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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5

        

       진성은 이아린을 조용하게 만든 뒤 자세를 고쳤다.

         

       그리고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서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이양훈과 그의 부인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마를 살펴보고, 얼굴을 살펴보고, 그들의 자세나 옷차림, 그리고 풍기는 느낌을 보았다.

       그렇게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느낀 진성은 다시 시선을 이아린 쪽으로 돌렸고, 이아린의 위아래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마치 스캔하는 것처럼 꼼꼼하게 말이다.

         

       “응? 오라비 갑자기 왜…?”

         

       진성의 입막음 때문에 당황하고 있던 이아린마저도 당황하게 만드는,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그녀의 당황 섞인 물음에도 답하지 않고 이세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불티가 흐릿하게 떠다니는 진성의 눈동자는 이세린의 뒤편에 있는 흐릿한 형체도 시야에 담아내었고, 진성은 그 둘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무언가를 깨닫기라도 한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돌 밖으로 나섰다.

       입고 있는 잠옷의 옷자락이 돌바닥에 스치며 소리를 내었고, 돌 아래에 놓인 슬리퍼를 신고 그들에게 걸어가는 진성은 묘한 기색을 풍기고 있었다.

         

       진성은 당당하게 이양훈과 부인 사이로 끼어들어 빈 의자 하나를 끌어다가 이양훈의 바로 앞에 앉았다.

         

       이양훈은 갑자기 진성이 자신의 앞에 떡하니 앉자 이게 무슨 일인가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진성은 이양훈이 궁금증을 해소할 새도 없이, 대뜸 손을 뻗어서 그의 궁금증을 증폭시켜주었다.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아무런 신호도 없이.

         

       그냥 대뜸 이양훈의 앞에 손을 떡하니 벌리고 뻗은 것이다.

         

       마치 비어있는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올리라는 듯 말이다.

         

       이양훈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하다가, 자신을 빤히 보는 진성의 시선과 어서 뭐든 올리라고 재촉하는 듯한 빈 손바닥을 보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진성이 또 이상한 기행을 벌이는구나 싶었다.

         

       ‘이번엔 또 무엇인지 원.’

         

       저택에 있을 때 허구한 날 이상한 짓을 벌이고 다닌 것이 진성이다.

       혐오스러워 보이는 이상한 짓은 물론이고,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는…말 그대로 기행이라고 할 법한 일들을 벌이고 다녔다.

       그들이 천방지축처럼 날뛰며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는 아나스타시아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평범하게 느끼게 할 수준의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닌 것이 바로 진성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은 진성이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도 ‘또 이러는군.’이라고 생각했을 뿐, 뭔가 수상하다거나 그렇게 느끼지는 않았다.

         

       “그래, 뭐 달라는 거 같은데…. 무얼 올리면 되나?”

         

       이양훈은 진성에게 물었다.

       빈 손바닥 위에 뭘 올리면 되냐고.

         

       하지만 진성은 입을 꾹 닫은 채 있었다.

         

       말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양훈은 갑자기 이 녀석이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뭔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저 녀석만의 근거가 있겠지.’라는 생각하며 주머니를 뒤졌다.

       진성의 손바닥에 올릴만한 뭔가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자기 지갑을 떠올렸다.

         

       평소 그의 지갑에는 비상시에 쓸법한 현금 아주 약간과 카드만 있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카드로 계산이 되는 데다가, 거액의 돈을 사용해야 할 일이 많아 현금 대신 카드를 쓰는 것이 일상이었다. 게다가 비서에게 심부름시킬 때도 카드 한 장 주면서 뭐 사 오라고 하는 것이 훨씬 편리했고.

         

       그런데 얼마 전, 현금이 잔뜩 들어왔다.

       그는 오랜만에 부인과 데이트 겸 예술에 대한 안목을 기를 생각으로 경매장에 나들이를 갔었다. 평소라면 거기서 마음에 드는 것을 이것저것 사다가 저택에 장식했겠지만, 대마녀에게 쓴소리를 듣고 정원을 갈아엎은 뒤로는 마구잡이로 질러서 장식하는 것보다는 안목을 먼저 기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이 들었기에 그냥 구경만 하다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구경만 하러 간 경매장에서 16세기경 한 무명 보석 장인이 만든 목걸이를 보았다.

         

       페리도트(Peridot)와 아쿠아마린(Aquamarine)을 장인의 솜씨로 깎아 장식해서 만든 아름다운 보석 장식이 달린 목걸이였다. 어떻게 장식을 한 것인지 각도에 따라서는 고양이의 눈동자처럼 보이기도 했고, 숲과 하늘의 빛을 돌에다가 담은 것처럼 보이게도 했다.

       게다가 빛에 수많은 빛을 내면서 반짝이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이양훈은 그 목걸이를 보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는 홀린 듯이 계속해서 금액을 올리며 목걸이를 낙찰받았고, 그렇게 낙찰받은 목걸이를 부인에게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안타깝게도 그 목걸이가 이양훈의 손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목걸이가 이양훈의 손에 들어가기 전 도난을 당한 것이다.

         

       듣기로는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창고에서 그 목걸이만 사라져버렸다고 했던가.

         

       경매장에서는 자신들의 관리 미숙으로 인해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서 연신 사과했고, 제발 이 일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그에게 빌 듯이 부탁했다. 보안에 문제가 있다고 소문이 난다면 망할 수도 있다면서.

         

       이양훈은 목걸이를 얻지 못해 화가 나기는 했지만, 경매장 측의 태도를 보고는 마음을 풀고 이 일을 묻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뭐…경매장과 친해져서 나쁜 것이 없다는, 그런 계산적인 속내도 조금 있기도 했고.

         

       이러한 이양훈의 결정에 경매장 측에서는 이양훈에게 감사를 표했고, 금액을 현금으로 전액 환불해주는 것과 함께 꽤 가격이 나가는 다른 보석 목걸이들을 그의 부인들 손에 하나씩 들려주었다.

         

       결과적으로는 많은 이득을 얻은 셈이다.

         

       비자금으로 쓸 수 있는 적지 않은 양의 현금과 값어치가 낮지 않은 보석 목걸이들, 경매장과의 인맥까지.

       이득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보석 목걸이였지만…어쩌겠는가. 도난당한 것을 다시 만들어올 수는 없으니.

         

       그렇게 그의 나들이는 끝이 났고, 그 나들이의 영향으로 그의 지갑은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집에 현금을 그냥 쌓아두고 관상용으로만 쓰는 것은 좀 그렇다 싶어서 지갑에 현금을 두툼하게 넣어놓았다. 쓸 일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집 안에 묵혀두는 것보다는 들고 다니는 게 지폐들에도 좋은 일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그래. 마침 현금도 있으니….’

         

       이양훈은 지갑을 꺼내 펼쳤다.

       그리곤 그 안에 들어있는 오만원권 대부분을 지갑에서 빼내곤 그의 손 위에 올렸다.

         

       “이 정도면 되나?”

         

       진성은 자기 손 위에 오만원권 지폐가 잔뜩 올라가자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그 돈을 접어서 자신의 품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방긋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되었습니다. 복채를 받았으니 마땅히 이야기를 해드려야겠지요.”

         

       복채?

         

       이양훈은 진성의 말에 이게 뭔 소린가 싶어 그를 바라보았다.

         

       “복채란 무형의 것을 사고자 내는 대가요, 천칭의 반대편에 있는 물건이라. 복채의 대가가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니 점괘를 말함에 거리낌이 없으니 이 어찌 복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진성은 천천히 이양훈과 부인들을 스윽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보자. 발자국을 걸을 때 짧고 또렷한 소리가 나니 말의 발굽과 같음이라. 말이 발굽으로 바닥을 치며 움직이는 듯하니 이는 떠돌아다니는 것을 말함이요, 저택이 있음에도 몸에 집의 향기가 적게 나니 이는 곧 여러 곳을 떠돌아다닐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라. 거기에 짠 내음이 묻어나니 이는 바다를 건너갈 것을 말함이요, 짠 내음이 흐르되 습하고 축축한 느낌이 들지 아니하니 뱃길이 아니라 하늘길을 이용할 것임을 말하는 것이니 곧 비행기를 타겠다는 것이니.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만…?”

         

       이양훈은 진성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놀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실제로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보자. 상(橡)이 겹쳐 말의 형상을 이루니 가는 이는 여럿이요, 상(孀)이 없으니 부부가 떼어지는 일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라. 다만 그 위와 아래에 새끼도 없고 새싹도 없으니 자식은 빼놓고 가는 것이니, 부부가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갈 예정이었겠습니다. 그러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허, 참.”

         

       이양훈은 진성의 입에서 술술 나오는 말에 속으로 감탄했다.

         

       갑자기 잡힌 사업 일정인지라 이세린과 이아린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진성은 마치 옆에서 사업 일정이 잡힌 것을 보기라도 한 듯 술술 입으로 내뱉고 있지 않은가.

         

       놀랄 수밖에.

         

       “보자. 정해진 곳을 말이 향하되 그 얼굴에 즐거움이 없고 그 위에 짐이 실린 형세이니 이는 여행이 아니라 일과 관련된 것이겠습니다. 다만 궂은 날씨가 없으니 자연재해에 발이 묶이거나 피해를 볼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진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허공에 손을 쥐었다.

         

       덜컹.

         

       그러자 아까 진성이 야매로 만들었다는 영약 보관용 냉장고가 열렸고, 그 안에서 볼품없어 보이는 물건 몇 개가 천천히 허공을 가르며 그에게 날아왔다.

         

       진성은 그 잡동사니 같은 물건들을 두 개씩 짝을 지었고, 자신이 입고 있는 잠옷의 옷깃을 찢어서 잡동사니들을 감쌌다. 그리곤 말도 없이 이양훈과 그의 부인들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몇 개 뽑더니 그것들을 엮어서 기다란 실로 만들었다.

         

       머리카락을 실처럼 만든 잡동사니를 싸고 있는 천 조각의 윗부분을 잘 감싸고는 실을 뱀처럼 꿈틀거리게 움직이게 만들어 묶어버렸다.

         

       복주머니와 같은 형상이 되도록.

         

       “자, 되었습니다.”

         

       “이건…?”

         

       “보아하니 살(煞)이 끼일 수 있을 것 같아 부적을 만들었으니, 외국으로 가기 전까지 이것을 항시 품고 다니셔야겠습니다.”

         

       진성은 복주머니를 하나씩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살(煞)? 뭐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거 아니냐? 그럼 일정을 취소해야….”

         

       “취소한들 소용이 없는 형태입니다. 취소하면 그냥 가는 것보다는 나을지는 몰라도 피해가 올 수 있으니, 이리 부적을 만들어 드린 것이지요. 이것을 지니고 계신다면 그 어떤 액(厄)도 없이 무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둔 부적만 가지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이양훈과 그의 부인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덩달아 걱정이 전염된 듯 그늘진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세린과 이아린 역시도 말이다.

         

       이러한 진성의 장담은 꽤 효과가 있었는지, 그들의 얼굴에 떠올랐던 큰 걱정은 사라졌다.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부적만 있으면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는 진성의 말 덕분에 그것 역시 불안 정도로만 끝날 뿐이었다.

         

       “흐음.”

         

       점괘를 끝마친 진성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저녁 시간대 특유의 빛을 품고 있었다.

       좀 있으면 어둠이 내려앉을 것이라고 암시라도 하는 듯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고, 곳곳에는 푸르고 붉은빛이 시간을 알리듯 세상을 물들이려 하고 있었다.

         

       진성은 그것을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만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음?”

         

       그의 앞에 있던 이아린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축객령.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왜? 우리 있는 거 싫어?”

         

       그녀는 약간의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놀다 가고 싶다는 듯이, 나름 오랜만에 만난 것인데 이렇게 잠깐 얼굴만 보고 쫓아내는 것이 어디 있냐는 듯 항의를 하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진성은 이아린의 투정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젓고는.

         

       “밤에 이곳에 있는 것은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무언가 섬뜩하게 들리는 말을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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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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