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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6

    -네, 저예요.

    리브를 닮은 곰인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잠시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루크는 뒤늦게 그 인형의 목에 걸린 마석 목걸이를 보고 그 의미를 깨닫고는 목소리를 흘렸다.

    “아.”

    자신이 꺼낸 이름과 그 의미는 조금 달랐지만.

    과연, 레니에는 레니에였다.

    ‘인공지능 레니에였나.’

    루크는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을 하며 팔목으로 눈가를 가렸다.

    그 허탈한 듯한 모습에 ‘레니에’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악몽이라도 꾸고 있었던 거에요? 뭐라고 엄청 중얼거리시던데.

    “아……. 아냐, 악몽은 아니었어.”

    그래.

    오히려, 기분 좋은 꿈이었지.

    그러자 ‘레니에’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음, 그럼 다시 주무시겠어요? 어쩌면 이어서 꾸실 수 있을지도 몰라요.

    루크는 잠시 눈을 끔뻑거리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됐네, 지금 일어나지.”

    그런 개꿈은, 다시 꾼다 한들 좋을 것이 전혀 없으니까.

    미련만 더욱 심해지리라.

    ‘세수라도 해야겠군.’

    정신을 차리는 데엔 씻는 게 제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하는 루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레니에는 그 누구도 볼 수 없을 미소를 지었다.

    루크는 양치를 하다가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머리카락들을 뒤로 넘기며 중얼거렸다.

      

    “꿈, 인가…….”

    대체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성장한 레니에, 이상한 몸, 정체불명의 서적…….

    조금만 생각하면 꿈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고로 무장한 마법사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능력 역시 굉장히 뛰어나다.

    그러니까, 꿈 속에서도 꿈이라는 것을 자각할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뭐, 그건 ‘꿈에 레니에가 나와서’라는 게 뻔하지.

    루크는 생각했다.

    ‘꿈이라는 건 종종 무언가를 은유하는 법이지만…….’

    모든 꿈이 무언가를 은유하리라는 법은 없다.

    현대 마법이론으로는, 현실에서 벌어진 기억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가끔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게 되는 정돈되지 않은 기억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니까.

    아마도, 인공지능인 ‘레니에’가 완성된 것이 너무나도 기뻤기 때문에 그런 요상한 꿈을 꾸게 된 것일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물론 레니에와 다시 만나게 되는 그런 미래를 루크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미래가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었다.

    여신이 온전히 부활하게 되면 그 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기에.

    그나마 확실한 것은, 절대 자신에게 긍정적인 결과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문명의 멸망이든, 자신이라는 존재의 소멸이든…….

    ‘그래, 오랜만에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만족하자.’

    비록 꿈 속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양치질의 거품을 뱉어낼 때였다.

    -똑똑.

    -루크님! 혹시, 오늘 외출도 하시나요?

    목에 보석 목걸이를 두른 곰인형이 물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문을 두드린 것이 인형이고, 목소리를 낸 것은 루크의 컴퓨터 쪽이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레니에’.

    아린세이아를 이용해 만들어낸 인공지능.

    어쩌면 전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지성을 지녔을지도 모르는 존재의 이름이었다.

    아무래도 제어권을 탈취해 새로 대량으로 구매했던 인형을 마치 자신의 손발처럼 다루고 있는 모양인데…….

    뭐, ‘레니에’ 자체는 육신이 없으니 그 몸을 빌리는 발상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너무 손쉽게 그 제어권을 탈취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나름대로 해킹의 위험성을 생각해 보안대책에 꽤나 공을 들였는데 말이지.

    그 압도적인 성능은 충분히 두려워할만한 것이다.

    그러고보니, 어제는 별 생각 없이 대단한 성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저택의 제어권이 그녀가 깨어난 지 몇시간도 채 되지 않아 탈취되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레니에’가 마음만 먹으면 전 대륙의 네트워크 시스템을 장악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시간만 주어진다면 대부분 해킹할 수 있다고 자부하니,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성능일거라 짐작되는 레니에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나는 대체 뭘 만들어낸 걸까.’

    만들었다고 해야 할지, 만들어졌다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레니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 지 루크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부분.

    그러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시가르마타, 또는 이전 시대의 전쟁이 낳은 괴물, ‘니드호그’의 위협을 대비해야 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위협을 인류의 문명에 풀어버린 것은 아닐까?

    ‘부디 그게 아니기를…….’

    그 때가 되면, 위급시 심어놓은 ‘킬코드’만큼은 제대로 작동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루크는 양치 거품을 뱉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음, 그래. 오늘은 가볼 곳이 있다.”

    루크가 오늘 가려고 하는 곳은 다름아닌 ‘라함의 집’.

    자신이 과거 멋모르고 신성력을 다루었을 무렵, 그 신성력에 노출되어 신앙심이 생겨버린 남성이 만든 일종의 신전이었다.

    비록 신전보다는 보육시설에 더 가까운 형태이기는 했지만, 원래 옛날에는 신전이라는 게 보육원의 역할도 겸하는 곳이었으니.

    최근에는 그에게 계시를 통해 신성력을 다시 회수했지만, 그 과정이 결코 깔끔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루아 에리스트의 말로는 크게 바뀐 것은 없다고 듣기는 했다마는, 그게 그에게 있어서 어떤 영향을 주었고, 그의 시설은 또 어떤 영향을 받았는 지, 루크는 이번에야말로 그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현장을 전해듣는 것과, 직접 확인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

    루크는 그런 사정을 레니에에게 설명하였다.

    -오호. 그렇군요! 여신의 신도라……!

    레니에는 굉장히 흥미롭다는 듯이 중얼거리다, 잠시 후 밝은 목소리로 안내하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그렇다면 오늘의 기상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날씨는 맑음! 현재 기온은 영상 1도, 하지만 오늘의 예상 최저기온은 영하 12도로 큰 일교차가 예상됩니다!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는 오후에 눈이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해요! 다만, 오후에는 영상의 날씨인 만큼,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릴 가능성도 충분해요! 필요하다면 우산을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렇군.”

    우산이라, 일단은 챙겨 보도록 할까.

    이런 것을 보면 왠지 자신의 곁에서 일정을 조율해 주는 비서가 하나 생긴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잠시 후, 레니에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루크님이 말씀하신 ‘라함의 집’은 몇 분 전, 버스와 승용차간의 빙판길 사고가 있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건 추천하지 않아요. 택시를 이용하거나, 차라리 걸어서 이동하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음, 그래?”

    오호, 교통상황까지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건가?

    고작 몇 분 전에 벌어진 교통사고라면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많지는 않을 텐데…….

    ‘어쩌면, 벌써…….’

    우려했던 상황이 이미 벌어진 건 아닌가 살짝은 걱정이 된다.

    레니에는 루크의 반응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고보니 외출 준비를 한다고 하시니 하는 말인데요, 루크님! 루크님이 갖고계신 옷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응?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냐?”

    혹시 옷장에 있는 옷을 못 본걸까?

    옷장은 분명히 잘 채워져 있을 텐데.

    루크가 그런 의문을 표하자, 레니에가 대답했다.

    – 루크님의 코디네이팅을 위해 옷장을 확인해 본 결과, 거의 동일한 디자인의 옷이 5벌씩 세트로 있는 것을 확인했어요! 종류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한 디자인이 마음에 드시는 건 알겠지만, 조금 너무하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옷차림은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거라구요!

    루크는 원래부터 어느 것 하나에 꽂히면 다른 건 모조리 제쳐두고 그것 하나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었던 만큼, 패션 센스에도 그런 성격은 동일하게 적용되는 편이었다.

    같은 색상의 블라우스와, 같은 색상의 치마, 같은 색상의 구두와, 같은 색상의 스타킹을 계속해서 돌려가며 입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다보니 웬만한 계기가 없는 한, 루크는 그 틀 내에서 변화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몸이 자라 이전에 입던 옷을 더 이상 입을 수 없게 되었다는 핑계가 없었다면, 루크는 아직도 이전에 입던 그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겠지.

    사실, 지금이라고 그다지 크게 변한 건 없지만 말이다.

    저번에 겨울 옷이랍시고 예르나와 함께 산 옷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지금도 루크의 외출복은 검정과 흰색 외에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천편일륜적인 색을 자랑하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레니에의 지적이 루크에게는 그저 잔소리로만 다가왔다.

    “나도 안다. 그래서 단정하게 입는 것 아니냐.”

    옷이라는 게, 입는 사람이 맘에 들면 항상 그것만 입어도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검은 치마와 블라우스, 흰색 스타킹의 조합이 그렇게까지 격식이 맞지 않는 옷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레니에의 주장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안돼요! 지금 루크님의 옷은 절대적인 수가 빈약할 뿐 아니라, 밖에서 입을 만한 캐주얼한 복장도 너무 부족합니다! 찾아보면 루크님의 취향에 맞을 만한 다른 옷도 아주 많다고요! 외출 경로에 옷가게를 넣죠!

    “……음. 옷이 단정하기만 하면 되었지 뭘 또…….”

    -가죠!!

    레니에는 굉장히 단호한 모양이었다.

    “……그래.”

    그에 루크는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괜히 이런 별것도 아닌 일로 감정을 상하게 했다가 레니에가 변절이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

    이제보니 유능한 비서가 아니라, 떼쟁이가 하나 더 달라붙은 모양이다.

    …그래도 뭐, 이런 걸 보면 아직까지는 그녀가 자신을 배신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려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Ai비서 레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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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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