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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7

   생각을 하면 할수록 역사와 기록의 신을 택하는 쪽이 훨씬 더 얻을 수 있는 게 많아.

   

   그 신이 지닌 여러 축복도 축복이지만 그 이외에 여러 부가적인 이득이 훨씬 더 많거든.

   

   역사와 기록의 신은 말 그대로 사관 같은 역할을 하는 신이다.

   

   대지에서 펼쳐지는 여러 일들을 눈에 새기고 그것을 기록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만들어진 직책이지.

   

   과거 역사와 기록의 신이 거대한 권능을 지니고 있었을 무렵에는 다른 이들이 무어라 이야기를 하건 간에 자신이 바라는 대로 세상의 많은 일들을 기록할 수 있었다.

   

   주신이 펼치는 위대한 위업부터 시작해서 신들 사이에 시시콜콜한 잡담까지도 말이다.

   

   지금 기준으로 묘사를 해보자면 허접 주신이 날 상대로 하는 여러 변태짓까지 다 기록하는 게 가능했단 거다.

   

   그렇지만 선신과 악신의 전쟁이 끝나고 양 측의 신들이 지닌 힘이 줄어듬에 따라 역사와 기록의 신에게도 한계가 생겼다.

   

   일정 이상의 힘을 축척한 이들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허락을 구해야만 하게 된 것이다.

   

   역사와 기록의 신이 평범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면 기록을 위해 다른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합의를 했을 것이다.

   

   허나 저 신은 정상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다른 방식을 택했다.

   

   자신이 기록해야 할 이들에 대한 약점을 붙잡아 협박하는 방식을 말이다.

   

   이 사실마저도 기록되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내게 협력해라.

   

   네가 저지른 흑역사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싶지 않다면 내게 기록할 권리를 넘겨라.

   

   지상의 인간이 행했다면 분명한 범죄가 될 행위였으나 상대는 법의 제한에서 벗어난 초월자였고.

   

   역사와 기록의 신에게 제재를 가해야 할 허접 주신은 침묵을 지켜버렸으니.

   

   자연스레 역사와 기록이 신이 저지르는 파행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머잖아 다시금 허접주신이 목소리를 냄에 따라 그 파행은 멈추게 되었지만 그 때까지 역사와 기록의 신이 쌓아 둔 것들은 결코 가볍지 아니했다.

   

   오죽 했으면 소울 아카데미에서 몇몇 신의 사도가 되면 역사와 기록의 신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며 이를 갈아댔을까.

   

   이러한 설정을 아는 내 입장에서 역사와 기록의 신은 상당히 매력적인 선택지다.

   

   생각해봐.

   

   앞으로도 나는 여러 신들의 관심을 받을 거야.

   

   저 작자들이 축복을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가 될 거라고. 이런 상황에서 그 신들의 약점을 내가 알게 된다면?

   

   그리고 지상에서 그 약점들을 재잘재잘 떠들 수 있다는 협박을 할 수 있다면?

   

   그러면 내 입에서 여러 험악한 말이 나오더라도 그 신들이 불만을 토로하기는커녕 굽신굽신거리며 제발 입을 다물어주세요 하고 빌게 되겠지.

   

   응! 지능 58이 생각한 계획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컴팩트한 생각이야!

   

   역시 난 소울 아카데미의 썩은물이라니까!

   

   스스로의 능력에 감탄하며 고갤 주억거리던 나는 푸른 창 앞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냈다.

   

   “좀 징그럽긴 한데. 그래도 역사 씹덕이랑 한 번 이야기 좀 해볼게요.”

   

   그리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 음.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신인데 역사 씹덕이라고 부르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저 치졸하고 성질 더러운 작자라면 이 일을 원한의 서에 담아 둘 것 같은데.

   

   다른 신들한테는 잘만 지랄해놓고 왜 이제 와서 그러냐고?

   

   그야 여태 내가 난리를 쳤던 건 내 매도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변태뿐이었다고!

   

   허접주신도! 변태까마귀도! 내가 욕지거리를 해주면 허억허억대는 녀석들이었단 말야!

   

   그렇지만 이번 상대는 아냐!

   

   신들 사이에서도 기분 나쁘단 이야기를 듣는 저 녀석은 건드리기 껄끄러운 상대라고!

   

   나는 입술을 우물거리면서 다음 푸른 창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내가 개떡같이 말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뜻은 전해졌을 테니까. 답도 돌아오겠지.

   

   그리고 그 대답이 부정적인 방향이라면.

   

   어쩌겠어.

   

   들이박아야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불러야 할 텐데 그 때마다 식은땀을 흘릴 순 없잖아?

   

   그러기 위해선 을이 아니라 갑이 되어야지.

   

   내가 지금 가진 여러 가지를 이용해서.

   

   그리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내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역사와 기록의 신이 당신의 부름에 답합니다.]

   

   드르르.

   

   메시지가 떠오르기 무섭게 내 품 안에 있던 수첩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던 나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조심스레 수첩을 꺼내어 펼쳤다.

   

   내가 알고 있는 여러 지식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던 수첩은 왠지 모르게 하얀 페이지로 바뀌어져 있었다.

   

   ‘할아버지.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마세요.’

   <너랑 함께 하며 겪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지간한 것으로 놀라겠느냐. 신경 쓰지 마라.>

   ‘…어. 정말 예상 외의 일이 펼쳐질 수도 있는데요.’

   <알겠다. 알겠어. 알겠으니 마음대로 해라.>

   ‘으음. 그럼 갈게요.’

   <가? 어딜?>

   ‘역사와 기록의 신. 간슈를 만나러요.’

   <음? 음?!>

   

   할아버지의 놀람을 무시한 채 흰 페이지에 손을 가져다대자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어 있었다.

   

   말끔한 영주 저택이 아니라 다소 난잡하고 거대한 도서관의 모습으로.

   

   낡은 책의 냄새가 가져다주는 안정감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내 옆에 멀뚱히 서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성기사다운 갑옷을 걸치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당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푸하핳. 안 놀란다더니 얼굴 좀 봐. 자기가 한 말도 못 지키는 허접 할배. 한심해.”

   “…설마 그 일이라는 게 위대한 신 중 하나를 만나러 가는 일이란 걸 어찌 상상하겠느냐.”

   “그러니까 할배가 허접하단 거에요. 낡은 꼰대라서 뇌도 딱딱하게 굳어버렸단 증거일까요?”

   “약간 본심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찔리세요? 찔리시는구나? 그렇게 쪼잔하시니까 인기가 없는 거라고요.”

   

   미간을 찌푸리는 할아버지를 보며 키득키득 웃음을 흘리고 있으려니 저 안 쪽에서 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걸음 소리의 안에는 사람에게 자연스레 위압감을 선사하는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이게 신의 위엄이라는 건가.

   

   방금 전 내가 나불거렸던 말이 떠올라서 입술을 꾹 깨물고 있으려니 할아버지가 바닥에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위대하신 선신 중 하나. 세상의 모든 걸 기억하는 자. 세계를 기록하여 더 나은 미래를 찾아내는 자. 공평하고 공정하며 지혜로우신 역사와 기록의 신. 간슈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군. 루엘.”

   

   저 멀리에서 돌아온 답을 따라 고개를 돌린 나는 어깨를 짓누르는 긴장감도 잊고 눈을 끔뻑거렸다.

   

   바닥에 쌓인 책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나와 비슷한 시선을 지닌 꼬마아이였다.

   

   햇빛을 못 받은 피부는 하얀 색이었고.

   

   약한 피부를 가리는 옷은 무척이나 길어 바닥에 끌리는 갈색의 로브였으며.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은 머리카락은 엉망이었고.

   

   사나운 눈매 아래에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짙은 기미가 묻어나 있었다.

   

   어라? 이상하다?

   

   역사와 기록의 신이 이런 모습이었나?

   

   내가 알기로는 병약하고 성질 더러운 느낌의 미남자인데 왜 성질 더러운 꼬맹이가 되어 있는 거야?

   

   할아버지가 이렇게 정중히 나오는 걸 보면 가짜는 아닌 것 같은데.

   

   내가 혼란스러워 하는 동안 할아버지와 꼬맹이는 서로 느슨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나눴다.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그 전쟁이 끝났을 때부터 재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으니까요.”

   “어찌 보면 잘 된 일이다. 그대의 영웅담을 작성하는 데에 물어볼 것이 몇 가지가 있었거든.”

   “…정말 기록이 아닌 영웅담 맞습니까?”

   “그건 그대가 어찌 협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히죽 웃음을 짓는 꼬맹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입이 근질근질해졌다.

   

   몇 마디 말만 던지면 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상대가 신이니만큼 자제를.

   

   “어이. 주신님의 사랑을 받는 오만방자한 꼬맹이. 나보고 뭐라고?”

   

   자제를…

   

   “잘 나봐야 필멸자일 뿐이라는 걸 알아야지. 그딴 헛소리나 재잘재잘.”

   

   자제…

   

   “루엘. 그대에게도 잘못은 있다. 그대라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어찌 예절을 가르치지 않는가.”

   “죄송합니다. 간슈님. 워낙 손녀 같은 아이다 보니.”

   “쯧. 자네도 나이를 먹긴 먹었구만.”

   

   아.

   

   이 새끼. 선 넘네.

   

   날 건드리는 건 그렇다 쳐도 할아버지를 건드려?

   

   내 잘못을 가지고 내리갈굼을 하려 든다고?

   

   그래도 신이랍시고 위엄을 좀 챙겨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예절을 좀 주입시켜줘야겠어.

   

   “과거의 자네였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재잘재잘 더럽게 말이 많네♡ 기분 나쁜 씹덕 꼬맹이♡”

   

   내 목소리가 흘러나옴에 따라 자연스레 할아버지와 꼬맹이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당혹으로 가득 찬 할아버지는 눈으로 날 질책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의 눈을 마주보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걱정 마세요. 이래도 괜찮을 걸 알아서 급발진 한 거니까.

   

   이 역사 씹덕이 먼저 영웅담을 쓰고 싶다고 언급한 이상 이 녀석은 절대로 나한테 강하게 나올 수 없다고요.

   

   지금 이 녀석이 지닌 권위는 할아버지 때랑 전혀 다르니까.

   

   뭣보다 이 꼬맹이랑 앞으로 이야기 할 때마다 역사씹덕이라고 불러야 할 게 뻔한데 그 때마다 이 난리를 칠 순 없잖아요?

   

   미리미리 서로 관계를 정립하고 가자고요.

   

   그게 서로한테 편하니까.

   

   내 눈에서 무언가 확신을 느낀 것일까. 할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좋았어. 할아버지가 체념했으니 내 마음대로 하면 되겠네.

   

   “…뭐라고?”

   

   일순 굳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꼬맹이였지만 녀석은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귀가 허접해서 잘 못 들은 거야?♡ 어쩔 수 없지♡ 착한 내가 다시 말해 줄게♡ 못난 주인 때문에 입술이 고생한다고 말했어♡”

   “자네. 미쳤나?”

   “흐응♡ 불쌍해라♡ 눈도 안 좋구나?♡ 만날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 좀 바깥에 나가고 그래♡”

   

   내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벌게지던 꼬맹이의 얼굴은 어느새 벽난로 안에서 타들어가는 불꽃 같은 색이 되었다.

   

   “오만하고. 방자하군. 그대가 주신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한들 필멸자에 불과하다. 그런 네 년이 감히 본인을 모욕하다니!”

   “저기♡ 멍청한 꼬맹아♡ 다른 것처럼 머리도 안 좋나봐?♡”

   “무슨 헛소리를.”

   “이상하다?♡ 방금 전에 제발 영웅담을 쓰게 해주세요~♡ 라고 빌던 허접은 누구였을까아?♡”

   

   내가 영웅담을 언급하자 꼬맹이가 입술을 꾹 닫는다.

   

   하하. 그래.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역사를 기록하는 데에 미친 네가 나한테 강하게 나올 수 있을 리 없잖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꼬맹이 vs 꼬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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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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