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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6

       

        

        

        

        

        

        

        

       “…차를 새로 보내준 건 좋은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원한 바람이 몰아쳤다.

        

        반쯤 상시로 에어컨을 틀어놓는 지하주차장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리문을 열고 나가도 온도는 비슷비슷했다. 시선을 돌리자 오로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주차장 – 대형 차량을 다섯 대씩 주차해도 공간이 남는 크기의 – 위에 한 대의 검은 초대형 세단이 놓여있었다.

        

        전장 5미터에 전폭 2미터, 높이 대략 1.8m에 달하는 크기. 누가 보면 무슨 의전 차량인지 의구심을 품을 정도였고, 실제로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 그래서 이걸 누가 보내주었냐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싱크탱크였다.

        

        듣자 하니 지금 미국에선 기존의 의전차량을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리하여 여러 자동차 회사에서 나름대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으며 – 이 중에서 낙찰되지 못한 차량 중 가장 슬림하고 날씬한 것을 싱크탱크가 업어와 적당히 개조한 뒤 한국으로 직배송해버린 것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기밀로 취급되는 이런저런 내부 시스템은 다 빼버렸고.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긴 한데.”

        

        

        

        첫째도 나의 안전, 둘째도 나의 안전, 셋째는 내 프라이버시 보호.

        

        다시 말해 저쪽이 이걸 보내준 건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도록 하자. 가령 당장 싱크탱크에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면…뭐어, 지금까지 넘겨준 기술이 많으니만큼 망할 리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좀 심각하게 곤란해지겠지.

        

        아마 느닷없이 이런 걸 보내준 이유는 그런 의도도 섞여있는 것 같긴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방탄 성능까지 그대로에, 싱크탱크가 현재 사방팔방에 납품 중인 실드 제네레이터까지 탑재한 이런 세단을 보내줬을 리가 없지.

        

        그래도 꼴랑 차 타고 20분 거리밖에 안 되는 목적지까지 가는 데 타기에는 너무 큰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스으윽.

        

        

        

        두께만 20cm에 달하는 뒷문이 아무런 소리 없이 열린다.

        

        당연하겠지만 해당 차량은 이카루스 기어를 통해 모든 시스템 제어가 가능했고, 문을 원격으로 여닫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내부는 널찍했고 상쾌한 냄새가 났으며, 당연하겠지만 내 꼬리를 편하게 둘 수 있도록 등받이 부분이 조금 독특한 형태로 개조되어 있었다. 조금 간략히 설명해보자면, 의자의 구조를 엉덩이가 닿는 쿠션과 등받이로 나누었을 때, 그 등받이가 위로 좀 올라가있는 느낌.

        

        그리하여 차량에 탑승. 예비 좌석들은 바닥에 전부 수납되어있었고, 조수석도 없었으며, 운전석과 나만을 위한 좌석만이 있었다. 물론 운전수가 필요하지 않은 건 덤이었고.

        

        여러 홀로그램 메시지가 떠오르며 차량에 자동으로 시동이 걸렸다.

        

        

        

       -[알림 : 이카루스 기어와 동기화 완료…에너지원을 감지.]

        

       -[알림 : 여압 기능, 실드 제네레이터, GPS, 재밍 디바이스, ADS, 화재 진압 시스템, 창문 내 홀로그램 표시기를 포함한 64개의 내부 기능 전부 이상 없음을 확인.]

        

       -[알림 : 운행을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이 차량은 100% 친환경 차량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력원 중 하나가 내 이카루스 기어였으니. 일종의 전기차라고 해도 될 것이었다. 물론 지정 위치에 이카루스 기어를, 혹은 팔목 전체를 올려놓아야만 했지만…그렇다고 해서 기름을 아예 먹지 않는 그런 건 아니었다. 기름 먹는 엔진도 멀쩡하게 장착되어있다.

        

        몸을 뉘이자 차량이 지하주차장을 실로 조용하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바깥은 햇볕이 실로 따가울 듯한 모습이었고, 언제나 그렇듯 차량들로 바글거렸으나, 내가 탑승한 차가 그 대열에 합류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리를 순식간에 건너 강변북로를 타고 이동하다 고가차도를 타고 내려와 왕십리로 들어선다.

        

        차를 타고 꼴랑 10분 좀 더 걸리는 거리였다. 집이랑 이렇게나 가까운데 참 괴상한 걸 타고 왔다 싶었다. 다행히 차량은 SSM 엔터테인먼트의 지하주차장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고, 자리도 생각보다 넉넉했다.

        

        이 정도로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경우라면…차라리 괜찮은 바이크 하나를 들여놓는 게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어디 보자.”

        

        

        

        SSM에 도착한 후의 스케줄을 크게 둘로 분류한다면 – 첫 번째는 글로리 앤 아너 관련해서 이런저런 테스트 같은 걸 받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당연하게도 다크 존 AP와 관련된 업무 처리였다. 아마 다이스를 만나려면 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이 건물에는 지난 번에 한 번 와본 적이 있었고, 아직 방문증 효력은 남아있었다. 단지 지정된 구역만 들어갈 수 있을 뿐 – 연예인 등등이 있는 쪽은 들어갈 수 없단 뜻이었다 – .

        

        그리하여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목표하던 층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이게 뭐야.”

        

        

        

        로비…까지는 멀쩡했다.

        

        그런데 바로 조금만 시선을 위로 올리자마자 보이는…벽에 걸려있는 냉병기들. 실로 현대적인 인테리어와 단 1도 어울리지 않는, 그래서 오히려 기묘한 조화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괴상망측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이곳이 SSM 엔터테인먼트, 그 중에서도 글로리 앤 아너를 메인으로 하는 섹션이라는 것을 강렬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 해괴망측한 광경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을까.

        

        

        

       “여기입니다, 유진 씨.”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장 복장이 아닌 SSM Entertainment의 유니폼을 입은 코치 – 폴라리스가 기다렸다는 듯 의자에서 일어나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잠시 멍했던 정신이 맑아지며, 미처 켜는 걸 까먹고 있었던 드론캠을 작동시켜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사전에 허락은 받아놓았으니 저쪽 역시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고, 그리하여 내 다음 목적지는 당연하게도 이곳의 시설 탐방 비스무리한 것이 되었다.

        

        어쩌다보니 SSM과 콜라보레이션하여 스트리밍을 진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실제로도 딱히 다를 바 없고, 회사 쪽도 어느 정도 분위기를 읽고 이에 맞춰서 홍보 비용을 보내준다고도 했으니 이게 바로 윈윈이 아닐까.

        

        

        물론 그 생각은 SSM 소속 프로게이머들과 본격적으로 인사를 나눌 때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끼야아아아아악-!”

        

       “뱀이다! 단검! 목! 저 사람이 여기 있는 사람을 전부 죽일 거야! 저 단검, 저 단검!”

        

       “나 랭크 안 돌릴거야…랭크 못해에에….”

        

       “…이 분들은 왜 이러고 계시는지?”

        

       “하하, 저는 알 것 같은데요.”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진아 기어코 옆집까지 멸망시키러 갔느냐!!!!!!

       -그럼그렇지 ㅋㅋㅋㅋㅋㅋㅋ

       -어라…어째서 익숙한…?

       -왜맨날 본인만 모르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 또 내가 문제지.

        

        그치만 동체시력을 너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다고.

        

        대강 그런 느낌으로, 내 첫 번째 방문은 절규와 비명으로 시작되었다.

        

        

        

        

        

        

        

        

        

        

        

        

        

        

        

        

        

        

        

        

       “───만약 상황이 위와 같다고 가정할 때, 서로 동원 가능한 전력이 동일하다는 대전제 하에 어떤 방식으로 팀원을 운용해야 우위를 점할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봅시다. 아군과 적의 스킬 쿨타임 및 선택한 특수기는 하단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어우, 벌써부터 끔찍하네.”

        

       “일단 은신 든 닌자 있으니 옆치기 조심해야 하고, 승리의 함성 시전까지 15초 남았으니 팀원 5m 가량 뒤로 뺀 다음 대방패 앞으로 보내서….”

        

       “적 스킬 중에 간이사다리 있네. 이러면 A에 화염병 든 애를 보내야 하나….”

        

        

        

        토의와 토론, 의견 개진과 반론 제기, 시뮬레이팅, 실제 플레이까지.

        

        교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자유로웠지만, 완전히 자유로운 논의의 장이라고 하기에는 압박적인 분위기 – 마치 내가 없는 것처럼 열띤 대화를 나누는 15명의 SSM-글로리 앤 아너 1군 프로게이머들과 이를 주관하며 상황을 판단 중인 두 명의 코치들.

        

        시간은 오래 주지 않는다. 길어야 20초 정도일까. 그러나 누군가는 말을 잘 하고 누군가는 못할지언정 전부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답을 내놓는다. 당연했다. 이곳에 있는 15명은 한 구단의 중심이었고,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글로리 앤 아너에 정통했으니.

        

        아무튼, 그래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니,

        

        

        

       “…아, 이 방법은 안 되나보네.”

        

       “나는 대검사 잘 못 다뤄. 살루트가 얘 잘하니까 얘가 잡으면 뭔가 좀 다를 거 같은데.”

        

       “이것도 기량 차이야? 오더도 내리고 겜도 해야 하고, 바빠 죽겠네.”

        

        

        

        이들이 게임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걸 당연하다고 표현해야만 하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나는 아직…이 정도까지는 잘 모른다. 대략 50명이 넘는 각 클래스의 공격 방식은 이제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적이 어떤 특수기를 가지고 나오냐에 따라 조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어느 누군가가 글로리 앤 아너의 도미네이션 모드에서 나올 수 있는 클래스-특수기 조합의 개수를 구했더니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온다고 말했을 정도니, 어느 캐릭터에 어느 특수기를 조합했을 때 개인에게, 혹은 팀원 전체의 전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까지는 모르는 게 당연했다.

        

        물론 이 역시도 글아너 위키에 상당히 잘 정리되어 있긴 했지만…사실 아직까지는 그닥 신경쓰지 않고 내 피지컬만으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중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하여 이리저리 떠들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여러분들이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랭크를 올리고 싶으면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면 됩니다. 아마도.”

        

        

        

       -??????

       -마지막단어는 왜붙이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근데 진짜 저렇게 공부해야 랭크가 오르긴 하지 ㅋㅋㅋㅋ

       -팩트)저짓거리 안 하고 챌린저 찍은 중고딩을 데려다가 저런 교육을 받게 시켜서 대회에 내보내야 스타 프로게이머 한두명이 나올까말까 한다

       -근데 이 비얌쉑은 그렇게 아득바득 기어올라온 유망주들 뚝배기를 전부 바닥에 떨어진 소프트콘마냥 으깨버렸죠? ㅋㅋ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여기서 내가 나와.

        

        물론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기에 입을 닫았다. 사실 다크 존 플레이 때는…조금 자중하지 못한 것도 있긴 있었다. 보이는 친구들 뚝배기를 전부 뚜따시키고 다녔던 건 맞았으니까. 그래도 그만큼 많이 가르쳤긴 했지만.

        

        그래서일까. 이렇게 체계적인 이론 학습 교육을 보고 있자니 상당히 흥미가 돋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저런 심도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내 글로리-앤-아너의 이론적 뒷받침이 탄탄하지 못했다는 점일까.

        

        이제 꼴랑 일주일 정도 광고 방송을 진행한 참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긴 한데.

        

        

        좌우지간,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아직 이 난해한 토론에 끼어들기에는 아직 이론적 면모가 많이 부족했기에, 코치 및 1군 유저들은 내게 뭔가 할 말이 있어보였지만 딱히 말을 걸진 않았다.

        

        사실 그게 맞았다. 스트리밍 방제에도 써놓았고, 어제도 얼핏 말하긴 했지만, 이번 SSM 방문의 목적은 내가 이들에게 뭔가 꿀팁이나 CQC를 가르쳐주는 게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최상위권 친구들은 어떻게 게임을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었지.

        

        게다가 구단과도 이미 이야기가 끝났고, 지금은 방송에 나가도 크게 상관없는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방송에 송출되지 말아야만 하는 건 개별적인 선수들을 위한 맞춤 커리큘럼 같은 거지.

        

        물론-

        

        

        

       “그럼, 다음은 오늘 모셔온 스페셜 게스트처럼 – 글로리 앤 아너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공격을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대응해야만 하는지를 익혀보도록 합시다. 시간은 10분 드릴 테니, VR 존에서 각자 몸 풀고 계시길.”

        

       “와, 이거 진짜 하는구나….”

        

       “진짜 무섭다, 진짜루….”

        

       “폴라리스 코치님, 오늘 저희 집에서 키우는 양파한테 갑자기 복통이 심하다고 전화가 와서 잠깐 집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아아아아악-!”

        

       “양파즙이 되기 전에 빨리 가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하고많은 것중에 양파즙인데 ㅋㅋㅋㅋㅋㅋㅋ

       -헛소리도 도를 넘으면 웃기네 ㅋㅋㅋㅋ

       -저 비얌이랑 1 : 1 대결을 시킨다는데 그럼 안 도망가고 배겨? ㅋㅋㅋㅋ

       -그래서 유진이 드디어 현실에서 단검술 시연하는거 보여준단거죠??????????

        

        

        

        당연하겠지만, 다들 표정이…마치 캠핑을 갔다가 그리즐리 베어와 정면에서 조우한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예정된 스케줄이란 어쩔 수 없는 법. 나도 통장에 입금된 만큼은 일을 해야만 했으니, 이들에게 이론과 개인 강습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대련이란 것을 진득하게 알려줄 예정이었다.

        

        이리 생각해보니 문득 다크 존 관련하여 프로게이머 친구들을 가르칠 때가 생각났다. 그때와는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었다 – 거기는 이곳처럼 정형화된 커리큘럼이 없는 대신 개개인의 피지컬을 키워서 교전에 대비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여기는 정반대였다.

        

        좌우지간, 그것과는 별개로 슬슬 일할 시간이었다.

        

        목적지는 VR존이었다.

        

        

        그리고 내가 해당 구역에 처음으로 몸을 내딛은 순간 꽤나 재밌는 광경이 보였다.

        

        

        

       “와우.”

        

       “환영합니다. SSM의 자랑이기도 한 VR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마 다크 존 섹션에도 이런 게 새로이 설치됐던 걸로 알고 있는데, 딱히 이야기는 못 들으신 모양이네요?”

        

       “파이널 챔피언십 이후로 이쪽 방면과는 꽤 귀를 닫고 지냈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저희가 귀를 다시 열어드렸다고 할 수 있겠군요. 때마침 잘 됐습니다.”

        

        

        

        코치는 내게 두 자루의…막대기, 그리고 신체 곳곳에 착용 가능한 얇은 엑소스켈레톤을 건넸다.

        

        모든 파츠를 착용한 뒤 막대기를 양손에 하나씩 휴대한 순간 VR존이라는 이름대로 현실 위에 실로 사실적인 홀로그램이 덧씌워졌고, 그리하여 내 손에 쥐어진 것은 두 자루의 단검이었다.

        

        물론 제대로 구현을 하려면 그 이상의 물건이 필요했고, 그리하여 목에 접속기를 착용했다. AFK 모드로 변경하여 현실의 몸을 움직일 수 있지만, 접속기가 추가적인 신호를 보냄으로서 내 몸에 걸린 역보정까지 일부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닥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뭐어.

        

        

        단검을 휭휭 돌리고 있자니, 죽음의 가위바위보를 끝낸 듯한 프로게이머 중 한 명이 다가왔다.

        

        침울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적의 모습이 점차적으로 변해갔다 – 라운드 실드와 바이킹 소드를 든 건장한 바이킹이 나의 눈 앞에 나타났다. 클래스 – 지배자였다. 그는 어울리지 않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다음 순식간에 전투 태세로 돌입했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이어지는 말.

        

        

        

       “별 거 없습니다. 1 : 1을 하시는 것처럼 편안하게 임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야.”

        

        

        

        라운드 실드와 탄탄한 갑옷의 조화.

        

        그러나 바이킹 소드는 그리 길지 않다. 대략 70cm 가량일까…그렇다면 보폭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인해 좁혀지는 거리만 주의한다면 크게 신경쓸 것은 없었다.

        

        들고 있는 단검의 칼날끼리 한 번 부딪혀보았다. 실로 신기하게도 현실의 나는 날이 없는 손잡이를 잡고 있었음에도 날과 날이 부딪히는 느낌이 났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전투 역시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선공은 저쪽에게 양보해보도록 할까.

        

        

        

       ───부우우웅!

        

        

        

        공기를 찢어내는 소음.

        

        간단한 횡베기 이후 가볍게 이어지는 연속기. 검면이 넓지만 검이 그닥 무겁지 않은 듯 계속해서 공격이 이어진다. 그 와중 실드 배쉬 이후 박치기 공격까지 하길래 몸을 빙글 돌려 가볍게 피했다. 흡사 투우와도 같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이런 경우에는 심리전을 좀 다른 방향에서 유도하는 것이 좋았다 – 그게 무엇인가 하니, 의도적으로 적의 공격 범위 내에서 공격을 피함으로서 조급함을 유발시키는 것이었다.

        

        까놓고 말해 동체시력이 좋지 못하다면 죽으러 들어가는 거랑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흐읍…!”

        

       “아이구.”

        

       “…아니, 공격을 뭐 저런 가까운 거리에서도 설렁설렁 피해내지?”

        

        

        

        시도, 시도. 그리고 연속적인 공격 시도.

        

        그 전부를 피해낸다.

        

        칼끝이 닿을랑말랑 하는 지점에서 적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궤적을 직시하며, 살상 구역에서 피해나간다. 방패가 공간을 한 번씩 휘젓기 직전 크게 뒤로 도약하며 마찬가지로 공격을 회피. 저쪽 입장에서는 아마 약이 올라 죽을 것이다.

        

        그러나 인게임의 흔한 유저들과는 다르게, 상대는 여전히 인내심을 가지고 제대로 된 한 번의 공격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저런 면모 역시도 일반인-고수와 프로의 경계를 나누는 구분선 중 하나겠지.

        

        하지만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시야가 좁아짐을 의미했다.

        

        

        그리고 가벼운 ‘트릭’은 그동안 쌓아올렸던 집중력의 탑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휙!

        

        

        

       “…!”

        

       “현혹되면 안 되죠.”

        

        

        

        공격을 피해내는 와중 이어진 손목 스냅, 그리하여 수직으로 튕겨나가듯 떠오른 단검 한 자루.

        

        당연하겠지만 여기에 시선이 가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했다. 인간의 본능 수준에서 발생하는 일이었으니까 – 그리하여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이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

        

        적은 방패와 칼을 서로 X자로 겹친 후 이를 원래 방향으로 되돌리며 크게 횡베기를 갈겼다. 상단 범위공격이었다 – 그러나 나는 이미 다리를 굽혀 해당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고, 왼손에 들고 있던 칼날을 그대로 허벅지에 꽂아넣은 뒤 오른쪽으로 굴러 추가타를 피해냈다.

        

        딸그랑. 허공에 던졌던 단검이 방패에 부딪혀 옆으로 튕겨나간 뒤 땅으로 떨어졌고, 적은 비틀거렸으며, 주춤거렸다.

        

        

        남은 한 자루의 단검을 빠르게 주워든 다음 빙글 돌렸다.

        

        상대가 입을 열었다.

        

        

        

       “하, 이래서 첫빠따로 하기 싫었는데….”

        

       “괜찮아요.”

        

        

        

        단검을 리버스 그립으로 전환했다.

        

        노리는 곳은 목.

        

        기회를 보다가 한 방에 끝낸다.

        

        

        

       “곧 다음 차례가 올 거니까요.”

        

        

        

       -무친련…무친련…무친련…무친련…무친련….

       -내 그럴줄알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현실에서 이러는거보니까 진짜 개무섭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뭔지는 모르겠지만 잘못했습니다 한번만봐주세요

       -아니 글아너 해보고싶단 생각을 도리어 꺾네 이양반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명은 짧았다.

        

        퍼스트 블러드가 터지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정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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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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