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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6

    <446 – 삼대거악의 협력자>

     

    제국의 바람은 북풍의 한설보다 삭막하다.

    난민의 목숨은 악신의 신물을 얻을 제물로 삼고, 제물을 인도할 대리인은 악신의 주구로 몰아세워 죽일 흉계를 꾸민다.

     

    용사의 행로는 제국의 바람보다 교활하다.

    흉계를 깨닫자마자 대량의 재화를 풀어 시장을 혼란시키고 난민들을 제물이 아닌 반란의 씨앗으로 탈바꿈시키며 더 큰 혼란 속에 이득을 취한다.

     

    혁명가의 봉기는 흐르는 세월보다 덧없다.

    그들의 목숨과 바꾸어 탄생한 악신의 신물은 용사의 수중에 들어갔고, 혁명을 부르짖은 이들은 악신의 산제물 대신 혁명의 산제물이 되었다.

     

    제국은 식량난에 입을 줄였다.

    용사는 악신의 신물을 얻었다.

    혁명가는 수많은 희생에 힘입어 지지층을 양산했다.

     

    “오직 민중만이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 이번 2학기 내내 너희가 들었던 <전대용사와 세계의 거악들>의 제 1장, 혁명가가 일으킨 사건이 늘 그렇듯이.”

     

    단추를 채우면 터질 것처럼 탄탄한 근육 탓에 풀어헤친 와이셔츠를 걸친 디스트로이어 교수.

    태닝만 하면 현역 금태양으로 여자를 후리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외모임에도 이슈타르는 교수에게서 경박하다는 인상을 감히 떠올릴 수 없었다.

     

    삭막함만이 남은 두 눈.

    과거의 참사를 논하는 입.

    심지어 손에 들린 것은 조의를 표하는 헌화.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경시할 수 있겠어.’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 이슈타르도 분위기에 압도당하고 있는데 헤스티아나 오크노디라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얌전히 경청하는 모습들을 보며 이슈타르는 분명 자기만 압도된 것이 아닐 거라고 여겼다.

     

    “오늘은 혁명가의 장의 마지막 이야기다. 그가 일으킨 수많은 혁명 중에서도 최초의 혁명이 <파란딱지의 난>이었다면 가장 거대하고 참혹했던 혁명은 <퍼플카니발>이었지.”

     

    퍼플카니발은 12년 전에 일어난 파란딱지의 난보다는 뒤에 일어난 사건으로, 시기상으로는 불과 2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슈타르가 막 현역용사로 활동하던 도중에 일어난 대사건이지만 초보용사인 그녀가 개입하기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사건.

    그녀에게 기프트 아카데미에 입학할 필요성을 느끼게 만든 계기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 내용은 지난주 강의에서 설명했으니 한 주 사이에 잊지는 않았겠지. 생략하겠다.”

     

    순간, 어디선가 마나파장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슈타르와 디스트로이어가 거의 동시에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시선만 향한 이슈타르와 다르게 디스트로이어는 물리력을 동반했다.

     

    <이중경계 정형술식>

    <제 1형 – 감지하는 파동의 경계>

     

    <이중경계 변형술식>

    <트리거 개방>

    <제 1형 – 급살하는 격류의 경계>

     

    이슈타르는 기가 질렸다.

    살아있는 사람이 범위 안에 있었다면 장기가 짓눌려 피를 토하며 쓰러질 격한 진동이다.

    허공이나 바닥에 피가 쏟아지거나 발자국이 새겨지는 일은 없었지만, 실제로 누군가 저 안에 있었으면 곤죽이 되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누군가의 암습을 당하는 일이 잦았던 거야. 그러니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일말의 의심만으로도 저런 흉수를 펼칠 수 있는 거겠지.’

     

    전직용사 디스트로이어에게 직업병이나 다름없는 과민반응을 심어준 계기 중 하나는 지금 거론되는 삼대거악의 일축, 혁명가임이 틀림없다.

     

    “퍼플카니발의 성공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혁명가의 세력은 암중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파란딱지 이래로 혁명가가 제국을 뒤흔들 방법에 눈을 뜬 결정적인 사건이기도 했지.”

     

    아직도 잠입이 경계되는지 의뭉스러운 말을 하며 몇 번이고 경계를 흔들어대던 디스트로이어 교수.

    겨우 확인을 끝마쳤는지 복습 아닌 복습을 끝마친 그가 화제를 돌렸다.

     

    “달리 말하자면 퍼플카니발은 절반의 실패이기도 했다. 제국의 경제를 파탄 내어 각 지방으로 고위행정관과 기사단의 파견을 유도하고 각개섬멸 한다. 유도는 성공했으나 섬멸에는 실패했으니. 혁명가는 징검다리의 필요성을 깨달았지.”

    “무력을 얻으려고 했겠군요.”

    “정답이다. 그리고 꽃은 먹이가 아니다. 은근슬쩍 꽃잎을 뜯어먹으려고 하지 마라, 오크노디.”

    “하잇!”

    “……?”

     

    오랑캐 같은 녀석.

    저건 또 무슨 기괴한 외침이람?

    눈살을 찌푸린 이슈타르와 달리, 오크노디의 기행이 익숙해졌는지 디스트로이어 교수는 그녀가 먹으려던 꽃병 속의 꽃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 꽃의 이름은 튤립. 마계에서 넘어와 지상에 정착한 지옥의 꽃이다.”

     

    이슈타르뿐만 아니라 헤스티아의 눈마저 커졌다.

     

    “물론 너희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 불과 1년 전에 일어난 대사건이니.”

     

    12년 전의 파란딱지의 난.

    2년 전의 퍼플카니발.

    그 뒤를 잇는 대참사가 바로 1년 전의 대사건.

     

    “<튤립파동>. 이것이 오늘의 중간고사 시험주제이자 너희에게 들려줄 혁명가의 마지막 이야기다.”

    “선배님. 그 사건은 이미 사건규명이 모두 끝나지 않았나요? 튤립의 급격한 시세폭등을 노린 지역농민들의 튤립장사로 곡식소출량이 급락하고 인위적인 대기근이 찾아왔던 사건이잖아요.”

    “하지만 아무도 그 모든 사건의 시작점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지.”

     

    디스트로이어 교수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습적으로 문제를 내었다.

     

    “퀴즈다. 튤립파동에 사용된 것은 희귀한 색상의 튤립. 그 튤립의 품종을 혁명군에 판매한 최초의 협력자가 협력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지?”

     

    그런 사소한 일,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애초에 알 필요도 없었다.

    용사가 하는 일은 벌어진 사건을 수습하는 것.

    원인 따위 파악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슈타르는 그렇게 믿고 살아왔지만 디스트로이어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처럼 대답을 강요했다.

     

    “돈을 위해서겠죠. 혁명군이 충분한 대가를 약속했을 테니까.”

    “10점이다.“

    “또 백점 만점인가요?”

    “알고는 있군.”

    “…”

     

    처음 강의를 들었을 때에서 조금도 나아지질 못했어.

    분해하는 이슈타르의 뒤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헤스티아가 손을 들었다.

     

    “용병들에게 척살의뢰가 들어오는 고등급 표적은 모두 자신만의 세력권을 만들려고 한 거물들이었습니다. 그 사건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5점.”

     

    돈과 권력, 정답의 일부일 수는 있어도 그 비중은 크지 않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난한 농민이 돈도 권력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해서 혁명군에게 협력했단 말인가.

     

    ‘설마… 정말로 혁명군을 믿고 지지해서?’

     

    이슈타르의 얼굴에 스친 깨달음을 오크노디가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답안지를 보고 채점하는 것처럼.

     

    “히히. 저랑 같은 생각 하셨구나.”

    “너…!”

    “정답, 혁명군을 진심으로 지지해서!”

     

    오늘도 오크노디에게 한 방 먹었다며 분노에 얼굴이 뻘개진 이슈타르.

    그러나 디스트로이어 교수의 대답은 오늘도 두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50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어렵다.

    동방의 옛 격언, 인심난측의 사자성어가 이토록 뼈저리게 사무칠수가 없었다.

    대체 일개 농민의 마음이 왜 이리 복잡하단 말인가!

     

    “너희처럼 앞만 보고 정진하는 녀석들은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나 역시 처음 들었을 때에는 두 귀를 의심했으니.”

    “내일이 아닌 오늘만을 보며 근근이 살아가는 자들은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기에 변화를 꿈꾸지 않고 하루하루에 제 모든 것을 쏟아낸다.”

    “농부들의 오늘은 씨앗을 심고 곡물을 거두는 시절뿐이지. 하루살이가 일년살이가 되었을 뿐, 본질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한 농부가 달라졌다.

     

    “혁명가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랑?!”

     

    황당해하는 이슈타르와 달리, 오크노디의 눈이 처음 먹는 음식을 발견한 것처럼 반짝였다.

     

    “사랑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아보이는 오크노디.

    정말로 잿밥도 먹을 수 있는 아이의 관심에 디스트로이어가 못 말리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괜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면 좋겠군.”

     

    결국 그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혁명가는 존재 자체가 금패급 위험도를 지닌 삼대거악의 일원. 특히나 그를 추종하는 이들의 사상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혁명의 불씨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

    “그래서 니알라토텝과의 10년 용사행을 마친 뒤, 5년에 걸친 단독여정을 나서는 과정에서 혁명가의 대의를 따른 최초협력자들도 찾아 나섰지.”

    “다른 이들은 몰라도 가장 처음 혁명군에 합류한 이들만큼은 혁명가 본인의 의지와 언어로 설득했을 테니까. 그 방식을 파악할 수만 있다면 다음 협력자가 탄생하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그가 도적길드를 동원해가며 찾아낸 최초협력자 중 한 사람.

     

    -마계종 이색튤립을 지상에 정착시킨 장본인이자 한때 제국교수로 재직했던 생산학부 교수 하베스트의 딸. 혁명가와 손을 잡은 최초협력자. 맞는가?

    -10점이네요. 100점 만점에.

    -…사람을 잘못 찾아왔다는 건가?

    -혁명가와 사랑에 빠진, 그리고 혁명가에게 버림받은 여인. 당신이 찾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거든요.

     

    디스트로이어의 눈이 꽃병에 꽂힌 노란 튤립에 고정된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내일을 바라보는 용사도, 오늘만 살아가는 하루살이도 아닌 어제를 그릴 뿐인 실패자의 눈이었다.

     

    “그러니 명심해라.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를. 그러지 않으면 장차 삼대거악이 암약할 세상에서 너희가 설 자리는 사라지게 될 거다.”

     

    이슈타르는 그 말이 꼭 자신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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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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