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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47

       그 이후에 난리……가 나지는 않았다.

        

       아니, 따지고 보면 난리는 난리였다. 전투가 끝난 직후의 해결책을 논의하고, 정치적인 현안을 처리하고, 법적인 문제를 어떻게든 넘겨야 했으니까.

        

       패배한 쪽의 신상에 대한 지루하고 긴 협상이 이어지고, 피해에 대한 배상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문제가 있다면—

        

       “……너무 오래 푹 쉬어서 일하는데 죽을 것 같아.”

        

       앨리스가 침대에 퍼져서 말했다.

        

       “일하는데 죽을 것 같다는 사실엔 동의합니다만, 왜 하필이면 제 침대에 그렇게 퍼져있습니까? 그것도 자는 시간에.”

        

       그렇다.

        

       나는 나 나름대로 일을 마치고 돌아와 침대에 뛰어들려고 했는데, 앨리스가 거기 시체처럼 엎드려있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방을 착각했나 싶었다. 앨리스는 내 옆방을 쓰고 있었으니까.

        

       “왜, 오면 안 돼?”

        

       “안되는 건 아닙니다만.”

        

       나는 내 책상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냥. 여기가 싫다는 것도 아니고, 내 방이 특별히 불편한 것도 아니거든? 그런데 적막한 방에 혼자 누워있으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그 나이 먹고 혼자 방에 있는 걸 무서워하다니, 여러모로 곤란한 거 아닙니까?”

        

       “……내가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여?”

        

       앨리스는 옆으로 돌아누워 나를 노려보면서 말하다가—

        

       “아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대답했다.

        

       “너는 그렇지 않아? 불과 2주일 정도 전만 해도 무려 다섯 사람이 한 장소에서 지냈잖아. 옆이 허전하지 않아?”

        

       “…….”

        

       그 말에는……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특별히 외로움을 타는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아도 괜찮다는 소리까지는 절대로 아니고.

        

       혼자서 방을 쓰는 거라던가, 혼자서 밥을 먹은 거라던가,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그런 쪽에 완전히 면역이 생겨 이제는 괜찮을 줄 알았다.

        

       저쪽 세상에 넘어가서 충격받았던 건 그냥 내가 쌓아놓은 인간관계가 순식간에 날아갔다는 생각에 그랬을 뿐이고.

        

       하지만, 무려 다섯 명이 모여앉아 식사하고, 요리하던 시간이 갑자기 사라지니 영 허전하긴 했다.

        

       여기서는 식사해도 그렇게 도란도란 모여앉아 먹지는 않으니까.

        

       “지보도 사라졌으니, 이제 이 생활에 적응해야지요. 그래도 아카데미에 나가기 시작하면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럴까?”

        

       앨리스는 다시 몸을 돌려서, 이제는 내 침대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앨리스 성격이 많이 뻔뻔해진 것 같다. 아니, 예전에도 조금 뻔뻔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저쪽 세상에 다녀오면서 클레어한테 옮기라도 한 걸까?

        

       나는 그런 앨리스를 보며 작게 한숨 쉬었다.

        

       *

        

       “다른 세상……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일이 그럭저럭 마무리되고, 아카데미에서.

        

       오랜만에 만난 레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가 이쪽 세상에서 사라진 건 대충 한 시간 정도였다고 한다.

        

       샤를로트와 미아가 우리를 만나러 왔을 때와는 또 시간이 벌어진 단위가 다른 것으로 보아, 그게 일정하게 유지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고 과거로 갈 일까지는 없겠지만.

        

       게다가 지금은 지보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재시도 같은 것도 할 수 없고.

        

       나도 알고 있다.

        

       여신의 힘을 이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걸. 고작 지보 하나 있다고 해서 그 힘을 무한정하게 쓰지는 못했을 거다.

        

       우리가 이쪽으로 넘어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소통해야 했는지 생각하면 더 그렇다.

        

       “만화도 영화도 잔뜩 있고, 그 등장인물을 따온 상품도 잔뜩 있는 세계……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레나는 미아와 통하는 바가 있다.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에 대한 동경심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레나 방을 방문했을 때는 깜짝 놀랐지.

        

       그때는 그냥 나도 ‘그런 걸 좋아해서’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야, 이미 이 세상에는 나에 대해 너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네 사람이 있었으니까. 더 숨겨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볼 수 있다면 가보고 싶습니다.”

        

       레나는 조금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긴, 이세계라니, 어떤 의미에서는 중2병 감성을 팍팍 자극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막상 가보면 그냥 사람 사는 또 다른 세상일 뿐이지만.

        

       “기회가 있다면, 함께 가보는 것도 좋겠죠. 저희가 쓰던 집도 그대로 남아있을 테니까요.”

        

       내가 대답하는데,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

        

       교복을 입은 클레어는 오랜만이었다. 하긴, 게임 속에서는 계속 보긴 했지만.

        

       “오, 레나도 있네.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어?”

        

       “우리가 다녀온 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클레어는 웃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재미있었지, 정말.”

        

       클레어도 방에 사진을 잔뜩 걸어두었다고 했다.

        

       “아, 어제 소피아랑 이야기를 나누었거든? 아메리카노랑 하와이안 피자 이야기하니까 거의 거품 물기 직전까지 가더라.”

        

       “……설마 맛있다고 칭찬했습니까?”

        

       “어. 맛있었잖아? 아무리 그래도 아메리카노는 조금 썼지만.”

        

       아메리카노가 쓰다는 말까지 한 건가.

        

       나는 클레어의 담력에 감탄했다.

        

       “레오한테도 이야기했고. 사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이야기해주니까 재미있어하더라.”

        

       “게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내가 미쳤어? 아무리 그래도 레오랑 언니가 연애할 수 있는 상태였다는 이야기는 못 했지.”

        

       “……황녀님과 레오가 연애를?”

        

       “……오해할까 봐 하는 말입니다만, 현실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는 클레어를 흘겨보았다. 클레어는 나를 향해 혀를 살짝 내밀어 보였다.

        

       “하아. 벌써 또 돌아가고 싶다.”

        

       “방법이라면 찾아보는 중입니다만.”

        

       “나도 마찬가지야…… 지보는 어디로 간 걸까? 분명 우리 마지막에 손에 쥐고 있었지?”

        

       클레어와 앨리스가 넘어올 때만 하더라도 손에 쥐고 있었으니, 당연히 돌아온 뒤에도 손에 쥐고 있었어야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곤란하네, 정말. 여신이라는 존재는 성격이 괴팍한가 봐.”

        

       클레어가 투덜거렸다.

        

       잠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클레어가 문득 말했다.

        

       “우리, 그냥 한번 시도해볼래?”

        

       “뭘 말입니까?”

        

       “저쪽 세상으로 가는 거.”

        

       “지보 없이 말입니까?”

        

       “해봐서 손해 볼 거 없잖아? 응? 응?”

        

       “시도라면 혼자 해볼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혼자 넘어가 봐야 심심하기만 하잖아. 혹시 못 돌아오면 어쩌려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때, 레나?”

        

       “네?”

        

       “언니한테 조금 전까지 이야기 듣고 있었다면서? 한번 가보고 싶지 않아?”

        

       “아, 네, 가보고 싶기는 합니다만…….”

        

       “봐, 언니.”

        

       “…….”

        

       나는 그렇게 말하는 클레어를 조금 수상하게 바라보았다.

        

       뭘까.

        

       뭔가 엄청나게 확신하는 것 같은 기분인데.

        

       “자, 자, 봐, 두 사람 다 내 손 붙잡고.”

        

       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손을 확 잡은 뒤, 레나의 손도 잡았다.

        

       “네? 네?”

        

       클레어한테 손을 잡히자 레나가 조금 부끄러운 듯 표정이 무너졌다.

        

       “자, 그럼, 간다!”

        

       “잠깐—”

        

       내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미 클레어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

        

       나와 레나는 바닥을 굴렀다.

        

       그런데 이거 이렇게 이동할 때마다 바닥을 굴러야 하는 걸까? 저쪽 세상으로 넘어갈 때마다 바닥에 매트라도 깔아둬야 하나?

        

       레나는 거의 본능에 가까운 동작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세를 취했다.

        

       주변을 휙휙 돌면서 상황을 살피다가, 멍한 표정을 짓고는 우리 쪽을 보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바닥에 찧은 머리를 문지르며 클레어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히히.”

        

       클레어는 웃으며 나에게 V자를 만들어 보였다.

        

       “어, 저기, 여기는?”

        

       “빨리 말해주십시오. 지금 레나가 고장 나려 합니다.”

        

       레나가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자, 클레어는 다시 내 손과 레나의 손을 낚아채듯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땅바닥을 뒹굴었다.

        

       *

        

       “연습해보니까 되더라고.”

        

       “연습해보니까 되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클레어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 뒤에 말했다.

        

       “지보가 사라졌잖아. 그러니 그 지보를 어떤 방식으로건 ‘완성했다’라고 보는 게 옳지 않겠어?”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클레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설마, 그 지보가…… 황가의 피를 짙게 이어받은 당신과 이어져 완성되고 말았다는 소리입니까? 여신의 힘 일부를 강탈했다고요?”

        

       “아주 정확해.”

        

       “…….”

        

       “우리가 세상의 비틀림을 모아 담아서 그 지보를 발동했잖아? 아마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모인 힘이, 여차여차해서 나의 몸과 합쳐진 것 같아.”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참고로 이미 방송도 했어. 다음에 돌아올 때는 언니도 데리고 돌아오겠다고 ‘짧뱅’했지.”

        

       “……짧뱅?”

        

       레나가 앵무새처럼 되물었다.

        

       “아, 그런데, 조금 안타까운 게, 우리가 저쪽에 있을 때처럼 시간이 엄청 느리게 가거나 그러진 않는 거 같더라. 이제는 이쪽이랑 동일하게 흐르는 것 같으니까, 다녀올 때는 휴가라도 내야겠네.”

        

       “…….”

        

       뭐랄까.

        

       뭐라고 할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 그러고 보니 게임에서도 여신을 몰아낸 뒤에는 황제가 튀어나왔던가.

        

       그 남은 힘이, 이번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클레어의 몸에 흡수되어버린 모양이다.

        

       앨리스가 들으면 좋아하겠네.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나와 클레어를 번갈아 보는 레나를 보며,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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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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