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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4

       오기 전에 각자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았었는데, 결국 우리가 택한 것은 무계획이었다.

        

       테마파크나 박물관 같은 것을 볼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뭐랄까, 그보다는 그냥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 벌써 성지 순례 장소 목록이 떴어.”

        

       침대 위에 누운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클레어가 말했다.

        

       어제 봤던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성지 순례’용 리스트인 모양이다.

        

       배경이 완전히 판타지가 아닌 이상, 보통은 실제 배경을 참고해서 그린다. 그게 가장 쉬우면서도 보는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 그런 애니메이션이 대박 나게 되면, 그 애니메이션을 본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 의해 해당 장소들의 리스트가 만들어진다.

        

       내가 어릴 때 보던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일본 애니메이션이었으니, 한국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릴 때는 그런 것에 동경도 조금 있었기에, 나는 지금 조금 흥분한 상태였다.

        

       간신히 얼굴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

        

       “그나저나 성지 순례라니, 분명 아제르나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면 사람들이 오해했을 거예요.”

        

       그러게.

        

       사실 나도 그 단어 자체는 조금 호들갑스럽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말이야.

        

       뭐, 그래도 그 약간 호들갑스러운 분위기가 좋은 거다.

        

       뭔가 즐길 때는 그냥 무덤덤하게 있는 것 보다는 여기저기 신나게 돌아다니면서 쓸데없이 흥분하는 게 최고라는 거다.

        

       “그럼, 가장 가까운 곳부터 가볼까요?”

        

       내 말에, 다들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방은 두 개로 잡았는데, 거의 언제나 한 방에 모여있네.

        

       그래도 잘 때는 각자 방으로 돌아갔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음, 그럼 내일은 서로 방을 바꿔서 자보기로 할까.

        

       아니면 침대 세 개짜리 방 안에서 다섯 명이…… 가능한가?

        

       분위기가 풀어져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얼빠진 생각을 하며 나는 아이들을 따라 움직였다.

        

       *

        

       세상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하지만, 그래도 문화적, 지리적 문제로 서로 선호하는 집의 모양이 달라지긴 한다.

        

       일본의 경우, 골목으로 들어가면 일본 특유의 주택가가 펼쳐진다.

        

       한국에서 주택가라고 하면 빌라나 아파트가 밀집해있는 곳이고, 정말 단독주택이 모여있는 곳이라고 해도 하나하나 통일된 모양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일본의 단독주택은 유독 건물이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독주택을 선호하니 그런 것만 전문으로 짓는 건설사가 있는 걸까?

        

       “조용하네.”

        

       “다들 출근한 시간이니까요.”

        

       앨리스의 중얼거림에 내가 대답했다.

        

       그 분위기는…… 학교에서 조퇴하거나 회사에서 반차 쓰고 나왔을 때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고,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는 것 같고, 조용하고.

        

       일상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많이 다른 특별함.

        

       게다가 여기는 다른 나라의 주택가다.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 분위기가 평범할 거라고 생각하면, 또 오묘한 기분이 든다.

        

       “아, 찾았다.”

        

       그렇게 주택가 사이로 들어가다가, 유독 좁은 골목길의 도중에 자판기 세 개가 나란히 있었다.

        

       위에는 작은 지붕까지 쓰인,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자판기.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음료수 자판기 같지만, 이 세 자판기는 그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커플이 어린 시절 지내던 동네의 한 부분으로 나온 곳이었다.

        

       한여름, 비 오는 날에 엄청나게 열심히 뛰어가다가, 비를 잠깐 피하려고 그 작은 지붕 아래로 피신하는 장면.

        

       남주인공과 여주인공 모두 뻘쭘하게 서 있다가, 그럼 음료수라도 하나 빼먹을까, 하고 음료수를 꺼내 먹는 것이다.

        

       “어디…… 아, 있다.”

        

       클레어는 즐거운 표정으로 자판기에서 페트병에 들어있는 녹차를 하나 뽑았다.

        

       아쉽게도 ‘주인공의 어린 시절’ 배경이었던 부분과 완전히 똑같은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회사는 같은 모양이다. 그럭저럭 비슷하게 보이는 걸 보니.

        

       “확실히, 그 성지 순례라는 걸 왜 하는지 알 것 같아. 애니메이션이야 처음 본 거고, 나는 그 감독 이름도 처음 들어봐서 애정 같은 것도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어딘가 구석구석 돌아보기에는 나쁘지 않은걸.”

        

       앨리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도 처음에는 유명 관광지 위주로 다니지만, 시간이 조금 더 확보하거나 자주 다니다 보면 이런 식으로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쪽을 택한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이 세계 정도니까 가능한 거겠죠.”

        

       내 설명에 샤를로트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아제르나나 벨부르에서 호위 없이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할 테니까요.”

        

       “……언젠가, 조금 더 발전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질지 모릅니다.”

        

       나는 그런 샤를로트를 위로하듯 말했다.

        

       “음…….”

        

       그 사이에 음료수 뚜껑을 따 몇 모금 마신 클레어가 몹시 미묘한 소리를 냈다.

        

       “음료수가 입에 맞지 않습니까?”

        

       “어, 응…….”

        

       “아마 설탕이 들어가 있지 않아 달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평소에 즐겨 먹는 홍차도 일단은 같은 식물의 찻잎이지만, 녹차와는 다르게 홍차에는 설탕이나 우유를 자주 넣어 먹으니까.

        

       중국에서는 녹차에도 설탕을 타서 먹기도 한다는데, 나도 지나가듯 들은 거라 실제로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나는 탄산음료를 하나 뽑아 클레어와 바꿔주었다.

        

       마셔보니 흔한 녹차 음료 맛이 났다. 확실히 호불호가 갈릴 것 같네.

        

       “맛있나요?”

        

       “제 입맛에는 맞습니다만, 한 번 드셔보시겠습니까?”

        

       미아의 질문에 음료수를 넘겨주었다. 미아는 한 모금 마신 뒤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이런 건 맛으로 먹는다기보다는 물 대신 먹는 것에 가까운 음료입니다. 다도를 즐기는 사람은 제대로 찻잔에 타 먹겠죠.”

        

       나는 다시 탄산음료 하나를 뽑아 미아에게 주고, 녹차 페트병을 받았다.

        

       “아, 언니, 사진 찍어줄까?”

        

       “그러시겠습니까?”

        

       “응, 여기에 서봐. 나중에 다시 와서 남주인공 기다리는 주인공이랑 똑같은 자세로 찍어줄게!”

        

       그 말에 나는 순순히 자판기 옆으로 갔다. 클레어는 내 몸을 이리저리 잡고 틀어주면서 자세를 잡은 뒤, 들고 온 미러리스 카메라로 찰칵, 나를 찍었다.

        

       “오, 이거 그럴싸하게 찍혔네.”

        

       앨리스가 카메라에 찍힌 결과물을 보고 웃었다.

        

       클레어의 사진 실력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사진에 찍힌 내 자세는, 확실히 그 영화에 나왔던 것과 구도가 상당히 비슷해 보였다.

        

       SNS라도 했다면 올리기 좋겠는걸.

        

       “그럼 다른 곳으로 이동할까요?”

        

       “좋아!”

        

       내 질문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

        

       그다음으로 우리가 간 곳은 신사였다.

        

       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종교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고, 기껏 만났던 여신이라는 존재도 딱히 믿을만한 자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나였기에 종교적인 감흥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일본 말고 그 바깥에서 이런 곳을 진지하게 믿는 이가 얼마나 될까 싶다.

        

       일본사람들 시선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명절마다 제사 지내는 거랑 비슷한 걸로 볼 것 같은데.

        

       “저기, 저기 좀 봐. 진짜 무녀야!”

        

       클레어가 저 먼 곳에서 빗자루로 바닥을 쓰는 여성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

        

       그 무녀, 보통은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어디서 읽은 적 있다.

        

       성당이라면 수녀 정도 되는 포지션이건만, 아무래도 그 정도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모양이다.

        

       물론 클레어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나는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아무래도 신사는 절과 같은 곳이었기에, 이 안에서 마구 돌아다니며 신나게 떠들기엔 무리가 있었다.

        

       우리처럼 애니메이션을 보고 여기 찾아온 것 같은 사람도 몇 명 보였고, 커플도 몇 보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관광지로 유명한 신사보다는 사람이 훨씬 적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하고 조용했다.

        

       우리는 가볍게 단체 사진 한 두 장만 찍고, 세전함에 가 동전 몇 개를 넣은 뒤…… 오미쿠지, 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걸로 점괘를 보았다.

        

       나의 경우는, 대길이었다.

        

       “잘 나왔네, 언니!”

        

       사실 그냥 정해진 문구를 무작위 뽑기로 뽑았을 뿐이긴 했다.

        

       대흉이 나오면 ‘여기서 악운을 썼으니, 앞으로 잘 될 거다’라고 하는 걸 들어봤는데.

        

       종이는 기념으로 가지고 가기로 할까.

        

       *

        

       물론 그 성지 순례도 꽤 재미있었지만, 그렇다고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시간을 모두 소비하는 건 조금 아쉬웠다.

        

       “그래, 그래도 이런 곳은 한 번 와 봐야지.”

        

       도쿄 스카이트리 전망대에서 앨리스가 중얼거렸다.

        

       “정말 멋져요…….”

        

       미아가 눈을 반짝였다.

        

       창문 바깥의 풍경은,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서 오히려 더 훌륭했다.

        

       노을 진 도시의 풍경이 멋지지 않을 수는 없지.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는 이런 풍경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도 같네요.”

        

       “아, 그랬던가요?”

        

       샤를로트의 말에 나는 되물었다.

        

       확실히, 호텔에서 내려다본 적은 있어도,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본 기억은 없었다.

        

       “그럼, 돌아가서 서울의 풍경도 기억에 담아가기로 하죠.”

        

       “좋은 생각이네요.”

        

       내 말에, 샤를로트가 미소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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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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