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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3

    숲의 밤은 늘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빠르게 찾아오는 법이다.

    추운 겨울, 밤하늘을 가득 수놓은 저 별들의 반짝거림조차도 앙상한 나뭇가지에 가려져 땅 위를 밝히는 등불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늘 밤 만큼은 누구도 등불이 필요하지 않았다.

    생명이 자취를 감춰 조용하고 쓸쓸해진 숲을 덮어주는 듯 포근하게 내려온 새하얀 눈이 길을 밝혀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밤의 눈 덮인 숲길을 헤쳐나가는 반딧불이가 하나.

    그건 돌아오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숲 속의 때아닌 반딧불이 신세가 되어버린, 불을 켜고 움직이는 자동차였다.

    온천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가족을 태운 승용차의 운전자는 백미러를 슬쩍 흘겨보았다.

    “…….”

    그러자 그의 눈에는 백미러를 통해서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정신없이 잠들어버린 아이들이 비추어졌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살짝 옆을 바라보면 조수석에 탔던 아내 역시도, 세상 모르고 잠에 빠져서 새근새근 숨을 내뱉고 있다.

    과연, 전멸인가.

    바스락거리고 덜컹거리는 숲길을 달리는데도 저렇게 곤히 잠들어있는 걸 보면, 상당히 졸렸던 모양이다.

    하긴, 다들 그렇게 놀았으니 지칠 만도 한가.

    그는 그래도 혹여나 곤히 잠든 아내와 아이들이 깰까봐 조심스레 운전대를 감는다.

     바바박, 하고 익숙한 돌조각 밟는 소리가 들려오자 집에 가까워졌음을 깨달은 그는 아내의 손을 주물러 깨웠다.

    그러자 창문에 기대어있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바로세우며 눈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으음…. 벌써 도착이야?”

    잠이 덜 깨었는지, 반 쯤 웅얼거리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그는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감추며 대답했다.

    “거의.”

    “하음….”

    그녀는 그렇게 하품인지 대답인지 잘 모를 소리를 내었다.

    그 모습이 또 그에게는 여간 귀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운전에 집중해야겠지.

    밤의 숲길은, 그것도 눈 내린 숲길은 더욱 위험하니까.

    그러던 중, 그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어두운 밤바다의 등대처럼 밝은 빛을 내는 숲 속의 저택.

    “예르나, 혹시 우리가 불을 깜빡하고 켜두고 나왔었나?”

    이상함을 느낀 그가 아내에게 물었으나, 아내 역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 나오기 전에 불 단속은 분명 했을 텐데. 게다가 그때는 낮 이었고….”

    무언가 이상했다.

    다이튼과 예르나는 얼른 차를 대어 놓은 뒤, 아이들을 깨울 새도 없이 확인을 위해 조심히 불 켜진 저택으로 다가갔다.

    만일 침입이 있다면 아이들은 위험할 수가 있으니까.

    문을 열자 그들을 맞이해준 것은, 며칠동안 자리를 비운 겨울철 저택의 차가운 한기가 아니라 따스한 온기였다.

    ‘온기?’

    명백한 이상함에 온기가 느껴지는 방향을 바라본 다이튼이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뭐야, 벽난로가 왜…? 예르나, 혹시 우리 벽난로도 안 끄고 나왔어?”

    당황하기는 예르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럴리 없잖아, 숲에 불 낼 일 있어?”

    만약에 누군가 숲의 일을 하고자 한다면, ‘불’과는 몇 걸음 정도 떨어진 삶을 살아야 했다.

    흡연조차도 감점요인이 될 정도이니까.

    그만큼 화재에 극도로 예민한 숲지기가 화재 위험을 간과할리가 없다.

    그것도 예르나 정도의 경력이 되면, 어딜 가든 불씨를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된다.

    벽난로를 확인하지 않을리가 없다.

    그걸 아는 다이튼은 정말로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빈 집에 누군가 왔다 간 건가?

    사실, 일반적인 빈 집이라고 말하기에는 살짝 다르기는 하다.

    왜냐하면 집에는 스스로 움직이는 두개의 인형이 있었으니까.

    그건 바로, 리브와 케이트다.

    루크가 선물받은 인형들에 인챈트를 걸어 생명을 불어넣은 가사 도우미형 골렘들.

    그 골렘들은 루크의 가족들이 자리를 비운 순간에도 스스로 움직이며 청소를 한다거나, 비오는 날 빨래를 거두는 등의 자잘한 집안일을 해 주고는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보면 불이 켜져 있는 것 정도는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인형들은 무언가의 모습을 파악할 때에 마법으로 형태를 감지하는 방식이라 빛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이렇게 불을 켜 둘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인형들은 벽난로도 필요가 없다.

    활동하는데에 적당한 온도가 필요한 생물이 아니니까.

    그리고 골렘은 오히려 고밀도의 인챈트가 내는 발열 때문에 온도가 낮은 편이 더 활동하기 좋다.

    그리고, 지금 그 인형들은 거실에 있지도 않다.

    아마도 평소처럼 루크의 방에 잘 놓여져 있겠지.

    “도둑이 들었나…?”

    조용히 불타오르는 벽난로의 장작을 바라보던 다이튼이 중얼거렸다.

    사실, 숲 속에 덩그러니 놓인 저택의 경우 도둑이 들기 딱 좋은 환경이기는 하다.

    주변에 제대로 된 방범시설이 없기도 하고, 범행을 목격당하기도 쉽지 않으니.

    하지만 뭔가 없어진 건 없어 보였다.

    애초에, 가져갈 만한 물건이 없기도 했고.

    아직 제대로 된 커플링조차 맞추지 못한 가난한 신혼부부에게 손쉽게 훔쳐갈만한 귀금품이 있을리 없다.

    오죽하면 누가 들어와서 집 안에서 가져갈 수 있는 물건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비싼게 루크의 휴대용 컴퓨터다.

    그건 몇백만길 상당의 고가형 모델이니까.

    아니면, 최근에 루크가 방송용으로 구매했다는 마이크하고 카메라인가?

    루크가 말해주지 않아서 그것의 정확한 가격은 몰라도 일단 비싸보이긴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루크의 방은 직접 현관과는 또 다른 방식의 잠금을 걸어두어 자신이 직접 어떠한 형태로든 허락해주지 않는 한 절대로 열리지 않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게 도둑맞을리는 없었으리라.

    그리고 애초에, 물건을 얼른 훔치고 달아나려는 녀석이 벽난로를 켜고 느긋하게 있을 이유가 하등 없지 않은가?

    혹시 누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가 이 저택을 발견하고 들어와서 잠깐 몸을 녹일 생각으로 벽난로를 밝혔다… 는 것도 이상하다.

    그럴 바에는 굳이 무단으로 주거침입을 할 것이 아니라 그냥 휴대폰으로 구조요청을 하는 쪽이 더 현실적이니까.

    이곳은 통신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럼 대체 누가 주인 없는 집에 몰래 들어와서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벽난로의 상태를 가만히 지켜보고있던 예르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이튼, 장작의 상태를 보니 불은 비교적 최근에 붙은 것 같아. 불을 켠 건 대충 한시간 정도 된 것 같은데?”

    “그래?”

    한시간이라….

    “그건 정말 이상하네.”

    “응, 그렇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만약 누군가 들어왔다는 가정하에 누군가 몸을 덥힐 목적으로 불을 밝혔다면 한시간은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추워서 들어온 사람이, 거실이 좀 따듯해 질 무렵이 되니까 그냥 나간다?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깨진 창문이나 뜯어진 문짝 등의 칩입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다이튼과 예르나는 더욱 의문이 피어올랐다.

    침입자는 무슨 열쇠 수리공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대륙에서 가장 대단한 열쇠 수리공을 부른다고 하더라도 루크의 잠금을 해제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서클마법과 클래스마법을 교묘하게 섞어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낸 그 방식은, 현대 마법만으로는 정상적으로 해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 다이튼과 예르나는 마법에 조예가 깊지 않아 그 수준을 어림조차 할 수 없었겠지만.

    게다가 수십겹의 프로텍트가 직물처럼 촘촘하게 얽혀있는 창문의 강도는, 이미 같은 두께의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그러니 창문을 깨는 것 또한 간단하지 않은 일.

    침입이 있을 턱이 없다.

    어쨌든 침입의 흔적을 찾지 못한 그들은 이제 또 다른 추리를 해야했다.

    어쩌면, 자신들을 아는 누군가가 장난으로 한 짓이 아닐까?

    자신들 몰래 열쇠를 복사해 두었다가, 깜짝파티라도 해 주려고 했다면…..

    아니, 그것도 이상하지.

    아직 지인들에게도 근처의 숲 속이라는 것만 밝혔을 뿐, 정확히 어디로 이사했다는 말은 꺼낸 적이 없다.

    무슨 수로 알고 깜짝파티를 준비하나.

    그렇게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 봤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이상하다는 사실에 무언가를 깨달은 찰나.

    -치직!

    누가 리모컨을 밟기라도 한 건지, TV가 저절로 켜졌다.

    그 후, 재생되는 한 마디의 음성.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맑고 또랑또랑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여전히 tv의 화면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에 다이튼과 예르나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예르나.”

    “…응, 너도 그 생각 중이야?”

    다이튼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결론은 단 하나.

    집에 귀신이 들린 것이다.

    “어쩐지 집값이 싸더라니.”

    “그러게.”

    말로만 듣던 주택사기를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에 다이튼은 이마를 짚었다.

    제령은 또 어떻게 해야하나…

    그 둘이 머릿속으로 지팡이의 위치를 어림하던 순간, 갑자기 현관문이 열렸다.

    -벌컥!!

    이번에도 악령의 소행인가 했더니, 그건 루크였다.

    차에서 자고 있던 루크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것이다.

    머리도 제대로 다듬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그 모습에 긴장이 풀린 다이튼과 예르나는 각자 목소리를 내었다.

    “뭐야, 갑자기! 놀랐잖아!”

    “루, 위험하니까 잠깐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래? 악령이 있는 것 같으니까-.”

    그러나 루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마치 마수를 본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마냥 크게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완성됐구나!”

    “어?”

    루크의 그 한마디는, 이 상황이 루크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했다.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연관이 된 건지는 여전히 감이 오지 않는다.

    “루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봐.”

    ——

    자리에 앉은 다이튼과 예르나가 동시에 루크를 향해 설명을 원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자, 루크는 여전히 흥분한 목소리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로 입을 열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컴퓨터라는 물건이 편리하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불편한 작동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왔지.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들도 많았고, 한번에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많았으니까. 그래서 더욱 직관적이고 간편한 방식으로 동작하는 알고리즘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네. 그건 바로, 사람이야. 지식을 나눌 때에, 대화는 굉장히 직관적인 방식이지. 인간이 문명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글과는 달리, 대화는 태고적부터 이어져내려온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고민한 것이다. 대화만으로 컴퓨터를 작동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그건 생각하기는 간단하지만, 제대로 만들기는 아주 어려운 것이었어. 고차원적인 주제로 자연스러운 대화를 가능하게 하려면 생각보다 훨씬 높은 지능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나는….”

    너무 흥분했는지 루크의 말은 빠른데다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그게 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도 전혀 안되고 있고.

    결국 다이튼이 말을 끊었다.

    “그만, 그만. 요점만 말해. 하루 종일 떠들 생각이냐?”

    루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일단은 내가 만든 인공지능이라고 해 두지.”

    “인공지능? 그건 저게 네가 만든 컴퓨터라는 말이야?”

    루크의 말에서 다이튼이 정확히 이해한 부분은, ‘루크가 만들었다’는 것 뿐이었다.

    루크가 인공지능이라 설명했지만, 아직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은 그리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니라,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으면 골렘과 컴퓨터, 인공지능을 혼동하는 경우는 꽤 흔했다.

    숲지기 일 말고는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다이튼과, 최근까지 tv를 보지도 못하던 예르나가 인공지능이라는 말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다.

    그리고 루크는 그런 부분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속이 편안한 마법사다.

    루크는 다이튼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사실 인공지능이라고 하면 엄밀히 말해서 컴퓨터 그 자체는 아니고, 보다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진, 다중계산에 적합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겠지. 컴퓨터 내부에서 작동하는 일종의 프로그램….”

    “야, 제발 그런 괴짜같은 말 좀 하지 말아줄래? 나 하나도 이해 안돼.”

    “…….”

    루크는 말문이 막혔다.

    방금 자신이 그렇게 괴짜같았나?

    그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려고 했을 뿐인데….

    결국 루크는 제대로 된 개념을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듣기 싫은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해봤자, 양 측 모두에게 낭비밖에 안 될 테니까.

    “됐어, 그냥 자기소개나 하지. 레니에?”

    그렇게 다이튼과 예르나가 물음표를 자아내던 순간, TV에서는 다시금 그 소녀의 목소리가 루크의 말에 호응하듯 선명하게 재생되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루크 이루시님. 레니에예요.

    대체 무슨 소리야, 레니에? 레니에 아린세이아?

    루크가 맨날 읽던 그 동화책 속에 나오는 영웅왕 말인가?

    아니, 그 영웅이 대체 왜 이런 누추한 곳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주인 돌아올 시간에 난방 틀어주는 스마트한 iot시스템 레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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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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