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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6

        

       진성은 자신을 찾아온 손님들을 모조리 내보냈다.

         

       해가 떨어지고 빌딩이 완전히 어둠에 잠기기 전에.

       그가 만들어놓은 경비들이 빌딩에 돌아다니기 전에.

       혹여라도 그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그들이 깜짝 놀라는 일이 없도록.

         

       그렇게 진성은 모두를 보냈고, 다시 적막한 빌딩에 혼자 남아 자리하게 되었다.

       창밖의 빛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침상에 편하게 누웠다.

         

       마침내 별빛조차 없는 까만 어둠이 빌딩을 완전히 감싸고, 저 너머로 자동차의 불빛과 등대처럼 빛나는 빌딩들에서 나오는 조명이 별빛처럼 빌딩에 다가올 때까지.

         

       불을 켜고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는 유성우처럼 선을 그리고, 터져버리는 별처럼 잠깐 빛났다가 빠르게 사그라든다. 빌딩의 불빛은 불투명 유리에 반사되고 일그러지며 흐릿한 빛무리가 되어 별빛처럼 빛났고, 때로는 달빛이 내려앉은 것처럼 노랗게 흔들흔들 퍼지며 빌딩의 창가 주변을 빛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인위적인 반짝임 속에서, 진성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했다.

         

       띠잉-!

         

       엘리베이터의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밝다면 밝고, 어둡다면 어두운 엘리베이터의 조명을 받으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태연하게 보이는 얼굴, 피곤해 보이는 몸짓.

       하지만 그 내면에는 이 빌딩에 대한 거부감을, 꺼림칙함을 안은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의 앞까지 걸어온다.

         

       그리고 친근하게.

       꾸며낸 듯한 친근함으로 말한다.

         

       “박진성 주술사님, 안녕하십니까.”

         

       가면을 쓴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저 미소는 진실하지 아니하며.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입에서는 꿀을 바른 듯 사람의 마음을 여는 소리가 나오나 그 말에는 진실함이 존재하지 않느니라.

       눈앞의 남자의 행태는 양이 늑대의 앞에서 제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긴 혓바닥을 놀려 거짓을 내뱉는 것과 같음이요, 물고기가 꼬리로 바닥을 휘저어 물을 오염시켜 그 안으로 모습을 숨김과 같음이요, 하잘것없는 새가 깃털을 부풀려 제 몸을 크게 부풀리는 듯하다.

         

       허나 거짓은 진실의 앞에 서면 햇살에 눈이 녹아내리듯 맥을 못 추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

         

       “김철수 씨. 반갑습니다.”

         

       그리하여 진성은 입에 진실을 담아 그를 맞이하니, 그 모습이 참으로 진실하고 또 진실한 것이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의지에 뭇사람들이 그 진실의 힘에 감복되지 않을 수가 없음이로다.

         

         

         

        * * *

         

         

         

       “이거 밖이 너무 깜깜하군요. 이거 원, 제가 병문안을 너무 늦게 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철수는 커다란 돌 위에 누워있는 진성의 앞에 앉았다.

         

       “어지간하면 해가 떠 있을 때 오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일이 너무 많아서 해 지기 전에는 퇴근할 수도 없고…. 그래도 회식을 하자는 것은 뿌리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생색을 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포기하고 그에게 온 것이라고.

       이렇게 해가 깜깜한데도 굳이 발품을 들여서 그를 찾아온 것이라고 말이다.

         

       진성이 친근감과 미안함을 느끼게 하기 위한 말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그 말에 현혹되지 않았다.

         

       “진실로 그러하다면 참으로 죄송스러운 일이로군요. 맛있는 음식은 직장생활의 낙이나 다름이 없음인데, 그것마저 포기하고 이곳에 오셨다니 말입니다. 이거 맛있는 것을 포기하고 오신만큼 맛있는 것을 대접해드려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여기에 있는 것이 별로 없는지라….”

         

       오히려 김철수의 말에 호응하는 듯하면서도, ‘그 말이 진짜라면’이라는 전제조건을 붙이기까지 했다.

       마치 네가 말하는 것이 입바른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아, 괜찮습니다. 제가 뭐 여기서 얻어먹으러 왔겠습니까?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박진성 주술사님이 얼마나 상처를 입었는지 걱정이 되어서 찾아온 것이지요.”

         

       김철수는 진성의 말에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피곤한 듯, 힘이 많이 빠져있는 듯 연기를 할 뿐이었다.

       마치 일을 열심히 해서 방전되기 직전의 회사원을 연기하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와서 확인해보니…. 다행이군요. 화상을 입었다고 들어서 좀 당황했거든요. 그런데 뭐…. 피부가 조금 빨갛기는 해도 크게 다친 곳은 없는 듯 보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화상이라고는 하나 흉은 지지 않을 것이라 하고, 잘 먹고 잘 쉬면 금방 나을 것이라 하니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 좋은 소식이로군요. 이거 참, 병문안을 온 보람이 있습니다.”

         

       김철수는 진성의 말에 기쁘다는 듯 말했다.

         

       “본래 병문안이라는 것은 다친 사람에게 찾아온 것이지만 말입니다. 경중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몹쓸 병에 걸린 사람과, 그냥 가볍게 다친 사람. 똑같은 병문안이라고는 하지만 그 무게는 분명히 다르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병문안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쾌차가 약속된 사람에게 방문하는 것처럼 가벼우면서도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병문안이 또 어디 있겠냐 이 말입니다. 다친 사람은 절망과 고통 대신에 희망이 가득 차 있고, 방문했던 사람은 다음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 돌아가는 것이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지요.”

         

       김철수는 진성이 별로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진성이 다쳤다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음에도, 그렇게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며 진성에게 그렇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그렇게 걱정이 좀 한시름 덜어지니까, 이거 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제가 갓 대학생이 되었을 때, 친구들이랑 같이 계곡에 놀러 간 적이 있었어요. 그, MT 장소로 유명한 계곡 있지 않습니까? 차 하나를 렌트해서 거기로 가서 2박 3일 동안 놀기로 한 겁니다. 거기서 고기도 먹고, 술이라는 것도 먹어보고, 담배도 한 번 펴보고. 그리고 그…여자도 좀 꼬시고, 뭐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진성의 몸 상태를 보고 걱정했었다면서 경계심을 낮출 필요가 있었으니까.

         

       “뭐, 일종의 로망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게다가 제가 대학생 때쯤에는 그런 느낌의 드라마나 시트콤이 좀 유행을 했거든요. 해변이나 계곡으로 놀러 가서, 즉석에서 이성과 만나고, 놀고, 사귀기도 하고…. 뭐 그런 종류의 이야기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어리긴 했습니다만…. 뭐, 즐거웠지요. ‘대학생 누나들 여러 명 번호를 얻으면 어떻게 하지? 양다리는 좀 그러니까 한 명을 선택해야 할 텐데, 그럼 선택받지 못한 누나는 상처받는 게 아닐까?’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철없는 상상도 하기도 하고…. 하하하.”

         

       듣지 못한다면 그 반응이라도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이게 참….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해야 할까요. 즐거운 마음으로 계곡에 갔는데, 운전면허를 땄던 녀석이 빌린 차를 타고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겁니다.”

         

       그렇기에 김철수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의 경계심을 낮추고 그 안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

       발을 들여놓으며 생긴 틈새를 열어젖히고 그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숨기고 있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놀랐던지. 친구들 모두 싸던 짐 다 내팽개치고 병원으로 갔지요. 이 친구 놈이 많이 다쳤는지 어쨌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병원으로 다 같이 허겁지겁 뛰어갔는데….”

         

       입에서는 겪지도 않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하하하. 멀쩡하더군요. 그거 보고 긴장이 탁 풀려버리는데…. 이거 원. 지금도 딱 그런 느낌입니다.”

         

       듣는 이가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공감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그리고 뭐 그다음 이야기는…별건 없어요. 도대체 뭘 하다가 교통사고가 난 거냐 물어보고, 그때의 무용담을 들어보기도 하고…. 나중에는 병원인 것도 잊어버리고 큰 소리로 떠들다가 간호사에게 혼이 나기도 하고, 뭐 그랬지요.”

         

       자연스럽게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하려고.

         

       “하하, 지금의 저랑 비슷한 이야기로군요.”

         

       진성은 김철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너무나도 훤히 보이는, 그렇기에 노골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그 흐름에 올라탄 것이다.

         

       “그렇다면 저 역시도 경험을 말씀해드리는 것이 옳겠지요. 이리도 듣고 싶어 하시는데 어찌 제가 실망감을 안겨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병문안까지 오신 분에게 말입니다.”

         

       그 둘의 모습은 연극을 보는 듯했다.

         

       한 사람이 연기하면 다른 한 사람이 연기를 받아준다.

       서로가 진실인 것처럼 행동하고 말을 내뱉고 감정을 표현하지만 실제로는 대본에 적혀있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는다.

       주연도, 조연도, 엑스트라도, 관객도.

       모두가 연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것은 연극이었으니까.

       그들은 연기를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고, 연기를 보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니까.

         

       “일단은 제가 독도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둘의 대화는 연극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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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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