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447

       

       혈존의 혈탄이 사방으로 쏘아졌다. 

       

       나 역시 공격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었던지라 강기를 불어넣은 대검으로 나를 향해 쏘아지는 혈탄들을 상쇄시켰다.

       

       우우웅!!

       

       혈탄을 받아낸 대검이 파르르 흔들릴 정도의 위력. 

       

       “큭!”

       

       “으윽!!”

       

       환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어지간한 강기 공격보다 윗길로 쳐야 할 혈탄의 공세에 노출된 무인들의 입에서 절로 곡소리가 튀어나왔다. 

       

       혈존이 멀쩡한 오른 손을 휘두르자 혈존의 주위를 맴돌던 피들이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내버려 둔다면 곧바로 2파를 쏘아내겠지. 

       

       “공격함세.”

       

       나만 그렇게 판단한 것이 아닌지 운종 선사님이 전언을 남긴 채 곧바로 쏘아져 들어갔다. 

       

       파아앗!

       

       순식간에 혈존과의 거리를 좁히는 운종 선사님. 

       

       샤아악!

       

       뱀이 흉성을 터트리며 꼬리로 바닥을 쓸며 운종 선사님을 공격해 들어갔다.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재빠른 꼬리 휩쓸기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현경 고수에게 통용될 공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뱀의 꼬리를 발판삼아 순식간에 머리를 향해 쏘아진다. 

       

       이어서 펼쳐지는 사일검법의 일수초현. 

       

       여일예와 혁기린을 통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사일검법이었지만 역시 현경의 고수라는 것일까. 

       

       단단하디 단단한 암반층을 한참이나 내려왔음을 잘 알고 있음에도 단번에 지상까지 꿰뚫고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기세가 느껴졌다. 

       

       혈존 역시 그런 운종 선사님의 공세에 맞추어 손을 흔들었다. 

       

       콰르르르.

       

       방울방울 흩어지며 혈탄의 형상을 보이던 핏물이 다시 한번 변화했다. 

       

       여태 혈교의 혈인들이 혈술을 펼치는 것은 적지 않게 봐 왔지만 혈존의 혈술은 그야말로 격이 달랐다. 

       

       혈존이 부리는 피는 마치 경과 같이 자유자재의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그 피에 담긴 힘은 강기 못지 않았으니까.

       

       혈존이 부리는 피는 물질을 지닌 피이되 마치 기로 이루어진 경과 같이 움직였으니 말 그대로 혈기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혈기가 뭉쳐 운종 선사님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 장막을 앞에 둔 운종 선사님의 대응 역시 간단했다. 

       

       “하압!”

       

       퍼어엉!!

       

       검끝에서 발출된 강환과 피의 장막이 충돌하며 사방으로 혈기가 비산했다. 혈존이 재빨리 손을 놀려 흩어진 혈기를 모아 재차 압박해 들어가려 했지만 운종 선사님의 신형이 그 공간을 빠져나오는 것이 조금 빨랐다. 

       

       쿠우우웅!!

       

       운종 선사님의 검과 혈존의 혈조가 충돌하며 묵직한 파공음이 흘러나왔다. 

       

       샤아아악!!

       

       거대한 흑사는 제 머리 위에 운종 선사님이 내려앉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흉성을 터트리며 몸을 꿈틀거렸지만 운종 선사님을 떨어트리 위해 온 몸을 비틀 수는 없었다. 

       

       나와 일행들이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었다. 

       

       쉬이익!

       

       우리들을 위협으로 판단했는지 녀석은 거대한 주둥이를 벌리며 몸을 수축시켰다. 

       

       공격의 징조에 우리는 망설임없이 진형을 빙성의 형으로 변화했다. 

       

       “차하합!”

       

       츠즈즈즈즈!!

       

       거대한 진법의 기운이 흑묘의 몸을 휘감는 것과 동시에 흑사의 주둥이가 순식간에 다가왔다. 정면으로 공격을 받아내는 무리. 반은 피하고 반은 흘리겠다는 흑묘의 의사에 따라 우리 역시 기민하게 몸을 놀렸다. 

       

       쿠구구궁!!

       

       타점을 흘리며 뱀의 옆 얼굴을 노려 공격을 빗겨낸 흑묘. 흑사 역시 전력을 다한 공격은 아니었는지 재빠르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머리를 빼는 모습이었다. 

       

       “치잇! 교활하기는!”

       

       아무래도 뒤에서 한 방 먹일 준비를 하고 있던 비풍산해대를 의식해서겠지. 

       

       나는 뱀의 머리를 주시했다.

       

       흑사가 제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흑사의 머리 위에 있는 두 사람은 그런 흑사에 움직임 같은 건 전혀 문제될 것 없다는 듯이 흑사의 머리에 발을 붙인 채 수 교환을 벌이고 있었다. 

       

       혈존은 계속해서 피를 부리며 사방팔방에서 운종 선사님을 공격하고 있었고 운종 선사님은 사방에서 좁혀오는 피를 베어내며 혈존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는 상황. 

       

       카각!

       

       혈존의 팔과 다리를 대체하는, 피가 휘감긴 의족은 분명 범상치 않아 보였지만 그렇다고 한들 현경의 경지에 이른 무인의 육체에 비할 수는 없는 모양. 의수에서 피어오른 혈기는 운종 선사님의 검에 피어오른 강기와 충돌할 때마다 비산했다.

        

       멀쩡한 오른 손의 혈조는 운종 선사님의 공격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었지만, 오른 쪽의 손으로만 주변의 혈기를 통제할 수 있는 모양인지 오른 손은 허공에 휘둘러지기도 바쁜 모양새였다. 

       

       사방팔방에서 쏘아지고 조여지고 압박해 들어오는 혈기에 운종 선사님 역시 사방팔방으로 검을 휘두르며 혈기를 막아내기에 바빠 강력한 공세를 취하고 있지는 못하는 상황. 

       

       촤악!

       

       그러나 운종 선사님의 검강에 베인 혈기들은 그 힘을 잃고 한줌 핏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서로 치명적인 타격은 가하지 못하고 있으나 혈존이 부리는 혈기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으니 어느 쪽이 우위냐를 따진다면 운종 선사님 쪽이었다. 

       

       그렇게 운종 선사님이 혈존을 조금씩 제압해 나가고 있을 때 우리라고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하압!!”

       

       콰르르르!!

       

       흑묘가 내뻗은 쌍장을 타고 구음기가 흑사에게 뻗어나갔다.

       

       “사풍연쇄! 출!”

       

       구음기를 맞아 비늘에 성에가 낀 흑사가 흠칫하는 사이에 비풍산해진의 공격이 흑사의 몸에 타격을 가했다. 비풍산해지는 본래 25명이서 펼치는 진이라고 들었지만 혈교의 습격에 타격을 입고 그 규모를 줄여 재건해 열 여덟 명으로 줄어들었다고 들었다. 

       

       급조해 재건한 진법인지라 아무래도 기운의 운용이 불안한 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공격의 위력은 충분했다. 

       

       진법의 기운을 받은 여섯 명의 공격수가 출동해 여섯 개의 기운을 일점에 쏟아 붓는 일반적인 합격방진의 공격술이 펼쳐졌다. 

       

       까가가강!!

       

       단주인 악소풍의 인도에 따라 차례차례 퍼부어진 여섯 명의 공격.

       

       샤아아!

       

       그 공격에 제법 타격을 받았는지 흑사가 날뛰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거대한 덩치를 앞세워 질주를 시작한 흑사. 몸통박치기랄지 달리기라 해야 할지 애매하긴 했지만 결국 빠르게 움직이는 흑사의 몸뚱이에 치이면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 만큼은 확실했다. 

       

       “피해!”

       

       공격을 성공해 화색이 되었던 비풍산해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이쪽을 주시하던 무림맹의 무인들도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흑사가 공동을 마구 헤집으며 돌아다니자 순식간에 어수선해진 무림맹의 진형. 

       

       파바바박!

       

       그 혼란한 틈바구니 속에서 혈존의 혈탄까지 쏘아졌다. 

       

       오성진 쪽으로도 혈탄 몇 개가 날아왔지만, 대부분의 혈탄은 비풍산해진쪽을 노리고 있었다.

       

       흑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진법대를 공격해야 했고, 기민한 변화를 취할 수 있는 오성진보다는 비풍산해진을 공격하는 편이 효율적이었으니까. 

       

       “어딜!”

       

       순식간에 단검을 흩뿌리는 풍영대주와 화경 고수들이 쏘아낸 이기어검이 혈탄을 요격했지만 혼란스러운 와중 제거할 수 있는 혈탄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윽!”

       

       “컥!”

       

       비풍산해진을 유지하던 악가의 인원들 중 한 사람이 쓰러지고 몇 사람은 내상을 입고 말았다. 

       

       “여유가 지나치군!”

       

       노성을 터트린 운종 선사님이 곧바로 검을 찔러 들어갔고 혈존은 혈기를 아낌없이 퍼부어 장막을 형성해 운종 선사님의 공격에서 몸을 지켜냈다. 

       

       퍼어엉!!

       

       폭발하듯 비산하는 핏물. 혈기의 장막에 선사님의 검이 힘을 잃고 멈추었지만 운종 선사님의 노림수는 그에서 그치지 않았다. 

       

       콰아아아!!

       

       자유로운 운종 선사님의 왼손에서 장법이 펼쳐졌다. 검수가 펼치는 장법이라니 어쩐지 위력과 깊이가 부족할 것 같지만 구파일방이라는 유서 깊은 문파에서 오래 단련해 온 고수가 펼치는 수가 앝을 리가 있을까. 

       

       분명 사일검법에 비하면 손색이 있지만 충분한 위력을 갖춘 장법이 허공을 격하며 혈존을 향해 날아갔다.

       

       장법을 확인한 혈존이 안색을 굳히며 자세를 낮추고 의수와 혈기로 이루어진 왼손을 뻗어 보았지만.

       

       퍼어엉!

       

       의수와 같이 의족 역시 현경의 움직임을 보조하기에는 무리였는지 다소 맥없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말았다. 

       

       운종 선사님은  뱀의 머리에서 떨어져 허공을 유영하고 있는 혈존을 검으로 겨냥하며 자세를 낮추었다. 

       

       마치, 시위를 당기며 목표물을 조준하는 사수가 연상되는 모습. 

       

       “이번에는 영물의 머리가 아닌 지면에서 실력을 보이게나!”

       

       흑사의 머리에서부터 천지를 꿰뚫을 기세의 화살이 쏘아진다. 

       

       “건방지군.”

       

       혈존의 중얼거림과 함께 혈기가 순식간에 변화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의수와 의족을 휘감고 있는 혈기까지 모두 오른 손으로 집결한다. 나선을 그리며 뭉친 세 가닥의 혈조가 그 어느 때보다 흉맹한 기세로 휘둘러진다. 

       

       허공을 유영하고 있기에 오른 다리를 유지할 필요가 없고, 운종 선사님의 견제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기에 왼 팔을 유지할 필요도 없으며, 무림맹 무인들을 공격하고 운종 선사님을 견제할 필요가 없기에 펼칠 수 있는 전심전력.

       

       이게 혈존의 본 실력일까. 

       

       오른 손의 혈조는 부리던 혈술과는 혈기의 밀도는 물론이거니와 혈조의 형상 자체가 격이 달랐다. 

       

       혈술에 대해서는 조예가 없는 나였지만 그런 나에게조차 혈조를 이루는 핏물 한 방울까지도 혈술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혈존의 혈조와 운종 선사님의 검극이 맞닫는 순간. 

        

       무형의 충격파가 일렁이는가 싶더니 막대한 기의 파장이 공동을 휩쓸었다. 

       

       “큭!”

       

       “으윽!”

       

       그 여파를 뒤집어 쓰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일 정도로 살벌한 파장. 무림맹 무인들이 신음성을 터트리고 저 거대한 흑사마저도 몸을 흠칫할 정도였다.

       

       이게 현경과 현경의 충돌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충돌의 반작용으로 뒤로 튕겨져 나온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공동의 벽면에 착지한 두 사람 역시 충돌의 여파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혈존은 몸을 감싸고 있던 혈기의 기운 대부분 사용해 버린 것인지 홍옥처럼 밝은 빛을 띄고 있던 피는 어느 새 시커먼 색으로 변해 바닥으로 흘려 내리고 있었으며 운종 선사님이 쥔 검은 끝이 뭉개져 있었다. 

       

       한 순간의 소강 상태. 

       

       공동 전체에 퍼져 있던 무림맹 무인들이 긴장된 낯빛으로 벽에 매달린 혈존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그런 무인들을 힐끗 바라본 혈존은 입구 쪽으로 신형을 날리며 손을 뻗었다. 

       

       와지끈!

       

       어딘가에서 창문인지 문인지 부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십자로에 위치한 건물들 사이에 혈기라도 숨겨 놓았던 것일까. 

       

       무림맹의 고수들 역시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을 떠올렸는지 황급하게 땅을 박차며 외쳤다.

       

       “숨겨놓은 혈기가 있는 것인가!”

       

       “막아야 하오!”

       

       그 모습을 본 화경 고수들이 다급하게 혈존의 뒤를 쫓았고 운종 선사님 역시 벽을 박차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자네들은 영물을 쓰러트리게!”

       

       그 말 만을 남기고 혈존을 향해 일직선으로 쏘아지는 운종 선사님. 

       

       나는 운종 선사님이 선으로 화해 날아가는 기척을 느끼며 시선을 흑사에게로 되돌렸다. 

       

       비풍산해진은 부산하게 진을 재정비하는 상황이었으니 일단 우리가 흑사의 공격을 우선적으로 받아내야 할 터. 

       

       흑묘를 선두로 흑사와 대치하는 오성진. 

       

       샤아아아아!!

       

       위협성을 토하며 머리를 높게 치켜 든 흑사는. 

       

       공격 대신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는 행동을 취했다. 

       

       그리고 그 행동을 본 순간 나는 불길함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치명적인 빈틈으로 이어질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지금 내 본능은 혈존의 행동을 눈으로 쫓는 것이 옳다고 외치고 있었다. 

       

       혈존은 공동을 빠져나가 십자로에 접어들고 있었고 그 뒤를 따라 운종 선사님과 화경 고수 다섯이 따라 붙은 상황이었다. 정말로 요새에 피를 숨겨 놓았는지 사방에서 혈기가 날아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내 머릿속에서는 그저 한 가지 화두만이 떠올랐다. 

       

       어째서?

       

       어째서 혈존은 저런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일까.

       

       현 상황은 혈존과 흑사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혈존에게도 아예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내가 상대하고 있는 흑사는 뛰어난 영물이었으니까.

       

       일반적인 영물보다도 한수 위의 전투력을 보여 주었던 검치호. 지금 상대하는 흑사는 그런 검치호보다도 까다로운 상대였다. 지닌 힘과 덩치고 한 단계 윗길이었지만 무엇보다 영리함이 결여되어 있던 검치호와 달리 이 흑사는 신중함을 갖추고 있었다. 

       

       흑사를 쓰러트릴 수 있는 유이한 수단인 비풍산해진과 오성진을 와해시킬 수 있다면 혈존도 충분히 승산을 엿볼 수 있었을 터였다. 

       

       혈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운종 선사님과 치열하게 수를 나누는 와중에도 비풍산해진에 혈탄을 뿌리며 공격을 가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흑사와 혈존이 혼연일체가 되어 싸워야 할 판에. 

       

       이 녀석은 몸을 사리고 있으며. 

       

       아무리 요새의 시설에 혈기가 숨겨져 있다고 한들, 혈존은 스스로 흑사와 거리를 벌리며 공동을 벗어나고 있을까. 

       

       아니 애초에.

       

       요새의 시설에 혈기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핑계 삼아 거리를 벌리는 것이 아닐까?

       

       …문득 혈존과 시선이 마주쳤다. 

       

       시선이 마주친 내 외조부, 혈존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조…!”

       

       그 모습을 보며 조심하라고 외쳐 보았지만. 

       

       그보다 일이 터지는 것이 먼저였다. 

       

       콰르르르!!

       

       콰아앙!

       

       공동의 입구 위에 올라가 있던 격문. 

        

       떨어져 격문을 이 거점에 입장했을 때 마주했던 강철 문보다 더 두터웠고, 일반적인 철로만 만들어진 문이 아닌 듯 그 광택마저 남달랐다. 통짜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나마 있는 틈이라고는 겨우 사람 머리 하나 통과할 법한 숨구멍 같은 구멍 하나 뿐. 

       

       무게는 또 어떠한가.

       

       격문이 떨어지며 일어난 진동이 이 격문의 중량을 짐작케 했다. 

       

       공동 속에서 시선을 빼앗는 두 쌍의 안광과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 덕분에 의식 속에 희미하게만 자리잡고 있던 격문이 돌연 떨어져 내린 상황. 

       

       모두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나 역시 당혹스러운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대체 왜?

       

       현재 격문으로 공간이 분리되면 이득을 보는 쪽은 우리였다. 

       

       혈존은 홀로 화경 고수들이 붙은 운종 선사님을 상대해야 했고 우리는 혈존이라는 변수 없이 두 진법대가 협력해 흑사만을 물리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도무지 혈존의 노림수를 알 수가 없는 상황.

       

       “하하하하하하하!!! 걸려 들었구나!”

        

       그러나 현 상황에 대한 의문은 곧바로 해소되었다. 

       

       혈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곳바로 화경 고수들의 당혹성이 들렸고. 

       

       슈르륵!

       

       그들의 당혹성이 끝나기 무섭게 격문에 난 구멍으로 혈존의 머리가 달린 핏물이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허억!”

       

       모두가 경악성을 터트리는 사이에 핏물이 다시 혈존의 신체로 변화했다. 

       

       “이런 사특한!”

       

       근처에 있던 화경 고수, 남궁석이 황급히 검을 찔러 넣었지만 피가 신체로 되돌아가는 와중에도 혈존은 혈기를 다루어 능숙하게 공격을 막아냈다. 다른 무림맹의 고수들 역시 정신을 차리고 혈존을 향해 공격해 들어가려 했지만 실패했다.

       

       샤아아아!!

       

       마치 지금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몸을 미끄러트리며 혈존의 곁으로 합류하는 흑사 때문이었다.

       

       흑사가 머리를 낮추며 혈존을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렸다.

       

       방금 전에 온 몸을 피로 바꾼 술법을 펼친 탓인지 혈존의 기세는 팍 줄어 있었고, 몸에 혈기를 두르기는 커녕 의수와 의족에 두른 혈기조차도 많이 흐려진 상황이었지만…더 이상 혈존의 상태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지쳐도 현경 고수는 현경 고수였고, 운종 선사님과 여섯 명의 화경 고수는 격문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자신의 우위를 확신했는지 혈존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야, 혈교의 대업을 방해하던 쥐새끼들을 처리할 수 있겠구나.”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는 법 아니겠소.”

       

       안쪽에 남아 있던 모용서가 침착하게 반박했다. 

       

       “잔재주를 부려 병력을 갈라 놓았지만 그렇다고 이 안에 남은 무림맹의 협객들이 그대를 감당하지 못할 것 같소이까?”

       

       “무량수불. 옳은 말이오. 빈도는 이 자리에 들 때부터 이미 목숨을 내 놓을 각오를 했소.”

       

       모용서와 무당파 전진 도사의 뒤를 이어 악소풍 역시 기세를 올렸다. 

       

       “내 오늘 기필코 네 목을 베어내고 가문의 묘에 향을 올리겠다!” 

       

       무림맹의 주요 고수들이 나서 조사대의 사기를 올리고 있을 때. 

       

        쿵! 쿠쿵! 쿵!!

       

       “조금만 버티시오! 이깟 격문 따위, 금방 뚫고 들어가겠소!”

       

       요란한 충돌음과 바깥의 화경 고수들이 전해주는 말까지 들려왔다. 

       

       이긴다는 막연한 목표에서 버틴다는 좀더 현실적인 목표가 제시되니 조사대의 사기 역시 확 살아나기 시작했다. 

       

       “무림맹의 협객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혈교의 주구를 처리하라!”

       

       기세를 올리며 자신을 성토하는 조사대를 바라보던 혈존. 혈존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딱 하나였다. 

       

       가소로움.

       

       혈존의 입이 달싹였다. 섬서분타의 지하에 숨어 있던 혈인이 내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한 속삼임이었다. 

       

       그 속삭임이 끝나기 무섭게 흑사의 꼬리가 움직였다. 

       

       우리 일행과 비풍산해대가 흠칫하며 앞으로 나섰지만 흑사의 꼬리가 매섭게 쏘아진 곳은 무림맹 무인들이 있는 곳도, 진법대가 있는 곳도 아니었다. 

       

       콰앙!!

       

       바로 벽면이었다. 

       

       뱀의 꼬리가 망설임없이 벽을 두들겼고 두세 번 때린 뱀의 꼬리가 곤두서고 그대로 벽면을 찔러 들어간 순간. 

       

       콰직!!

       

       뱀의 꼬리가 벽면에 박혀 들었다. 

       

       뱀의 꼬리가 벽면에 박혀든 순간 무언가가 뱀의 꼬리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주르륵.

       

       …물. 

       

       뱀의 꼬리를 타고 떨어지는 것은 분명 물이었다.

       

       “크흐흐흐흐! 어리석은 녀석들, 고작해야 네놈들을 이곳에 가두고자 이런 일을 벌였다 생각했느냐?”

       

       혈존의 웃음과 함께 뱀의 꼬리가 뽑혀나오고.

       

       콰아아아아아!!!

       

       뚫린 구멍으로 엄청난 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흥건해지는 바닥. 

       

       [하하하하! 어디 한 번 이 안에 있는 녀석들이 익사하기 전에 그 격문을 뚫어 보거라! ]

       

       흑사의 긴 혀가  웃음을 터트리는 혈존을 감쌌다. 자연스럽게 뱀의 입 안에 자리잡은 혈존.

       

       [그 사이에 나는 위에 있는 땡중들을 처리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으하하하하하!!] 

       

       흑사는 폭포처럼 물을 뱉어내는 구멍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수공에 조예가 깊은 이일지라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할 거센 물길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거대한 덩치의 영물에게는 헤엄칠 만한 수압에 불과했을까.

       

       그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린 비풍산해대가 황급히 공격해 보았지만 강한 수압이 일차적으로 공격을 방해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우리도 공격에 합류하며 뇌성을 끌어 올려 공격했다면 혹시나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물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통제할 수 없는 뇌기를 있는 대로 풀어버렸다가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알 수 없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십 장은 가뿐하게 넘어가는 흑사의 몸뚱아리는 자연스럽게 구멍으로 빨려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모두가 황망한 눈으로 뚫린 구멍만을 바라보았다. 

       

       콰아아아아아!!!

       

       운종 선사님과 화경 고수 여섯을 제외한 나머지, 무림맹 조사대. 

       

       우리들은 지하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혈교의 거점에서 수장될 위기에 처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혈존의 함정.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