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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6

   내 눈가를 사로잡은 것은 마지막에 존재하는 문구였다.

   

   ‘신들이 나를 주목한다.’

   

   단수가 아닌 복수의 누군가가 내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보상을 주고자 한다.

   

   당장 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은 여러 선신들이 지니고 있던 그들만의 축복이었다.

   

   신들이 자신의 사도에게만 내어주던 특별한 것들 말이다. 그 중에는 여러모로 유용한 것들이 많았다.

   

   괴력의 권능을 지닌 신에게서 얻을 수 있는 거인의 괴력이라거나.

   

   예지의 권능을 지닌 신에게서 얻을 수 있는 혜안.

   

   맹약의 권능을 지닌 신에게서 얻을 수 있는 맹약 강제까지.

   

   신의 아래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권위를 드높여야지만 습득할 수 있는 여러 스킬들의 이름은 내게 욕심이라는 것을 선사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호들갑을 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이 신‘들’이지. 허접변태주신하고 변태까마귀 둘만 해도 일단 복수잖아.

   

   괜히 기대감을 품었다가 배신당하고 싶지 않았기에 난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메시지가 떠오르는 것을 기다렸다.

   

   [미와 예술의 여신이 당신에게 새로운 축복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역시 너였냐. 변태까마귀야. 나한테 뭔가를 주고 싶어 하는 건 참 고마운데 그럴 시간에 네 변태 사도한테 뭔가를 챙겨주는 게 어때?

   

   이 녀석이 강해져야 나 대신 더 구를 거 아냐.

   

   뭐. 아무래도 좋아.

   

   지난 번에 꼭 받고 싶었는데 무산되었던 걸 챙기면 충분.

   

   [무예의 신이 당신이 펼치는 무술에 흥미를 보입니다!]

   

   충분?

   

   [역사와 기록의 신이 당신의 일대기에 관심을 보입니다!]

   

   어.

   

   [자연의 신이 당신에게 감사를 표시합니다!]

   

   연이어 떠오르는 메시지에 눈을 끔뻑거리던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달싹였다.

   

   잠.

   

   잠시.

   

   생각할 시간 좀 주시겠어요?

   

   제가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시피해서 지금 머리가 약간 어지러운 것 같은 느낌이.

   

   …어라? 느낌이 아닌가?

   

   머리에서 생각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드는 게 이거 꼭 지난번에 탈진했을 때랑 느낌이 비슷.

   

   한.

   

   데.

   

   *

   

   어느 건물의 지하. 로브를 뒤집어 쓴 남자는 수정구 너머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다 말없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많은 이들이 죽어가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했다.

   

   자신들의 죽음을 무릅써가며 위대하신 분의 바람을 이루려했다.

   

   헌데 그 끝에 남은 것은 또 다른 이들의 죽음뿐이구나.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무엇이 문제였기에 성공을 앞에 두고 있었던 일이 이렇게 허무히 무너져 내린 것인가.

   

   우리의 자존심을 굽혀가며 불신자들에게 손까지 뻗었거늘 어찌하여 우리의 계획이.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일말의 동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어투에 퍼뜩 고개를 들었던 남자는 상대의 무표정한 얼굴 앞에 입술을 곱씹었다.

   

   앞으로를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계획마저도 실패하게 된 지금.

   

   남자는 눈앞의 상대에게 협력을 간청해야만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약간의 방해를 받았습니다.”

   “상대는 알른 가문의 영애이지요?”

   “그걸 어떻게”

   “현 대륙에서 주신이 가장 크게 관심을 지닐 사람이 그 분이니까요.”

   

   루시의 이름을 언급하며 가벼운 미소를 지은 상대는 남자의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러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알른 영애를 곤경 속에 빠트리기 위해선 본인이 아니라 주변을 건드려야한다고. 그 분은 자신을 향하는 적의에는 당당히 맞서지만 자기 주변이 무너지는 것은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의 조언이 그렇게 어려웠느냐는 물음을 들은 남자는 입술을 꾹 깨물면서도 그에게 반박하지 못했다.

   

   방금 전 그가 모시는 악신께서 전해 준 이야기도 이 자가 한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주신의 사랑을 받는 루시 알른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본인을 선택하는 건 그리 좋지 못한 선택지다.

   

   불의 악신이 그녀를 해하기 위해 직접 움직였고 어둠의 악신이 그녀 하나를 죽이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내걸었음에도 루시 알른은 보란 듯 모든 시련을 돌파하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오히려 그 시련을 가뿐히 넘어서가며 더 높은 곳에 도달해버렸지.

   

   실제로 지금의 상황을 보라.

   

   긴 세월을 살아온 미치광이 연금술사가 숲의 주인 둘을 조종하면서 그녀를 짓밟으려했거늘 오히려 패배해버리지 않았나.

   

   “어찌 보면 잘 된 일입니다. 당신들의 무능이 이렇게 증명되었으니까요. 이제부터는 염치가 없어서라도 제가 하려는 것에 토를 달지 못 할 테죠.”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까.”

   “예. 몇 가지 있습니다. 당신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해준다면 분명한 결과를 얻어낼 것들이.”

   

   상대는 진득한 웃음과 함께 남자를 바라봤다.

   

   광기가 번뜩이는 상대의 눈동자를 마주한 남자는 그 속이 텅 비어 있음을 확인하고는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정신을 놓아버리면서까지 무언가를 향해 내달리고 있거늘 정작 이 자의 안에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구나.

   

   그래. 당장은 네 말에 따라주도록 하마.

   

   네 녀석의 목적과 우리의 목적에 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니 그를 따를 것이야.

   

   허나 언제까지고 우리가 네 아래에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진 마라.

   

   네 놈의 안에서 퍼져나가는 공허함이 너를 집어삼키는 그 순간 너는 우리의 아래에 복속하게 될 것이다.

   

   네 녀석이 원하건 원하지 않던 간에 말이다.

   

   남자가 속으로 배신을 생각하는 동안 그 반대편에 있는 남자. 루카는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를 짐작했다.

   

   당장 자신이 저 자리에 있다면 상대가 주제도 모르고 오만불손하게 나오는 것을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

   

   뭐 그래도 상관은 없다. 나 또한 저 녀석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 줄 생각이 없으니. 이 자는 루시 알른이라는 별을 위한 양식이 되리라.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대상을 키우게 되리라.

   

   그리고 그 끝에 루시 알른은 어느 무엇보다도. 심지어 달보다도 밝은 별이 되겠지.

   

   내가 세공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달이. 태양이. 하늘의 중심이 될 것이란 말이다.

   

   그리 생각을 하며 루카가 웃음을 짓자 반대편에 있는 남자도 함께 웃음을 짓는다.

   

   아직까지 두 사람은 서로에게 내밀 비수를 준비하고만 있다.

   

   *

   

   “…흡?!”

   

   정신을 차리고서 몸을 일으킨 나는 어둑어둑해진 주변의 풍경을 확인하고는 눈을 끔뻑였다.

   

   <일어났느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간단한 이야기다. 부족한 능력을 출력으로 해결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게지.>

   

   마법의 부족한 부분을 나의 신성으로 채웠기에 탈진해버린건가.

   

   하긴. 방금 전에 내가 한 일은 망가져버린 숲 전체를 되살리는 일이었으니까.

   

   몸에 한계가 찾아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지금 여긴 어디에요?’

   <순간이동의 진을 타고서 온 마을. 그 쪽의 영주저택이다.>

   ‘…영주 저택이요? 숙소가 아니라?’

   <너희들 같은 사람들이 묵을 곳이 이 촌구석에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지금도 영주는 자신이 무언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까 싶어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으리란 할아버지의 설명에 헛웃음이 샜다.

   

   괜시리 미안해지네. 내가 기절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 후에도 나는 할아버지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었다. 숲의 주인들이 멀쩡히 회복했냐는 것에 대한 것. 내가 되살린 숲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냐는 것. 지금 친구들은 무얼 하고 있느냐는 것 같은 물음을 말이다.

   

   할아버지가 내게 해 준 대답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쓸데없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이었다.

   

   숲에 산적해있던 수많은 문제들은 이미 해결이 되었고 지금 남은 문제는 나 뿐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기지개를 켰다.

   

   시간이 시간이니 괜히 돌아가자고 난리쳐봐야 상대를 더 곤란하게 할 뿐이야.

   

   그냥 오늘 하루는 마음 편하게 쉬자. 얼마 전에 죽어라고 고생하다 왔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마음을 정리한 나는 로그 기능을 켜서 내게 날아든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렇게 많은 신들이 내게 관심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변태 까마귀에. 무예의 신에. 자연의 신에. 역사와 기록의 신까지.

   

   와아. 저 녀석들한테서 하나씩 뜯어낼 수 있는 거야?

   

   내 영웅담에 한 발 걸치고 싶으면 원하는 거 내놓으라고 갑질을 할 수 있는 거야?!

   

   캬! 미쳤다!

   

   주신의 사도가 되어서 고생을 한 보람이 있어!

   

   이게 모든 신들의 중심이 되는 위대한 주신의 위엄!…

   

   [당신에게 관심을 보인 신 중 하나를 택해 주십시오.]

   

   …에이.

   

   뭐야. 하나야?

   

   이 중에서 하나 고르는 거야?

   

   정말 짜게 식네. 위대한 주신이라는 호칭이 붙으려면 자기 부하들한테 갑질 좀 하라고.

   

   내가 아끼는 애가 있는데 얘한테 좋은 거 주라면서 압박을 하란 말야.

   

   여태까지 내가 해온 게 얼만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혀를 쯧쯧 차며 팔짱을 낀 나는 다시금 신들의 목록을 눈에 담았다.

   

   고민이 됐다. 저 중에서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건가.

   

   뷔페를 차려 놓고 그 안에서 하나만 고르라고 말하다니! 너무하잖아!

   

   이럴 거면 네가 선택해서 그냥 하나를 내놓던가!

   

   왜 나보고 포기를 하게 만드냐고!

   

   으으음.

   

   일단 변태 까마귀는 제외하자.

   

   이 녀석의 권능은 유용한 게 많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애매해.

   

   자연의 신도 마찬가지야.

   

   그가 지닌 권능은 좋은 게 많지만 그 대부분을 내 신성마법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까.

   

   굳이 받을 이유가 없어. 그러니까 굳이 고르라면 무예의 신이나 역사와 기록의 신 쪽인데.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을 하던 나는 두 신들의 성향을 떠올렸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더 많은 것을 뜯어먹을 수 있을까.

   

   무예의 신 쪽은 실력 있는 자가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원시원하게 내 줘.

   

   많은 이들이 모시는 신인만큼 그 권능이 크기도 해서 많은 도움을 바랄 수 있지.

   

   그에 반해 역사와 기록의 신은 무척이나 까탈스러워.

   

   전형적으로 성격이 더러운 학자 타입.

   

   이 둘을 비교해 본다면 무예의 신 쪽을 택하는 게 정상적인 생각이겠지만.

   

   영웅담.

   

   영웅담이라.

   

   팔을 툭툭 두드리던 나는 히죽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잘만 하면 호구 하나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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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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