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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5

   던전 바깥으로 나온 조이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짙은 혈향이었다.

   

   짐승의 것이 아닌 사람의 피. 조이는 이러한 혈향을 몇 번인가 맡아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규중에만 머무르는 다른 영애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랬기에 조이는 지금 숲에서 느껴지는 혈향이 단순히 한 두 사람이 피를 흘렸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지금 이 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 이 숲 전체에 불길한 기운을 퍼트렸으며 이 곳에 던전을 만들어낸 자들의 피가 흘렀다.

   

   어둑어둑한 숲이 점점 더 끔찍한 곳으로 보인단 생각을 하던 조이는 고개를 내젓고서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조이에게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루시의 호위기사인 칼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그 옆에 있는 비시는 아카데미에서 자주 보았던 얼굴이었고.

   

   프레테는 방금 전까지 함께 던전을 공략했던 사람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두 사람. 조이가 모르는 이들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아예 모르는 사람 하나. 맞나 아닌가 긴가민가한 사람 하나라고 해야 할까.

   

   아예 모르는 쪽은 약간 사나운 인상의 남성이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너무나도 사나워 보이는 그는 쉬이 건드릴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약간 애매하다 싶은 사람은 고혹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이었다.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루시와는 다른 의미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길 것처럼 보이는 그녀는 다가가면 취해버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기 페이비. 저 여성 분 우리가 숲에서 봤던 그 분 맞나?”

   “본녀를 이야기하는 거라면 맞다. 파트란의 아이야.”

   

   연초를 피우며 루시를 구경하던 그녀는 일순에 미소를 지으며 조이의 앞에 섰다.

   

   “오랜만. 이라는 표현을 쓰긴 그렇구나. 너는 몰라도 본녀는 항상 그대들의 곁에 있었으니.”

   “네?”

   “루시의 옆에 머무르던 여우가 생각나지 않으냐?”

   “…그게 숲의 주인님이셨다고요?”

   

   여우가 보여주었던 온갖 기행이 떠오른 조이는 장난을 치시는 걸까 생각을 하다 숲에서 보았던 정경을 떠올리고는 납득을 하고 말았다.

   

   지금이야 멀쩡한 체를 하고 있지만 이 사람은 정상과는 한없이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프레테님도 루시의 앞에만 서면 사람이 다소 괴상해지셨지.

   

   칼 교수님도 마찬가지고 말야.

   

   어라? 뭔가 이상한데? 왜 멀쩡하던 분들이 알른 영애 앞에만 서면 이상해지는 거야?

   

   한 사람이 그러면 그 사람이 이상하구나 생각하고 말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면 알른 영애께 무언가가.

   

   조이가 이상한 결론을 향해 나아가려던 그 때 따스한 온기가 그녀의 곁을 스쳤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이는 이 따스함이 누구의 것인지 알았다.

   

   불안하던 마음이 자연스레 편안해지는 이 신성은 분명 알른 영애의 것이야.

   

   방금 전까지 던전의 최전선에 서셨으면서 또 무얼 하시려는 건가. 알른 영애께선 정말 항상 본인을 몰아붙이시는.

   

   “흐흫. 진짜 변태새끼라니까.”

   

   …응? 조이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두 손을 끌어모은 루시의 모습은 너무나도 고결했다.

   

   기나 긴 싸움 탓에 엉망이 된 머리카락도. 여러 구김이 생긴 갑옷도. 잔 상처가 여럿 있는 얼굴도. 피로가 묻어나는 눈가도.

   

   어느 하나 그녀의 아름다움을 해치기는커녕 루시에게 경건함을 느끼게 해주었으니까.

   

   그래서 조이는 더더욱 방금 전 자신이 들은 말이 사실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그건 루시가 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지금 저 루시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으니까.

   

   조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루시를 기점으로해서 신성이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주신 교회의 성녀인 페이비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막대하고 짙을지 모르는 신성이 말이다.

   

   루시 주변의 공기를 완벽하게 장악한 신성은 주변으로 흘러나가지 않고 루시의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루시가 바라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대하신 주신께서 그것을 바란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신성의 움직임이 루시의 머리 위에 마법진을 그린다.

   

   마법사인 조이는 루시의 머리 위에 그려지는 것이 신성마법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녀의 신성이 그려내는 것은 일반적인 마법의 체계에 가까웠다.

   

   영역의 장악. 그리고 마법을 이루는 기운의 부여.

   

   이 두 종류인가.

   

   신기하네. 알른 영애께서는 마법의 이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냥 자신의 분야가 아닌 마법에 대해서만 잘 모르셨던 걸까.

   

   조이가 루시가 펼치는 기적을 마법적으로 분석하는 동안 페이비는 눈가를 붉히며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이비의 눈에는 지금 이 숲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보였다.

   

   루시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신성이 숲에 자리한 여러 불온한 기운을 쫓아내는 것이.

   

   그녀의 태양과도 같은 신성이 숲에 다시금 생기를 부여하는 것이.

   

   죽어가던 숲이, 죽었어야 할 숲이, 다시금 제 모습을 찾는 것이.

   

   이것은 기적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었다.

   

   거짓된 성녀인 페이비는 할 수 없었던. 주신의 사도인 루시는 할 수 있는. 그런 기적말이다.

   

   페이비의 눈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는 동안 그 옆에서 털썩하고 주저앉는 소리가 났다.

   

   숲의 주인들을 이끄는 존재인 뮤러가 되살아나는 숲을 보고서 오열하고 있었다.

   

   예술 교단의 사도인 프레테가 눈을 부릅 뜬 채 루시의 모습을 새기고 있었다.

   

   안개의 여우 리나가 루시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사령술사인 비시와 사령인 아드리가 기겁을 하며 신성을 피할 곳을 찾았다.

   

   루시의 기사인 칼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프레이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주변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노곤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아서는 입술을 곱씹고 있었다.

   

   방금 전 루시 알른은 너무나도 모독적인 어투로 이야기를 했다.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을만큼이나 끔찍한 발언을 거듭했다.

   

   그런데도 주신께서는 루시 알른에게 기적을 내려주셨다.

   

   신앙이 깊은 사람이라면 저런 불신자에게조차 자비를 내리는 주신님이라며 감동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아서는 아니었다.

   

   그는 주신을 의심하진 않지만 그렇다하여 맹신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주신에 관련된 여러 일화를 생각해봤을 때 주신은 분명 자비롭지만 그렇다 하여 항상 자비로운 존재도 아니었다. 모든 신들의 한 가운데에 있는 그 분은 분명한 단호함을 지니고 있었어.

   

   허나 이번에 주신은 전혀 단호함을 보이지 않았지.

   

   지난 날 배에서 나를 만류했던 것이 주신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면.

   

   …혹시.

   

   아주 혹시.

   

   만에 하나.

   

   주신께서는 저러한 불경함이 취향인 게.

   

   말도 안 되는 추측이라 생각하면서도 단호히 고개를 젓지는 못하던 아서의 생각을 끊은 것은 뒤 편의 움찔거림이었다.

   

   방금 전 던전에서 데리고 나왔던 곰이 움찔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성을 잃은 곰의 돌진을 마주했던 아서는 순간적으로 긴장을 품었지만.

   

   “크헝?”

   

   곰의 입에서 흘러나온 허술한 소리를 들은 순간 자기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빼고 말았다.

   

   퍼뜩하고 눈꼬리가 올라가며 드러난 곰의 눈동자는 던전 안의 사나움을 떠올릴 수 없을만큼 순수했다.

   

   

   *

   

   허접 주신에게서 퀘스트를 받은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기술은 얼마 전 허접 주신이 자신의 변태성을 이기지 못하고 건네주었던 부정 구축이라는 스킬이었다.

   

   그 공간에 존재하는 부정을 지우고 얼마 간 부정이 다가올 수 없게 하는 부정 구축은 이 상황에 최적인 기술이었으니까.

   

   허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가 부정 구축을 펼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

   

   내가 막대한 신성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그 신성을 회복하는 속도마저도 빠른 건 사실이다.

   

   헌데 그렇다 하더라도 숲 전체를 돌아다니며 한 곳 한 곳에서 부정을 구축하는 건 너무도 비효율적인 노가다였다.

   

   이번 주말 내에 끝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도 했고.

   

   그래서 어떡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할아버지가 내게 해답을 내어줬다.

   

   

   <지금의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

   ‘지금의 저라면 가능한 방식이요?’

   <그래. 주신의 사도이자 막대한 신성을 지닌 너라면 가능한 방식 말이다.>

   

   할아버지가 알려 준 방식은 신성마법과 일반적인 마법의 결합이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인 부정 구축을 일반적인 마법을 통해 극대화 시킨다.

   

   말로만 들으면 너무나도 쉬워보이는 설명이었지만 나는 차마 쉬이 고갤 주억거리지 못했다.

   

   내 지능으로 그런 일이 가능할까하는 의구심이 생겨났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어렵지 않을 테니.>

   ‘…안 어려운 거 맞아요?’

   <뭐냐. 루시. 자신이 없는 게냐? 언제는 자기를 바보 취급하지 말라더니 이젠 스스로가 멍청함을 인정해버린 것이야?>

   ‘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저 완전 똑똑하다구요!’

   <그럼 할 수 있겠구나.>

   ‘당연!… 어라?’

   

   할아버지에게 조련을 당해 버린 나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바를 따르는 신세가 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할아버지가 알려 준 마법이 별로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처음 펼쳐보는 마법을 완벽하게 발현하는 데 성공했다.

   

   상공에 펼쳐진 기적 너머로 서서히 생기를 되찾아가는 숲을 바라본다.

   

   어둑어둑하던 귀신의 숲이 파릇파릇한 곳으로 바뀌어가는 광경을 눈에 담는다.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어깨를 핀 나는 보란 듯 할아버지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봐요! 저 완전 똑똑하잖아요!’

   <그래. 그래. 잘했다. 루시.>

   ‘그런 식으로 말고 좀 더 진심을 담아서 칭찬을 해주세요!’

   <와! 루시! 정말이지 대단하구나! 너처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처음 써 보는 마법조차도 이토록 완벽하다니!>

   ‘그거에요!’

   

   할아버지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쭐우쭐거리던 나는 띠링하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스킬…]

   

   흐응. 이번에는 뭘 주려나.

   

   [보상을 재집계합니다.]

   

   응?

   

   [공허의 추종자들이 세운 계획을 분쇄했습니다!]

   [악신 아그라의 개입을 뛰어넘었습니다!]

   [연금술사를 무찌르는 데 성공했습니다!]

   [숲의 두 주인을 구원했습니다!]

   [죽어가던 숲을 완벽하게 회복시켰습니다!]

   

   으으응?!

   

   [보상이 강화됩니다!]

   [당신의 위업에 감탄한 신들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으으으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1. 루시를 다루는 법을 알아낸 할배.

2. 예술 교단의 새로운 굿즈 출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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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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