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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7

        

       청이 일단은 혹시 몰라서 확인해 본다.

       이런 부분은 확실히 해 둬야 하니까.

         

       “저기, 그거 돼지 피는 아니죠? 그렇게 오해할 만한 차림으로 칼을 겨누시면, 왜 여백사가 죽었는지 막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고.”

         

       여백사는 조조가 찾아오자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칼을 갈았는데, 조조는 그를 보고 이 새끼가 날 죽이려고 하는구나 하고 선수필승 여백사와 그 일가족 그리고 모든 하인까지 남김없이 싹 죽여버렸다는 일화다.

         

       조조의 인성을 보여주는 일화로, 이러한 사악함이 바로 중원 사람들이 조조를 조적이라고 부르며 경멸하는 이유다.

         

       정작 중원 사람들은 조적을 최악의 악인으로 꼽아 침을 뱉지만, 이상하게 극동의 오랑캐들은 조적을 영웅이라 떠받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조조는 태생이 중원 최고의 금수저라서 물려받은 재산과 인맥과 군대로 세력을 그 어떤 노력조차 없이 날로 먹었다.

       그리고 어떤 대의도 없이 그냥 황제 한번 해 보겠다며 오로지 권력을 위해 살았다.

       심지어 조조 개인은 민간인 학살, 불륜, 그리고 신하를 배신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일을 삶의 즐거움으로 평생 즐겼던 끔찍한 악인임임에도.

         

       그러니 마땅히 사람이라면 조조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러니 청이 혹여 무고한 사람이 아닐까 조심해서 한 번 더 확인하는 일은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사내는 오히려 되묻는다.

         

       “돼지 피로 보여? 눈깔은 장식이냐?”

         

       그에 청의 눈썹이 꿈틀.

         

       꼭 이런 새끼들이 있다.

       그냥 물어보면 맞다 아니다 곱게 대답해 주면 서로 마음 상할 일도 없지 않나?

       왜 꼭 이딴 식으로 대꾸하지?

         

       너는 무죄여도 예절 주입에 말본새 교정까지 핵꿀밤 두 대 적립이다.

       안타깝도다. 역시 핵탄두는 두 발 날려야 하는 법이란 말인가.

         

       “정확히 말씀을 좀 해주시겠어요? 사람의 피가 맞는지, 만약 맞다면 어째서 사람의 피로 그렇게 옷에 파격적인 문양을 새겨놓으셨는지 말예요.”

         

       그에 사내가 조금 주춤한다.

         

       양민이라면 마땅히 칼끝을 보고 두려워 덜덜 떨며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나.

       하지만 멀뚱히 선 두 명에게는 아무런 두려움의 기색이 없고, 심지어 큰 년이 등에 맨 망태기에 들은 꼬맹이조차 그러하다.

       어째서?

       양민이 아니라면 그럴 수 있다.

         

       인제 보니 폐목을 둘둘 감아놓은 막대가 막대기가 아니라, 병장기를 몰래 감춰놓은 품새이기도 하고.

         

       사내가 슬그머니 태도를 바꾼다.

         

       “본인은 시산혈도 우감이라고 한다. 너희는 누구냐?”

         

       “시산혈도 우감? 알고 계세요?”

         

       “내가 아는 사혈도는 다른 놈인데?”

         

       “사혈도가 아니라 시산혈도래잖아요.”

         

       “흥. 별호가 그런 식이여봐야 어차피 비숫하게 흉내낸 사이비들이지. 애초에 딱 보니 일류 중반? 그쯤 되는 애송이구만.”

         

       사내가 깜짝 놀랐다.

       대충 보고도 정확히 경지를 알아차리려면 적어도 화경의 고수쯤 되어야 한다.

         

       “엥. 일류요? 누가 일류 따위한테 무슨 시산혈도라는 거창한 별호를 지어줘요? 아니, 거창이고 뭐고 누가 일류 따위한테 별호를 붙여?”

       

       그러자 큭, 하고 등 뒤에서 분한듯한 소리가 들린 것도 같고.

         

       “원래 사파 놈들이 그래. 지가 직접 지어 붙이고는 소문을 내고 다닌다.”

         

       “엑, 그러면 본인이 직접 지은 별호가 시산혈도라는 소리예요?”

         

       우감이 식은땀을 흘렸다.

         

       “그, 어르신들께서는……”

         

       걍약약강은 사파와 청의 공통점이다.

       심상치 않은 낌새에 우감의 집 나간 예의범절이 다급히 문을 박차고 돌아온다.

         

       “됐고. 그래서 그 피는 뭐예요? 거짓말 해 봐야 어차피 마을 좀 돌면 다 나와.”

         

       “그것이……”

         

       우감이 말끝을 흐리며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가 돌연, “형님!!!” 하고 우렁찬 표효를 터뜨리며 냅다 등을 돌려 도망치지 않겠나.

         

       “아씨.”

         

       판단은 나쁘지 않았지만 도망칠 상대를 잘 못 잡았다.

         

       정확히 열 걸음째에 퍽, 등짝에 강렬한 충격을 받은 우감이 우당탕 거칠게 바닥을 구른다.

       세 발짝에 훌쩍 날아서 따라잡은 청의 멋들어진 태권 옆차기의 위력이다.

         

       척 멋지게 착지한 청이 검을 들이민다.

       어느새 둘러놓은 거적을 치워 그 흉악한 크기를 드러낸 무식한 대검, 월광검(십 호)이다.

         

       “아니, 왜 도망을 치지? 내가 묻잖아요. 돼지 피냐 사람 피냐. 그거 한 마디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돼지, 돼지 피입니다!”

         

       “음. 그런데 왜 도망치시고? 군자는 작은 길을 피하는 법인데.”

         

       군자대로행, 군자는 큰길로 다녀야 한다.

       청이 또 문자를 쓰며 삐약거렸다.

       어설프게 배운 놈의 특징이다.

         

       “그, 그게……”

         

       “자. 신중하게 대답해요. 나 칼 들었어.”

         

       “그건……”

         

       우담이 어물거리며 대답을 피한다.

       그때였다.

         

       “무슨 일이냐!!”

         

       우렁찬 포효와 함께 빠르게 가까워지는 강렬한 기세.

       청이 곧장 검을 세운다.

       깡!! 강기와 강기가 충돌하며 어둑한 사위에 번뜩이며 튀어오른다.

         

       아무리 근력이 인간을 초월한 청이라고 해도, 세상의 근본적인 규칙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여인치고는 키가 크고 특수 부위도 상하체로 과도한 청이지만, 나머지에 군살이 없으니 아무래도 중량이 모자라다.

       중량이 모자라면 중력 역시 모자란 법.

       청이 바닥에 나란한 두 선을 그으며 뒤로 쭉 밀려나간다.

         

       그렇게 밀려나가는 와중에도 청이 난입한 적을 매섭게 훑는다.

       그래도 먼저 놈은 피가 많이 튄 의복을 하고 있더니, 이놈은 상의를 온통 시뻘겋게 적셔놓은 꼴이다.

         

       더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

         

       청이 땅을 짓밟아 곧장 방향을 바꾼다.

       노을 색의 별빛이 검이 흐르는 궤적으로 세상을 수놓으며 두꺼운 선을 그린다.

       청의 바깥쪽으로 수평으로 이어지는 선.

         

       딱딱하게 굳어지는 놈의 표정.

       이내 눈빛에 한 줄기 살기가 피어오르니 손잡이를 뒤로 잡아당겨 물러난 칼날에 붉은빛 강기가 서린다.

       방어를 도외시한 노골적인 반격 시도.

         

       그에 청의 입매가 길게 늘어진다.

       오라. 동귀어진? 같이 죽자?

       오냐, 한번 죽어 보자 그래.

         

       그에 청의 강기가 더욱 영롱한 빛으로 그 밝기를 키운다.

       아예 손잡이에 한 손을 보태 등 뒤로 바딱 잡아당겼다가-

       청의 압축된 근육이 폭발하듯 부풀며, 칼날이 쏘아진 포탄과 같은 기세로 거대한 반원을 그린다.

         

       그에 놈이 급히 자세를 뒤바꾼다.

         

       사내는 찌르기로 응수하는 자세를 잡아 같이 죽기 싫으면 물러나라는 그러한 신호, 혹은 일종의 담력 시험을 건 것이다.

       하지만 동귀어진이고 뭐고, 이대로면 한 대 찌르고 반토막이 나게 생겼다.

       그러니 다급히 자세를 바꿔 막을 수밖엔.

         

       따앙!!

       굉음과 함께 놈이 튕겨 나간다.

       주택의 벽면을 뚫고 들어가, 벽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며 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른다.

         

       확, 먼지를 뚫고 청의 모습이 드러난다.

       피투성이 사내의 눈이 크게 뜨인다.

         

       다급히 자세를 잡는 사내를 향해, 청의 왼손이 유성추와 같이 크게 휘돈다.

       쫘악, 언제 바닥을 훑었는지 돌가루 가득 섞인 흙먼지 한 줌이 청보다 먼저 사내의 얼굴에 닿는다.

       마침 크게 뜬 눈구멍 속으로 쏘옥.

         

       “크아악!”

         

       눈에 흙이 들어가면 매우 아프다.

       왜냐하면 흙이 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가?

       당장 눈에다 흙을 넣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순간 시력을 상실한 피투성이 사내가 크아악 비명인지 기합인지, 정확히는 둘 다에 해당하는 소리와 함께 온 사방으로 도강을 붕붕 휘둘러댄다.

       시도는 좋았다만.

       청은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 중이다.

         

       “헉, 허억, 어디냐! 이런 비열한!”

         

       “싸우는데 비열한 게 어디 있어요? 그럼, 그쪽도 흙 던지면 되잖아요.”

         

       사내가 억지로 눈을 떠 청을 노려본다.

       눈가가 꿈실꿈실 가는 경련을 일으키는 이유는 ‘여기 흙 들어왔어요. 지지야. 빨리 깜박거려요.’ 하는 본능의 지시를 억지로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 아냐! 내가 바로 소탈명도 오산추다! 내 아버님이 바로 탈명도 오대안이시다! 그 뒷감당을 할 준비는 되었겠지?”

         

       “탈명도!”

         

       청이 어쩐지 신이 난 기색으로 외쳤다.

       아. 알고 외치는 거랑, 모르는데 일단 맞춰주는 거랑 이게 기분이 완전 다르구나.

         

       청도 이제 아주아주 유명한 대마두 정도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늘 앞뒤 안 보고 들이받는 제자가 녹림까지 태워버린 이후, 그러다 큰 화를 입을까 염려한 서문수린이 위험한 마두 정도는 외워두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탈명도? 현경의 대마두라고 그랬지.

         

       아무리 사악한 대마두라고 해도, 자식을 마두로 키웠단 말야?

       그럼 그냥 내다버린 자식 아닌가?

       아니면 본인이 대마두로 사람 잡아 죽이면서 살다 보니 의외로 괜찮은 삶이라서, 그 자식한테도 그렇게 살라고 가르쳤나?

         

       “크흐, 그래. 그러면 이제 네가 누굴 건드렸는지 알았냐? 지금이라도 물러나서-”

         

       “잠깐! 제가 누군지는 아세요?”

         

       그에 오산추가 멈칫.

         

       “왜, 너도 현경 고수를 뒷배로 두었다고 주장할 셈이라면-”

         

       “아뇨. 그쪽은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탈명도가 자식의 원수가 누구인지 어떻게 아는데요? 내 얼굴 알아요? 이름 알아요? 지금 안 죽이면 오히려 후환이 생기는 거 아닌가?”

         

       “어?”

         

       “막 그쪽 죽이면 탈명도가 아버지의 본능 그런 걸로 앗, 아들이 죽은 것 같다. 그걸 죽인 년이 누군지도 갑자기 알게 되었다! 내 자식의 원수! 죽여버리겠다! 이래요?”

         

       “그건, 밖에 내 아우들이……”

         

       “아우들 중에 화경쯤 되는 고수 있어요? 밖에 화경 고수 하나랑, 일류, 아니, 됐다. 일류를 굳이 있다고 할 필요 있나. 어쨌든 화경 고수 상대로 막 이길 수 있어요?”

         

       그에 오산추의 눈가가 씰룩씰룩.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은 생리적 현상이지만, 때가 참으로 절묘하다.

         

       “그, 그래. 비겁한 년! 이름을 밝혀라! 생사결을 나누면서 이름조차 감출 셈이냐!?”

         

       “뭔 소리예요? 아빠한테 이르려고요?”

         

       “그런 게 아니라! 무인의 기본적인 예가 아니냐!”

         

       “어. 진짜로 가르쳐 드려요? 그럼 내가 꼭 살인멸구를 해야 하잖아. 얼굴이랑 이름 진짜로 까 드려요?”

         

       “잠깐! 그, 생각할 시간을 좀 다오.”

         

       말을 좀 맞춰줬더니 점점 더 가관이다.

       청이 어이가 없고, 한편으로는 또 어쩌나 궁금하기도 해서 마저 장단을 맞춰 준다.

         

       “뭘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래도 네가 정체를 밝히면 내가 도망을 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러면 네년이 어떻게 나오는지 생각을 좀 정리해 봐야 정체를 밝히게 할 것인지 아니면 이쯤 끝내자고 용서를 빌 것인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

         

       “뭐요? 뭔데 용서를 빌어요? 무슨 잘못 했-”

         

       “잠깐! 생각 중이다!”

         

       아니, 뭐가 이렇게 당당해?

       말허리가 끊긴 청이 기가 막혀 입만 뻐끔거리자니, 뭐라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던 오산추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좋다! 정체를 밝혀라! 그리고 전력을 다해 날 죽여 보아라!”

         

       “하. 내가 왜요?”

         

       “이제 와서 쫄리냐?”

         

       아니, 여기서 쫄을?

       청이 그 신묘한 웅변에 감탄하며, 결국엔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어쩔 수 없지. 자, 얼굴 보고 놀라지는 마시고.”

         

       청이 면사를 걷기 위해 손을 드는 순간-

         

       “죽엇!”

         

       오산추가 진각을 밟으며 도를 앞세운다.

       그리고 청의 가늘고 긴 손가락 끝에서는 새까만 한 줄기의 광선이 피어오른다.

       

       천마죽음광선!

       …이 아닌 천마폭혈지!

         

       검은 직선이 오산추의 발등에 닿아 돌연 펑, 살점이 터지고 피가 흩날린다.

       천마신공은 겨우 초절정이 쓰기에는 너무 고급의 공부다.

       그러니 본래 뼈와 살을 폭발시켜야 하는 위력까지는 안 나오고, 그냥 뼈는 남기고 살점만 깊숙이 터져나가고 만다.

       덕분에 진짜 정확히 말 그대로 발등의 뼈와 살이 분리된 오산추가 바닥을 구른다.

         

       “아아악!”

         

       “아니, 내가 바보예요? 눈에 들어간 흙이 빠질 때까지 시간 끌려는 걸 누가 모를 줄 알았어요?”

         

       청은 비열한 수작으로는 세상 어떤 대마두와 겨눠도 자신이 있다.

       그러니 이런 기초적인 시간 끌기에 당할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다는 소리다.

         

       “속는 척해 줬더니, 머저리신가? 기습을 하려면 조용히 해야지, ‘죽엇!’ 왜 기습 한다고 알려주려구요?”

         

       “크흑, 네년! 감히 이러고도!”

         

       “이러고 어쩔 건데.”

       

       청이 월광검을 척 겨누다가, 픽 웃음을 터뜨리고는 대신 왼손을 앞으로 내민다.

         

       “자, 아까는 검지로만 쐈는데. 다음에는 다섯 손가락 다 쏠 거예요? 다섯 줄 전부 피할 자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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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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