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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4

       

       

       다음날, 1939년 8월 3일 목요일.

       

       『이야- 신세를 졌습니다.』 

       

       아침이 되어 깨어난 요까이찌 교수는 머쓱하다는 듯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물론, 새벽에 택시를 타고 돌아온 우리는 진작에 요까이찌 교수 몰래 부족민 사냥꾼 녀석들과 교대한 이후였다.

       

       『신세는 무슨 신세입니까. 오히려 어제는 제가 부르자마자 바로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선생.』

       

       나는 다른 녀석들은 모두 위층에 올라가 자게 하고, 나만 나와서 요까이찌 교수를 배웅했다. 그렇게 떠날 준비를 하는 요까이찌 교수에게 나는 은근슬쩍 떠 보았다.

       

       『그나저나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았나 모르겠네요. 저희랑 2층 남자방에서 함께 자면 무라사끼 녀석의 코 고는 소리가 불편하실까봐, 여기 1층 거실방에 재워드렸는데. 혹시 중간에 깨지는 않으셨어요?』

       『아아. 어쩐지……!』

       

       요까이찌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목이 말라서 깼는데, 저만 두고 다들 2층에서 자고 있더라고요. 저번처럼, 절 버려두고 어딘가로 가버린 줄 알았지 뭡니까! 하핫……』

       『에이, 저희가 어떻게 그럽니까.』

       『전적이 있으니까요, 시라바야시 생도들은! 그 때는 정말이지, 많이 곤혹스러웠습니다! 하……』 

       

       요까이찌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실없이 웃었고, 나도 마주 웃어주며 생각했다. 좋다. 내 예상대로, 요까이찌 교수는 대타에 깜빡 속아넘어갔다. 아마 대동아공영회에도 자기가 본 대로 보고하겠지.

       

       요까이찌 교수는 구두를 신고 떠나기 전에 진지한 표정을 드러내보이며 덧붙였다.

       

       『하지만 시라바야시 생도! 인생 선배로서 충고합니다! 모처럼 방학이니 친구들과 한두 잔씩 기울이는 것은 좋지만, 이렇게 과한 음주를 하는 것은 생도의 본분에 맞지 않는 일이에요!』 

       『예, 예.』

       『흐흠! 이렇게 말하면 차별적인 발언이 될 수도 있지만, 조선의 여러분들은 한번 술을 마시면 폭음을 하는 습속이 있는데, 시라바야시 생도는 부디 그런 행실을 따르지 않도록……』

       『예. 명심할게요.』

       『특히, 아직도 자고있겠지만 료오 도미꼬 생도는…… 하아. 그렇게 술을 좋아하다가는 건강도 학업도, 결국 망쳐버리게 된다는 것을—』 

       『예, 예. 제가 잘 지도편달하겠습니다.』

       

       유약한 샌님이요 바른생활 사나이인 요까이찌 교수는,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나면서도 한참을 잔소리를 늘어놓다가, 

       

       『시라바야시 생도를 믿겠습니다! 으윽, 머리가……』

       

       하며, 아이까와가 치유술로 조금 달래줬음에도 아직 숙취가 심한지 비틀거리며 거리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요까이찌 교수가 돌아간 것을 확인한 나는, 나 역시 꽤나 피곤했기에 1층 거실방에서 잠들었다가 점심때쯤 다시 일어났다. 

       

       “아직두 주무셔요?”

       “어, 일어났어. 하암……” 

       “헤, 그러다 입 찢어져요!”

       

       오늘도 가게를 보던 함서주가 미닫이문을 열며 문턱에 털썩 앉으며 나를 보고 웃었다. 그리고,

       

       “여기 신문요. 그리구요, 호외도 함께 왔는데요.”

       “호외?”

       “네에. 방금 온 거예요.”

       

       뭔가를 건네주길래 보니 오늘자 조간신문과 호외로 나온 기사였다. 호외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대해, 정식으로 조간 석간으로 내는게 아니라 별도로 내는 속보기사 같은 거지.  

       

       신문은 한쪽에 치워두고 호외부터 보니, 

       

       [미생정에서 지진과 괴비행체?]

       

       간밤에 있었던 일이구나. 아침 신문에 나오기엔 너무 늦은 일이라, 점심때가 가까워진 지금 호외로 속보가 나온 모양이었다. 

       

       ‘기자양반들도 부지런하네.’

       

       나는 기사를 읽어보았다. 

       

       

       .

       .

       .

       

       

       [미생정에서 지진과 괴비행체?]

       

       간밤에 경성부 용산 미생정(彌生町) 일대에서 괴이한 일이 이러낫다

       

       이 일대는 근처에 민가는 적으나 크다란 유곽이 잇는 관계로 밤중에 벌어진 이 괴이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다수 잇엇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야 말하자면 돌연 지진이 이러난 드시 지축이 흔들리고 요란한 소리가 들림으로 놀라 뛰쳐 나가보니 웬 둥그런 열기구 가튼것이 밤하늘에 수십개나 떠잇엇는데 이것은 밝혀진바 인근의 연구소에서 지진으로 의하야 풀리어난 하급마수 모옥(毛玉)의 거대 개량종이라 한다  

       

       그러케 잠시의 소란으로 끗나는줄 알엇지만 더욱 가경할일은 다음에 버러졋는데 그거슨 바로 정체를 알수업는 괴비행체가 날아다녓다는 것이다 

       

       접시 모양의 괴비행체는 날아다니며 확성기로 무어라 외쳣지만 들어본 사람에 의하면 워낙 소리가 울려서 잘은 모르겟으나 확실히 독일말이엿다고 한다

       

       야간이라 어둡고 장마비가 쏟어지는즉 자세한 사정은 아모도 알수 업스나 눈이 조흔 목격자에 의하면 괴비행체는 대포가튼것을 쏘며 거대 모옥(毛玉) 한마리와 추격전을 벌이다가 공중에서 저혼자 폭발한뒤 한강물에 휩쓸려 그 자취를 감췃다 한다  

       

       사건을 조사중인 용산경찰서는 지진으로 인하야 사육중인 마수가 풀려낫고 그래서 연구소측에서 마수를 잡기 위하야 비행체를 띠웟스나 조종수가 미숙으로 인하야 대포를 난사하고 공중폭발한 것으로 추정중이나 그 이상의 자세한 사정은 연구소측에서 밝히지 안하서 이 「그로」한 사건의 전말은 알수업다

       

       

       .

       .

       .

       

       

       ‘흠…….’

       

       기사를 대충 읽어보니, 확실히 일반인들은 아무런 사정도 모르는 듯 했다. 경찰들도 잘은 모르는 것 같고.

       

       사고 당사자 측인 히가시노리 연구소 역시, 기사에서는 밝히지 않네 뭐네 했지만 자기들도 무슨 일인지 파악이 제대로 안 될 것이다. 지하의 나치 기지는 완전히 매몰되었고, 유일한 생존자였던 슈바르츠발트 중좌도 폭발사산했으니. 

       

       그야말로 완벽범죄. 

       

       나는 호외 기사를 제쳐놓고 바닥에 엎어져 누우며 생각했다. 

       

       ‘이거야말로 완벽한 밀실사건이요 암살이 아닐까?’

       

       사건이 일어난 현장 자체를 매몰시켜버렸으니 밀실사건이요, 사건의 진상을 말할 수 있는 자들을 모두 없애버렸으니 암살이다. 

       

       후후. 아무도 나를 의심하지 않—

       

       —찰싹!

       

       “으앗!”

       “으이구! 못 살아!”

       

       고사리같은 손바닥으로 내 등짝을 찰싹 때린 함서주가 호외 기사를 팔랑거리며 말했다.

       

       “이거요, 이것두 학생손님이 한 거죠?” 

       

       어떻게 알았지. 어제 가게 영업 끝나고 함서주 얘는 하숙집으로 돌아간 뒤에 벌인 일이었는데.

       

       “물어 뭣해, 보나마나 뻔하지요!”

       “어어.”

       “저두요, 학생손님이 다아 뜻이 있어서 하는 일이란걸요, 저두 알긴 알지마는요, 그렇다구 동무분들이랑 허궛날 위험한 짓만 하구!”

       “나쁜 놈들 물리치고 온 거야.” 

       “그래두요! 그러다 빨리 죽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홱 돌리는 함서주. 

       

       “얘가 말을 해도 꼭…… 죽긴 뭘 죽어. 앗, 배고프다.” 

       “갑자기 웬 뚱딴지같이 배고프단 소릴 해요?”

       “봐봐.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으니까 배도 고프지. 배고픈데 뭐 없나.” 

       “피. 말은 잘해요! 걱정하는 사람 속두 몰르고……”

       

       함서주는 픽 웃더니 문턱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점심상 차려올까요? 학생손님두 그렇구, 동무분들도 일어나시면 다들 시장하실텐데……” 

       “글쎄, 귀찮은데 냉면이나 시키자. 네 것까지.”

       “좋아라! 저가 바로 시킬게요.”

       “응, 아냐. 내가 주문할 테니까, 너는 윗층 올라가서 애들 좀 깨워 줘. 시간이 몇신데 일어날 생각들을 안 하네.” 

       “네에!” 

       

       금새 신난 함서주는 방 안으로 올라와 총총거리며 2층 계단으로 올라갔고, 나는 그제서야 찌뿌드드하게 기지개를 켰다. 

       

       “으읏……”

       

       간밤에 그렇게 뛰어다니고 고생했는데도, 딱히 다친 곳은 없어서인지 좀 자고 일어나니 개운하다. 역시 10대의 몸이란 건가.

       

       나는 가게로 내려서서 전화를 걸었다. 위에 몇 명이 있더라, 하나, 둘, 셋…… 그렇게 인원수대로 냉면을 주문하고, 얼음물에 담궈둔 맥주 하나를 따서 꿀꺽꿀꺽 마셨다. 크으. 역시 덥고 목마를 땐 이게 최고지. 근데, 뭔가 잊은 듯한 이 느낌은 뭐지. 

       

       아무튼 그렇게 애들 내려올 때까지, 잠시 자리를 비운 함서주를 대신할 겸, 가게 주인자리에 잠깐 앉아있는데……

       

       —콰앙! 

       

       『쿠소오오오(똥)———ㅅ!』 

       

       쩌렁쩌렁 울리는 욕설과 함께 가게 문이 부숴지듯 열리고, 철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불쑥 걸어들어오며, 다시 한 번 외쳤다.

       

       『이, 이, 이 건방진 조선인 녀석들이, 나만 버리고 가버리기냐———!』

       

       ‘……아차.’

       

       어젯밤 하우네부 위에서 미끄러져서 한강물에 빠졌던 무라사끼 녀석이었다. 

       

       ‘미안하다, 무라사끼야! 하지만 내가 잊은 건 아니고……!’

       

       내가 소중한 동료를 깜빡할 리가 있나. 음. 그렇지. 다만, 워낙 튼튼한 놈이니 한강물에 빠지는 것 정도야 괜찮으리라고 믿고 안심했을 뿐이다. 봐봐. 저렇게 멀쩡하구만.

       

       『크아악! 네놈! 네놈부터 죽이겠다!』

       『……자, 잠깐! 무라사끼! 무라사끼 겐지!』

       『뭐냐! 할 말이 있다면 해라!』

       

       도복은 아직 채 마르지 않았고 얼굴이 벌개진 채 콧김을 씩씩거리며 칼을 뽑아드는 무라사끼 녀석에게, 나는 다시 수화기를 들어보이며 물었다. 

       

       『……점심. 너도, 냉면 먹을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기사는 창작입니다. 실제로 저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비슷한 기사라도 혹시 없을까 싶어 옛날 신문을 한참을 뒤져봤는데, 아쉽게도 없더라구요.)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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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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