그럭저럭 먹을 만 하다며 고갤 주억거리는 아라의 모습에 네르흐가 눈동자를 떨었다.

       

       아니. 아니. 대체 저기에 어떻게 먹을만하다는 표현이 사용될 수 있는 거지?

       

       아무리 VR세상 속이라지만 그래도 저건.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샤인은 그 후로 아라가 괴식 비스무리한 것을 맛있다는 듯 먹는 영상을 계속해서 보여 주었다.

       

       “대충 아시겠죠? 방송을 유심히 본다 한들 얻을 수 있는 건 없어요.”

       “그…렇구나. 저 정도라면 뭐든 맛있게 먹을 테니까.”

       

       순간 샤인의 이야기에 납득하고만 네르흐였지만 이내 그녀에게 새로운 의문이 생겨났다.

       

       “그럼 왜 다들 이걸 보고 있는 거야?”

       

       얻을 것도 없는데 퇴근까지 미뤄가며 어두운 사무실의 반딧불이가 돼야 할 이유가 있나?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네르흐가 고갤 갸웃거리자 샤인이 입꼬리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알려드릴까요?”

       “뭔가 이유가 있어?”

       “이것도 설명하기 전에 우선 영상부터 보여드리도록 할게요. 이건 방송 초반에 요리를 하던 모습이랍니다.”

       

       아. 맞다. 이거 슬로우 쿡이라고 그랬었지.

       

       온갖 괴식들이 튀어나오는 게 너무 인상적이라 잠시 잊고 있었어.

       

       …아니 잠시만. 그럼 방금 전 그 괴식은 전부 다 아라 이 녀석이 했단 소리 아닌가?

       

       네르흐의 추측은 이내 사실로 판명이 되었다. 그녀가 처음 보고서 경악했던 파스타라는 이름의 떡을 만드는 영상이 최초의 영상이었던 것이다.

       

       입맛이 괴악한 것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저 모습은 요리에 조예가 없어도 너무 없잖아!

       

       요리 대회의 심사를 맡아도 되는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야!

       

       “그리고 이게 여러 훈수를 듣고 나아진 모습이죠.”

       

       그 뒤에 비쳐진 영상속의 아라도 이전에 비해 사람다울 뿐 괴악한 요리를 한단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는 요리를 못했다. 요리에 조예가 깊지 못한 네르흐조차 이빨을 갈게 될 정도로.

       

       “그리고 이건…”

       

       그 후에도 샤인은 네르흐에게 아라가 요리를 하는 영상을 계속해서 보여 주었다.

       

       튜토리얼을 통과하는 모습.

       

       1장에 도달하자마자 새로운 벽에 부딪힌 모습.

       

       이런 저런 훈수들을 무시한 채 고집을 피우다 처참하게 실패하는 모습.

       

       그러다 간신히 점심시간을 통과하고서 환호성을 내지르는 모습.

       

       허나 기쁨이 무색하게 바로 저녁시간을 통과하는 데 실패해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

       

       시청자들의 비난에 투덜거리는 모습.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도전을 하는 모습.

       

       “슬슬 알 것 같지 않아요?”

       “…인간적이네.”

       

       영상 속에 드러난 아라의 모습은 너무나도 인간적이었다.

       

       형편 없는 실력을 지녔음에도 고집을 부리는 것.

       

       그럼에도 꿋꿋이 그것을 밀고 나가 결국 성공을 거두는 것.

       

       허나 또 다시 실패를 맞이하고 기분 나쁜 티를 풀풀 내는 것.

       

       슬슬 고집을 포기할 법 한데도 여전히 자신이 믿는 길을 나아가는 것.

       

       “회사 전체가 덤벼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초월자치고는 너무도 인간적이야.”

       

       아라라는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세상의 규칙을 뒤바꿀 수 있는 압도적인 괴물이자 무인의 극에 도달해 자신의 심상만으로 차원의 벽을 찢어 버릴 수 있는 악몽이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극히 위협적인 이레귤러란 말이다.

       

       헌데 이 영상 속에 존재하는 아라는 도저히 초월자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적이었다.

       

       “참 짜증나는 건 무작정 실패만 하면 어차피 못 깨겠거니 생각을 하며 넘겨버릴텐데. 조금씩 조금씩 성장을 해서 나아진다는 걸 보여주는 점이에요. 잠시 눈을 떼는 순간 성공해 버리면 여태까지 봐 온 게 의미 없어 질 것 같아서 눈을 뗄 수가 없거든요.”

       

       샤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네르흐는 저것만이 이유가 아님을 알았다.

       

       실패와 성공 이전에 지금 아라가 보여주는 모습은 지금의 경지에 도달하기 전 네르흐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수많은 실패 속에서 스스로가 나아질 수 있을까를 의심하며 앞으로 걸어가던 그 날.

       

       겉으로는 자신만만하게 어깨를 피고 다니지만 속으로는 의심을 지니던 날.

       

       그럼에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서 걸음을 내딛던 날.

       

       네르흐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아라의 모습에서 과거 열정으로 가득하던 자신의 모습을 겹쳐 보았다.

       

       그랬기에 아라의 처참한 실패에 분노했고 그녀가 가까스로 거둔 성공에 함께 즐거워할 수 있었다.

       

       이 곳에 자리한 다른 이들도 비슷할 것이다.

       

       회사에 일원이 될만큼의 능력을 지닌 이라면 누구나 저렇게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던 때가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까.

       

       “야. 샤인. 이거 방송 끝나려면 얼마나 걸릴 거 같냐?”

       “글쎄요. 켠왕을 하신다 그러셔서 저도 추측이 안 가네요.”

       “그렇다 말이지. 마침 잘 됐네. 마법 연구할 때 옆에 틀어놓을 게 필요했는데.”

       

       어울려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네르흐가 떠나간 후 샤인은 모니터 속에서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짜증을 내는 아라를 보고 웃음을 지었다.

       

       “당신 덕분에 저희 회사 사람들이 다들 열정을 찾으려 그러네요.”

       

       걷다 지쳐 지금의 자리에서 나아가길 포기한 이들.

       

       오래된 엘프.

       

       고대의 드워프.

       

       수백년을 산 신선.

       

       대마법사.

       

       무림인.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아라의 방송을 보고서 과거 필사적으로 살아가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샤인은 생각했다.

       

       언젠가 아라의 방송이 끝났을 때. 회사의 일 때문이란 핑계를 대며 걸음을 멈췄던 이들이 이젠 회사의 일을 뒤로 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택하지 않을까 하고.

       

       ‘무어냐! 굽기가 잘못 되었다고?! 헛소리! 어디서 본인의 감각을 속이고자 하는가!’

       

       진상 손님에게 진심으로 짜증을 내는 아라의 모습을 따로 저장해 둔 샤인은 자신의 팬 마이튜브에 올릴 것이 너무 풍성해지고 있단 생각에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너무나도 해맑아서 초월자를 향한 경외 따위가 끼어들 틈은 없을 것처럼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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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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