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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3

    <443 – 정말로 그런 거니>

     

    파시블 예프는 운이 좋았다.

    사다코 교수가 원하는 것은 그의 기억과 경험이지, 인생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꼬리를 한 번 놓쳤어.”

    “재단을 쫓고 있었습니까?”

    “오크노디를 함정에 빠뜨린 저주보관장치. 그걸 프라이머라는 학생을 통해 오크노디의 수중에 넘겼던 상인은 세비체 가문에서 넘어온 사람이었고, 그 가문은 이미 풍비박살 났어. 남은 자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꼬리는 이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재단의 집사이자 감독관인 저를 노렸다는 말이시군요.”

     

    파시블 예프가 살가죽을 잃어버린 뼈만 앙상한 몸이 되어 일어났을 때, 그의 신체장기에 깃든 기억은 사다코의 수정구슬에 보관되었다.

    본래 사다코의 성격대로라면 언데드가 된 파시블 예프는 관에 갇힌 채로 추출한 정보가 사실인지 고문하며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파시블 예프를 억압하는 대신, 순순히 제 부하들과 재회하도록 허락했다.

     

    [물러졌군. 사다코.]

    “저 남자는 쓸모가 있어.”

     

    귓가의 통신마도구로부터 디스트로이어의 힐난이 들렸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은퇴한 전대용사.

    그는 너무 큰 모험만 거듭해왔다.

    악을 뿌리 채 뽑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 후일담을 몸소 체험했다.

    삭주굴근削株堀根.

    발본색원拔本塞源.

    미리 화근을 뽑아버리고 폐단을 뿌리 채 없애버린다.

    용사행의 실패에서 비롯된 참극은 그 남자에게 집요할 정도의 집착을 야기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사정.

    사다코의 방식은 아니다.

     

    “무엇보다 연성마법의 경지가 뛰어나.”

     

    작은 대가로 큰 결과를 얻을 줄 알고, 교묘한 눈속임으로 분신을 대거 만들고, 침식으로 적과 아군의 행동을 강제하며 스스로의 전투력도 강화할 수 있다.

    첩보활동에 있어서는 타고난 첩보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능력의 효율성이 좋다.

     

    “이 정도의 고급첩보원을 얻을 기회는 흔치 않아. 당신네 도적길드라도 재단의 집사 급에 선을 뻗지는 못했지. 안 그래?”

    […일이 잘못된다면 네 책임이다.]

     

    시시한 소리에 디스트로이어의 교신을 무시했다.

     

    “2학기 중간고사는 끝. 수요일은 공강. 다음 주 월요일에 마법시계 공지로 올라올 강의장소로 와.”

    “저희 점수는요?”

    “클리어시간은 우수했어. 해결방식도 영리했고. 그러니 셋 다 최고점이야.”

    “와아!”

    “얼떨떨하네.”

    “으우… 정말 이렇게 깨도 되는 걸까…?”

     

    심약한 티토소가의 앓는 소리에 사다코 교수는 가학심이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듯이 재단집사의 부하들이 엉엉 울면서 따져댔다.

     

    “죽엉.”

    “우리 감독관 어쩔 거냐고 물었엉.”

    “감독관님은 안 그래도 못생겼는데 이젠 뼈밖에 안 남아서 더 못생겨졌네요. 아카데미는 시험을 협력하러 온 상대를 이런 식으로 괴롭히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을 작정입니까?”

     

    사다코 교수는 말없이 물끄러미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강자 앞에서 약해지는 수인들이 화난 눈초리를 내리고 주눅 든 표정으로 주춤거렸다.

    괜히 나섰다는 후회가 떠오를 무렵, 사다코는 느지막이 입을 열었다.

     

    “뿔이 부러진 풍뎅이에게 강철로 된 뿔을 달아준다면 그건 풍뎅이에게 재앙일까, 전화위복일까.”

    “사람의 생명은 풍뎅이의 뿔과 다릅니다.”

    “다르지 않아. 거둔 것은 허울이요, 얻은 것은 불멸의 생명이니. 자신의 피륙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자에게는 득밖에 존재하지 않아.”

     

    그 말에 짐작 가는 바가 있던 까망이 소리쳤다.

     

    “연금마법!”

    “정답이랍니다. 하하. 집에 가는 길에 몰래 보여주려고 했는데 감독보좌의 영민한 두뇌 때문에 깜짝쇼의 즐거움을 빼앗겼군요.”

    “정말입니까? 사람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까?”

     

    파시블 예프가 제물을 바치자 그의 인간시절 모습이 옷을 입듯이 멀쩡하게 되돌아왔다.

     

    “감독관.”

     

    까망과 죽엉무새, 싫엉무새가 호다닥 날아와서 그의 품에 안겼다.

    파시블의 얼굴에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교수님!”

    “성적에 불만이 있어?”

    “아뇨. 그럼 저 감독관은 이제 교수님 소유물이에요? 언데드는 일으킨 사람이 주인이잖아요.”

    “명목상으로는 그래. 지배권한은 내가 가지고 있어. 순순히 협력하면 그 권한을 남용할 생각은 없지만.”

    “그럼 잠깐만 저한테 빌려주세요! 뭣 좀 물어보고 싶어서요.”

     

    마치 펜이나 공책을 빌리는 것처럼 태연하게 요청해오는 오크노디의 태도에 수인3인방과 티토소가가 화들짝 놀랐다.

    사다코는 그런 오크노디도 말없이 빤히 내려다보았지만 오크노디는 시간이 지날수록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입가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적당한 두려움과 적당한 살가움이 자신을 얼마나 흥미롭게 하는지 이 아이는 알고 있을까.

     

    “그래.”

     

    오크노디의 용건도 그의 기억을 구슬에 담으면서 얼추 짐작이 갔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감독관.

    아가씨 샤를로테의 집사.

    둘 중 하나의 신분이 그녀에게 필요하겠지.

    우두커니 서서 구경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오크노디는 맹랑하게 제 자리에서 파시블 예프에게 용건을 꺼냈다.

     

    “파시블 집사님!”

    “궁금한 것이라도 있습니까?”

    “앨리스라는 재단의 아가씨를 기억해요?”

    “기억합니다. 재단의 거물 조나 와이히엠하이가 집사로서 육성한 첫 번째 아가씨였죠.”

    “앨리스를 죽게 만든 지령은 누가 보낸 거였어요?”

     

    파시블이 아, 하고 탄식했다.

     

    “그게 절 아카데미로 불러낸 이유였군요.”

    “마자용!”

    “저는 아닙니다.”

    “정말 몰라요?”

    “이참에 지령의 발신원에 대해 설명해드리죠. 아카데미에 보내는 지령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뉘어집니다. 교육담당들이 보내는 지령. 감독관이 보내는 지령. 재단총본부에서 보내는 지령.”

     

    파시블이 손가락을 셋 펼치고 하나를 접었다.

     

    “우선 조나가 보낸 지령은 아닐 겁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아가씨를 극진히 아끼니까요.”

     

    파시블이 손가락 하나를 더 접었다.

     

    “동방제국 출신의 클로를 쓰던 전임감독관은 가능성이야 유력합니다. 잔인하고, 사람을 쉽게 폐기처분하고, 집사 주제에 자신보다 월등히 강한 조나를 싫어하던 인물이었죠.”

    “근데 손가락은 왜 접어요?”

    “그가 조나에게 살해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정말로 지령을 보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 추정으로는 잔인함과 무력을 모두 갖춘 재단총본부의 지령입니다.”

     

    파시블이 마지막으로 남은 검지를 흔들며 말했다.

     

    “재단총본부. 그곳에서 내려온 직속지령이 조나의 아가씨의 죽음을 지령으로 내렸다고 봅니다.”

    “본부에서는 누가 지령을 쓰는데요?”

    “모든 집사들의 정점에는 집사장이라 불리는 인물이 존재합니다. 비서실장과 메이드장과 마찬가지로 이사장님을 모시는 직속삼장 중에 일인이지요.”

     

    잠자코 듣던 사다코가 끼어들었다.

     

    “집사장의 기억은 수정구슬에 담기지 않았어. 이유가 뭐야?”

    “저는 직접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들여서 살펴보면 단서쯤이야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벼운 표층기억으로나마 자신의 상관에 대한 정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사다코에게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재단의 집사인 당신이 집사장을 몰라?”

    “그 정도로 높으신 분이라 그렇습니다. 감독관의 신분으로 열리는 특별한 간부회의에 참석한다면 무언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년까진 기다려야 합니다.”

    “실은 이미 만났지만 기억소각이나 정보통제를 당한 건 아니고?”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단지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기억을 재점검해보아도 딱히 떠올릴만한 정보는 없었다는 것뿐입니다.”

    “재단의 진정한 상층부. 이사장의 직속3장의 한 축을 맡은 자. 제대로 된 거물은 접근도 쉽지 않다는 거네. 언데드로 만들기 전의 뇌라면 기억에 걸린 잠금장치도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오랜만에 얻는 피험체라 너무 서둘렀어.”

    “…”

    “그래도 소득은 충분해.”

     

    사다코는 왠지 짐작 가는 인물이 있었다.

     

    “혹시 집사장의 키가 2m 30cm야?”

    “네?”

    “거인족의 말예로 의심될 정도의 근육과 체형을 지닌 남성이야?”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직접 본 적도 없고, 추측만 무성한 인물인지라…”

    “금패급 재앙을 부르는 대괴수를 맨손으로 제압할 수 있는 절대강자라는 소문은?”

    “일단은 집사들의 수장이니 강할 거라고는 생각합니다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정도가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의 전부입니다.”

     

    모호한 답변은 도리어 확신을 주었다.

    <사망체험의 저주> 속 100개의 재앙으로부터 오크노디를 구출하고자 악몽에 들어갔던 날.

    그녀가 보았던 100번째 악몽 속 거인의 강함은 교수급인 자신조차 두려울 정도로 심상치 않았다.

     

    ‘재단의 이너서클. 표층으로 드러나지 않은 어둠 속의 강자. 오크노디의 스승이자 그녀에게 악몽과 불가해한 지식, 비상식적인 강함을 전수한 장본인.’

     

    악몽에서 본 인물은 재단의 집사장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구멍 난 퍼즐에 조각 하나가 딱 들어맞는 것처럼 말이다.

     

    “오크노디. 지령을 내린 재단총본부의 인물을 찾는 이유가 뭐니.”

    “꼭 말씀드려야 해요?”

     

    사다코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만큼은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 없어.

    그녀의 강한 의지에 오크노디가 어쩔 수 없지, 라며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찾아내서 죽일 거예요!”

    “…!”

    “제 집사와 앨리스 선배를 슬프게 한 사람을 살려둘 수는 없는걸요.”

     

    그 말에 파시블이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깜짝 놀라 외쳤다.

     

    “차기집사장!”

    “넹?”

    “집사들 사이에 그런 소문이 있었습니다. 조나 와이히엠하이의 무력이라면 능히 차기집사장의 자리를 물려받을 수도 있었다고.”

    “!”

    “그런데 아가씨 하나에게 목을 건 어리석음 때문에 직속삼장의 자리를 놓쳤다고. 만일 기존의 집사장이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조나 집사를 몰아붙인 것이라면… 오크노디, 당신은 집사장에게 부당한 핍박을 당한 자신의 집사의 복수를 위해서 싸우려는 것이군요!”

     

    정말로 그런 거니?

    사다코 교수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에 오크노디가 멈칫하다가 훗 하고 웃었다.

     

    “…굉장하군요! 제 속셈을 간파하다니!”

     

    용케도 제 뜻을 알아차렸다며 가슴을 내세우고 손을 얹으며 뽐내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신 없는, 조금은 불안해보이기까지 하는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뭐든지 피폐해보이는 매력보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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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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